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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4/09

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9/30
    북한인권법(1)
    SABOTAGE
  2. 2004/09/26
    올리버스톤, 카스트로, 허리케인(1)
    SABOTAGE
  3. 2004/09/25
    프로야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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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4/09/24
    황당함(2)
    SABOTAGE
  5. 2004/09/11
    오늘도 우라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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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4/09/04
    冬の소나타와 現代소나타
    SABOTAGE
  7. 2004/09/03
    핵무기보험
    SABOTAGE

북한인권법

현재 미국 의회에 두개의 북한관련 입법안이 계류중입니다. 하나가 엇그제 짐 리치의 원안을 약간 수정해서 상원에서 통과시킨 소위 북한인권법(North Korea Human Rights Act)이라는 법안이고 하나는 아직 하원에 있는 북한자유화법(North Korea Freedom Act)입니다. 

미국내 반북엔지오인 북한자유화연대(North Korea Freedom Coalition: 본 법안을 발의한 James Reach의원과 입장을 공유함)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해당 법안(North Korea Human Rights Act)의 목적이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습니다.

 

The goal of the North Korea Human Rights Act of 2004 is to help bring about peaceful changes for and by the people of North Korea, whose people currently suffer under one of the most repressive regimes in the world.

 

링컨식 수사를 21세기에도 구사한다는 점에서 유치하긴 하지만 액면만 보면 뭐 그냥 그래보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내용을 달리 표현해 보면 문제는 좀 달라집니다. 제 식으로 표현을 고쳐보겠습니다.

 

[해당법안의 일차적인 목적은 세상에 둘도없는 억압 시스템인 북한내의 반체제 및 반정부 세력을 지원해 정권을 전복시키는데 있다.]...가능한 뒷 내용 또한 제 나름대로 작문해 보겠습니다. [이를 위해 미 의회는 관련 활동에 대한 다각적 지원책을 모색하며, 특히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유도하기 위한 활동에 조직과 재정을 지원해 북한정권의 자연스런 붕괴를 유도하고자 한다].

 

앞선 글, '올리버스톤과 카스트로'편에서 썼던 [쿠바인민 지원법안, Cubian Adjustment Act]과 [북한인권법(North Korea Human Rights Act)]은 그 취지와 목적이 동일해 보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지구 야경권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에게 국가적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개기는 나라들이 바로 쿠바와 북한입니다. 이란, 이라크를 포함해 중동의 몇몇국가들은 때에따라 미국과 밀월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북한과 쿠바는 공화국 수립이래 한번도 미국과 친하게 지낸적이 없었습니다. 온갖 무력을 동원한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두나라. 미국의 입장에서야 눈과 목에 박혀 뭘 보려고 할 때마다, 뭘 먹으려고 할 때마다 훼방을 놓는 '사악한 가시'들 입니다.

하다하다 안되니까 이제는 해당 국가 인민들의 국외 탈출까지 조장 고무하고 있습니다(속된말로 꼬시고 있는 겁니다). 시스템을 안으로부터 교란시켜보려는 속셈입니다. 치졸하고 사악합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가지만 부언하겠습니다. 저는 북한의 현재를 대단히 비민주적인 레짐으로 간주하며, 해당 사회를 그나마 지탱시켜온 20세기형 사회주의 혁명의 '건강한' 에너지는 모두 소진되었다고 진단합니다. 아울러 현재의 집권세력들이 혁명의 재생과 지속을 위한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북한 사회의 고민으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다만, 한국 사회가 통일을 가정한다면, 1) 북한에 긴요한 모든 경제적 필요를 지원하되, 2) 해당 사회가 시장의 폭력앞에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둘 사이에 미국은 없어도 됩니다.

 

최근 며칠, 일본은 '아키노나가아메'라고 하는 가을을 맞이하는 '우기'였습니다. 일주일 내내 비가 왔습니다. 그 '아키노나가아메'의 끝이 '태풍 21호'였고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바야흐로 가을이 된 셈입니다. 모든 비와 바람이 지난 '가을' 하늘의 끝이 어디인지 높아 보이질 않습니다. 환절의 시기는 설레임과 아쉬움이 뒤섞이는 시기이며 몸이 새로운 적응을 하는 시간입니다. 몸과 마음 두루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09/30/204 tokyo, sabo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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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스톤, 카스트로, 허리케인

"피델 카스트로를 연호하는 거리의 데모는 (억지로 동원되거나) 꾸며낸 것이 아니었다. 만일 그 모든 것이 조작된 것이었다면, (오스카 위원회는) 그곳에 참여했던 데모군중들 모두에게 아카데미 최우수연기상을 수여해야 할 것이다. 나는 만면의 미소와 함께 대통령 카스트로 앞에 다가서는 쿠바시민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으며, 이 모든 것을 사실로 증언할 수 있다" -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영화 플래툰(Platoon), JFK 그리고 살바도르(Salvador)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올리버스톤의 새로운 영화 'Looking for Fidel'이 제52회 산 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the 52nd San Sebasti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의 비경쟁부문에 '출품'되었습니다. 영화는 쿠바 인민들의 미국내 밀입국을 조장해, 쿠바 아일랜드를 불구로 만들어 버리려는 미국의 '악의적' 법안인 '쿠바인(난민) (적응)지원 법률안(Cubian Adjustment Act; CAA)'에 대한 쿠바의 대응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신문기사들은 이 영화가 2003년 발생한 쿠바의 반정부 지식인들에 대한 중형 선고와 (CAA에 의해 '고무'되어) 보트를 하이재킹 해 미국으로 가고자 했던 세명의 쿠바 젊은이들에 대한 쿠바정부의 사형집행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영화는 30여시간에 걸쳐 진행된 피델에 대한 인터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올리버는 쿠바민들의 쿠바 정부와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신뢰를 확인한 듯합니다.

 

Looking For Fidel

 

이러한 쿠바가 근 1세기만에 카리브해, 멕시코만 그리고 미국의 남동부를 연타하고 있는 허리케인의 폭풍으로부터 안전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UN까지 나서서 쿠바의 재난 방호시스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진보블로그인 '밑에서 본 세상'이 스크랩해 정리한 내용에 따르면 '쿠바는 재해 예방 교육을 학교의 정규 과목에 포함시켜 어려서부터 가르치며, 훌륭한 민방위 교육과 기상예보 시스템' 또한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허리케인 최근호였던 아이번의 북상 동안에 카스트로는 "이번 허리케인은 보통 때와 전혀 다르다. 핵 폭탄과 같다... 생명을 최우선으로 보존하라. 나머지 모두는 다시 복구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티브이 프로에 직접 나와 4시간 동안 기상전문가들과 주민 대피 요령을 설명'하고, 허리케인이 지나는 지역에 직접 나서 대피작전을 진두지휘했다고 합니다. 한사람의 사망피해자도 발생하지 않은데에 이유가 있었습니다. 현재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진행중인 허리케인 진(Jeanne)으로 인해 아이티와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등지에서 2천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도 옆집 쿠바로부터의 피해소식은 '여전히'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온갖 첨단의 과학과 기술에 관한 재산권과 응용력을 보유한 아메리카도 지난 허리케인 아이번에의해 수십명의 사망피해와 수백억달러의 재산피해를 당해야 했습니다. 자연은 선단의 과학으로 지배되지 않는 다는 사실. 중요한 것은 사회의 가치와 시스템이라는 '철지난 생각(?)'들을 다시 한번 상기해 봅니다.

 

09/26/204 비오는 도쿄. sabo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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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오래동안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빴습니다. 그리고 어제 큰 마음먹고 써 놓은 글이 업로드 과정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컴퓨터의 신뢰도(통계적 의미에서)가 사람보다 높다고 생각했던 제 잘못이었습니다. 카피라도 하나 해 놓는건데.

 

오늘의 주제는 프로야구입니다.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은 공부를 직업으로 하는 제게 매우 중요한 관심의 대상입니다. 물론 학술적 차원의 관심입니다. 이들 세나라에서 최근에 공히 화제가 되는 뉴스의 소스가 프로야구입니다. 물론 컨텐츠는 모두 다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지구상에서 프로야구 즉, 사업으로서의 야구, 직업으로서의 야구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한국, 일본 그리고 미국이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세한 수치는 모르겠으나 미국과 일본의 경우 프로야구의 경제효과, 즉 해당 산업의 경제적 부가가치 또한 매우 클 것으로 확신합니다. 한국의 경우는 그에 비하면 좀 규모가 작고 장사도 잘 안되는 분위기죠.

 

최근 미국 프로야구계의 스포트라이티는 단연 스즈키 이치로 선수입니다. 2000년 11월, 일본의 유명한 게임기 제조업체 닌텐도(게임보이 제조업체)가 대주주로 있는 시애틀 마리너즈에 입단했습니다. 물론 일본에(오릭스) 있을 때부터 타격에 관련한 이러저러한 기록들을 세운터라 약간의 기대는 있었죠. 헌데 이친구 데뷔 첫해에 타율 3할 5푼으로 사상 두번째 메이저리그 신인왕과 정규시즌 엠브이피를 동시에 석권합니다. 미국과 일본의 프로야구 신자들을 놀라게 했죠.

아 그런데 이 선수 올해 미국 프로야구사에 또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무려 80여년을 누구도 손대지 못했던 한시즌 최다안타 기록입니다. 최근 두 경기에서만 9개의 안타를 몰아쳐 1920년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즈의 조지 시슬러가 세운 257개의 안타에 불과 10개차로 뒤진 247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즌 잔여 경기가 10경기니 한 경기당 1개씩 치면 타이가 되고 한 경기에서만 두개 이상을 치면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셈입니다.   

만일 이치로가 미국 프로야구계의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고 앵글로 색슨이었다면 지금쯤 전국 맥도날드 샾의 지붕위에 예의 배트를 곳추세워 투수를 노려보는 그의 사진이 풍선 따위에 매달려 [이치버거]나 [빅이치] 등을 광고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대단한 선수입니다. 

짧은 스윙 동안에 배트의 궤적을 3번이나 바꿀 수 있는 타구능력과 빠른발은 그의 천재성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일본인 특유의 성실함과 승부근성이 재능의 효과를 극대화 하고 있습니다. 이 선수 1980년 88올림픽 개최지를 둘러싸고 스위스 바덴바덴에서 서울과 경쟁했던 나고야 출신입니다. 도요타 자동차와 함께 나고야가 만들어 낸 세계적 상품입니다.

 

다음은 한국의 프로야구 입니다. 영어에서 스캔들이라는 말로 정의하는 일련의 사태나 현상을 일본에서는 불상사(후쇼우지)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불상사라는 말은 우리에게도 익숙하죠? 아무튼 이 불상사 범주에 들어갈만한 큰 일이 한국의 프로야구계를 강타했습니다. 무려 50여명의 선수들이 자신들의 신체를 조작해 병역을 면제받은 사건이 터진겁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국민개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지구상 몇 안되는 나라이고 그 군역의 이행 여부는 법률적 의무를 넘어서는 윤리와 정서 차원의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유력했던 대통령 후보가 두번씩이나 아들 군대문제 때문에 낙마를 했으니 관련한 분위기를 짐작할만 하죠. [신성한 병역]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시민사회 일반의 생활세계와 군대사회 생활의 사회적 거리를 짐작할 수 있으며 그 거리를 단절 고립 부자유 등이 메우고 있는 것입니다. 술먹 먹었다하면 예비군들 입에서 나오는 군대 이야기의 배후에 그러한 단절과 고립의 트라우마가 내재 한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단절과 고립이 가져올 경제적 손실, 신체의 조작을 통한 역의 면제와 경제활동의 지속, 들킬 경우에 지불해야 할 비용 등이 하나의 함수를 만든 셈인데 그 결과는 네가티브가 되었습니다. 병역관련 불상사만 뉴스로 되면 금새 비등하는 우리네 정서 또한 당사자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죠. 관련 혐의자 50여명의 경기 출장을 정지시킨 프로야구 위원회의 결정 또한 사회적 압력에 기인한 바 큽니다. 아무튼 연예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꽤 큰 규모가 될 이번 사태를 한국 사회가 어떻게 해결하는지 두고 볼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프로야구입니다. 바로 어제 잠정적으로 해결이 되었습니다만 최근 일본 사회는 개시 70년만에 처음 일어났던 선수노동조합(일본프로야구 선수회)의 파업으로 한차례 대사를 치루었습니다.

첫번째, 최근 경영란에 빠진 오사카의 긴테츠 버팔로가 인근의 오릭스와 합병을 발표했습니다. 두 사업체가 하나로 합치는 구조조정(리스토라)을 할 경우 불보듯 뻔한 것은 감원입니다. 리던던스를 정리해고 하는거죠. 게다가 선수들간 생존을 둘러싼 경쟁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긴장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파업의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두번째, 원래 일본 프로야구는 총 12개 팀이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에 각 6팀씩 나뉘어져 한 시즌 경기를 한 후 해당리그 1위팀들끼리 제팬시리즈를 통해 챔피언을 가리는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한 팀이 줄어들 경우 밸런스가 깨져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생기게 됩니다. 단일리그로 하는 옵션 그리고 인터리그 경기의 수를 늘리는 방안등이 다양하게 논의되었으나 어느 경우에도 야구노동자들 노동강도의 상승은 불가피해 보였습니다.

세번째, 프로야구 사용자 집단은 독점적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신규업체의 시장진입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동안 일본 프로야구의 사용자 조직은 몇몇의 스타트업 컴퍼니(벤쳐기업)들의 프로야구 시장 참여를 여러가지 방식과 논리로 거부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그 폐쇄적 보수성이 드러났습니다. 앞서 이야기 한 대로 긴테츠와 오릭스의 합병 발표후 라이브도아라는 신흥 인터넷 기업과 빗셀 고베(몇몇의 한국선수들이 속해있던 구단)라는 프로축구팀을 운영하는 라쿠텐이라는 인터넷 쇼핑몰 업체가 프로야구 사업에의 내년 시즌 신규참입을 희망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선수 노동조합에게는 샘물과 같은 뉴스였을테지요. 헌대, 사용자조직인 엔피비는 이러한 신청을 한 방에 거절했습니다. 내년 신참은 어렵다구요. 사용자 집단은 인터넷 벤쳐들을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동네 피씨방 수준의 사업체들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귀족들 노는 물에 들어 오는 거 못봐주겠다 이거죠. 어찌되었든 이러한 거부가 지난주말 선수회 파업의 직접원인이 되었습니다.

어제 장장 10여시간의 교섭끝에 두단주들이 내년 시즌 새로운 팀의 야구시장 참여를 허용하고 팀의 구성을 위해 지원한다는데 합의 함에 따라 사태가 일단은 마무리 된 상태입니다. 물론 여전히 여러가지 문제들은 남아있습니다. 다이에를 비롯한 몇 구단들의 재무상태가 계속 심각해 지고 있어 장기생존의 가능성이 매우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번 프로야구 노사간 분쟁은 노동조합의 판정승으로 끝났습니다.

 

이번 일본 프로야구 노사분쟁과정에서 흥미로운 논의가 있었습니다. 바로 프로야구 선수들의 직업적 지위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의 파업발표가 있고 나서 사용자단체는 곧바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 발표했습니다. 구단주들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들이며, 따라서 노동조합 조직, 교섭 그리고 단체행동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합법적인 단체행동권 즉, 파업권이 없는 상태에서 집단행동을 할 경우 사유재산의 침해 등에 따른 손해배상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에서 노동자에 대한 법률적 정의는 두가지 법에 의존하는데 하나가 '노동기준법'(우리의 근로기준법)이며 다른 하나는 '노동조합법'입니다. 노동기준법은 타인에의해 고용되어 있는, 즉 피용자 일반을 노동자의 범주로 정의하며, 노동조합법은 임금 등의 보수를 받아 생활하는 임금생활자를 노동자로 정의합니다. 타인을 고용해 상품을 제조하거나 고용관계에 편입되지 않고 사업체를 자영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자신의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범주를 노동자로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 경우 프로야구 선수들 또한 명백히 노동자가 되는 거죠. 이번 일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노동자로서 사회적, 법률적 인정을 받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울러 85년 도쿄 지방법원이 프로야구 선수회에 대한 자격심사를 통해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선수회는 힘을 얻게 되었죠.

물론 단체교섭의 구조나 파트너 구성 등의 문제는 여전히 복잡합니다. 하지만 이번 프로야구계의 단체교섭은 기업별 노동조합 시스템을 근간으로 하고 산업별조직이나 연맹조직의 교섭권이 부재한 일본에서 예외적인 업종별 교섭이었다는 점에서 제게는 큰 흥미거리입니다.

 

추석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송편먹어본지 증말 오래되었습니다.

 

09/25/204, 도쿄. sabo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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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함

휴....매우 긴 글을 써 올렸는데 어찌된 일인지 날아가 버렸습니다. 두주 가량 아무런 업데이트도 없었기에 아픈 머리를 참아가며 두시간에 걸쳐 쓴 글이었는데. 황당과 난감 그리고 비통함이 교차합니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옵니다. 집에 맥주라도 하나 있었으면... 간간이 들러 안부를 전하는 진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함. 진호야 네가 바라는 것은 잘 될 것이다.

 

도쿄, sabo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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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라늄.

모두 안녕하시죠. 읽고 쓰는 일이 너무 많아져서 블로그 관리에 소홀합니다. 당분간 바쁠 듯 하니 글을 올릴 여가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글을 소개하거나 작성해 주실 분들은 게스트북이라고 되어 있는 방명록이나 덧글 달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요즘 여러가지 뉴스거리가 많은데,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의 우라늄 관련 실험 사건이죠. 지금 그것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나라들이 바로 일본하고 미국입니다. 현재로서 뭐가 진실에 가장 가까운 스토리인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대통령도 아마... 

오늘 아침에 훑어 본 신문들입니다. 요미우리는 90년대에도 한국에서 레쟈법 우라늄 추출 농축 시도가 있었다고 보도합니다. 내용에 따르면, 80년대 초, 90년대, 그리고 2000년에 실험들이 이루어 졌다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이 사실일 경우 매우 체계적인 준비와 연구를 한 셈이되죠. 10년에 한번씩. 그 아래 어태치한 영문 아티클은 워싱턴 포스트의 문제기사입니다. 결국 유엔 안보리에까지 문제가 상정될 것으로 확신하는 모양입니다.

뭐가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사실 그리고 절실한 느낌은 한국 정부의 외교적 무능입니다.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불가피 했다면 한번에 공개하고 손 털던가, 아니면 끝까지 숨기고 지하에서 계속 실험을 하던가...뭐 그리 우왕좌왕, 좌충우돌 하는지. 지난번 고 김선일씨 피랍사건 때도 그랬습니다만 한심합니다. 여하간 저는 반핵입니다.

아울러 한국의 국회내에서 건국이래 가장 격렬한 사상투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을 둘러싸고 말이죠. 지금까지의 국회야 사상관련 논쟁을 할 일이 없었죠.  84년인가? 유성환이라는 의원이 국시를 통일이라고 했다가 그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바로 잡혀갔던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그냥 한편의 코메디였다고 생각하는게 덜 쪽팔릴겁니다. 아무튼 제 생각에 한국의 국가안보를 가장 위태롭게 하는 법은 바로 그 국가보안법입니다. 국가보안법 완전철폐를 바라는 아침입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요미우리 9월 11일 인터넷 조간]

韓国の濃縮ウラン製造、90年代にも関連実験

[ウィーン=石黒穣]ウランのレーザー濃縮実験を2000年に実行したことを認めた韓国は、それ以前の1990年代に、レーザー濃縮実験の先駆けとなる複数の関連実験を行っていたことが10日、外交筋の話で明らかになった.

ウランをレーザー濃縮に適した段階に加工するための実験が含まれると見られる。国際原子力機関(IAEA)は90年代の実験についても調査を進めており、13日の定例理事会でエルバラダイ事務局長報告にも調査内容が盛り込まれる.

韓国政府は、〈1〉1982年に韓国原子力研究所でプルトニウム抽出実験を行った〈2〉2000年に同所で行われたレーザー法によるウラン濃縮実験について、核拡散防止条約の保障措置(査察)協定で定められた、IAEAへの申告義務に違反して実施していた――の二つの点について認め、「科学者の発意による、単発的なもので、政府の関与はなかった」と説明している.

90年代の実験が濃縮ウラン生産まで至っていたかは不明だが、本格的なレーザー濃縮実験の基礎となるデータを提供するものだったのは確実。韓国のこれまでの説明と異なり、実験が長期かつ計画的なものだった可能性を強く示唆している。  (2004/9/11/03:02 読売新聞)


 

 

[워싱턴 포스트 9월 10일, 인터넷판]

S. Korea Admits Extracting Plutonium
Acknowledgment of '82 Test Follows Disclosure on Uranium

By Anthony Faiola and Dafna Linzer

SEOUL, Sept. 10 -- The South Korean government acknowledged Thursday that it extracted a small amount of plutonium during a 1982 research experiment, a declaration that came a week after the country acknowledged its scientists had secretly enriched uranium.

Diplomats at the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n Vienna said the agency had begun to suspect that South Korea was conducting nuclear experiments more than six years ago and said South Korean officials had worked hard to hide the experiments from inspectors.

"They had a fairly elaborate plan involving denial and deception in order to evade detection by inspectors," said one diplomat who would discuss the agency's investigation only on condition of anonymity.

South Korean Foreign Ministry officials called those accusations "groundless and unsubstantiated" and said they had fully cooperated with inspectors and would continue to do so.

In Washington, U.S. officials said they gave a clear message to South Korea this week that they consider the charges to be serious and would apply the same standards to any country found to be violating the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That message, which diplomats said would be repeated next week in Vienna at a board meeting of the IAEA, was meant to assuage concerns that the United States was applying a double standard by pushing for tough action against North Korea and Iran, which have also been accused of conducting clandestine nuclear work.

The IAEA believes that South Korea's work on plutonium and uranium -- the key ingredients for nuclear weapons -- seriously violated the treaty and that the matter could be referred to the U.N. Security Council in November, diplomats said.

One diplomat familiar with the IAEA's work said that despite South Korea's official denials, uranium was secretly enriched in 2000 to nearly bomb-grade levels and the other experiment was optimized to produce bomb-grade plutonium. On Friday, South Korean officials again disputed that their experiments had reached anywhere near bomb-grade levels.

South Korea, which derives 40 percent of its energy from nuclear power, contends that all the tests were one-time research efforts unrelated to weapons programs.

The IAEA announced last week that it had launched an intensive investigation after South Korea belatedly admitted to enriching a small amount of uranium during three experiments in January and February of 2000 -- tests that diplomats and experts said the South Korean government was required to report under terms of the Non-Proliferation Treaty.

North Korea, which has been pressured by the United States about its nuclear program, reacted quickly to the report on South Korea. On Wednesday, North Korea's ambassador to the United Nations, Han Sung Ryol, said the Bush administration had a "double standard" on the Korean Peninsula and warned of a budding "nuclear arms race" in northeast Asia.

North Korea expelled international inspectors and withdrew from the Non-Proliferation Treaty about two years ago, and U.S. intelligence officials have said they believe the North Koreans have now amassed an arsenal of up to eight nuclear devices. After three rounds of six-nation talks on the North Korean nuclear program in Beijing, the Pyongyang government and the Bush administration have not significantly changed their negotiating positions. Analysts are concerned about progress in the talks, predicting they may be delayed until after the U.S. presidential election in November.

"This gives another reason for North Korea to raise the issue of fairness with the international community," said Jhe Sung Ho, professor of law at Joongang University in Seoul. "They are going to claim that Washington is pressing them while giving South Korea a break."

South Korea conducted nuclear weapons research during the 1970s but is believed to have abandoned it under U.S. pressure before the end of the decade. One South Korean official familiar with the government's report to the IAEA on the 1982 plutonium experiment said details of the test remained sketchy but insisted there was no indication it had been related to a weapons program.

"This experiment was conducted by a small group of scientists to analyze the chemical characteristics of plutonium," the Science and Technology Ministry said in a statement. "We have no written data left on the result of the experiment and the amount of plutonium extracted, but we estimate that a very minute amount in the range of milligrams was extracted." But one South Korean official familiar with the findings said if the experiment had taken place today, "the government would not have allowed it."

The first indication of a plutonium experiment came to light in 1998 after international inspectors detected traces of the substance at a government-run nuclear research center in Seoul, according to the South Korean science ministry. IAEA sources said the samples were inconclusive, and inspectors began additional testing in other areas of the countr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said the IAEA made only a "casual inquiry" by fax in 1998 and submitted an official request about the incident in 2003.

During that work, the South Koreans allegedly dismantled a test site, moved equipment and failed to notify the IAEA about the experiments while they knew the agency was trying to determine whether such tests had been conducted, according to the diplomats. By 2003, inspectors had collected irrefutable evidence of plutonium reprocessing and uranium enrichment, and they confronted the South Koreans with it last December.

The Seoul government submitted a report on the plutonium incident this March, but the report faced delays and problems, officials said, because the key researcher on the project had died. An official familiar with the case would not identify the researcher and could not cite the date of his death.

The IAEA has identified six violations by the South Koreans that could be reported to the Security Council.

The plutonium experiment took place during political turmoil in South Korea following the 1980 military coup by former president Chun Doo Hwan, who left office with the return to democracy in 1987. The South Koreans said they were unsure if the IAEA would declare the plutonium test in violation of international laws. They disclosed information about the plutonium experiment after the Associated Press quoted an unnamed senior Bush administration official in Washington, who gave details.

"We haven't found out the accurate purpose of the experiment, because the head of the research project at that time has passed away," said one South Korean official familiar with the plutonium test.

But Shin Sung Tack, a nuclear expert at the government-run Korean Institute for Defense Analysis, said, "You need at least 10 kilograms of plutonium to make low- level weapons grade." That is far beyond what the South Koreans said their scientists produced. High-ranking South Korean officials insisted they did not know about the uranium enrichment experiments until lower-level government administrators informed them in February.

Linzer reported from Washington. Special correspondent Johee Cho contributed to this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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冬の소나타와 現代소나타

사나흘전이죠? 한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메이커 현대가 '세계시장 정복을 목표로 개발한 신차 소나타'를 선보였습니다아래 사진입니다. 옆에 서 있는 래디칼한 복장의 젊은 여성 모델들과 매우 보수적인 디자인의 신차가 묘한 대조를 보입니다.

 

사진 1. 소나타와 여인들

 

 

어제(9 2) 아침, 도쿄에서도 현대 신차 하나가 시장에 나왔습니다. 소나타가 아닌 JM이라는 스포츠 유틸리티(공식 개념은 SUV)였습니다. 현대자동차 일본법인인 [휸다이모타즈 자판(Hyundai Motors Japan)] 사장인 교다가 직접 JM을 소개하는 모습이 꼭대기 것하고 비교됩니다.

 

사진 2. 휸다이모타즈 자판의 SUB와 교다사장

新型SUVの「JM」を紹介する京田豊穂社長=東京都港区海岸1丁目で

 

마케팅의 베이직도 모르는 처지에 광고의 칸셈을 왈가왈부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위의 것은 사진의 내용물 모두가 소비의 대상인데 반해 아래 사진은 판매자와 구매 대상이 확실히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어느쪽이 성공한 광고일지는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양쪽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쨋거나 이런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다른데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제팬은 향후 1년간 위 광고차량의 시장판매 목표를 4,000대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는 전년도 동 회사가 판매한 구모델의 판매대수 2,500여대를 훨씬 넘는 목표칩니다. 원래 자동차 시장이라는 것은 진입장벽이 매우 높고 설령 가까스로 얼굴을 내밀었다고 해도 이름을 알리는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수반됩니다. 헌데 이제 막 조산실을 나온 처지에 워킹을 하겠다니. 신문기사의 마지막 꼭지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부가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판매목표를 이처럼 높게 잡은 이유는 후유소나(冬ソナ, 원제-후유노소나타-冬のソナタ / 한국원제, 겨울연가)’로 대표되는 한국의 드라마들이 다양한 브랜드의 한국 상품에 대한 수요를 자극, 촉진할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얼핏 과잉해석 혹은 근거없는 낙관같아 보이기도 합니다만 많은 부분 사실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후유노소나타 메인인 배용준은 일본소니의 광고모델이 되어 지하철, 백화점 심지어 학교구내의 화장실 벽에서까지 예의 그 느끼한 웃음을 흘리고 있으며, 또 다른 메인 최지우는 일본의 유력 주/월간지 커버스토리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유명백화점 각 층 에스컬레이터 승강대 앞에는 그 '소나타'의 대형 그림이 걸려있던가,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습니다.

가 있는 연구소에 계신 중년의 여성 스탶 한 분은 제게 '후유소나'에서 최지우가 입고나온 옷이며 가방 등에 대한 설명을 강요합니다. 사실 저는 합해봐야 1시간이 채 안되게 그걸 본게 전부인데 말입니다. 일어공부 하는 셈치고 소설을 써가며 설명을 해 주면 올 겨울에는 자기도 최지우와 똑같은 코디네이션을 할 것이라고 기염을 토합니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오늘 점심을 같이 한 명예교수 미우라 센세이(70대)도 후유소나가 끝나 아쉽다며 프로그램 디브이디 구매를 심각하게 고려합니다. 집에서 몰래 보는 한이 있어도 밖에서는 드라마 이야기 절대 안하는 한국의 식자 계급과 그 허위의식을 생각하면서 잠시 낯설었습니다만 나름대로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한 열기를 이어가고자 일본의 티브이 채널들은 지금까지 배용준과 최지우가 출연했던 모든 한국 드라마를 다 들여다 보여줄 모양입니다.

 

 

 

칸느에서 박찬욱감독이 화씨9/11에 밀려 2등상을 타기는 했지만 그 이벤트가 있었던 다음날 요미우리 신문의 사설은 한국 문화 콘텐츠 산업의 저력을 평가하며 일본정부도 재정적 제도적 시스템을 구축해 체계적인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문화물의 상품화로 따지면야 일본의 만화는 헐리우드의 영화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경험에서 비롯된 제 생각입니다. 제가 세계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아들 성화를 못이겨 지불한 [유기오카드] 값만도 수백달라는 될 겁니다. 결과적으로 같은 카드가 영어, 불어, 일본어에 한국어까지… 일본과 미국의 카툰네트워크 따위의 채널은 물론이고 파리의 국영 티브이에서도 한국의 에스비에스에서도 유기오를 볼수 있으며 포키몬의 글로벌한 인기도 그에 뒤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문화상품을 본받자고 사설하고 있으니

어쨋든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가 최근 일본시장에서 뜨고 있는 것은 분명하며 그것이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 확장을 도운 것 또한 확실해 보입니다. 그 인식의 디엔에이(DNA)를 제가 정확하게는 진단, 평가 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아울러 여러가지 한국 상품에 대한 수요 또한 이러한 사정에 힘입어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앞서 이야기한 '현대제팬'의 앰비셔스한 목표 또한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젊은층들 사이에는 한국 드라마를 보기위해 한국어 과외붐까지 일고 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몇몇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상당한 수익을 올린다는 '기분좋은' 뉴스도 가끔씩 들리구요.

아무튼 일본문화 수입개방을 예고하면서 사회적 논란을 경험했던 우리 처지에서 이러한 역조는 일종의 아이러니입니다. 하지만 결론은 아직 성급한 듯합니다. 현재의 일본내 한국 문화에 대한 '열기'가 비정상이라 할 만큼 뜨겁기 때문이고, 일본인들의 외국 문화 수용의 자세와 방식이 한국인들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tokyo, sabo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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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보험

9월입니다. 많이 선선해졌네요. 전철역에서 아사히를 샀습니다. 어제는 탈북자 29명이 북경의 일본인 학교 담을 넘었다는 기사가 헤드를 타더니 오늘은 한국의 [미신고 우라늄농축] 사태에 대한 기사들이 대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1. 2. 양면의 3분의 2가 관련기사이고 사설의 첫번째 아티클 또한 해당 사태에 대한 우려와 한국정부에 대한 당부를 담고 있습니다.

2000년 1-2월 경에 한국의 [정부계 연구기관(원자력연구소)]내 數人의 과학자들이 원심분리법이 아닌 레-쟈(레이저)법을 이용 우라늄을 분리해 고농축 실험을 했다는 것이 요지고 아울러 이러한 실험을 한국정부가 사건발생당시 IAEA에 신고하지 않은채 은폐하고 있다가 지난 2월에 비준한 IAEA의 신규협약안 규정에따라 과거의 실험내용을 자진신고 했다는 것이 내용의 핵심입니다. 아울러 [핵병기] 개발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해설기사로 딸려있습니다.

인터넷판 한국신문들을 살펴봤더니, [한국의 미신고 우라늄 농축 국제사회에 미묘한 파장], [미국방부 브리핑, 우려할 수준이 아니며 오히려 신고의무 준수의 좋은 선례로...] 등... 신문의 하드카피들이 어떤지 잘 모르니 그 정도를 정확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노무현대통령 밥먹다 말실수 한 것에 대한 보도 보다도 비중이 덜해보입니다. 어찌되었든 사태를 접하는 양국의 입장과 반응 및 기타행위의 패턴이 사뭇 다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정을 아시겠지만 일본사람들 핵무기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세계에서 원자폭탄 맞은 나라 일본 밖에 없습니다. 그 경험이 일종의 역사적인 트라우마로 남아있으니 그 과민함을 이해할만 합니다. 하물며 자신과 제일 가까운 곳에 [핵병기]가 있다면야...

좀 다른 이야깁니다만 일본사람에게 지진은 항상적 가능성이며 비, 바람과 마찬가지로 삶의 일부입니다. 때문에 일본 호켄(보험)업에서 중요한 상품 가운데 하나가 지신호켄(지진보험)이고 그 종류가 그야말로 다종다양합니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거죠. 아마 한국에 핵무기 보유의 가능성이 50 퍼센트만 넘어가면 [카쿠헤이키호켄(핵병기보험)]이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워낙에 조심스러운 캐릭터들인데다가 폭탄맞은 경험에 그리고 도하 언론의 호들갑까지... 

저간의 사정을 고려하면 최근 일본이 유엔안보리 이사국이 되려는 노력.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높아지는 자위대의 자위능력을 넘어서는 무장에의 시도. 그리고 내각 간부들의 계속되는 야스쿠니(야스쿠니신사의 정문앞에는 19세기 말 메이지유신기 일본군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유명한 군인-이름을 잊어서-의 커다란 동상이 서있음) 참배 등은 일종의 시그날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사건으로 어수선한 주말입니다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핵의 무기화는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아울러 핵발전소 또한 단계적으로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임을 사족으로 말씀드립니다. 종국에 인류사회에 큰 위험이 될 테니까요. 갑자기 옛날 대학생 때 길거리에서 외쳤던 구호가 생각납니다. 반전~반핵 YKGH !!! 저와 동시대에 학교를 다녔던 분들이라면 [YKGH!]이 뭣을 의미하는지 아실겁니다. 흐~

 

tokyo, sabo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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