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폴 발레리 -

대학 1학년 여름방학,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며 지내던 후덥지근한 한낮. 학교 대자보에 붙어있던 이 글을 보고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무언가 내 안에서 꼬물꼬물, 꿈틀꿈틀하더니 머리끝으로 뻗쳐올랐다. 얼마 후 난 봉천동의 작은 공부방에서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내 삶에 첫 번째 큰 굴곡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를 좀 더 잘 들여다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충분히 고민하지 못한 채 무작정 발길 닿는 곳으로 흘러갔다. 후회는 없지만 늘 아쉬움이 남는다.

 작년까지 이어졌던 공부방 활동은 내게 많은 고민들을 켜켜이 쌓아놓았다. 정리하지 않아 이것저것 뒤섞여 어지러운 서랍처럼. 눈 밖으로 밀쳐놓은 숙제들이 한 번에 밀어닥쳐 감당할 수 없었다.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과 교육이라는 주제를 내 삶 안으로 끌어들일 자신이 없었던 것도 이유였고, 귀농해서 생태적인 평화로운 삶을 살고픈 나의 꿈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또 아이들을 만나서 다그칠 때 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헤나시처럼 자신의 삶으로써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하염없이 말로 '떠들어대야'하는 교사라는 자리가 불편했다. 사실 지금의 내 자리를 바꾸려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호이나키가 미국을 떠나 남미로 갔던 것처럼 현실에서 도망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공부방의 상황이 당시의 미국처럼 절망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만나면서 자꾸만 쏟아내고, 비어가는 내 마음을 채워주진 못했다.

 고민의 끝을 보지 못한 채 작아에 둥지를 틀었다. 갑작스레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은 그날 밤 잠자리에서 뭔가 오늘이 중요한 날이 될 것 같다는 기운을 느꼈다. 그 즈음 나는 사람에 목매달던 때였다. 사람이 그리웠고, 만남이 즐거웠고, 관계를 맺는 것이 재미있어 이것 저것 벌려놓은 일이 많았다. 작아에서 일하게 되면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이라 더 고민되었다. 또 당장 내가 원하는 삶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 내 꿈을 유예시켜두고 그 언저리에서 맴돌아야하는 상황도 탐탁지 않았다. 저 멀리 목적지가 분명히 보이는데 자꾸만 에둘러가는 것 같아서 힘이 빠지기도 했지만 결국 아직 여기서 할 일이 있다는 변명을 대며 어느 정도 타협을 본 셈이다.

 리 호이나키가 비틀거리며 걸어간 정의의 길을 한달음에 쫓아갈 순 없겠지만 책장을 넘기며 그이가 지나간 길을 한참 굽어보았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가 한창인 대학 연구실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베네수엘라의 한 도서관에서, 평생교수직을 제안 받았던 일리노이의 대학에서, 삶터를 일군 변두리의 농장에서 지금 자신이 그곳에 있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물었던 호이나키의 삶. 자신의 생활을 떠받치는 마음의 뿌리에서 일렁이는 꿈같은 목소리를 따라 언제든지 주저앉아있던 자리를 박차고 뛰어가는 가슴 설레는 삶, 용기로 실천하는 삶을 만나면서 깜빡 잊고 있던 숙제를 다시 꺼내들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여기는 어떤 곳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정치학에 관한 시험문제는 점점 더 차갑고, 낯설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반면에 내 나라 정치의 진짜 드라마는 내 발밑에서 생동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이제 나에게는 사람의 비판적 능력의 실천은 그의 심장, 정서적 삶, 그리고 그가 처한 육체적, 문화적, 역사적 장소에 깊이 닻을 내리고 있지 않아서는 안 될 것처럼 보인다."

"나는 실제로 새로운 삶터를 찾아서 그 장소 '속'에 있기 위해서 시골로 옮겨왔다. 이 경험은 내가 예전에 품었던 모든 질문을 근본적으로 변경하거나 혹은 해체해버렸다. 다시 새롭게 되고, 경쾌해진 기분이 된 나는 나의 중심이 일상적 삶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것은 농장과 가정, 가족과 친구들, 이웃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한 사람의 혁명 - 만약 내게 용기가 있다면, 사람이 마땅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하는 대로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사회가 바뀔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자신의 변화를 위한 시도이다."

"내가 이들 무수한 시스템을 변경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시스템이 제공하는 외관상의 안락과 안전과 특권과 명예를 지금 당장 포기하는 것을 시작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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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6 18:19 2008/06/2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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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 2008/06/27 14:43
빌려줘 그책 크크 올것처럼 그러드만 언제 오는거냥 키키
장난이고 내킬 때 천천히 오슈.
살림  | 2008/06/29 15:13
아.. 이완~ 날도 오락가락하는데 잘지내는겨?
ㅋㅋ 마감 끝나고 갈게.. ㅡ.ㅡ;
책 말고 또 필요한 거 있음 말해~ 바리바리 싸들고 갈텡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