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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여름정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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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메이데이 총화 + 다음 토론회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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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3] 오늘날, 대학교육을 말하다

2010.3 사회주의노동자신문 학생독자모임 정기 토론회

 

오늘날, 대학 교육을 말하다



0. 대학 다니기, 괜찮으세요?


 이화여대에서는 2년째 등록금을 동결했다고 하는데, 어쩐지 썩 기쁘지도 않은 이유는 그래도 놀랍도록 비싼 등록금 때문일 것이다. 처음 등록금 고지서를 받아본 10학번 새내기는 등록금을 동결한 대신 입학금은 오히려 올랐다는 소문에 분노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국공립대 갈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을 수도 있겠다. 이런 우리들의 생각에 화답하듯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ICL)'1) 시행을 발표했다. 하지만 상환이 시작되기 전까지 매학기 5.7%이상의 이자율이 복리2)로 적용되고, 졸업 후 4년이 지나도 상환하지 못하면 재산을 조사해 강제 징수하거나 일반대출로 전환한다는 ICL은 교과부에서 아무리 ‘든든 학자금 제도’라고 이름 붙여 본들 사채의 냄새를 풍길 뿐이다.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철학의 결정판’이라는 포부를 교과부는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그러나 이 더러운 세상, ICL은 신청기준선이 평균 B학점 이상이어야 하며, 신입 대학생들은 내신과 수능이 6등급 미만이면 1학년 1학기에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없다. 교과부는 당당하게도 ‘대학생들이 공부하지 않고도 4년 동안 학비 부담을 면제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이런 조치를 취했다고 말한다. 까닥하면 신용불량자가 되기 십상인 제도인데 ‘악용’이라고 말하는 것도 우습거니와, 이 말은 상대평가로 불꽃 튀는 강의실의 경쟁과, 생활고에 시달리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수많은 대학생들의 상황을 간과한다. 무엇보다도 이 말은 성장 동력으로서 개인에 대한 투자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의 마인드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인재’를 만드는 ‘교육’을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학생은 투자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교과부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듯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 속에서 유통되는 바로 그 ‘교육’이란 대체 무엇일까? 나름대로 고생해서 대학에 입학했지만 뭔가 실망스럽기만 한 우리들, 막막한 앞날을 ‘긍정’으로 돌파하려는 스스로의 시도마저 철없는 이야기가 아닌지 자체 검열하는 우리들이야말로 바로 그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상상하는 주체이여야 하지 않을까? 이름도 헷갈리는 상환제든 상한제든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하기엔 턱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1. 교육은 공공재인가? : 초역사적, 몰 계급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대학 


 기업이나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이는 대학에 대해,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말로 흔히들 비판하곤 한다. ‘교육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권리인 공공재’이기 때문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이에 일정부분 동의하나, 이것은 ‘교육’ 자체의 성격을 검토하지 않고 사용된다면 굉장히 모호한 개념임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대학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대학’이란 기구에 대한 환상의 장막을 조금 거둬내 보자.


1) 전자본주의 시기3)

 중세 유럽의 대학은 두 가지 전통에 근거하고 있었다. 12세기와 13세기, 이른바 상업의 부흥과 도시의 발흥에 의해 성장하기 시작한 부르주아 계급을 대변하는 상공업 도시들의 대학이 하나의 전통이다. 상공업과 도시의 발달로 법관, 관리, 변호사, 의사 등의 전문 지식인 수요가 팽창하게 되고, 이는 볼로냐의 법학, 살레르노의 의학 등으로 대표되는 학원도시들을 만들어낸다. 또 다른 전통은 교구 중심 도시에 위치한 사원, 혹은 수도원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교회의 부속학교(scholar)이다. 가장 부유한 영주 집단 중 하나인 교회에 의해 조직된 이 학교들은 사제집단-막강한 지주 집단이자 봉건 지주 계급의 인텔리인들-을 재생산하고 봉건제를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이데올로기들을 생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대학의 두 가지 전통은 끊임없이 충돌하며 상호 투쟁해왔다. 교황 이노센트 3세는 부속학교를 강화하는 학교령을 내려 사원 학교를 강화하는 한편 파리 교원 조합의 규정을 제정하고, 카톨릭 사상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그리스 고전 등에 대한 검열 제정 등 학원 내 통제권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생산력의 한계와 흑사병의 창궐 등에 의해 봉건 경제가 위기에 빠짐에 따라 더욱 더 악랄해지고 강화되었다. 부르주아 계급 또한 이런 공세에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교회의 검열과 통제 아래 있던 대학은 끊임없는 부르주아 계급의 투쟁에 의해 봉건 세력의 통제를 구축해나갔고 상공업 도시들은 교회의 학교 설립 제한 조치에 반발하여 이른바 시립학교(stadtschule) 건설 운동을 전개한다. 지난한 투쟁을 통해 종교개혁, 시민혁명 등 중요한 국면에서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장악된 일부 중세 대학은 봉건제를 타격하는 수많은 이데올로기-휴머니즘, 계몽주의 등의-의 생산 기지로 활용되었다. 


2) 자본주의 시기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에 의해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발전하면서 대학 역시 변화를 겪게 되었다. 대학은 성장하기 시작하는 자본주의적 질서를 찬미하고 지도하는 자본가 계급의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핵심 엘리트를 생산해낸다. 대학은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를 강연하고, 사제 관료 집단 대신 변호사, 법관, 기업/국가관료, 의사 등을 배출해내게 된다.

 변화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경제는 무정부적 생산과 그에 따른 끊임없는 경쟁에 의해 추동된다. 이는 전자본주의와는 달리 끊임없는 생산수단과 생산관계의 혁신을 필요로 한다. 이윤을 위한 무정부적 생산은 이윤을 내지 못하는 자본들의 파산과 살아남은 자본으로의 집중을 가져온다. 생존하기 위한 자본은 이윤을 거두기 위해 다른 자본보다 더 싼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특별 잉여가치를 뽑아낼 수 있는 생산성 좋은 기계와 기술이 필요하게 된다.

 이는 기존의 이데올로기 생산에 국한된 대학의 기능을 대폭 변화시키게 된다. 19세기 후반, 기본의 인문학에 집중되어 있었던 커리큘럼이 해체되었고 인문학과 법학에 집중되어있던 교과가 자연과학과 공학에도 문을 열었다. 1840년대까지 세 군데에 불과했던 미국의 공과 단과대학은 1860년대 20개 이상, 19세기 후반에는 40개 이상으로 증가했고 독일의 경우 71년 5000명에 불과했던 공대 학부생이 30년 사이 17000명으로 증가했다. 1900년에 이르러서는 공과대학에 박사학위 수여 권한이 주어짐으로서 이러한 경향은 더더욱 강화된다. 또, 거대한 독점 자본을 운용하기 위한 전체 생산을 조직/계획하고 시장을 조사/개척하고 국가 간 무역을 행하는 등의 실무적 기술의 필요가 더욱 증대되게 된다. 이에 따라 대학은 과학기술은 물론 경제/경영, 외국어 등의 분야에 대한 커리큘럼을 마련해야 하게 된다. 이러한 고등교육의 확대, 산업의 고도화에 따른 평균적인 노동력에 보통교육이 요구되며, 이는 초중등 교육의 확대를 추동해 사범계 대학의 확충을 추동한다.

 1898년까지 세 개에 불과하였던 미국의 경영/상업 대학은 1900년 7개, 15년 40개, 25년까지 183개가 조직되었고 비슷한 시기 1870년 1026개에 불과했던 고등학교의 숫자는 1900년에는 6500개로, 같은 기간 학생 숫자는 72000여명에서 52만여 명으로 폭증했다. 이러한 팽창은 자연히 사범대학의 확대로 이어진다.


3) 오늘날 한국의 대학은?

 현재 우리들은 고액의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다니며, 그곳에서 ‘글로벌 이화 프로젝트’에 발맞춰 영어 교육을 강제 받고, 어서 취업을 하여 여성리더가 되라는 학교의 속삭임을 끊임없이 듣고, 취업을 하지 않는다면 고시나 공무원 시험을 봐야만 살아남는다는 압박을 받으며 살고 있다. 이런 모습의 대학에서 살고 있는 것도 앞서 언급한 사회구조와 대학의 변모에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 자진 퇴교를 하며 자보를 붙여 화재가 되었던 김예슬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와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의 <인간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가 되었다.’ 카이스트는 LG화학을 위해 고분자정보전자소재 석․박사 과정을, 하이닉스를 위해 반도체 공학 프로그램 석․박사 과정을, 데이콤을 위해 정보통신 프로그램 석․박사 과정을, 삼성전자를 위해 삼성반도체 교육프로그램 석사 과정을 만들었다. 이는 카이스트의 특수성이라고 하기엔 타 대학에서도 진행되는 현상들이다. 성균관대는 삼성을 위해 반도체학과(학부), 휴대폰학과(석․박사), 정보통신트랙(학부생 취업보장)을 만들었으며, 연세대 또한 삼성전자를 위해 휴대폰 전공 과정(석․박사)이 있고, LG전자를 위해 산학 장학생 제도가 있다. 고려대, 한양대, 서강대,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영남대. 모두 다 비슷한 추세이다. 이에 반해 ‘친기업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 학문은 학문으로서 생존할 수 있을지 기로에 서 있다. 아래는 최근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중앙대의 사례이다.

<민중의 소리> (일부 따옴)

중앙대, 구조조정안 수정안 발표

정성일 기자 univ@vop.co.kr


중앙대학교(총장 박범훈)가 추진 중인 학문단위 재조정 수정안이 3월 23일 교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날 교무위원회를 통과한 수정안은 약 2주간 대학 평의원회의 심의 자문을 거쳐 4월 초 이사회에 상정되며, 이사회를 통과되면 최종 확정된다.


수정안은 "향후 공과대학에 융합공학부를 새로 설치하여 미래성장 학문분야을 집중 육성"하고 "사범대학은 2010년 5월 사범대학 평가 이후에 학문단위 재조정 시행" , "예술계열은 별도의 집중육성 방안을 마련하여 학문단위별 캠퍼스 재배치 시 시행"할 것을 전제로 교무위원회를 통과하였다.


반면 구조조정에 가장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독문과, 불문과, 일문과 등 어문계열 학과의 학부 통합은 초안에서 크게 변경되지 않았다..

               

 

<레디앙> (일부 따옴)

중앙대, 대학인가? 두산 계열사인가?

[투고] '기초학문 축소, 실용학문 강화' 구조조정을 비판함

2010. 3. 17. 중앙대 대학원생

 

지난해 12월 중앙대학교는 18개 단과대를 10개로, 77개학과를 40개 학과·학부로 통폐합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외국어 계열의 학과는 유럽문화학부와 아시아문화학부로 통폐합되고, 민속학과는 역사학과로 흡수되며, 물리학과·화학과·수학과는 기초과학부로 통합된다.


이에 비해 경영대는 정원을 1,000명 이상으로 확대하고 금융공학·국제물류학 전공이 신설된다. 공대에는 인공지능·로봇공학·의료공학 등이 전공으로 새롭게 도입된다. 이번 구조조정안은 '기초학문의 축소와 실용학문의 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


"대학은 직업교육소"


취임 초기부터 "이제 대학은 직업교육소"이며 "교양은 스스로 쌓아야지 대학에서 왜 해주냐"며 "자본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박용성 이사장의 교육철학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아니 이미 현실이 되었다. 단지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그 현실을 새삼스레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지난 2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교수는 직원이라는 신분에 걸맞게 연봉제가 도입되었고, 공통교양으로 '회계와 사회'가 채택되어 "숫자 좀 아는 중앙대 애들"은 신입사원으로서 면모를 갖춰가고 있으며, <중앙문화>를 비롯한 학내 비판적 여론 길들이기와 구조조정에서 '톱-다운'방식의 의사결정, 총장임명제 등은 재벌총수의 제왕적 권력을 닮아가고 있다.


이제 중앙대가 두산의 계열사인지 대학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기업의 논리로 대학을 운영하겠다"는 이사장의 엄포는 점차 제2의 건학이념이 되고 있다.


대학당국은 이와 같은 혁명적(?) 조치를 통해 2018년까지 중앙대를 '국내 5대 대학', '세계 100대 명문사학'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꼭 저런 식으로 순위에 들어가야만 좋은 대학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지금보다는 좋은(?) 대학을 만들겠다는 학교 측의 각오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문제는 '좋은'이 지시하는 의미이다. 이사장과 총장을 비롯한 대학당국에게 '좋은'은 '좋은 직업교육소'를 의미할 뿐이다. 이는 다름 아닌 대학으로서 존재의 의미를 포기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독문과는 이번에 통폐합 대상이 되었다. 연구실적이 있건 없건 기초학문은 일단 축소하고 보자는 식이다. 돈이 안되니까.


"꿈과 잠꼬대는 다르다"


기초학문의 포기만큼 우려스러운 일은 학내 민주주의의 후퇴이다. 중대생의 게시판 격인 '중앙人'에서 학교에 비판적인 글들이 삭제당하고 해당ID가 접속차단 당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학교의 기업화를 걱정하는 글이 실린 중앙대학교 교지 <중앙문화>가 회수되는 사건도 있었다.


이에 항의하는 학생들에 대해 박범훈 총장은 "중앙대가 언제부터 이렇게 촌스러웠냐, 왜 이리 변화에 세련되지 못하냐"며 일갈했다. 묻는다. 도대체 누가 촌스러운 복고풍인가? 학교를 비판하는 학생인가, 이를 검열하는 대학당국인가?




<참세상> (일부 따옴)

학교는 ‘공장’이고 학생은 ‘상품’인 대학

[연속기고(1)] 왜 ‘대학기업화’에 주목해야 하는가?

반봉규(전국학생행진)  / 2010년03월16일 15시54분


이웃나라 일본은 국립대 독립법인화 등을 통해 이미 대학기업화가 완료된 상태이다.(일본이 한국보다 빠르게 변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비판세력들의 힘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대학 경영자가 학교는 ‘공장’이고 학생은 ‘상품’임을 역설하며 대학 운영원리, 교육내용과 방식 등에서 이미 기업화되는 가운데 대학본부 및 재단의 독재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대학의 과/반 개념은 없고 ‘같이 수업 듣는 모르는 친구들’ 정도만이 존재할 정도로 학생들의 공동체는 파괴되고 특히 정치활동을 하는 학생과 단체에 대한 탄압과 처벌이 극심하다. 호세대(法政大)에서는 06년 3월 이래 3년 반 동안 112명 체포, 33명 기소되었고, 학적이 없는 사람이 들어오면 ‘건조물침입’, 당국에 항의하면 ‘위력업무방해’를 적용하며, 심지어는 교직원을 동원해 폭행,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학내에는 감시카메라가 150개, 선전물 부착 및 유인물 배포도 금지하고, 학내의 연설과 토론은 ‘평온한 학내환경의 침해’로 간주하여 탄압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본의 사례가 10년 후 한국 대학의 모습이라고 어찌 예상하지 못할 것인가.

 


교과부의 인재정책실 소속인 ‘대학선진화과’에서는 최근 <2010학년도 국립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에서 ‘대학 구조개혁 정책의 지향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대학구조개혁 정책의 지향점】

고등교육 기회의 양적 확대를 넘어 대학교육의 질적 고도화 추진

사회‧경제적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인력양성 체제로 대학의 학사구조 재편

대학 전체의 자원을 융·복합, 특성화 분야 등에 집중하여 한정된 자원을 전략적으로 활용

지역사회·산업계와 연계·협력을 강화하여 인력양성과 지역·산업 발전의 선순환 구조 형성

                       

 위에서도 볼 수 있듯 오늘날에도 대학은 지배계급의 필요에 의해 관리되고 있으며, 교육의 내용 또한 사회의 필요에 따라 개편된다. 서동진은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라는 자신의 논문4)에서 최근 한국사회가 어떠한 제도적 개편을 단행했고, 그것들이 사회에 어떤 담론을 만들어냈으며, 그 담론이 개인 주체들을 어떻게 추동하는지를 다양한 사례와 함께 밝히면서 일종의 ‘자기 계발하는 주체의 계보학’을 그린다. 그는 성장, 발전, 근대화 같은 종래의 지배적인 표상을 대체하며 등장한 참여, 창의성, 자기계발 등의 가치가 얼마나 신자유주의에 영합하는지를 이야기한다.5) 예를 들어 문민정부 때 실행되었던 신교육체제6)의 주요내용은 교사 노동의 “책무성”, 교육 재정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학습자”의 “수월성”, “자율성”, “다양성” 등인데, 이는 모두 “신자유주의”의 세부적인 관리와 지배의 테크놀로지로 활용된다. ‘이를테면 책무성은 관료적인 조직의 무책임성에서 벗어나 이제는 각각의 개인들이 수행하는 전체 활동을 사정과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교사와 학교가 자율적이고 책임 있는 주체가 되도록 유인하는 대표적인 윤리적-정치적 테크놀러지를 생산한다. 이는 교육 재정을 선택하고 집중하는 데 있어서도 자원을 일괄적이고 획일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역량과 성과에 연계된 분배를 실행한다.’7)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시장의 이분법으로 ‘시장에 교육을 맡길 수 없다,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시장에 교육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그릇된 주장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계급지배의 도구인 친자본적 국가의 성격을 간과하고 마치 국가를 중립적인 합의기구로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또,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되는 바로 그 ‘교육’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험하거나, 부족하다. 신교육체제가 등장했을 때 이에 대한 전교조의 입장은 ‘암기 위주의 입시교육을 반대하지만 그 대안이 학교를 시장으로 내맡기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아니라고 판단함’ 등이었다. 바로 그 신자유주의적이고, 소비자주권적이며, 시장논리 종속적이라고 비판받는 정책을 뒷받침하고 조정하는 정치적 합리성은 거부감 없이 지지를 받는다는 것을 서동진은 지적한다.8)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기 계발하는 우리들에게, ‘공공재로서의 교육’은 대체 무엇일까? 그 ‘교육’을 우리가 부담하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럽지만, 한편 그 교육을 부담하는 비용이 줄어든다고 해도 세상의 ‘인재’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우리는 내달려야 한다. 우리를 인재로 만드는 교육, 우리를 인재가 되도록 스스로 추동케 하는 원리들은 국가가 지배계급의 도구인 이상 변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교육은 공공재일 수 없는 것인가?



2. 함께 가능성을 상상하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역시 전인적 교육이란 불가능하다!는 선언으로 글을 마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맥 빠지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 이렇게 글의 끝자락을 붙잡고, 정리 안 되는 고민들을 털어놓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을 전사회적으로 전유하고, 이것을 전사회적으로 통제함으로서, 몇몇 자본이 이윤창출을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등쳐먹고 서로 과열 경쟁하는 것을 종식시키며 계급을 소멸시킨다. ‘생산수단의 전사회적 통제’를 통해, 비로소 편협한 의회민주주의가 아니라 직접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권력이 개개인들에게 분산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사회의식이 고양되어있어야 하며, 어느 정도의 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공공재로서의 교육이 당연히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말로만 들어도 막연한 느낌에, 가슴이 갑갑해질지 혹여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앞에서 짚어보았듯 역사는 계급투쟁을 통해 끊임없이 변해왔다. 우리 살아생전 세상은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앞에서 수행했던 교육, 대학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이것이 진정 공공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이 바뀌어야 함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그 인식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우리가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되짚어보고,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상상해보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이런 상상들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방식이거나, 아직 그려지지 않은 사회주의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재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반 일리히(Ivan Illich, 1926~2002)라는 학자는 교육이 지금의 제도에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배우고 가르치는 능력을 행사하는 권리가 자격증 있는 교사에 의해 점유되어 있음을 비판하며, 그는 ‘모든 사람을 위한 교육은 모든 사람에 의한 교육’임을 이야기한다.9) 김예슬씨는 자발적 퇴교를 선택했다. (이에 대한 구체적 평가를 차치하고라도) 만약 우리가 그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공부를 원하는가? 혹은 현재의 교육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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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 2010 대학 학생회 선거, 무엇을 보여주는가

2010년 1월, 두 번째 정기 토론회

 

2010 대학 학생회 선거, 무엇을 보여주는가

 

사회주의노동자신문 학생독자모임

 

 

 

 

1. 선거 무산, 파행, 부정선거로 점철된 2010년 대학 학생회 선거

 

 

그 어느 해보다 학생회 선거에 대한 언론 -‘조중동, 한겨레, 경향신문, 인터넷 언론, 대표적 지역신문 등등 - 의 대대적인 보도가 난무했다. 특히 선거 초반부터 ‘실용적이며 이색적인 정책들’이 선거에 등장했다며 보수 언론들은 입이 마르게 칭찬해 댔다. 더불어 부르주아 신문과 많은 운동 진영의 분석에서 공통된 지적은 선거에 대한 학생 대중의 무관심은 더 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대학 학생회 선거의 가장 큰 이슈는 (부르주아 언론의 표현에 따르면) ‘진흙탕, 혼탁, 과열, 난장판, 막장인 대학 총학생회 선거’다. 2010년 대학의 학생회 선거에서는 선거 무산, 파행, 부정선거(투표함 열기, 투표 용지 분실, 학교 개입, 무더기표 넣기, 명부와 투표수 안 맞음, 세칙에 대한 불공정하고 비민주적 수정, 조폭 개입 등)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의회정치판을 연상시킨다는 부르주아 언론의 분석이 나돌고 있다.

 

 

 

‘혼탁’한, ‘의회 정치판’과 같은 이번 대학 총학생회 선거는 단지 ‘비권’과 ‘반권’ 때문일까?

 

 

그렇다면 왜 올해 유난히 전국적으로 '선거 파행, 무산, 부정선거'가 많았던 것일까.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비권 내지 반권의 (선거 절차에 있어서의)비민주성, 무능함, (이권에 따른)비도덕성, 운동권에 대한 과도한 견제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확실히 반권의 경우는 이권(학생회비와 사업 운영을 하면서 받는 이른바 ‘기업 스폰비’를 통한 갖가지 이득)을 유지하기 위해 부르주아 선거처럼 선거를 ‘혼탁’하게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본다.(반권이 선거에 개입한 대학에서는 대부분 그러했다.) 그렇지만 이는 일면적 분석이다.

 

운동권의 경우에도 이권과 정파적 이해에 따라 자신의 운동을 재생산하기 위해 학생회 선거에 개입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선거에 있어서 민주주의적인 원칙(돈이나 절차상의 문제)을 지키지 않은 혐의는 운동권(물론 운동권 모두에게 일반화 시켜 적용할 수는 없다.)도 피할 수 없지 않다고 본다. 특히 이번선거에서 운동권에서조차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기본적인 절차에서의 민주성과 정당성을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2010 선거에서 부산대 NL성향 총학생회장(한대련 의장)이 휴학생인 후보자를 위해 세칙을 바꾸기도 했고, 성공회대에서는 한국대학생연합 가입 여부 총투표 선거인 명부를 조작하고 찬성표를 넣는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특히 운동권도 이번 선거에서는 대중들에게 정치를 알리는 활동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절차상의 문제나 이권으로 인해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선거에서 괴리되어 있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10여년 전만해도 학생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대중운동의 선두에 있었고, 대중운동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학생운동이 대중적 기반과 대중적 방식을 유실해가고 있다. 선거 역시 이러한 과정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운동권은 선거 시기에 학생 대중들을 상대로 대중적으로 정치 활동을 하기 보다는 정파적 이해에 따른 재생산을 하기 위해 학생회 선거를 준비 하고, 학생회에 당선되면 이권을 챙기는 식의 관성적이고 폐쇄적인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학생 대중의 선거에 대한 무관심이 계속되고 있고(선거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견제 구조가 깨졌기에), 운동권의 경우 일단은 되고 보자는 생각으로 비/반권과 같은 문제도 저지르고 있다. 이에 따라 학생 운동 진영은 선거 국면에 있어서 자신의 정치를 후퇴 혹은 하락시키고 있어, 비권과 정책과 공약의 차이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입장을 드러내는 수준이 비슷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가 운동권이 선거에 함께하고 있다 하더라도 역시 부르주아 의회 선거에서의 ‘혼탁’한 모습으로 비춰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전 학생 운동이 사회의식 수준으로 볼 때, ‘선도적’ 위치 있었지만, 이제는 사회의식이 학생 운동에 반영되고 있기에, 이번 대학 총학생회 선거가 부르주아 의회 선거와의 차이가 거의 없어진 모습을 보였다고 본다.

 

 

 

자세히 들여다보기

 

 

이화여대의 경우, 선거 파행과 무산 때문에 대대적인 언론 보도가 났었다. 이화여대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구성에 대한 선거 시행 세칙을 반권(뉴라이트) 총학생회가 졸속으로 개정했다. 선거 운동을 시작하기 전 선관위 구성부터 기본적인 절차적 정당성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이후 선거 운동이 진행되면서 반권 총학생회와 뜻을 함께하는 선관위원들이 NL성향의 선본에 초반부터 ‘과도하게’ 제재조치를 취했다. 이어서 학내에는 각 선본의 포스터가 아니라 NL성향의 선본과 반권 성향의 중선관위(원)의 자보 공방전만 이어질 뿐이었다. 이 상황에서 학생 대중들은 선거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제대로 접할 수 없었다. 서로의 자보 공방전으로 인해 대부분의 학생 대중들은 ‘혼탁’한 선거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결국 NL성향 선본에 대한 ‘과도한’ 제재조치에 따른 후보 박탈이 확정됐다. 선관위 구성부터 시작한 선거의 모든 과정의 문제로 인해,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한 정책 중심의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는 뜻을 가진 학생들 - NL성향의 선본과 진보 운동 진영 중 좌파 성향의 선본(투표 전날 사퇴했음.)과 사퇴한 중앙선거관리위원 8인 중 5인을 더불어 자치단위와 동아리 - 이 모여서 ‘2010 올바른 선거와 학생회 건설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꾸렸다. 대책위는 투표기간 동안 투표소 옆에서 피켓팅과 유인물 배포를 하면서 ‘투표 보이콧’ 운동을 진행했다. 반권 성향의 선관위원들과 이화여대 당국은 무릎 담요와 도넛을 뿌려대며 학생들의 투표권을 사기 위해 발버둥치고, 반권(뉴라이트) 성향의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정문 앞에서 하루 종일 NL성향 선본의 정후보가 민주노동당원이라며 색깔론이 담긴 유인물을 대량 살포하기도 했지만, 결국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3월에 재선거를 치르게 됐다. 하지만 이후에 반권 총학생회와 뜻을 함께 한 선관위원들은 이후 열린 공청회에도 불참했고, (세칙에도 나와 있는)중선관위 해체도 하지 않은 채 재선거 날짜까지 잡으면서 다음 선거에 개입했다. 하지만 어떤 세력도 이를 막지 못했다.

 

서울대의 경우 선관위가 투표함을 열어 결과를 확인한 상황이 도청에 의해 밝혀져 부정선거에 따른, 재투표를 실시했지만 투표율이 나오지 않아서 선거가 무산됐다. 이 외에도 성균관대, 명지대, 건국대, 성공회대, 서강대, 한예종, 한양대, 대부분의 교대, 영남대, 부산대, 동아대, 울산대, 대구대, 경상대, 울산대 등에서도 각각 다른 이유로 인해 선거 파행, 무산, 부정선거가 있었다.

 

이렇게 언론을 통해 보도된 학교 외에 고려대의 경우 일부 단과대의 투표수가 선거인 명부와 맞지 않아서 상당수의 투표함이 폐기되는 등, 선거 과정에서 기본적인 절차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채, (이는 고대 뿐 만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어떤 대학도 제대로 선거를 치렀다고 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선거가 진행됐다.

 

 

 

2. 2010년 학생회 선거를 통해 바라본 각 정치 세력들

 

 

2010년 대학 학생회 선거에서는 운동권 내 좌파인 학생행동연대 경향이 동덕여대에서 유일하게 당선됐고(단선), 전국적으로 비권(민주당과 관련 있는 자유주의 세력, 어용 세력)이 가장 많이 당선됐으며, 반권(뉴라이트)는 운동권과 비등한 수의 대학에서 당선됐다. 수도권을 따로 보면 운동권이 당선된 곳도 있고, 서울여대처럼 반권이 운동권을 이긴 곳도 있다. 다함께의 분석처럼 서울의 일부 대학(한국외대, 경희대, 숙명여대, 연세대, 중앙대, 광운대)에서 NL 성향이 큰 표차로 당선되거나 작년부터 연속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수도권과 지방의 국립대를 제외하면 이와는 정반대의 결과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대학 사회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는 비권과 반권(자유주의와 뉴라이트 세력)

 

 

이번 선거를 통해 대학 사회 내에 비권과 반권(자유주의와 뉴라이트)가 광범하게 조직화하고, (또한 되고) 있다는 점은 더욱 분명해졌다. 비권이 전국의 대다수의 대학에서 당선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한나라당과 민주당 차원에서도 학생사회에 (특히 학생회 장악을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나라당 청년위원회와 민주당조차 정치 캠프와 각종 대중 사업 홍보를 담은 자보를 붙이고 있다.) 오래전으로 거슬러가 보면, 96년 한총련 사태 이후 97년 경제위기와 더불어 탈정치와 학교발전이데올로기, 경제발전 이데올로기, 복지로 무장한 비권이 학생회에 더욱더 조직적으로 개입해 오고 있다.

 

특히 민주당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것으로 보이는 비권은 2006년 이후부터 일명 ‘SKY’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 당선되어 각 대학에서 2년 이상 집권하기도 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등록금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겠다고 교육투쟁체를 꾸리기까지 했다. 이들은 올해 ‘사회운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표명했는데, 이를 두고 다함께의 대중 신문인 ‘레프트21’서 ‘비권의 좌향좌’라고 제기하는 내용은 과장된 해석이다. 비권의 경우 등장 초반에 복지공약과 조합적 사안만 이야기했던 것과 달리,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발언을 (실제 사업은 하지 않기에) 립서비스 차원에서라도 하게 된 데에 학생 사회의 ‘변화’가 압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학생들이 예전처럼 노동 운동적 관점으로 사회를 보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학생 사회에는 합리적인 자유주의적 의식(비약해서 말하자면 “운동권도 싫지만 이명박도 싫다”)이 광범하게 자리 잡았다. (일부 자유주의자들도 이명박은 반대하고 있지 않은가.) 비권도 학생들의 그런 의식에 맞게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이야기’는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2008년 촛불 투쟁 국면을 보면, 학생사회에서 촛불투쟁 참여에 광범한 여론이 형성된 상황에서, 비권도 이에 대하여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비권들은 ‘광우병 소고기 사안 이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라며 촛불집회에 총학생회 깃발을 들고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게 비/반권이 학생회를 노리는 이유는 아직 학생회만큼 대학사회의 쟁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힘을 가진 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민주화 투쟁 이후부터 각성한 뉴라이트는 20대를 적극적으로 조직해왔고, 사상투쟁을 통해 대학사회를 재편하고자 하는 이상 학생회는 가장 우선적인 목표가 될 수 밖에 없다. 뉴라이트 세력은 운동권에 대한 반대만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정책을 통해 보수주의 학생 대중운동을 건설하면서 꾸준하게 전국에서 조직적으로 학생회 장악을 노리고 있다. 물론 현재 대학사회 여론은 2MB에 대한 환상은 깨졌고, ‘꼴통’적인 뉴라이트의 이미지 때문에 대놓고 활동할 경우 학내에서 뭇매를 맞는다. 그러나 이들은 과거에 내세웠던 북한인권 운동이나 낙태반대 운동 등 자신들의 대표적인 정치적 입장을 모두 삭제한 채 막대한 재원을 들여 선거 운동을 벌이며, 학교 발전 이데올로기와 각종 화려한 복지 선물 세트로 무장하며 자신감있게 학생회와 기층 단위에 까지 뿌리내리며 조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뉴라이트 세력은 작년 이화여대 성소수자 모임의 활동을 탄압하고, 2009년 총학생회를 집권하면서 성소수자 모임에 재정을 지원하지 않는 등의 탄압을 일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2009년 이화여대에서 10-15%의 조직표를 얻고 당선됐다. (올해의 경우 이 세력이 광운대, 세종대, 이화여대, 연세대에 조직적을 선거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시사인을 통해 드러났다. 이들은 같은 보수적 기독교 우파 세력이라고 알려졌고, 같은 세력의 개인이 운영하는 기획사를 통해 학생회 사업을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과 더불어 특정한 의회 정당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는 자유주의적 정치를 가진 비권(어용세력)도 존재한다. 이들은 대학 당국과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 자본이 학생회를 비롯한 다양한 자치활동을 포섭하고 통제하려는 움직임에 어느 정도 동조하고 타협하는 세력이다. 2008년 이화여대 선거에 여성주의와 탈이성애중심주의를 필두로 ‘학생권’이라는 (비권이 잘 쓰는) 정치적 용어를 갖고 등장하기도 했다.

 

 

 

운동권은 선거에 어떻게 임했나

 

 

운동권은 당선과 이권을 목적으로 선거 시기 자신의 정치를 후퇴시키고 있고, 정책과 공약으로 정치를 드러내는 수준도 비권과 거의 차이가 없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운동권도 일단은 계속해서 복지 공약을 주되게 이야기하는 경향과 ‘운동권 포비아’적 여론을 의식해서 정치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2000년 이후에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번 선거의 경우, NL진영 중 한대련은 'U-카드'라는 복지 사업을 통해 오른쪽 행보를 보였다. 한대련은 작년 학생회 선거에서 공통적인 복지공약으로 내건 ‘U-카드’ 사업을 2009년 동안 학생회 사업으로 진행했다. (학생회가 당선이 되지 않은 대학에서는 복지위원회를 건설하고 ‘U-카드’ 사업을 진행했다. ‘U-카드’는 중소영세 점포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서비스 카드’다. 다른 운동 진영의 다양한 비판과 더불어 이 사업에서 중요하게 바라볼 점은 이 공약이 누구의 이해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느냐라고 본다. (학생들은 계급이 아니지만) 상당수의 대학생들의 이해관계는 중산층에 속한다고 할 때, 이러한 이해관계에 복무하려는 것이 ‘U-카드’ 사업 인 것이다. 더불어 이 사업을 추진하는 한대련은 중소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려는 민주노동당과 정치적 이해를 함께 한다고 봤을 때, 이런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 게다가 고려대에서 비권 총학생회가 진행했던 대기업의 패밀리 레스토랑 할인 카드 사업이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자, 이에 운동권도 복지 면에서 비권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타 학교까지 연계하여 비권과 유사한 사업인 ‘U-카드’를 공약으로 걸고, 실제로 추진한 것이라고 본다.

 

등록금에 대한 정책과 공약의 경우, 한대련은 ‘투쟁’을 내걸었지만 등록금 외의 다른 사안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재했고, 등록금 더욱 정치적으로 풀어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선거에 당선되면 등록금 투쟁을 상반기에 하겠다는 식의 관성적 방식을 계속 고수하고 있었다. 물론 등록금에 대한 불만이 지속되는 한, 투쟁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이제까지의 관성에서 탈피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선거에서 운동권의 관성과 폐쇄성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운동권 중 좌파로 분류되는 전국학생행진 성향의 선본의 경우(고려대에서) 특별히 어떤 사안에 대하여 어떻게 투쟁하겠다는 내용이 없었다. 정책자료집에 자신들의 정치적 내용을 자세하게 풀어냈지만 이를 어떻게 펼치겠다는 고민이 부족했다. 그나마 맨 앞에 내세운 것은 ‘토론’이었다. 고려대의 한대련 성향의 선본은 선거 운동 기간에 학우들 3000명을 만나러 다니겠다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운동권이 비/반권이 내세우는 ‘소통’이라는 말의 압박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비/반권이 모두 '소통‘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는 경향은 학생회가 정치성을 갖고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학생회는 탈 정치성을 담지하며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러한 내용은 비/반권이 온라인 총투표나 폰부스 설치를 ’소통‘이라 하면서 총학생회를 서비스센터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이기에 문제다. 따라서 운동권에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요한 점은 학생 대중의 목소리와 관심을 ‘갈구’ 하는 식의 ‘소통’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슬로건과 정치성을 갖고 다가가고 (다양한 방법의) ‘투쟁’을 내거는 것이다.

 

 

 

3. 2010년 대학선거에서 드러난 학생회 선거에서의 민주주의 후퇴

그리고 합리적 자유주의가 자리 잡은 대학 사회에서 이제 무엇을 할까

 

이번 대학 학생회 선거를 통해서 봤을 때, 선거에서의 민주주의적 원칙이 무너지고 후퇴하고 있으며, 비권과 반권은 더욱 굳건하게 대학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명박에 대한 불만이 대학 사회에 광범하게 자리 잡은 상황이지만, 작년 촛불 투쟁이 대학사회에 균열을 내지 못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전반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학생회로 조직되지 않는 양상은 작년부터 드러났다. 게다가 올해는 촛불과 같은 반이명박 전선의 대중 투쟁도 없었고, 등록금, 비정규직, (청년)실업, 파병 등 어떤 사회적 쟁점도 대학 사회에 ‘커다란’ 균열을 내지 못했다. 더군다나 세계 경제 위기로 인해 가계 경제력이 취약해진데다가, 등록금에 대한 불만까지 높아질까 우려해서 정부와 대학들이 뜻을 함께 하며 등록금 동결을 할 수 밖에 없었기에 등록금에 대한 어느 정도의 불만조차 투쟁으로 조직되기도 힘들었다. 학생 대중들의 대부분은 계속 어려워지는 취업이라는 이해관계에 더욱 골몰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적 인간형인 ‘자기 계발의 주체’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현재 대학에는 합리적인 자유주의가 광범하고, 깊숙이 자리잡았다. 다함께가 지적하듯 학생들에게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이 광범하게 존재하는 것은 맞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학 사회에 자리잡은 합리적인 자유주의의 기준으로 봤을 때, 당연한 결과다. 고려대의 비권조차도 이명박 반대를 선거 운동 시기에 내걸었기 때문이다. 이를 갖고 ‘비권의 급진화, 좌향좌’라고 판단하는 것은 심히 섣부르며 위험하다. 오히려 체제를 뛰어넘는 정치 활동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민주주의 의식 강화', '정치성 복원'이 필요

 

 

그렇기에 오히려 체제를 뛰어넘는 내용의 정치성을 강화하는 방향의 활동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선거를 통해 봤을 때, 막대한 물질적 기반과 합리적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퍼진 대학 사회를 제대로 파고드는 담론으로 무장한 비/반권의 영향력에 지속적으로 맞서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학내에서 반자본주의적, 계급적, 민주주의적인 투쟁을 끊임없이 조직하고, 정치를 꾸준하게 알려내기 위해 계급적으로 첨예한, 다양한 사회적 쟁점에 대한 명확한 정치적 입장과 대안을 생산해야 한다. 특히 이번 학생회 선거를 통해 드러난 기본적인 절차적 민주주의의 후퇴에 맞서, 진보적 운동 진영을 지지하는 학생 대중을 중심 상대로 학생 사회의 민주주의, 다원주의적 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활동을 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부르주아 의회 선거 판처럼 후퇴한 상황에 대하여 명확하게 문제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운동권의 경우, 더 이상 선거 시기에 당선만을 목표로 정치성을 후퇴시키거나, 일상 사업에서도 정파적 이해만을 위해 폐쇄적으로 활동하는 관성적 방식을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 일반의 정치적 무관심과 비/반권의 비민주적인 행태는 단순히 법정 투쟁을 하거나 세칙 몇 개 고치는 식으로 (제도적으로) 해결이 안 된다. 이는 학내의 진보적 학생 운동 진영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명확하게 갖고 대중적 공간에 나가서 직접적으로 운동과 실천을 만들어 가는 방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 내용은 시기에 따라 구체적이어야 하며, 명확한 정치적 내용을 가져야 한다. 모호하게 운동권에서 (실제로 민주주의도 어기면서)민주주의를 복원하자고 외치는 것은, 결국 정치적 내용(정치성)이 함께 가지 않는다면 공문구다. 왜냐하면 비/반권은 모바일 투표 방식 자체가 직접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의 경우 반권 총학생회가 총학생회회칙에 명시된 ‘자치단위’를 기존에 자치활동비를 받았던 ‘자치단위연합’이 아니라, ‘자치활동을 하는 모든 단위’라고 해석하며 이것이 ‘자치’활동을 하는 더 많은 단위에게 자치비를 지급할 수 있기에 민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하는 ‘자치단위 연합’에 속한 단위에 대한 탄압일 뿐이다. 실제로 이 세력은 자치비를 자신들의 정치 사업으로 빼돌렸고, 자치비 지급 심사기준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민주적인 것에 대한 내용은 정치적으로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정치성을 직접 제기하는 활동이 복원되어야 하며, 민주적이라는 말이 정치적 행동으로 실질화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번 선거 시기의 판단과 분석에 따라, ‘기존의 운동 진영의 빡쎈 언어’로 선언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 (아주 미약한 역량이지만) 실제 대학사회에서 끊임없이 다양한 활동을 만들고 그 방법을 연구하고 성과를 축적해야 한다. 백번 언급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중요한 것은 체제를 넘어선 내용을 담은 정치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 학생 대중들에게 유의미한 세력이 되기 위한 ‘발버둥’은 더 이상 진보적 학생 운동에 대한 학생 대중의 ‘신뢰’를 핑계(사실상 ‘운동권 포비아’에 대한 두려움 아닌가.)로 자신의 정치성과 이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려하지 않는 운동권의 비겁한 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학생 운동 진영은 학생회 선거에서 당선한 후에 관성화 된 활동으로 매몰되는 습관에서 벗어나서 학내에서 정치활동을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지, 대학 사회에서 정치적 주체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더 고민하는 방향을 강화해야 한다. 더불어 지금 시기 우리의 활동을 통해 개인을 정치적 주체, 저항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기획과 조직이 더더욱 필요하다. 일상적으로 정치를 드러내기 위한 실질적인 활동을 만들어 나가자. 앞서 언급했던 ‘사실상 선언’들을 우리가 직접 실질화 시키는 것만이 정치적 생존을 보장해 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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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 민주노총 성폭력사건을 통해 본 반성폭력 운동의 쟁점들

2009년 12월 사학독 정기 토론회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통해 본 반성폭력 운동의 쟁점들


사회주의노동자신문 학생독자모임


1. 다시, 성폭력을 말하자


 성폭력이란 무엇인가? 성폭력이라는 말을 입에도 담기 어려웠던 1990년대 초반과 달리 오늘날에는 농담으로 라도 성폭력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인 것 같다.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성폭력의 개념인 ‘자신의 의사에 반한 성적 불쾌감과 성적 수치심을 주는 언행’에 기반 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 속에서 성폭력적인 상황을 건져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성폭력을 그냥 ‘폭력’이 아닌 ‘성폭력’으로 명명할 수 있었던 것, 혹은 그냥 무심히 넘어가던 일들을 ‘성폭력’으로 의미화 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전개되어 온 반성폭력 운동의 영향이 크다. 동성 간의 문제도 성폭력의 범주에 포함되게 된 것, 성 정체성에 대한 침해, 언어 성폭력, 2차 가해 등 성폭력의 의제들은 다양해졌다. 이와 동시에 ‘그렇다면 이것 또한 성폭력일까?’에 대한 고민들도 생겨나게 되었으며, ‘무엇이 정말 성폭력인가’에 대한 논의와 함께 ‘성적 자기결정권’1)에 대한 의미화와 비판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해진 담론들과 더불어, 오늘날의 성폭력 개념은 ‘조두순 사건’과 같이 극소수의 변태들이 자행하는 짓으로 협소하게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역설적으로 공존한다. 우리는 올해 초 부르주아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던 민주노총 성폭력 사태에 대해 다시 되짚어보고자 한다. 소위 ‘진보진영’이라고 불리는 공간 안에서의 성폭력 문제를 고민해 보면서, 우리 스스로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성폭력에 관한 단상들을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통해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들 내부에서 어떤 담론과 실천들을 만들어나가야 할지, 무수한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을 어떻게 지지하고 공감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2. 진보진영에서는 어떻게 성폭력 사건을 해결 하나요? -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를 돌아보기


 성폭력 사건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운동사회에서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동안에 전개되었던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를 잠깐이나마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진보진영에서 성폭력 문제를 처음 발화한 것은 1980년대 경찰의 여학생 추행사건(1984)이나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1986), 그리고 1990년대 한총련 학생들에 대한 전투경찰 성폭력 사건(1996) 등이었다. 이때 성폭력은 적대적 혹은 비타협적 관계에 있었던 지배 세력이 진보 세력과 민중을 탄압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의미화 되었다. 반성폭력 운동은 공권력과 국가의 폭력적 성격을 대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정치운동의 틀 속에서 구성되었다.2) 1983년에 출범한 ‘여성의 전화’는 당시 성폭력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삼은 최초의 단체로서, 젠더적 관점에 입각하여 지배/진보세력이라는 인식 틀에 균열을 내려 시도하였다. 이는 1987년 출범한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이 시대상황과 맞물려서 성폭력의 문제를 민민 운동의 과제로 설정하는 입장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199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대학사회에서 나타난 반성폭력 운동들도 민족, 민주 운동에서 벗어난 모습이었다. 대학 내에서의 성폭력은 당연히 존재하는 일상으로 여겨지게 되며, 형법이 아닌 사건공개, 가해자의 실명공개사과, 가해자 교육 등의 해결방식으로 성폭력사건 대응의 틀을 구축해간다. 그리고 대학 내에 만연한 성폭력을 처벌하는 학칙, 규약을 제정하는 운동을 만들어나간다. 2000년에 발족한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이하 100인위)’는 대학가에서 일어났던 반성폭력 운동을 토대로 운동사회에서도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활성화하고자 했다. 100인위는 이전까지 운동사회에서 공론화된 적이 없는 성폭력이라는 문제를, 그때까지 시도된 적 없는 실명 공개라는 방식으로 추진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3) 또한, ‘사건 해결의 원칙’4)을 제안하면서 운동사회의 조건 속에서 피해자의 인권 침해를 최소화하고, 개별 여성 활동가들이 ‘해결사’로 소진되는 방식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책임성을 갖고 뭔가를 하도록 종용했다. 100인위의 활동에 대한 가해자들의 대응논리는 운동사회의 남성중심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조직보위논리, 음모론 등을 통해 반발에 부딪혔으며, 피해자가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고 가해자한테서 명예훼손 역고소를 당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다시 한 번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었다.5) 여성이 경험하는 가부장적 폭력을 계급, 혹은 민족 모순으로 인한 피해의 일부라고 사유하는 태도는 1980년대뿐만 아니라 100인위가 활동하던 2000년도에도,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있다.6) 민주노총 성폭력 피해자에게 위로와 지지에 앞서 “고소는 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던 전교조 위원장의 첫마디는 100인위의 활동에서 나타난 가해자들의 태도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오늘날의 남성 중심적 운동진영을 반증한다. 이번 12월 6일은 김○○성폭력사건 발생 1년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사건의 해결이 끝나지 않았으며 피해자의 고통 또한 계속되고 있다. 이 사건이 어떻게 발생하였고 왜 해결의 과정이 이렇게 지난한지를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가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



3. 100인위 이후 10년, 무엇이 바뀌었나 - 민주노총 성폭력사건

 

1) 사건전개

 2008년 촛불 집회의 배후로 수배 중이던 민주노총 위원장 이석행은 12월 1일 전교조 조합원인 여교사의 집에 피신해 있다가 12월 5일 검거되었다. 민주노총에서는 여교사에게 민주노총과의 관련성을 부정하고 자의에 의해 숨겨주었다고 허위 진술을 하도록 강요했다. 피해자는 이를 거부하였고, 이런 과정에서 민주노총 간부 1명이 여교사의 집까지 따라와 아파트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곤 이를 따지러 나온 여교사를 여교사의 집으로 강제로 끌고 들어간 뒤 성폭행하려고 시도했다. 민주노총은 이 사실을 알고도 피해자에게 가해자 김 모 씨의 처벌 수위를 거래하였고 ‘이명박 실용정부와의 투쟁을 위해’ 사건을 덮자고 말하며 회유와 협박을 가했다. 피해자가 소속되어있던 전교조의 전 위원장 정진화는 “어려운 시기에 이 일이 알려지면 조, 중, 동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며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니 고소만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며 2차가해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사건이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고 난 이후, 민주노총 집행부가 총사퇴를 하고,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특별위원회가 꾸려져 조사가 진행되었다. 진상규명특별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민주노총 중집회의와 대의원 대회를 통해 승인, 채택되었다. 이후 전교조 성폭력 징계위원회는 2009년 4월 22일 사건에 대한 2차 가해자 3인에 대한 조합원 제명을 결정했다.

 

2) 가해자의 변론 - ‘2차 가해 및 피해자 중심주의’의 범주가 불명확하다?

 조합원 제명 결정에 대해 제명된 조합원 3인은 재심을 신청했다. 특히 2차 가해자 중 한 명인 정 전(前) 위원장은 '전교조의 명예는 회복되어야 한다'며 2009년 5월 8일 진상규명특별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부인하는 글을 공개했다. 이 글에서 정 전 위원장은 1. 사건 공개 시 전교조가 공격 받을 것을 이유로 고소하지 말라고 한 적 없다. 자신은 '피해자 중심'으로 해결해야 하고, 고소가 필요하면 하라고 했으며 단지 공안당국에 의해 피해자 자신이 힘들어질 수 있음을 걱정했을 뿐이다. 2. 이미 피해자는 그 당시 결정을 다 한 후 나에게 일방적으로 고소사실을 통보하는 것이었기에 내가 설득하고 압박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3. '가해자라는 이유로' 내 목소리는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았고, 비공개로 인해 발언기회가 봉쇄되었다. 4. 난 김보은 사건에 대응하는 운동에 여성단체들과 함께 활동한 적도 있고, 감수성이 취약하지 않다. 라고 하며 2차 가해의 책임, 한계, 피해자 중심주의의 범주, 조직적 은폐의 기준이 불명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 전(前) 위원장의 제명에 반대하는 서명운동도 전교조 일부 성원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는 성폭력 2차 가해자 전교조 재심위원회가 열리기 하루 전에 정 前 위원장의 글을 반박했다. 그러나 결국 재심위는 7월 9일 1차 징계위원회의 결정을 뒤엎고, 제명을 철회하고, 경고조치를 내렸다. '이 사건의 조직적 공론화를 막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를 확인 할 수 없었고, 사건을 축소,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도모한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노총 진상규명특별위원회의 보고서 내용을 사실상 뒤엎는 것이었다.


3) 가해자의 변론에 하이킥을 날리자 - 2차가해의 판단기준은 피해자의 경험이다!

 과연 정 전 위원장은 본인의 주장처럼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해결하고자 했는가? 정말 피해자가 힘들어질 것을 걱정했다면, 정 전 위원장은 어째서 피해자가 용기를 내어 자신의 피해 경험을 털어놓았을 때 “고소는 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했는가?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도 자신의 피해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가해자는 민주노총의 주요간부였으므로, 피해자는 크나큰 갈등과 압박을 느끼며 자신이 속한 조직의 위원장에게 어렵사리 말을 꺼냈을 것이다. 그러나 정 전 위원장은 피해자에게 한 마디 형식적인 위로를 던지고는 열 마디 조직보위논리를 설파했다. 또, 3일 동안 이 사건을 전교조나 민주노총 그 어디에도 보고하지 않았다. 방치된 채 막막했던 피해자는 직접 민주노총 측에 사건을 알리기에 이르렀다. 정 전 위원장은 피해자에게 “검찰에 고소하고 싶으면 하셔라, 다만 민주노총에서 징계 절차를 밟기 시작했고 투쟁이 한창 중이니 고소 시점만 좀 고려해 주시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어째서 고소 시점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중심으로 결정되어야 하는가? 10년 전 100인위가 제시했던 ‘해결과 처벌의 원칙’에서의 피해자 중심주의는 여전히 무시되고 있다.

 정 전 위원장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입으로 이야기하지만, 피해자를 배려하기보다는 전교조 내부 게시판에 위원장의 이름으로 “전교조의 명예는 회복되어야 합니다”라는 자기변명의 글을 올릴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가해자라는 이유로’ 내 목소리는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피해자가 고소사실을 자신에게 ‘통보’했다며 불만을 터뜨리는 정 전 위원장은 ‘감히 위원장에게 조합원이, 그리고 무력한 피해자 주제에 결심을 통보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피해자는 골방에 틀어박혀 슬픔을 곱씹으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인가? ‘진짜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받은 사람’만이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인정’은 누가 해 주는가? 또한 여성주의 감수성이 취약하지 않다고 정 전 위원장은 주장하지만 그것이 2차 가해 사실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여성주의자라도 충분히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더 열심히 운동한다고, 더 여성주의에 대해 알고 있다고, 더 여성주의적인 활동을 한다고 ‘1등급 여성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여성주의는 수능시험처럼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실천이며 고민이고 반성이다. 이를 망각한 채 자신을 순도 몇%의 여성주의자로 정의하면서 주위의 문제제기에 귀를 막아버린다면 그야말로 ‘여성주의’는 자기방어막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2차가해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고 정 전 위원장은 하소연한다. ‘입만 열면 2차 가해냐? 우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있어야하냐?’, ‘앞으론 입조심 해야겠다. 나도 가해자 소리 듣는 거 아니야?’등 2차 가해를 둘러싼 논란들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 2차 가해의 범위는 명확하지 않다. 한 사건 내에서도 복잡한 권력관계와 상황적 맥락이 얽혀 있기에, 2차 가해에 대한 명확한 경계를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2차 가해의 판단 기준에 피해자의 경험과 감정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명확하다. 또다시 피해자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2차 가해’라는 개념이 제기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의 2차가해자들은 피해자의 감정을 뒷전에 두었다. ‘2차 가해’ 개념은 우리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말할 권리를 뺏는 권한이 아니다. ‘2차 가해’는 위에서 나타난 정진화 전 위원장의 태도처럼 그동안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준 피해자 주변 분위기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말하기 힘든 피해자의 상황에 대한 고발이자, 우리가 피해자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피해자의 상처를 감싸 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4) 지금,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

 2000년 경 일어났던 KBS노조 간부 성폭력 사건7)에서 활동한 어느 100인위 위원의 당시 사건에 대한 지적은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에서도 여전히 타당하다. “‘조직보위론’의 논리가 일견 ‘개인’을 희생해서 ‘조직’을 보존하려는 성 중립적인 시도로 보이지만, 실제로 희생되는 ‘개인’은 언제나 피해자 여성이며 가해자 남성은 대개 그 조직의 진보성을 체현하는 존재로 간주되거나 조직 그 자체와 동일시되어 조직과 함께 ‘보위’된다. 이처럼 누가 조직의 중요한 구성원이며 무엇이 공적 사안인가에 대한 정의는 항상 사회적 권력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며, 성폭력이 조직․국가․사회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보이는 것은 성별화된 해석․실천의 결과인 것이다.8)”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은 일방적으로 피해자에게 이석행 전 위원장의 은닉과 관련한 허위 진술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권력관계에 있어서 일정부분 우위에 있었던 민주노총 남성 주요간부에 의해 발생하였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간부 김○○은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가하려고 시도했다. 증거물로 CCTV가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는 술에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일관하며 책임을 피했으며, 피해자가 어렵사리 용기를 내 문제제기를 하였을 때 피해자가 속한 조직의 위원장 및 2차 가해자들은 방관과 은폐, 피해자에 대한 비방을 일삼았다. 이 모든 것이 조직을 ‘보위’해야 한다는 논리로 진행되었지만, 사실상 보위된 것은 가해자들과 관료들의 이익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피해자의 권리와 인권은 짓밟혔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피해자가 ‘피해자여서’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 속의 권력관계가 여전히 가부장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저의 말을 들은 위원장의 첫마디는 “고소는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저는 충격을 받았고 위원장에게 말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만나는 동안 내내 위원장은 매우 형식적이고도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했으며.......여러 가지 성폭력 사례와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 여성이 겪었던 고통만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어려운 시기에 이 일이 알려지면 조, 중, 동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며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니 고소만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위원장은 저의 고통과 상처를 함께 아파하거나, 저를 위로하는 것보다는 조직을 더 염려했습니다.


정 전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3일과 29일, 두 번 만나는 동안 제가 당했던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묻지 않았습니다. 저를 배려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에 더 급급해 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전교조에서 제가 받은 상처를 위로받고 싶었습니다.......그러나 위원장은 냉정하기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위원장의 사무적이고도 냉정한 태도에 또 다른 상처를 입게 되었고, 위원장이 직접 나서 사태를 무마하고 피해자를 돕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전교조와 함께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정 전 위원장은 “추락하는 전교조의 명예를 되살리기 위해” 실상과 진실을 말한다고 하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단 한번이라도 피해자인 저의 아픔과 상처를 함께 아파하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아주 작은 노력이라도 기울인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언론에 나오면 안 된다, 조, 중, 동에 이용당하면 안 된다, 고소하면 안 된다는 것 말고 저를 위해서 했던 이야기가 과연 있었나요?

- <피해자가 재심위에 제출한 글>



4. 콘크리트 벽 같은 세상을 깨기 위해


 많은 남성 동지들이 성폭력 가해자로서 징계절차를 밟거나, 징계절차를 끝까지 수행하지 못하고 단체를 떠났다. 많은 여성동지들이 대책위 활동을 참여하며 힘들어했지만, 나는 ‘피해자가 선택한 건 바로 저 대책위’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우리의 문제’로 끌어안고 가기보단 그저 방관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뿐만이 아니라 대책위 사람들도 지치고, 고립되어갔던 것 같다. 앞서 이야기했듯, 누구든 성폭력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순도 100%의 여성주의자란 없으며, 간부 김○○이 극악한 변태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성폭력을 시도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성폭력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운동을 하고 있다면 더더욱, 우리 단체가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피해자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그저 운동을 ‘하고 있음’에 만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직의 이름으로 개인들을 비호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또다시 고통을 주는 단체가, 누구를 위한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단 말인가?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란, 그것이 세상에 온전히 전달되기란,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음모론’으로, ‘조직의 흠’으로 낙인찍고 입을 틀어막는 가해자들을 징계하기란, 위에서 보았듯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이런 콘크리트 벽 같은 세상을 깨기 위해, 우리는 보다 구체적인 행동들을 해야 한다. 우리의 침묵은 피해자의 고립과 마찬가지의 의미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이젠 마음으로만 응원하기보다 한통의 문자로, 편지로, 글로, 자보로, 문제의식 공유로, 행동들로, 피해자를 지지해 나갔으면 좋겠다. 최승자 시인의 시를 덧붙이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중략)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중략)”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최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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