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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 민주노총 성폭력사건을 통해 본 반성폭력 운동의 쟁점들

2009년 12월 사학독 정기 토론회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통해 본 반성폭력 운동의 쟁점들


사회주의노동자신문 학생독자모임


1. 다시, 성폭력을 말하자


 성폭력이란 무엇인가? 성폭력이라는 말을 입에도 담기 어려웠던 1990년대 초반과 달리 오늘날에는 농담으로 라도 성폭력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인 것 같다.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성폭력의 개념인 ‘자신의 의사에 반한 성적 불쾌감과 성적 수치심을 주는 언행’에 기반 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 속에서 성폭력적인 상황을 건져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성폭력을 그냥 ‘폭력’이 아닌 ‘성폭력’으로 명명할 수 있었던 것, 혹은 그냥 무심히 넘어가던 일들을 ‘성폭력’으로 의미화 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전개되어 온 반성폭력 운동의 영향이 크다. 동성 간의 문제도 성폭력의 범주에 포함되게 된 것, 성 정체성에 대한 침해, 언어 성폭력, 2차 가해 등 성폭력의 의제들은 다양해졌다. 이와 동시에 ‘그렇다면 이것 또한 성폭력일까?’에 대한 고민들도 생겨나게 되었으며, ‘무엇이 정말 성폭력인가’에 대한 논의와 함께 ‘성적 자기결정권’1)에 대한 의미화와 비판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해진 담론들과 더불어, 오늘날의 성폭력 개념은 ‘조두순 사건’과 같이 극소수의 변태들이 자행하는 짓으로 협소하게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역설적으로 공존한다. 우리는 올해 초 부르주아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던 민주노총 성폭력 사태에 대해 다시 되짚어보고자 한다. 소위 ‘진보진영’이라고 불리는 공간 안에서의 성폭력 문제를 고민해 보면서, 우리 스스로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성폭력에 관한 단상들을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통해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들 내부에서 어떤 담론과 실천들을 만들어나가야 할지, 무수한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을 어떻게 지지하고 공감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2. 진보진영에서는 어떻게 성폭력 사건을 해결 하나요? -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를 돌아보기


 성폭력 사건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운동사회에서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동안에 전개되었던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를 잠깐이나마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진보진영에서 성폭력 문제를 처음 발화한 것은 1980년대 경찰의 여학생 추행사건(1984)이나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1986), 그리고 1990년대 한총련 학생들에 대한 전투경찰 성폭력 사건(1996) 등이었다. 이때 성폭력은 적대적 혹은 비타협적 관계에 있었던 지배 세력이 진보 세력과 민중을 탄압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의미화 되었다. 반성폭력 운동은 공권력과 국가의 폭력적 성격을 대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정치운동의 틀 속에서 구성되었다.2) 1983년에 출범한 ‘여성의 전화’는 당시 성폭력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삼은 최초의 단체로서, 젠더적 관점에 입각하여 지배/진보세력이라는 인식 틀에 균열을 내려 시도하였다. 이는 1987년 출범한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이 시대상황과 맞물려서 성폭력의 문제를 민민 운동의 과제로 설정하는 입장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199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대학사회에서 나타난 반성폭력 운동들도 민족, 민주 운동에서 벗어난 모습이었다. 대학 내에서의 성폭력은 당연히 존재하는 일상으로 여겨지게 되며, 형법이 아닌 사건공개, 가해자의 실명공개사과, 가해자 교육 등의 해결방식으로 성폭력사건 대응의 틀을 구축해간다. 그리고 대학 내에 만연한 성폭력을 처벌하는 학칙, 규약을 제정하는 운동을 만들어나간다. 2000년에 발족한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이하 100인위)’는 대학가에서 일어났던 반성폭력 운동을 토대로 운동사회에서도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활성화하고자 했다. 100인위는 이전까지 운동사회에서 공론화된 적이 없는 성폭력이라는 문제를, 그때까지 시도된 적 없는 실명 공개라는 방식으로 추진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3) 또한, ‘사건 해결의 원칙’4)을 제안하면서 운동사회의 조건 속에서 피해자의 인권 침해를 최소화하고, 개별 여성 활동가들이 ‘해결사’로 소진되는 방식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책임성을 갖고 뭔가를 하도록 종용했다. 100인위의 활동에 대한 가해자들의 대응논리는 운동사회의 남성중심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조직보위논리, 음모론 등을 통해 반발에 부딪혔으며, 피해자가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고 가해자한테서 명예훼손 역고소를 당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다시 한 번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었다.5) 여성이 경험하는 가부장적 폭력을 계급, 혹은 민족 모순으로 인한 피해의 일부라고 사유하는 태도는 1980년대뿐만 아니라 100인위가 활동하던 2000년도에도,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있다.6) 민주노총 성폭력 피해자에게 위로와 지지에 앞서 “고소는 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던 전교조 위원장의 첫마디는 100인위의 활동에서 나타난 가해자들의 태도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오늘날의 남성 중심적 운동진영을 반증한다. 이번 12월 6일은 김○○성폭력사건 발생 1년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사건의 해결이 끝나지 않았으며 피해자의 고통 또한 계속되고 있다. 이 사건이 어떻게 발생하였고 왜 해결의 과정이 이렇게 지난한지를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가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



3. 100인위 이후 10년, 무엇이 바뀌었나 - 민주노총 성폭력사건

 

1) 사건전개

 2008년 촛불 집회의 배후로 수배 중이던 민주노총 위원장 이석행은 12월 1일 전교조 조합원인 여교사의 집에 피신해 있다가 12월 5일 검거되었다. 민주노총에서는 여교사에게 민주노총과의 관련성을 부정하고 자의에 의해 숨겨주었다고 허위 진술을 하도록 강요했다. 피해자는 이를 거부하였고, 이런 과정에서 민주노총 간부 1명이 여교사의 집까지 따라와 아파트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곤 이를 따지러 나온 여교사를 여교사의 집으로 강제로 끌고 들어간 뒤 성폭행하려고 시도했다. 민주노총은 이 사실을 알고도 피해자에게 가해자 김 모 씨의 처벌 수위를 거래하였고 ‘이명박 실용정부와의 투쟁을 위해’ 사건을 덮자고 말하며 회유와 협박을 가했다. 피해자가 소속되어있던 전교조의 전 위원장 정진화는 “어려운 시기에 이 일이 알려지면 조, 중, 동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며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니 고소만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며 2차가해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사건이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고 난 이후, 민주노총 집행부가 총사퇴를 하고,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특별위원회가 꾸려져 조사가 진행되었다. 진상규명특별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민주노총 중집회의와 대의원 대회를 통해 승인, 채택되었다. 이후 전교조 성폭력 징계위원회는 2009년 4월 22일 사건에 대한 2차 가해자 3인에 대한 조합원 제명을 결정했다.

 

2) 가해자의 변론 - ‘2차 가해 및 피해자 중심주의’의 범주가 불명확하다?

 조합원 제명 결정에 대해 제명된 조합원 3인은 재심을 신청했다. 특히 2차 가해자 중 한 명인 정 전(前) 위원장은 '전교조의 명예는 회복되어야 한다'며 2009년 5월 8일 진상규명특별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부인하는 글을 공개했다. 이 글에서 정 전 위원장은 1. 사건 공개 시 전교조가 공격 받을 것을 이유로 고소하지 말라고 한 적 없다. 자신은 '피해자 중심'으로 해결해야 하고, 고소가 필요하면 하라고 했으며 단지 공안당국에 의해 피해자 자신이 힘들어질 수 있음을 걱정했을 뿐이다. 2. 이미 피해자는 그 당시 결정을 다 한 후 나에게 일방적으로 고소사실을 통보하는 것이었기에 내가 설득하고 압박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3. '가해자라는 이유로' 내 목소리는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았고, 비공개로 인해 발언기회가 봉쇄되었다. 4. 난 김보은 사건에 대응하는 운동에 여성단체들과 함께 활동한 적도 있고, 감수성이 취약하지 않다. 라고 하며 2차 가해의 책임, 한계, 피해자 중심주의의 범주, 조직적 은폐의 기준이 불명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 전(前) 위원장의 제명에 반대하는 서명운동도 전교조 일부 성원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는 성폭력 2차 가해자 전교조 재심위원회가 열리기 하루 전에 정 前 위원장의 글을 반박했다. 그러나 결국 재심위는 7월 9일 1차 징계위원회의 결정을 뒤엎고, 제명을 철회하고, 경고조치를 내렸다. '이 사건의 조직적 공론화를 막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를 확인 할 수 없었고, 사건을 축소,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도모한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노총 진상규명특별위원회의 보고서 내용을 사실상 뒤엎는 것이었다.


3) 가해자의 변론에 하이킥을 날리자 - 2차가해의 판단기준은 피해자의 경험이다!

 과연 정 전 위원장은 본인의 주장처럼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해결하고자 했는가? 정말 피해자가 힘들어질 것을 걱정했다면, 정 전 위원장은 어째서 피해자가 용기를 내어 자신의 피해 경험을 털어놓았을 때 “고소는 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했는가?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도 자신의 피해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가해자는 민주노총의 주요간부였으므로, 피해자는 크나큰 갈등과 압박을 느끼며 자신이 속한 조직의 위원장에게 어렵사리 말을 꺼냈을 것이다. 그러나 정 전 위원장은 피해자에게 한 마디 형식적인 위로를 던지고는 열 마디 조직보위논리를 설파했다. 또, 3일 동안 이 사건을 전교조나 민주노총 그 어디에도 보고하지 않았다. 방치된 채 막막했던 피해자는 직접 민주노총 측에 사건을 알리기에 이르렀다. 정 전 위원장은 피해자에게 “검찰에 고소하고 싶으면 하셔라, 다만 민주노총에서 징계 절차를 밟기 시작했고 투쟁이 한창 중이니 고소 시점만 좀 고려해 주시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어째서 고소 시점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중심으로 결정되어야 하는가? 10년 전 100인위가 제시했던 ‘해결과 처벌의 원칙’에서의 피해자 중심주의는 여전히 무시되고 있다.

 정 전 위원장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입으로 이야기하지만, 피해자를 배려하기보다는 전교조 내부 게시판에 위원장의 이름으로 “전교조의 명예는 회복되어야 합니다”라는 자기변명의 글을 올릴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가해자라는 이유로’ 내 목소리는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피해자가 고소사실을 자신에게 ‘통보’했다며 불만을 터뜨리는 정 전 위원장은 ‘감히 위원장에게 조합원이, 그리고 무력한 피해자 주제에 결심을 통보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피해자는 골방에 틀어박혀 슬픔을 곱씹으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인가? ‘진짜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받은 사람’만이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인정’은 누가 해 주는가? 또한 여성주의 감수성이 취약하지 않다고 정 전 위원장은 주장하지만 그것이 2차 가해 사실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여성주의자라도 충분히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더 열심히 운동한다고, 더 여성주의에 대해 알고 있다고, 더 여성주의적인 활동을 한다고 ‘1등급 여성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여성주의는 수능시험처럼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실천이며 고민이고 반성이다. 이를 망각한 채 자신을 순도 몇%의 여성주의자로 정의하면서 주위의 문제제기에 귀를 막아버린다면 그야말로 ‘여성주의’는 자기방어막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2차가해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고 정 전 위원장은 하소연한다. ‘입만 열면 2차 가해냐? 우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있어야하냐?’, ‘앞으론 입조심 해야겠다. 나도 가해자 소리 듣는 거 아니야?’등 2차 가해를 둘러싼 논란들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 2차 가해의 범위는 명확하지 않다. 한 사건 내에서도 복잡한 권력관계와 상황적 맥락이 얽혀 있기에, 2차 가해에 대한 명확한 경계를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2차 가해의 판단 기준에 피해자의 경험과 감정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명확하다. 또다시 피해자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2차 가해’라는 개념이 제기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의 2차가해자들은 피해자의 감정을 뒷전에 두었다. ‘2차 가해’ 개념은 우리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말할 권리를 뺏는 권한이 아니다. ‘2차 가해’는 위에서 나타난 정진화 전 위원장의 태도처럼 그동안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준 피해자 주변 분위기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말하기 힘든 피해자의 상황에 대한 고발이자, 우리가 피해자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피해자의 상처를 감싸 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4) 지금,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

 2000년 경 일어났던 KBS노조 간부 성폭력 사건7)에서 활동한 어느 100인위 위원의 당시 사건에 대한 지적은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에서도 여전히 타당하다. “‘조직보위론’의 논리가 일견 ‘개인’을 희생해서 ‘조직’을 보존하려는 성 중립적인 시도로 보이지만, 실제로 희생되는 ‘개인’은 언제나 피해자 여성이며 가해자 남성은 대개 그 조직의 진보성을 체현하는 존재로 간주되거나 조직 그 자체와 동일시되어 조직과 함께 ‘보위’된다. 이처럼 누가 조직의 중요한 구성원이며 무엇이 공적 사안인가에 대한 정의는 항상 사회적 권력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며, 성폭력이 조직․국가․사회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보이는 것은 성별화된 해석․실천의 결과인 것이다.8)”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은 일방적으로 피해자에게 이석행 전 위원장의 은닉과 관련한 허위 진술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권력관계에 있어서 일정부분 우위에 있었던 민주노총 남성 주요간부에 의해 발생하였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간부 김○○은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가하려고 시도했다. 증거물로 CCTV가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는 술에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일관하며 책임을 피했으며, 피해자가 어렵사리 용기를 내 문제제기를 하였을 때 피해자가 속한 조직의 위원장 및 2차 가해자들은 방관과 은폐, 피해자에 대한 비방을 일삼았다. 이 모든 것이 조직을 ‘보위’해야 한다는 논리로 진행되었지만, 사실상 보위된 것은 가해자들과 관료들의 이익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피해자의 권리와 인권은 짓밟혔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피해자가 ‘피해자여서’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 속의 권력관계가 여전히 가부장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저의 말을 들은 위원장의 첫마디는 “고소는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저는 충격을 받았고 위원장에게 말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만나는 동안 내내 위원장은 매우 형식적이고도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했으며.......여러 가지 성폭력 사례와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 여성이 겪었던 고통만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어려운 시기에 이 일이 알려지면 조, 중, 동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며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니 고소만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위원장은 저의 고통과 상처를 함께 아파하거나, 저를 위로하는 것보다는 조직을 더 염려했습니다.


정 전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3일과 29일, 두 번 만나는 동안 제가 당했던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묻지 않았습니다. 저를 배려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에 더 급급해 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전교조에서 제가 받은 상처를 위로받고 싶었습니다.......그러나 위원장은 냉정하기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위원장의 사무적이고도 냉정한 태도에 또 다른 상처를 입게 되었고, 위원장이 직접 나서 사태를 무마하고 피해자를 돕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전교조와 함께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정 전 위원장은 “추락하는 전교조의 명예를 되살리기 위해” 실상과 진실을 말한다고 하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단 한번이라도 피해자인 저의 아픔과 상처를 함께 아파하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아주 작은 노력이라도 기울인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언론에 나오면 안 된다, 조, 중, 동에 이용당하면 안 된다, 고소하면 안 된다는 것 말고 저를 위해서 했던 이야기가 과연 있었나요?

- <피해자가 재심위에 제출한 글>



4. 콘크리트 벽 같은 세상을 깨기 위해


 많은 남성 동지들이 성폭력 가해자로서 징계절차를 밟거나, 징계절차를 끝까지 수행하지 못하고 단체를 떠났다. 많은 여성동지들이 대책위 활동을 참여하며 힘들어했지만, 나는 ‘피해자가 선택한 건 바로 저 대책위’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우리의 문제’로 끌어안고 가기보단 그저 방관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뿐만이 아니라 대책위 사람들도 지치고, 고립되어갔던 것 같다. 앞서 이야기했듯, 누구든 성폭력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순도 100%의 여성주의자란 없으며, 간부 김○○이 극악한 변태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성폭력을 시도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성폭력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운동을 하고 있다면 더더욱, 우리 단체가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피해자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그저 운동을 ‘하고 있음’에 만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직의 이름으로 개인들을 비호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또다시 고통을 주는 단체가, 누구를 위한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단 말인가?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란, 그것이 세상에 온전히 전달되기란,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음모론’으로, ‘조직의 흠’으로 낙인찍고 입을 틀어막는 가해자들을 징계하기란, 위에서 보았듯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이런 콘크리트 벽 같은 세상을 깨기 위해, 우리는 보다 구체적인 행동들을 해야 한다. 우리의 침묵은 피해자의 고립과 마찬가지의 의미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이젠 마음으로만 응원하기보다 한통의 문자로, 편지로, 글로, 자보로, 문제의식 공유로, 행동들로, 피해자를 지지해 나갔으면 좋겠다. 최승자 시인의 시를 덧붙이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중략)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중략)”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최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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