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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아프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자는 화경이었다.

만약 누구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아니 평생 살고 싶냐고 묻는다고 해도

나는 그녀를 이야기 할 거다.

그건 그녀와 함께 했던 두 번의 여행을 통해서 결정한 거다.

 

첫번째 여행은 대학 2학년 때였다.

우리는 해남 땅끝마을에 갔다.

폭풍이 몰아치는 땅끝 한 민박집에서

방문 앞까지 차오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난 대책없이 잠을 잤고

그녀는 맛없는 밥을 해주고 산책을 나가곤 했다.

내가 잠든 사이 혼자 버스를 타고 다른 마을에 갔다 오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날인가는 그녀가 울었다.

첫사랑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두번째 여행은 그 다음해였다.

삼각관계 연애에서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내가 그 배신감을 삶의 허무함으로 승화시켜

너는 왜 사니? 를 밥먹듯 떠들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녀가 같이 바람이나 쐬자고 했다.

왜 그 때 양수리가 떠올랐을까?

청량리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그 밤의 양수리 러브호텔들은

단발머리 두 여자(아이)를 손님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우리는 성인임을 박박우겨 방을 잡았다.

난 예의, 왜 사니? 인생이 허무하지 않니? 를 읊조리며 철학을 나부리다

어느새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변신해, 버려진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성통곡을 했다.

누군가 밤새 마신 맥주 캔으로 재활용 작품을 만들었는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슬아슬한 맥주캔 탑이 창을 반쯤이나 가리며 반짝이고 있었다.

부시시 일어난 우리는 러브호텔을 나와

삼겹살을 구워먹고 집으로왔다.

햇살이 참 따뜻했던 봄날, 늘상 구워먹는 삼겹살처럼 아무일 없이, 그렇게.

 

난 지금 그녀가 보고 싶다.

보고싶어.보고싶어.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건,

8년 전 경희의료원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앉아서도 농담만 줄창 하던 그녀.

 

아무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아니 원인을 알 수 없어, 원인이 스트레스라고도 했다.

어느날 아침 출근을 하려고 침대에서 일어나던 그녀가 그대로 주저앉은 이유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지금껏 못일어나고 있다.

정말 그런일이 있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는건줄 아냐면서.

 

그 때부터 지금껏 그녀는 나를 만나주지 않는다.

처음엔, 널 보면 옛날 생각나서 힘들다고

또 좀 나아졌을 땐, 술마실 때 쯤 너랑 젤 먼저 술 마실거라고

더 나아졌을 땐, 걸어다니면 만난다고

아무리 내가 징징거리며 통 사정을 해도

어르고 달래며 만나주질 않았다.

 

양방과 한방을 통틀어 그녀에게 더이상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고 했을 즈음,

마석의 한 성공회성당에는

수 많은 교인들과 함께 비신앙인이 한명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턴가 그 비신앙인이 술만 마시면 야밤에 성당에 들어가

통곡의 기도를 한다는 으스스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어느날 성공회사제가 물어보았다.

도대체 이 소문이 사실인지, 그리고 이유는 무엇인지.

그 비신앙인은 사랑하는 여자가 어느날 주저앉아버린 이야기를 했고

사제는 주일 미사 시간에 모든 교인들이 아픈 그녀를 위해 기도를 하도록 인도했다. 

그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그 비신앙인은 세례를 받았지만, 결국 은혜는 입지 못했다. 

 

지난 8년 동안

나는 대체로 그녀를 잊고 지냈고, 가끔 생각했고, 가끔 연락했고,

가끔 가슴이 묵직하게 저렸다.

바로 오늘이 그날이다.

가끔 찾아오는.

 

지금 안 보면 볼 수 없다는 내 협박성 메일에

그녀가 답장을 보냈다.

많이 아프다고.

몸이 좀 좋아졌을 때 만나지 못한게 이젠 후회가 된다고.

장기가 망가졌어

피부가 곪았어

라고

8년만에 처음으로 아프다고 했다.

 

난 어제 저녁에도 구워먹었던 삼겹살처럼,

환절기에 감기라도 걸린 양,

속상하네.

빨리 나을 거야.

라고 메일을 보냈다.

 

그녀가 아프다

그런데

나는

 

아 무 것 도

할 수 있 는 게

없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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