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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의 거리

알고보니 '비열한 거리' 였다.

정말 어쩔 수 없이, 아무런 선택의 여지 없지 봐야했던 영화.

오늘 가방에서 나온 영화표를 보지 않았으면, 나는 '비정의 거리'를 봤다고 계속 생각했을 뻔 했다.

 

영화는 건달들의 이야기이다.

보는 내내 언제 밖으로 뛰쳐나갈까 생각만 했고,

만약 내가 영사기를 접수할 수만 있다면 빨리감기를 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영화를 본 것도 태어나서 처음 해본 일이었고,

앞 줄 세번째에 앉아 그 큰 화면으로 사람 죽이는 걸 계속 봐야하는 건 정말 고문이었다.

그것도 바로 어제 말이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죽어가는 조인성이 너무 끔직했다.

몇 시간 전, 명동 한 길가에서 쓰러져 있었을 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열한 거리도 비정의 거리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고시원 옥상에서 뛰어내리기 전,

그가 돌린 전화에 누군가 응답했다면

그는 비정의 거리에 싸늘하게 누워있지 않았을까?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내게 보낸 그의 마직막 문자와 시간을 보고는

응답하지 않았음에 덜컥 심장이 내려앉아

한줌 눈물로 위로 하면서

며칠 째 답보상태였던 글을 갑자기 마구 쳐대고 있었다.

 

그리고

두부를 먹으며 채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젠 볼 수 없는 그를 욕하고

비열한 거리를 보며

비정의 거리를 떠올리고

집에 오는 길

 

거리의 노숙자들이

서울역 앞을 서성이는 아주머니들이

지하철을 가득메운 붉은 악마들의 열기가

나를 위협했다.

 

아침이면 불구덩이에 들어갈 그에게

뜨겁겠다고

참 뜨겁겠다고

속으로 중얼 거렸다.

 

어두운 지하도로 모퉁이 저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를

어떻게 만날까

생각했다.

 

그렇게 쉬운 일이었구나.

고작 5층에서 폴짝 뛰어내리면 되는 일이었구나.

난 몰랐어.

그렇게 쉬운 일인지.

그래, 지금은 어떠니?

궁지에 몰린 작은 짐승처럼 노려보던 세상 떠나니

훨훨 날것 같니?

나쁜 놈.

 

니가 쇠파이프 휘두르며 외치던

다른 세상

그 세상은 이곳이 아니었나 보다.

 

네 불안한 눈빛 버리고 싶어

바람처럼 물처럼 되는 꿈

그거였니?

난 잘 모르겠다.

 

민영아,

이렇게 이름 불러 이야기했으면 안갔겠니?

그 날, 네 손 잡아주었으면 안갔겠니?

너 그래도 갔을거지? 그런거지?

말좀해. 제발.

 

자주빛 투쟁 조끼를 입고

말 없이 웃고 서 있는 그를

마구 흔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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