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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외갓집 풍경

간만에 동대문 외갓집에 다녀왔다.

 

잔뜩 먹고, 뒹굴거리고, 낄낄거리고

아주 익숙한 그 곳이 나에겐 외갓집 같다.

그래서 부르기만 하면 냉큼 달려가는 곳이기도 하다.

 

설핏 잠이 깬 아침

부엌에서 라주 동지는 요리를 한다.

비누가 맞춰 놓은 알람이 요란스러워

아 시끄러, 비누 이것좀 꺼! 하자

응, 껐어! 얼른 자~ 토닥토닥 얘기하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쓴다.

이숄은 마숨 동지 코고는 소리가 호랑이같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와, 진짜 호랑이 같아를 연발하고,

라주 형 심부름에 투덜거리던 선주도

얼른 고양이 세수를 하고 슈퍼에 간다.

 

라주 동지는 비누에게 오늘은 요리 좀 하라고 꼬시지만

비누는 계속 힘들다며 하지 않는다.

역시 우리의 얼치 클럽(번역: 뺀질이 클럽) 회장님 다우신 모습이다.

그 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던 선주 왈,

"비누 형은 다함께 사람들 올 때만 요리해요. 지난 번엔 와~ 열여섯명 왔는데 그 요리 다 하고, 설겆이도 다 하고..." 킥킥 모두가 웃는다. 머쓱한 웃음을 짓는 비누.

 

밥상이 차려지고, 대낮부터 맥주잔을 가득 채우고 건배를.

이숄은 월급날이 제일 기분 나쁘다고 한다.

친구들한테 빌린 돈 갚고, 뭐 하고 뭐 하다 보면 남지도 않는 월급.

엄마 수술비 보내느라 진 빚 600은 또 언제 갚나.

라주 동지도 그렇단다.

이번 달 월급타면 계획이 많았는데, 나라에서 돈부치라는 성화에 오늘 새벽에 보냈다.

떨어진 신발도 못 사고, 나이키 아니면 안 신던 양말도 500원짜리로 바뀌고.

에이 진짜, 나라에 빨리 오라고 하면서, 돈은 또 맨날 부치라고 한단다.

네팔 마오이스트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성원의 이야기가 오고가고, TV를 보며 전국노래자랑 최우수상 후보에 대해 이야기하고, 밥상을 치우고, 설겆이를 하고, 돌아가며 세수를 하고 나갈 채비를 한다.

 

라주동지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드라이를 하는데,

스트레이트 파마한거야? 왜 그래 머리가? 라고 킥킥 거리자, 

늙어서 이젠 스트레이트 파마도 안들어!

에휴, 얼마 안있으면 사십인데 뭐.

곱슬대며 푸석푸석한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꽁지머리 숱이 그새 줄어든 것도 같다.

비누는 며칠전에 잃어버린 가방에 썬크림이 있었다며

날씨도 더운데 썬크림 없어 어쩌냐며 궁시렁궁시렁

거의 바닥난 내 썬크림을 꾹꾹 쥐어짠다.

그 때, 옆 동네로 이사간 검 동지가 들어오고,

오자마자 덥다며 티셔츠를 훌러덩 벗어던진다.

나시에 반바지에 쓰레빠짝 끌고 나온 것이, 딱 동네 슈퍼가는 복장이다.

반면에, 한 스따일 하는 선주는 빨래한 바지 꺼내 입고

드라이하고, 스프레이 뿌려 머리 만드느라 늑장이다.

 

아휴, 한 번 움직일라면 이렇게 힘들어요~

집회 시작시간이 두시 반인데, 벌써 두시반이 넘어가고

동대문 시장통에 서서 다 모일 때 까지 기다린다.

그 와중에 검동지는 지나가는 네팔 사람들 붙잡고 집회가자고 조직하고,

나는 며칠전에 했던 마사지 크림 만드는 비법을 이숄에게 전수한다.

저 멀리서 찬드라 동지가 보인다. 깨비 동지도 온다.

왠만큼 올사람들 다오고, 비타500 하나씩 사서 마시고 모두 집회장소로 간다.

 

다들 투쟁 조끼를 입고, 머리 띠를 묶고

집회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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