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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이

유경이는 참 착하다.

얼토당토 않는 내 구박과 신경질을 다 받아주고

어떡해,,, 선생님 저 때문에 너무 답답하죠?

라며 내 걱정이다.

 

지난 겨울,

처음 유경이네 집에 갔을 때

나는 참 부담스러웠다.

아이는 대충 꼬시거나 협박하고

부모님은 어르고 달래면서

내 일용할 양식과 담배값과 술값을 벌어야 하는

사교육계에서

유경이는 적당치 않은 대상이었다.

 

내가 등쳐먹던 많은 집과는 달리

유경이네 집은 여유가 없어 보였고

전화통화를 한 유경이 아버지는

혼자 벌어 애 키우고 있어요, 좀 깎아주세요.

라고 다소 절실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제가 그 이하는 좀...

뭐 이렇게 얼버무렸고,

분식집에서 알바뛰는 유경이 생각도 나고 해서

며칠동안 고민을 했는데

결국 유경이는 내가 맘에 들었다며

날 선생으로 모셨다.

 

유경이를 만날 때면

밥먹었니? 라고 인사가 시작된다.

그 녀석 맨날 편의점 삼각김밥에 라면에

동네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는 통에

공부하다가도 꼬르륵 소리를 내며 챙피해한다.

아빠는 멀리 일나가 안오는 날도 많고,

유기견이 되었던 기억 때문에 애정결핍에 정신병을 앓고 있는

꼬질꼬질한 강아지 한마리랑 둘이 있는 날이 대부분이다.

어떨 땐 늦은 밤에 현관문도 잠그지 않고 있어

정말 위태롭게 느껴졌던 날이 많았다.

 

그래도 유경이는 항상 웃는다.

내가 숫자 계산 좀 모른다고 엄청 구박해대도

키득키득

대학 가기 힘들거 같다고 인상쓰며 얘기해도

키득키득

저 열심히 하면 되겠죠? 그죠?

라고 말하면서도 키득키득.

하니처럼 귀엽게 생긴 것이

공부는 엄청 안하면서

맨날 공부 계획 세우느라 바쁘고

짝사랑하는 친구 얘기에 눈을 반짝인다.

 

오늘도 유경이를 만나고 왔다.

몇십장의 연습장을 빼곡히 숫자로 가득채우며

내일 시험을 준비했다.

이번엔 꼭 50점 넘고 싶다고.

그럼 소원이 없겠단다...

그러면서 또 꼬르륵.

문제 하나 더 푸는 것 보다

밥먹는게 낫겠다 싶었다.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유치원 선생님 꼭 되고 싶어요.

아빠가 곧 재혼할 것 같아요.

아빠 밥도 못해주고, 챙겨주지도 못해서 미안했는데

잘 된 것도 같아요.

좋아하는 사람있으면서, 다른 사람이랑 사귀면 안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래서 헤어졌잖아요.

지금 다니는 학교 친구들이 별루에요.

....

 

오랜만에 녀석과 대화다운 대화를 좀 했다.

연애 중인 아빠를 이해하자며,

혼자서 힘들더라도 오늘밤을 잘 보내

내일 시험 잘 보자며,

그렇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섰다.

 

난,

유경이가 꼭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아이의 꿈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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