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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히드

전화 통화를 하는 70분 내내 자히드는 숨가쁘게 방글라데시의 상황을 전달했다.

 

지난 5월 의류노동자 투쟁의 시작,

가지풀이라는 수도권 지역에서 시작된 투쟁이 들불처럼 번지던 생생한 상황,

그래서 수백만명의 노동자들이 수도 다카 전체를 마비시켰던 격렬했던 몇일간의 투쟁!

 

이어지는 탄압은 많은 이들을 얼어붇게 하고 있나보다.

 

정부는 방글라데시 주력 수출 산업에 타격을 주기 위해 해외 자본이 사주를 한 투쟁이라며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자본가들은 투쟁을 막아낼 어용 노조 건설에 열을 올리고, 온갖 어용 단체들과 노조들은 이제 막 자생적인 투쟁이 일어나는 현장 곳곳에서 노동자들을 우롱하고 있단다.

 

"RAB(특수 경찰)이 깡패 누구누구를 죽여 주어서 감사하다!"

는 플랭카드가 공공연하게 걸리는 그 곳에서

정부나 자본에 의해 깡패되는 건 한 순간이다.

 

다카 공항으로 가는 깜깜한 고속도로 한 복판에 널부러져 있던 물체가 뭐냐고 묻자

"마노쉬!"

라며 택시 기사 아저씨는 무심히 얘기했었다.

마노쉬는 '사람'이란 뜻이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다.

의류 노동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투쟁을 담아내고 있다.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며, 꼭 기록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은 찍지 말라고 했고,

함께하는 동료들도 걱정이 한 가득이란다.

한달 임금 900다카(한국 돈으로 12000원)의 어린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바깥에 알리는 건 방글라데시 국가경제발전을 해치는 이적행위이자 죽어 마땅한 놈이 될 수도 있다.

 

지난 겨울에 만난 자히드는,

E-TV라는 진보적 성향의 방송국, 그래서 지금 정부에 의해 방송 금지 처분이 내려진 방송국에서 수습 PD로 일하고 있었다. 방송도 안되는 방송국 수습이다 보니 사는 일이 힘겨워 보였다. 그래도 언제나 꼿꼿한 그 인간! 방글라데시에 머무르는 동안 많은 밤, 긴긴 이야기로 한국에서 처럼 날이 새도록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 있을 때, 농성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독립 미디어 활동가들에게 받은 영향을 이야기했고, 언젠가 한국-방글라 공동제작 이주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 꿈을 내비쳤다. 자히드는 함께 방송 아카데미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과 독립미디어 그룹을 만들어 세미나도 하고, 촬영도 같이하고 있다. 그 방글라데시 독립 미디어 그룹 친구들과 한국의 독립 미디어 그룹이 함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꿈!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자히드는 지금 열심히 촬영을 하고 있다.

무사히, 제발 무사하기를.

 

결국, 70분 내내 숨가쁜 투쟁 이야기에 안부도 못 묻고, 잘 지내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뚜 뚜 뚜 뚜

그렇게 인사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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