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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외갓집 풍경 2

며칠 째 소주가 마시고 싶었다.

주룩 주룩 멈추지 않는 비 때문인지...

나 갈께,

전화 한통화로 찾아간 동대문 외갓집.

 

사실, 이렇게 무작정 찾아간 건 처음이라

찬드라 동지가 조용히 물어본다.

"진짜 왜 왔어?"

"그냥..."

 

어제 밤새 술 펐다는 이야기에, 옥탑방 옥상위에 줄줄이 널려있는 소주병에, 왠지 헬쓱해 보이는 얼굴에 차마 술한잔 하고 싶어서 왔다는 말이 안 나온다.

"근데 어제는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

"외로와서.."

"왜? 요즘 좋아하는 사람있어?"

"아니"

 

"앞머리 좀 그렇게 자르지마!"

"왜? 이상해? 오늘 미장원 갔다온건데... 으쒸! 이효리도 요즘은 앞머리 자른다고 언니가..."

"거울 좀 바바. 거기다 머리 위로 묶으면 코메디언이야!ㅎㅎ"

"뭐야?!"

 

노닥 노닥 하는 사이,

라주 동지랑 선주는 선전전이 있어 나가고,

찬드라 주방장님과 보조 주방장인 나는 돼지갈비 요리를 하고,

지갑 잃어 버렸다고 툴툴 거리던 구말 집주인께선 한움큼의 잔소리와 함께 청소기를 돌린다.

 

요리를 마친 주방팀은 멋진 야외 술자리를 만들고, 시식겸해서 간단한 술한잔을 하는데,

옆집사는 나렌씨가 소주 두병을 들고 옥상과 옥상 사이를 풀짝 뛰어넘어 건너온다.

어디선가 땡그랑 땡그랑 소리가 나 돌아보면, 소주병을 들고 사람들이 오고 있었고

어느새 저녁바람 시원한 야외 주점은 북적북적! 왁자지껄! 술병가득!

 

네팔과 티벳의 경계에 있는 무스탕이 고향인 한 친구는

아름다운 그 곳 풍경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밤이 되면 바람과 함께 돌맹이가 날아다니는 곳!

와~

"근데 그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살다가 어떻게 여기서 살아요?"

뭐,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하냐며

"보는 사람이나 그렇지! 사는 사람은 안그래!"

라고 구말 동지가 면박을 준다.

맞아, 나 정말 바본가봐.

 

한잔두잔세잔네잔

술잔 비우기 무섭게 서로서로 따라주는 이 분위기!

그래,난 술도 마시고 싶었고 외롭기도 했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네팔식 양푼 비빔밥이 만들어졌는데

내가 접시를 들고 밥을 푸는 동안 모두 침묵하며 쳐다본다.

한국 사람 여럿이서 고추장 넣고 양푼비빔밥 먹는데 외국 사람 하나 껴 있다고 상상하면 되는 분위기다.

제가 먹을까, 안 먹을까 하는 호기심, 걱정의 눈빛.

제는 김치 없어도 잘 먹는다는,

구말동지 이야기에 호기심 어렸던 침묵은 다시 왁자지껄로 돌아갔다.

그래, 시간이 지나도 여기서 난 외국인이군!

 

흐렷던 하늘에 비가 한두방울 떨어지더니 후두두둑 쏟아지고

접시들고, 술잔들고, 깔개 치우고

후다닥닥 모두들 방으로 들어간다.

 

막차 시간이었다.

급하게 뛰쳐나오는 내 뒤로

구말 동지는 말한다.

"저렇게 갑자기 가는 거 보니까, 저저저,누구 만나러 가는거야!"

"그래! 나도 그랬음 좋겠다!"

 

집으로 오는 길,

또 다시 오지 않을 시간에 대해 기록해 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졌다.

비디오 찍듯, 선명하게 남겨두고 언제든 꺼내보고 싶은 기억.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외갓집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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