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푸코에게 어떤 일관된 이론적 태도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삶정치와 통치성같은 개념과 사유들이 주목받고 있는 것처럼 '완전히 새롭지는 않다'는 게 강연을 듣고 나서 든 생각입니다. 그래서 '개체화'의 미시권력 이론가의 푸코가 있었는데 '전체화'의 거시권력의 이론가로서의 푸코가 재발견되었다는 식의 이해는 정치적 아이디어를 캐내는 데에는 유효할 수 있겠으나, "푸코"라는 고유명이 가지는 이론적 태도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는 위험하지 않겠냐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이론적 태도란 제가 생각했을 때는 강연자가 말하신 "나는 달력도 지도도 없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에 잘 집약되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최근 떠오른 삶정치도 통치성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푸코의 부분이다만, 사물을 자연적인 방식이 아니라 철저히 역사적 지리적인 맥락 하에서 파악하려 한 '계보학'적 태도가 푸코에게 궁극적으로 배워야 할 이론적 '미덕'이 아닌가 싶더군요. 그런 맥락에서 이 강연은 '대중강연'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푸코에 대한 통념을 단순반복하는 것이 아닌 그 통념을 반성해볼 계기를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물론 강의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삶정치, 통치성에 대한 내용은 직접적으로 언급이 되어 있지 않고 있습니다만 저는 오히려 강의를 듣고 나서 생각이 든 게 최근 불고 있는 '푸코의 재발견' 열풍이 임의적으로 마치 '두 명의 푸코'가 있는 것처럼 몰고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이와 같은 푸코에 대한 '진화론적 인식'은 푸코를 그간 '미시-권력의 이론가'로 규정해왔던 한국의 푸코 수용에 있어서의 문제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가 '개체화'하는 규율권력에 대한 상세한 서술을 제공하며 권력의 초월적 실재를 '존재론'적인 층위에서 상정하는 것을 거부했을 때, 그는 병원 학교 공장 등 다양한 장치에서의 규율권력을 고립된 원자로서 본 것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개념을 일종의 '관계론'적인 순환고리로서 상정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도 전혀 바뀌지 않습니다. 푸코는 삶정치를 설명할 때도 '국가 권력'이라는 주체를 연상시키는 개념을 사용하기 보다는 사회보장제도, 의료화, 위생시설정비와 같은 구체적인 '장치'들을 나열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캐즘 님 블로그에 링크타고 와서 간혹 눈팅만 하고 가던 사람입니다. 허경 선생님의 강의에 오셨었군요ㅎㅎ강연평에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그래도 공부를 해나가는 데 잇어 강연이 큰 도움이 되었던 사람의 입장에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푸코가 주체, 인식, 대상이나 정신의학같은 실천들 등처럼 당연시되어왔던 사태들이 '역사적'인 구성물임을 드러내는 데는 부단한 노력을 했으나, '지리적'인 구성물임을 드러내는 데에는 소홀했다고 지적하면서 푸코의 이론이 과연 '유럽의 입장'에서만 타당한 것이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며 "푸코를 푸코적인 방식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하신 부분이 이 강연에서의 빛났던 부분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푸코의 문제의식에 (젠더정치와 더불어) '식민주의'의 문제가 빠져있다는 앤 로라 스톨러의 주장이 떠오르더군요. 참신한 시각의 이론들이 몇몇 분들의 활약을 통해 급속도로 수입되고 있지만, 이를 한국이나 동아시아의 구체적인 정세와 역사적인 맥락에 적용하는 작업은 미진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강연자의 그러한 지적은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이야기보다는 모임에 거의 '수다'라서 -- 원인은 제가 좀 삼천포라 잘 빠지는 지라서 -- 지금도 무연님한테 제가 많이 배우고 있어요. 오히려 시간 나실 때 부담없이 들러서, 좋은 이야기 들려주세요^^. 덧붙이면, 다음 모임부터는 아마도 홍대나 신촌 근처로 장소를 옮길 것 같아요. 그럼 뒷풀이라도 할 때 합류하셔서 읽은 부분을 나눠도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