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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바람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 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장 작 불
백 무 산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먼저 불이 붙은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몸을 맞대어야 세게 타오르지
마른 놈은 단단한 놈을 도와야 해
단단한 놈일수록 늦게 붙으나
옮겨붙기만 하면 불의 중심이 되어
탈거야 그때는 젖은 놈도 타기 시작하지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몇 개 장작만으로는
불꽃을 만들지 못해
장작은 장작까리
여러 몸을 맞대지 않으면
절대 불꽃을 피우지 못해
여러 놈이 엉겨붙지 않으면
쓸모없는 그을음만 날 뿐이야
죽어서도 잿더미만 클 뿐이야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돌
돌이 되고 싶다
잘 난 구석 하나 없어도,
세월의 강물에 모난 곳 닦고
둥글둥글 묵묵히 제자리 지키는
수많은 돌 중의 하나이고 싶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 그곳에서
지나가는 가을바람 동무 삼아 놀다가
땅위로 기는 것들 쉬어 가는 그늘도 되고
아침마다 이슬에 몸을 씻어
하늘거울에 내 몸 비춰보고 싶다
때론 지나가는 발길에 채여도
그대 기다리는 마음으로 내 몸 속 길을 내면
어느 날 그대 피곤한 발걸음 내게 얹으며
지친 삶 내려놓고 쉬었다 가게
그대, 나를 밟고
한 세상 건너가시게
검단산은 하남에 있는 산으로 서울 근교라서 비교적 가기 쉬운 곳이다. 산 정상에서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도 보이고 물줄기가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으로 아름답다. 검단산에 가을에 올라가다 보면 소나무의 잎사귀들이 흙위에 곱게 쌓여있어서 마치 눈이 온 것같은 느낌이 든다.
산행 초반에는 넓은 길이 있어서 산책하듯이 올라가지만 정상가까이 가다보면 가파른 돌길이 있어서 조금 힘들다. 어떤 산이든 처음 가게 되면 지도를 보고, 시간을 알더라도 어느 정도 더 가야 정상인지 궁금하게 된다. 그래서 산을 오가는 사람들끼리 인사를 하면서 올라가는 사람이 얼만큼 더 가야하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내려 오는 사람들은 항상 '조금만 더 가면 되요'라고 한다. 또는 '5분만 가시면 됩니다'라고 한다. 예전에는 그 말을 믿었었다. 그리고 가도 가도 정상이 안나오면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 그 말이 내려오는 사람들이 다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 이제는 나도 내려오면서 힘들게 오르는 사람들을 보며 그냥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말해준다. 어차피 올라가는 거 조금만 참고 더 오르라는 차원에서 해주는 말인 거 같다.
검단산은 3월 초에 산불 방지 기간이 있어서 입산이 금지된다. 그런데 그 사실을 모르고 일요일에 갔었다. 당연히 산지기 아저씨가 올라가면 안된다고 했다. 우리는 감시의 눈길을 피해 길인지, 아닌지도 모를 길을 올라갔다. 나중에는 우리가 산의 옆구리를 따라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겨우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찾았다. 그래서 정상에 가보니 입산 금지된 산이라고 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만 올라가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냥 올라왔을 줄이야. 다들 나하나 쯤이야 하면서 등산을 했겠다 싶었다. 입산 금지가 형식적인 거 같기도 하고, 사람들 욕심이 지나쳐서 지킬 것을 안지키는구나 싶기도 했다.
올 겨울에 눈이나 비가 안와서 가뭄이라고 하는데, 검단산에 또 입산 금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미리 정보를 알아서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검단산은 서울역이나 강변역에 있는 하남행 좌석버스를 타고 가도 되고, 강남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도 된다. 아, 버스 노선이 바뀌어서 확실한 지 모르겠다.^^
칠보산은 수원에 있는 산이다. 90년대 후반에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수원에 있는 선배도 볼 겸해서 칠보산이라는 곳에 가기로 했었다. 칠보산이라고 해서 일곱가지의 보물이 있는 산인줄 알았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내려서 올라가 보니 그 산 이름이 일곱 걸음으로 갈 수 있는 곳이어서 지어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뒷산 정도라고 할 정도로 낮은 산이었다. 수원에는 그다지 높은 산이 많지 않아서 그래도 정상에 오르면 수원 주변을 훤히 볼 수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주말에 쉬엄 쉬엄 올라갈 수 있는 정도였다. 나름대로 이름있는 산에만 다니다가 동네 뒷산에 갔다고 실망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인공적으로 꾸며지지 않은 산길이 편했다.
지금은 2000년하고도 5년이 지났는데 칠보산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하다. 요즘은 어떤 산이든지 올라가면 보이는 풍경의 대부분이 아파트이고, 산을 아예 깍아서 아파트를 짓고 있는 것 같다. 이러다가 우리나라는 아파트 공화국이 될 것이라고 하는 말도 들었다.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었다는데도 아직까지 아파트를 계속 짓고 있으니 참으로 낭입에다가 환경파괴에다가 .... 큰 일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가까운 곳으로 등산을 가고, 산에 가서 계절마다 자라는 식물들도 관찰하고, 직접 키워도 보고... 이런 생활이 되었으면 싶다.
칠보산은 잘 있을까?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산은 특별히 찾아가지 않는 이상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특히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산에 오르라고 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이 오르는 것보다는 산 아래나 중턱에서 술을 마시거나 노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난 우연한 기회로 산을 좋아하게 되었다. 중3 때 졸업 사진 촬영을 겸해서 소풍으로 북한산에 처음 갔었다. 그전에는 동네 앞산 정도에만 가보아서 산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북한산에 올라가서 본 서울의 풍경을 정말 장관이었다. 그 때만 해도 지금처럼 스모그가 낀 서울이 보이는 게 아니었기에 놀라운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이래서 사람들이 산에 가고, 산에서 넓은 마음을 만드는 거구나 싶었다. 내가 사는 곳은 어디인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작은 곳에서 십여년을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산에 한 번 오르고 다시 산에 자주 가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와서였다. 처음에 등산을 하는 주요한 목표는 어떻게든 더 높은 산에 올라가고, 정상을 정복하여 등산의 기쁨을 맘껏 누리는 것이었다. 힘이 들어도 끝까지 참고 올라가야 한다고 믿었다. 물론 체력도 밑받침이 되었었다. 정상에 올라가서 땀을 닦아내며 먹던 음식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 있는 산 중에서 가고 싶은 산들을 손에 꼽으며 여기, 저기 다 가보겠노라고 마음 속에 다짐을 해 놓았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부터는 산을 오르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산 중의 하나인 북한산으로 아는 사람들과 함께 자주 올랐다. 두서너명씩 같이 가거나 둘이 가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생활나누기였다. 서로가 살아왔던 과정이며, 어떻게 대학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어떠한 인생을 살고 싶은 등에 대해 정말 편하게 이야기나누었었다. 물론 가방에는 점점 술을 챙겨가는 일이 많아졌고, 술의 양도 늘어났다.
북한산은 보통 우이동에서 올라갔는데 한 번은 산을 좋아하는 선배가 국민대쪽으로 가면 입장료도 안내고 아주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다고 하여 쫓아갔다.(국민대 출신 선배라 믿었었다) 아니 그런데 올라가기는 잘 가고 내려갈 때 계속해서 "이 길이 아닌갑다"하며 다시 산에 오르는 것이었다. 해는 지려고 하는데, 내려가는 길을 찾지를 못하여 참으로 황당했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따라갔었지만 나중에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그냥 아무데로나 내려가면 안되냐고 애원을 했다. 그래도 끝까지 우기던 선배는 결국 국민대 앞으로 내려와서 잘 알던 가게에 데리고 가서 맛있는 동동주와 파전을 사주었다.
북한산에 후배랑 둘이서 올라가다가 쉬면서 강냉이를 먹는데, 올라오는 사람들마다 바람결에 강냉이 냄새가 그렇게 좋다며 말을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거의 다 나누어 주었던 생각이 난다. 그렇게 나누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다는 생각보다는 즐겁게 나누어주는 행복이었다. 요즘은 생활하다보면 사심없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언제 북한산에 갔었는 지 이제는 기억이 잘 안난다. 그래도 즐거운 일은 친구 한 명이 이번에 결혼을 하면서 북한산 자락에 집을 얻은 것이다. 나랑 좀 비슷하여 산 밑을 선호하더니 진짜 교통은 포기할 정도의 곳에 정착을 하였다. 그래서 그 친구네 놀러가면서 북한산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든다.
이제 애기를 낳을 날이 5개월 정도 남았다.
무수한 이야기를 들었었고, 출산, 육아에 대한 궁금함과 걱정도 많이 되지만
임신 기간 동안 내가 임산부라는 것을 잊고 있을 때가 더 많은 거 같다.
입덧이 거의 없었고, 생활이 단순해 진 것 외에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어떤 사람들은 애기가 배속에 있을 때가 가장 효도하는 때라며,
낳은 후의 생활의 변화는 엄청날 것이라고 한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시간인데, 사실 무엇을 준비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엄마가 되면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도 많겠지만
홀홀단신일 때나 애기가 없을 때와는 다르게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아지리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활동에 대해서는 별다른 전망이 보이지를 않는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싶으면서도...
어제는 집근처의 요리학원에 등록을 했다.
조리사 자격증을 따놓으면 앞으로 무엇인가를 하는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사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내 성향이 그렇게 만든 거 같다.
집근처이고, 부담없이 오가면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 돌
이렇게 연말연시 기분이 안나는 때는 또 처음인거 같다.
정말 나이가 들어서 인가?
어제는 친구들하고, 나이 얘기를 하다가 난 새까맣게 내 나이 이제 서른 둘이 된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나이 같은 거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는데, 몇 살 되는 지도 모르고 있다니...
숫자가 바뀌는 것말고는 달라지는 게 없는 거 같기도 하는 한 해를 시작하며
내 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내 입장에서, 나만 생각하다보면 항상 일을 그르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 같다.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 일을 해야겠다.
--- 도리
서울에서만 살던 서울촌뜨기가 시골로 직장을 다니면서
겨우 겨우 몇몇 식물들에 대한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에 대한 동경은 있었지만 역시 시골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감상적이지 않은 거 같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사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잠깐씩 시간내서 잘 키워지거나
자라고 있는 식물들의 사진을 그야말로 여유롭게 찍었었고, 여기에 올렸답니다.
그러나 직접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부지런히, 일년 내내 철저히 계획된
노동을 해야만 이루어지는 수확이었습니다.
일한 만큼의 댓가로 생활이 가능하면 좋겠지만 거의 모두가 빚에 시달리기 때문에
또 다른 노동을 해서 겨우 겨우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도 농사지으며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그건 어쩌면 배부른 자의 오만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취미로나 가능한 일이지 생계로는 농사를 지으면 살 수 있는 시골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암튼 1년 동안 주마간산으로 본 자연은 정말 놀라운 변화이긴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 흔한 디카도 없고, 그냥 사진기도 고장난 상태라 언제 사진을 다시 찍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사진으로 담았던 모습을 제 생활에 반영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농사 공부도 열심히 해서 생활속에서 식물을 기르거나 먹거리를 생산하는 노동을
할 수 있는 쉬운 방법들을 정리해 보고 싶기도 하구요.
가끔 구경하시는 분들이 알려주신 좋은 정보 감사드리구요.
새 해에는 더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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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에 갔는데, 좋은 산이더군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