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월요일

홍상수 <해변의 여인>, 문숙(고현정)은 해변에서 불가사리를 발견한다. 그녀는 말한다. "아, 불가사리다.", 이어서, "...시체네."

"죽었네."가 아니라 "시체네."

짱구 극장판 12기 <(태풍을 부르는)석양의 카스카베보이즈>, 영화가 빨아들인 노하라 히로시는 가족들과 함께 길을 잃는다. 걷다가, 땅 속에 누워 있는 거대 로봇을 발견한다. 아들이 로봇에 다가가려고 하자 히로시는 말한다. "어이, 건드리지 마, 깨어나면 어떡해."

 

나는 다른 나들을 느낀다. 문숙처럼 한 발 물러난 나, 히로시처럼 한 발 들어선 나를 느끼고, 외로워지면, 그 중간에 선 내 몸을 만진다. 내게 느껴지는 이 몸, 여기에서 손을 떼면 나는 잠시 물러서기도, 들어서기도 한다. 하지만 내 손이 이 살을 다시 찾으려면 이 중간의 자리를 휘저어 보아야 한다.

이 자리에서 벗어낫다고 느낄 때, 몸의 온기는 느낄 수 없지만 떨어진 곳에서 몸을 바라볼 수는 있다. 이렇게 해서 바다를 향한 후크선장의 널판지 위에서, 친구가 생겼다고 좋아할 수도 있다. 손 없는 친구. 항상 그녀는 나를 붙잡으려고 하고, 항상 나는 그녀를 향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손은 하나였다. 내가 떨어져나올 때, 그녀는 다시 자기를 찾아달라고 하며 내게 손을 맡긴다.

그래서 손, 나는 그것을 가지고 다시 바다에서 배를 향해 그녀에게 간다.

널판지에서 갑판까지, 갑판에서 선실까지 돌아다닐 자유는 처음부터 있었다. 규칙은 이것이다. 그녀의 시야에서는 벗어나지 않을 것, 그녀가 돌아오라고 외치기 전에 복귀할 것.

얼마 전에 그녀는 내게 외쳤다. "돌아와"가 아니라 "더 멀리는 가지 마"라고. 그리고 그 후에 울기 시작해서 아직도 울고 있다. 사실은 그녀도 나도 알고 있다. 내게 들린 손은 흐릿해진다는 것을. 그녀도 한 발 물러서고 한 발 들어서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는 것을. 무엇보다, 돌아가지 않으면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바다에서는 원치 않는 바람도 불고 바라지 않는 비도 내린다. 육지에서보다 더 자주 그렇다.

나에게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 이 흐릿해진 손 뒤에서 그녀의 것이 아닌 새로운 손이 나타날지, 손이 없어지고 나는 누구의 몸을 요청하기 위해 휘젓는 것도 못하게 될 지, 나도 모르겠다. "이제 내가 누구인지 정말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어느 쪽이지?"

 

아마도 이것이, 당신의 생각이 아닐까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