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 앞선 글들에 궁금해하시는 사실관계들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래도 짧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3년 정도 다녔고, 6시간제 이후에도 반 년 정도 다녔습니다. 반 년이면 제대로 알기 어려운 기간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6시간제 시행 이후에도 회사를 그만 둔 사람이 9명입니다. 해고 당해서 쫓겨난 사람도 있고, (노조와 회사가 갈등할 때 노조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회사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만신창이가 되어 떠나거나, 비슷한 감정을 떠난 사람들이죠. 제 이야기로 부족하시다면 경향신문 페이스북 페이지에 달린 댓글을 보세요. 거기 저보다 오래 다니면서 6시간제도 충분히 누렸던 사람의 글을 볼 수 있습니다.
6시간제는 물론 부러울 수 있죠. 하지만 실제로 다녀보면 부럽지 않은 부분도 많을 겁니다. 6시간제 말고도 좋은 점도 많은 회사였습니다. 다만 윤구병 대표이사 이후 좋은 것들이 많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나쁜 것들도 많아졌죠. 뭐 사람에 따라서는 그래도 참고 다닐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견딜 수 없는 폭력적인 일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경계도시2'는 정말 재미있게(?) 봤던 영화입니다. 더불어 송두율 교수가 쓴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는 읽는 내내 내 안의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뼈저리게 반성하며 읽었던 책이구요.
제가 이석기 씨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맞습니다. 저는 이석기라는 사람이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 그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 가고 싶어 하는지 모릅니다. 제가 게으른 탓인지는 몰라도 이석기 씨가 자신이 주목받는 시점에서 자기의 의견을 명확하게 이야기 한 것들 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느끼는 문제의식은 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회 운동이 권력의 정점에 있는 몇 명을 바꾸는 게 목표가 아니라 이 사회의 민주주의를 증진시키는 게 목적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널리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혁명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비판하는 게 아닙니다. 당장 저와 제 병역거부자 친구들도 10년 동안 50명이 감옥에 다녀오면서 줄기차게 병역거부권 인정을 외쳤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저는 이석기 씨한테 안타까운 게,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꼭꼭 숨기기 보다는 더 적극적인 시민불복종으로 국가보안법의 야만성을 폭로하며 국가보안법 폐지에 동감하는 시민들이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으로 활동가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운동으로선 더 좋지 않은가 하는 거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와중에 여러 명이 감옥에 가게될 것입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운동을 위해 감옥에 가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석시 씨 정도라면, 제가 이석기 씨를 잘 모르지만, 그래도 자기가 활동하는 그룹에서는 꽤 영향력이 있고 대표적인 활동가일텐데(그러니 국회의원까지 되었겠지요) 그런 사람이 좀 더 떳떳하고 당당하게 나서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드는 거죠.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 말씀을 하셨는데, 그분들처럼 자신의 양심에 떳떳하게 행동한 분들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전에 허영철 선생님의 삶을 다룬 만화책을 편집한 적이 있었는데, 진심으로 존경스러웠습니다. 저와 생각이 아주 많이 다르고 정치적인 견해도 많이 달랐지만, 인간의 양심을 지켜가는 그 모습에 감동 받았던 거죠. 간첩이 아니라 공작원이라고, 통일 사업하러 남에 내려왔다고, 당신의 행동에 확신을 갖고 거침없이 이야기 하시더군요.
제가 이석기 씨한테 바라는 모습도 그런 모습입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게 이석기 개인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 진보 운동 전반이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앤지 젤터씨가 2차 대전이 한창이던 와중에 그런 실천을 했다면, 영국 사회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그 분의 태도는 당당하기만 할 수 있었을까요. 그 분의 실천을 평가 절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사회적 조건에 비추어 평가될 수 밖에 없는 하나의 실천을 그 뿌리에서 떼어내 그 자체로 절대화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더구나 이석기라는 한 개인의 역사와 사상에 대해, 저는 무화과님께서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저 사람에 대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우리들 대부분이 그럴 겁니다. 사실 우리는 저 회합에 대한 정확한 정보조차 갖고 있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떤 실천이어야 할까. 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지만, 역사와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경험을 통해 사상을 형성하고 그에 따라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다른 이들의 사상과 실천, 그 결과를 관찰하여 평가,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사람의 삶과 사상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사람들이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거 같고 사람들을 설득할 자신도 없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런 말을 쉽게 할 수는 없다 생각해요. 전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옥에서 꽃다운 청춘을 고스란히 바치며 40년을 살았던 '간첩' 노인네들은, 사람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을까요.
잘 읽었어요. 쉬지 않고 생각을 진전해 주시니 독자로서 감사합니다. 출판사에 노동조합이 드문 건 아마 출판노동자들의 허위의식 때문이 아닐까, 그동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제조업임에도 제조노동자라는 의식보다는 무형의 지식상품을 다룬다는 그릇된 전위의식도 있는 것 같고..이건 (인터넷)신문사나 잡지사,뭐 뭉뚱그려서 그렇게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쨌든 '문자'를 다루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그걸 또 노동자에게만 물을 수 없는 게 한국사회 지배적 의식과 밀접한 거라...인쇄나, 제본, 유통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출판(제조)업 노동자들과 다르지 않을까요. 명칭도, 아이덴터티도, 조직화 방식이나 활동 양태도...어쨌든 잘 읽고 있습니다. 고맙.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