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무화과님.
저 안지혜예요. 무화과님이 보리 입사하시고 며칠 뒤 퇴사한 사람이요.^^;
그래도 지나가다 몇 번 뵌 적이 있으니, 기억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어찌어찌 저도 요즘 무화과님 글을 알게 되고, 관심 갖고 읽고 있어요.
글을 읽으면서 잊혔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도 하고, 여러 생각을 하게 돼요.
제가 여기 글을 남기는 이유는...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요.
고맙습니다...
뭐라고 마음을 표현해야 모르겠는데...
처음에 제가 사표를 냈던 때요. 그때는 거의 모든 편집자들이 윤구병이 사장으로 들어오는 것에 반대해서 한꺼번에 우르르 그만두었잖아요.
솔직히 말하면요,
그때 새로 들어온 신입들이 괜히 조금 미웠어요.
창피하네요.^^;;;
큰 미움은 아니지만,
약간 '이 드럽고 치졸한 회사에서 얼마나 잘되나 봐라!망해라 보리!'
뭐 이런 마음이 조금 있었어요.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보리가 너무 좋아서, 그동안 보리에서 만들었던 책과
정신과 보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 너무 좋아서요.
윤구병만 망했으면 좋겠지, 그래도 보리는 지켜지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외부에다 그 속사정을 알리고 말하는 것을 스스로 조심스러워한 면도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고, 이율배반적인 생각이지요.
그 뒤 한동안, 만나는 사람한테마다
보리에서 겪은 일들을 미치게 떠들어댔어요.
그리고 그렇게 그만 둔 것에 대해
잘했다, 잘못했다...스스로 칭찬과 자책을 오락가락 계속했지요.
보리에서 같이 나온 사람들을 만나서도
서로 위로와 자책을 같이, 계속계속 했어요.
간신히, 그 기억들에서 자유로워려던 때에 한 생각은.
최대한 행복해지자!
그게 내가 할 수있는 윤구병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했어요.
내 상사였고, 남아서 윤구병의 개 노릇을 충실히 하는 몇몇 사람들에 대해서도
내가 행복해지는게 최고의 복수라고 생각했어요.
나온 우리끼리 신 나게 사이좋게 잘살아야지! 다짐했어요.
그러다가 무화과님 소식을 들었고, 글을 읽었어요.
몹시 부끄럽고 괴로웠습니다.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지,
보리에 남아있는 노동자들, 앞으로도 보리에서 일할 노동자들도
똑같은 일을 당할 거라는 생각은 못했거든요.
구조의 문제였는데, 그 구조를 깨려는 노력을 저는 적당히,
내가 만족할 만큼만 했던 것 같아요.
그때 회사를 그만두더라고 더 싸웠더라면,
최소한 지금 남아있는 노동자들이 그런 고통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 부분이 너무 미안해요.
저는 보리가 좋은 회사로 살아나길 바래요.
좋은 책을 만들었던 역사가 있고요.
그 책을 원하는 독자들이 있고요,
좋은 책을 만들려는 많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있으니까요.
그 역사를 끊지 않고, 이어가는 게
역사 앞에서 낭비하지 않고, 선이 이기는 길이라 생각해요.
보리가 좋은 회사로 남는거...
제 생각에는 윤구병 사장과 그 측근들이 떠나주면 가능성이 높겠지만요.
그러면 독자의 믿음과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보리는 계속 살아날 수 있겠지만요.
그게 쉽지는 않겠죠.
쉽지 않아도, 오해받아도
이렇게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런 노력을 무화과님이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마음과 정성이
저는 고맙네요.
고맙긴요 뭘^^
자책하지 마세요. 사실 저도 그런 생각 여러 번 했어요. 선배들이 더 싸웠다면? 아니면 내가 더 싸웠다면? 그럼 지금 보리 모습이 달라졌을까? 알 수 없죠. 싸우다 그야말로 모두 다 쫓겨났을 수도 있고, 아님 정말 힘을 모아 잘 싸워서 윤구병 사장이 나갔을 수도 있고...
그래도 선배들이 조용히 나가지 않아서, 많은 기록들을 남겨둬서 저희가 노조를 만들고 할 수 있었어요. 저의 실패도 지금 다니는 사람들에게 거름이 되기를 바랄 뿐이죠ㅠㅠ
저보다 보리에 대한 애정이 훨씬 강해서 그만큼 상처도 크셨을텐데, 나쁜 기억들을 끄집어 내는 이야기들일텐데... 이렇게 글까지 달아주시고ㅎㅎ
보리의 6시간 노동제는 신문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고 이유야 어쨌든 사회적으로 널리 확산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개인의 명예를 위해서든 아니든 6시간 노동제가 한국 사회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고 앞으로 나아가야 될 바른 정책중 하나라 생각합니다어떤 정책이든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 과정에 있어서 많은 소리들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생각해요중요한 건 이 안에서 발생되는 잡음과 단점들을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게 더 중요한 일 같아요앞으로 보리에서 6시간 노동제가 잘 안착 되었으면 좋겠고 전 사회적으로 제 2의 제 3의 보리 출판사와 같은 곳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진해님의 말씀처럼 시작을 어떻게 했든 단점을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쪽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회사를 다니는 동안, 그리고 제가 퇴사한 뒤에도 노동조합에서 여러가지로 6시간제도에 대한 개선안을 내는데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노동조합의 개선안에 대해 윤구병 대표의 반응은 한가지입니다. 노동조합이 6시간제에 무슨 이야기만 꺼내면, 8시간제로 돌아가겠다고 협박하는 것이죠. 지금 상황에선 6시간제도의 개선도 폐지도 유지도 오로지 윤구병 맘입니다. 그래서 저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우리 사회의 아주 중요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리출판사의 사례를 비판적으로 바라봐야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권력자들이 주도해서 노동자에게 베푸는 식으로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 진다면, 그건 결코 노동자들에게 좋은 것이 아닐테니까요.
저는 캘로그 6시간대8시간을 책이 나오자 마자 읽었습니다. 그리고 6시간 노동제가 정착된다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6시간제를 시행하고서 캘로그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부터 달라진, 그리고 가치관이 달라진 그런 상황을 접하면서, 정말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삶이 달라질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보리라는 회사가 그렇게 하더군요. 그리고 6시간제 전면시행된 시기가 선거정국과 맞아떨어지면서 기가 막히게 타이밍을 맞췄구나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윤구병이라는 분이 선거정국에서 6시간 노동제를 이슈화하려고 그러는구나라고 생각했고, 멋진 작전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지금도 6시간 노동제가 시행되고 있고, 사회적으로 이슈화에도 성공했지요.
쓰신 글에는 윤구병이 자신의 명예를 위해 6시간제를 도입하였고, 그게 거짓이다라고 하셨는데, 제가 보리직원이라면 6시간제의 꿀맛을 즐겼을 겁니다. 또 6시간 노동제를 가지고 노조를 협박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윤구병은 그렇게 질나뿐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쓰신 글에서는 '8시간제로 돌아간다는 협박성 태도를 계속 취했다고 한다'라하고 했는데, '했다고 한다'라는 말은 자신이 겪은 것이 아니군요. 아마 전해들었던 내용이겠지요. 그러면 전후 맥락도 다를 수 있겠네요. 이런 내용은 위험해 보입니다. 쓰신분이 직접 겪은 내용만으로 쓰셨다면 좋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저번 글에서도 자신이 직접 겪지 않은 일을 글로 써서 당사자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지요.
저는 6시간 노동제에 관심이 있어 보리와 관련된 글들과 윤구병의 책들을 찾아 읽는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이 글들도 읽게 되었지요. 그런데 쓰신분을 글을 읽으면 윤구병이라는 사람이 아주 몹쓸 사람을 보입니다.
정말 그런가요. 그는 자신을 위해, 자신의 명예를 위해 회사를 사적으로 이용하고, 노동자를 속이고, 직원을 괴롭혀 회사를 그만두게 하고, 자본가이자 권력자이면서 진보입네하고, 노동자의 권리르 짓밟는 사람인가요.
윤구병의 책들과 생각들을 읽어보고 그가 살아 온 삶을 비추어보면, 그는 그럴 정도로 질 나쁜 사람도 아니고, 그의 삶은 자신의 생각을 실험으로 실천한 사람이기에 그가 그의 명예를 스스로 자랑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그는 스스로 명예를 자랑하기 위해 6시간 노동제를 하거나, 6시간 노동제를 가지고 노조를 공격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6시간 노동제가 옳아서 시행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저는 여전히 6시간 노동제가 부럽습니다. 파김치가 되어, 잠만자는 곳이된 집, 토일에 잠만 자서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는 노동자가.
지나가다 인상깊게 읽었는데요, 궁금한 부분이 있어 덧글을 남깁니다. 구체적으로 현재 보리 출판사의 어떤 점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보리 출판사 6시간 노동제로 인한 노동자 복지 환경의 폐해가 있다는 것인가요. 6시간 노동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고, 그뒤에 숨은 이야기도 많겠구나 까지 공감을 했지만 사장에 대한 호오는 개인적인 부분일 수 있을 것 같고 구체적인 실태가 정말로 궁금해서 여쭙니다
무화과님이 제 댓글에 단 댓글을 보니, 제가 이 글을 보고 불쾌한 기분이 들었던 이유를 좀 더 명확하게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퇴사직전에 지금 보리노조집행부와도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은 채 끝난 것 같네요.
사전에 아무런 양해 없이 그 일들을 이렇게 글로 알려버린 것에 대한 사과는 잘 받았습니다. 재계약 거부 건이야말로 보리 이야기를 할 때 빠뜨리기 힘든 사건이라는 점은 저도 수긍합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이 글을 보며 느낀 불쾌한 기분이 들었던 첫 번째 이유는 무화과님의 글에서 제가 당시 했던 선택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무화과님의 이 글 또한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재계약거부사태의 당사자로서, 제가 그 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받아들인 계약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만족합니다. 물론 더 좋은 안이 있었다면 그것을 선택했을 겁니다. 그런데 회사가 제시한 방법 그 이상의 좋은 방법을 저도, 노조도 제시해지 못했습니다. 아, 회사와 끝까지 싸워서 제가 정규직이 되었다면 훨씬,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가 되었겠죠. 하지만 그 일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안 될 것이 뻔한 싸움을 제가 제 모든 것을 걸고 해야만 했을까요? 그 선택은 명백히 제 몫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저는, 퇴사를 앞둔 저에게 보리정규직 직원이 왜 이런 계약서에 싸인했냐고 제게 반문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면전에서는 저도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어물어물 넘어갔던 거 같네요. 약간의 수치심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직원은 그 당시 저의 상황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물어봤겠죠. 하지만 저는 그 말에 상처를 받았고,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님이 올린 글을 보며 저는 비슷한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보리 직원이면서 보리 직원이 아닌 그 애매한 형태의 계약을 저는 제 의지로 했고, 지켰습니다. 최종 결과가 퇴사이든 뭐였든 말입니다. 지금에 와서 그때 이러저러했으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거야 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저는 회사의 치졸한 수작질보다 더 불쾌합니다. 그럼 그때 제가 했던 선택은 무엇입니까. 그런 말도 안되는 계약서에 사인하겠다고 스스로 결정한 저는,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존엄도, 양심도 없이, 고작 연봉 1500만원에 영혼을 판 것입니까.
님께서 보리 이야기를 쓰는 목적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님의 글에는 목적이 분명히 있겠지요. 그게 노동자로서의 한풀이든, 정의를 알리기 위한 거든, 뭐든 말입니다. 그런 어떤 목적들을 위해서라면,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제 선택은 이렇게 함부로 이야기해도 되는 것입니까? 님은 이 글에서 저를 그런 상황으로 몰아간 회사를 비난하려고 했겠지만, 이 글을 읽은 저는 제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비난당한 기분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제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제게 사과를 하시려거든 그 점을 사과해주세요. 지금에 와서 볼 사람 다 보고, 댓글 달사람 다 단 이 글을 내리는 것보다 그 사과가 제게는 더 와 닿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무화과님의 글이 지금 보리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저는 이미 보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니 그냥 내가 지금 보리 직원이라면 그렇겠다고 미루어 짐작할 따름일 뿐입니다.
님의 글을 보고 있으면 보리출판사는 겉으로만 진보적인 척하는 사장이 복지와 급여로 직원들의 생계를 쥐고 흔들면서 직원들의 인격과 영혼을 말살하는 생지옥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 지금 보리에 남아있는 다른 직원들은 영혼을 팔고, 양심을 팔며 오직 생계를 지키려고 견디고 있다는 말입니까? 적어도 저는 무화과님의 글을 보며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 스스로 한 계약을 지키려고 저는 1년여를 더 일했는데, 그럼 저는 1년동안 제 영혼과 양심을 고작 연봉 1500만원에 팔았던 것일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아마 이 기분은 지금 보리에 다니고 있는 이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지금 회사에 남아 있지 않은 사람에게 듣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보리에서 일어난 일들을 널리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해서, 지금 보리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의 양심의 가치를 그렇게 헐값으로 매도해도 되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무화과님의 글 때문에 지금 보리에 다니고 있는 우리 전 직장동료들이 느끼고 있을 자괴감과 불쾌함, 스트레스 그 모든 것들에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하시겠습니까?
세상에는 불의와 싸워 이기려는 사람,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 그냥 구경하는 사람, 그리고 그저 자기 앞에 주어진 삶을 나름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도덕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불의와 싸워 이겨야한다’가 정답이겠지요. 하지만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 어떻게 정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이 아닌 이상 모든 다양한 삶의 방식이 하나하나 다 존중되어야죠. 적어도 불의와 싸우고자 하는 이들이 다른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비난하고 배척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리에서 일한 뒤 저는 그 어떤 훌륭한 신의 직장일지라도 결코 노동자의 지상낙원은 아닐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노동자 연대 운운 하는 곳들은 더 피하게 되었지요. 그럼에도 저는 보리가 나름 좋은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면 다시 한번 일해보고 싶은 곳입니다. 적어도 저는 보리출판사 정규직의 많은 복지 혜택들을 단 한번도 누려보지 못해서 이런 마음을 갖고 있나봅니다. 다른 정규직 직원들이 너는 그렇게 당하고벨도 없니? 이런 생각을 할까봐 당시에는 감히 말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말할 수 있네요.
그때 하지 못했던 많은 말들을 이제야 했습니다. 무화과님도, 그리고 지금 보리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의 전 직장동료인 그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길 바랄뿐입니다. 무화과님의 양심과 방식이 다르다고 해도 님의 양심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양심도 소중하니까요.
이제와서 글을 지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누가 봐도 제 일터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부서명만이라도 지워주신다면 그 또한 배려라 생각하겠습니다.
부서가 드러나는 표현은 다 지우거나 바꿨습니다. 그리고 한 문장 더 지웠습니다. 이 문제까지만 제가 하고 임기를 넘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문장입니다. 이 문장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거 같아서요.
저는 당시 노조가 크게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노조가 큰 잘못이 있다면 저도 대의원이었으니 책임이 크겠죠. 그리고 옥구리님의 판단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시 우리 모두는 힘이 없었고, 옥구리님 말대로 우리가 무언가를 바꿀 수 없었습니다. 싸워서 정규직이 되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장담할 수 없는 투쟁인데 제가 나서라 마라 할 수도 없지요. 롬롬도 옥구리님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보리 노조가 가진 힘으로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쉽고 스스로 반성하는 점은 있습니다. 모든 분회원들과 함께 싸우자고 했는데, 결정이 되는 과정에서 분회원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지지를 보내준 바깥 분들한테도요. 이건 저를 포함해서 당시 노조 집행부가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글이 옥구리님의 당시 판단과 행동을 비난한 것으로 읽혔다면 거듭 사과드립니다.
보리를 다니고 있는 직원들에게 제 글이 폭력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보리에 다니는 직원들 가운데는 제 글을 반기는 사람도 있을테고, 제 글이 싫은 사람도 있을테고, 관심 없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모두에게 좋은 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혹 그런 글이 있다고 해도 저는 그런 글을 쓸 마음이 없습니다. 저는 제가 누구의 편인지 명확히 알고 있고, 그걸 늘 밝히면서 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글이 불편한 분들도 여럿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불편함을 주는 것 자체가 폭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으니, 그리고 저도 정리를 좀 해야 이 이야기에 대해 글을 쓸 수 있을 거 같아서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도대체, '보리출판사는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다. 다만 다른 회사보다 좋은 가치를 추구할 뿐이다.' 전 이렇게 보는데요. 님의 글에서는 좌파회사처럼 읽히지요? 또 스스로 진보라고도 좌파라고 생각하는지 않을지도 모르는 윤구병과 직원들은 진보에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곤, 니네들 진보가 왜 그래, 좌파가 왜 이모양이야라고 혼내는 것은 뭐지요?
보리가 진보라서, 혹은 진보가 아닌데 진보인 척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보리가 노동조합을 공격할 때, 혹은 노동조합의 요구 사항을 피해갈 때 진보적인 가치를 들먹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회사는 그냥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회사한테 진보적이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진보'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이 우리를 공격하는 수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연찮은 기회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 주요하게 서술하고 있는 비정규직 재계약건의 당사자로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몇 자 남깁니다. 이 글이 저는 몹시 불편하고 싫습니다.
무화과님이 이런 글을 공개적으로 쓰는 목적이 무엇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냥 제 사례가 보리출판사 노동자탄압의 대표적인 사례인 것처럼 공개적인 곳에 언급되는 것이 불편할 뿐입니다. 실명이 공개된 것은 아닐지라도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 글의 주인공이 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정말 보리출판사랑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고, 그저 저의 삶을 잘 살고 싶을 뿐입니다. 이제 겨우 다독거린 그 상처가 이렇게 인터넷상에서 마구 끄집어내지고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참 힘듭니다.
당시 상황은 굳이 제가 다시 말할 필요 없겠지요. 다만 분명한 사실은 새 분회장이 회사측의 대안을 받아왔을 때, 저는 그 안을 받든지, 아니면 바로 실업자가 되어 나가던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아, 회사와 싸우는 방법이 또 있었군요. 노조에서는 무엇이든 제가 선택한 대로 따르겠다고 했고, 저는 회사의 안을 받아들이겠다고 결정했습니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당장 나갈 상황이 안되니 딱 일년만 더하고 그땐 나가지 말라고 해도 나가자, 이것이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었습니다.
재계약거부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무화과님이 저에게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저런 인간들이 어디가서 진보입네 하고 설치고 다니지는 못하게 해줘야 되지 않겠느냐고요. 사실 연봉 1500만원에 생계를 걸고 있던 저는, 윤구병 대표가 어디 가서 진보를 하든 말든 그런 건 상관없었습니다. 다만 언젠가 나도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꿈을 키우며, 성실하게 지켜온 일터를 그대로 빼앗기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막막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싸우자고 말해준 노조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무화과님이 언급한 그 알리기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SNS의 파급력은 무섭더군요. 저는 좋지 않을 일로 엮였던 오래된 옛 기억속의 지인에게서까지 연락을 받았습니다. 니가 이런저런 상황인 줄은 몰랐다, 꼭 잘되었으면 좋겠다 뭐 이런 내용이었죠. 제가 그 연락을 받고 기뻤을까요? 고마웠을까요? 절대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가 지금 연봉 1500만원의 비정규직일자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런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게 알려지는 기분이 썩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 알리기 과정에서 무조건 저를 응원하는 사람들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겨우 그걸 지키려고 저 난리를 치냐며 나같음 걍 더럽고 치사해서 그만두겠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성폭행 피해자가 아무 죄 없는 피해자임에도, 사람들을 피하고 숨는 이유를요.
알리기 과정의 절차적인 문제는, 그때 우리 모두가 그런 일이 처음이었기에 일어난 소소한 실수였다고 이해합니다. 그리고 같이 싸워주겠다고 말해준 노조와 노조원 모두에게 지금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고 여러 밤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사실 다시 떠올리는 것도 저에겐 고통스럽지만, 아마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저는 똑같은 선택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무화과님이 계속 분회장을 했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어쨌든 저는 그나마 가장 나은 선택이라 판단하고, 회사의 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일년을 더 일했고, 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최종적으로 퇴사했습니다. 퇴사과정에서 또 치졸한 회사의 수작을 당했지만, 저는 제가 원하는 방식의 퇴사처리를 요구해서 받았습니다. 치졸한 회사의 수작이란 게 결국은 말 같지 않은 말들을 하는 것인데,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제가 단단해진 때라 오히려 제가 원하는 것들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퇴사과정에서 오히려 제가 가장 상처받았던 말은, 저를 보리에서 일하는데도 보리직원이 아닌 존재로 만든 계약서를 본 보리출판사 정규직 직원 한 명이 저한테 한 말입니다. 그 말 만큼은 잊혀지지 않는군요. “근데 이런 계약서에 왜 싸인했어요?”
누구나 자신의 보는 시각이 있으니, 결말에 대해서도 모두 다른 생각을 하겠죠. 다만 저에게 그 일은 이제 지나간 일이 되었고, 저는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며 저의 일상을 잘 살고 있습니다. 그때, 그 상황에서 회사가 나빴고, 잘했고, 잘못했고 이런 것들, 저는 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의 사례가 어떤 목적을 가진 글의 근거사례로 활용되며 널리 알려지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저에게 전 직장에서의 일은 전 직장에서의 일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