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신자유주의

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5/18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2)
    곰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소에게, 소를 먹여, 소가 미쳐버리는 병"

 

 

 

이것이 광우병이다.

정말 "미친 소"란 뜻.

인간은 잊고 있었지만 소는 초식동물이다.

지구에 '소'라는 포유류가 생긴 이래 쭈욱 소는, 초식동물이었단 말이다.

풀을 뜯어먹고 사는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였다.

그리고 그 소는 뇌에 구멍이 뚫리며 죽어버렸다.

그 소를 사람이 먹었다.

사람도 뇌에 구멍이 뚫리며 죽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소는 소를 먹고 있다.

 

 

 

왜?

 

 

 

왜 소가 '풀'이 아니라 '소'를 먹지?

소가 자발적으로 또다른 소를 먹었나?

그럴리가.

소는 몇 천년간 풀을 뜯어먹고 살았는데,

언젠가부터 사람이 소에게 소를 먹인 거겠지.

 

 

왜?

 

 

 

 

 

 


 

 

 

 

 

광우병은 분명한 전염병이다.

 

광우병의 원인물질은 변형프리온.
소에 동물성사료를 먹이면 뇌 속에 존재하는 정상 프리온이

뇌조직을 파괴하는 변형프리온으로 변해 소가 광우병에 걸린다.
이 쇠고기를 먹은 사람 인간광우병에 전염된다.


변형프리온은 설렁탕처럼 끓여도 안 죽고 곱창구이처럼 익혀도 안 죽는다.

600도가 넘는 온도에서도 죽지 않고, 포르말린에도 죽지 않으며,

땅에 묻어도, 방사선이나 자외선에도 제거되지 않는다.

실제로 광우병 시체의 부검 시 사용된 의료기구는 모두 감염되기에 다 버려버린다. 

 

더 무서운 건,

아직도 이 병의 제대로 된 실체가 아직 모두 다 밝혀지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얼마나 더 위험할 수 있는지조차 인간은 아직 다 모른다.

 

원래부터 있던 병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만들어진 병이기 때문이다.

 

마치 1980년대에 시작되어-

처음에는 서 너명에 불과했지만-

지금까지 4천만명 이상을 사망시킨-

 

그럼에도 여전히 치료법조차 알 수 없다는 '에이즈' 처럼.

 

 

 

 

 

 

 


 

 

 

동물성사료를 먹은 소는 발육이 빨라진다.

빠른 시간 안에 몸집을 더 크게 키울 수 있다.

일반 소보다 훨씬 더 커지고 빨리 자란다.

그리고 빨리 죽여 빨리 팔아치울 수 있다.

 

시간과 돈이 적게 든다.

이익이 커진다.

돈이 벌린다.

돈이 많아진다는 건, 경제가 발전한다는 뜻이렷다?

 

최소비용, 최대효과.

더불어 경제는 발전한다.

 

 

광우병환자가 200명이나 발생했던 영국의 총리는 결국 이렇게 말하고야 말았다.

 

"광우병은 인간의 욕심과 경제논리가

자연의 법칙조차 거슬러가면서 자행해온 결과로,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재앙,

즉 '인재'입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경제 논리를 위해,

소에게 소를 먹이고 그 소를 결국 인간이 먹고 죽어간다.

경제만 살리면 된다.

 

돈부터 일단 많이 벌고 보면 된다.

소가 미쳐버리든, 사람이 미쳐버리든,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경제부터 살리고 보자.

 

광우병으로 자국민이 죽던, 광우병에 걸리던, 그건 일단 제끼자.

경제부터 살리고 보자.

 

 

앗, 그러고보니 어디선가 이 소리를 미치도록 들었던 듯 하다.

뇌용량 2mb가 주구장창 떠들어댔던 소리 아닌가?

 

아~ 그래.

처음부터 이명박의 논리는

광우병쇠고기를 거부할 수 있는 논리가 아니었다.

 

그는 애초부터 광우병을 만들어낸 자들의 경제논리와

일맥상통하는 주의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의 이름은 이렇게 불리워진다.

 

 

 

 

 

 

"신자유주의"

 

 

 

 

 

이명박 탄핵시위에 뛰쳐나갔던 1만명 이상의 민중들은

피켓을 들고 외쳤다.

 

 

 

 


 

 

"엄마! 다음 대통령은 사람으로 뽑아주세요"

 

"경제 살린다고? 목숨만 살려줘!"

 

"값싼 소고기 먹고 값비싼 병원 가라고?"

 

"사람이 있어야 나라가 있지"

 

"옷깃만 스쳐도 같이 죽을 인연입니다"

 

"내 나이 17인데 왜 벌써 남은 수명을 세야해?"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대신 민주주의는 좀 죽여도 되죠?"

 

"먹어도 뒤질랜드 안먹어도 뒤질랜드 대한민국 뒤질랜드"

 

"경제 살린다고 했지 국민 살린다고 안했다"

 


 

 

 

누가 봐도 위험한 미국산 소를 왜 이렇게 수입하겠다는거야?

그럼 국민들 중 누군가는 죽어도 상관없다는거야?

 

 

 

그렇다.

 

 

놀랍지만, 그게 정답.

 

늬들 중 어느 정도가 죽어나가도 신자유주의는 상관하지 않는다.

이른바,

 

"배제와 포섭의 통치 원리"

 

신자유주의는

박정희 시대처럼 파이를 키울 수도,

그렇게 파이를 키울 생각도 없다.

 

 

"전부 다 포섭하지 않겠다. 일부만 키우고, 나머지는 버리겠다."

 

는 통치 원리가 작동하는 시대다.

이것은 즉,

 

"죽을 사람은 내버려두고 살 사람만 우선 살고 보자"

 

라는 캐치프라이즈를 걸고 움직이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사회적 용어로 정의한다면,

 

"승자독식의 세계"

 

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때, 패자에게는 거의 아무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초기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던 담론들이 다시 부활한 것이며 

전면적으로 한국사회에 다시 복귀한 셈이다.

 

이런 변화는 사실 한국에서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변화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인 현상이다.

금융세계화이며,

국제적 독과점화이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이다.

 

 

현재 이 시스템의 최상부에는

서울대학교나 삼성 그리고 사법고시와 같은 몇 개의 스테이지들이 존재한다.

이런 식으로 경쟁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었고,

항간의 상식과도 부합되어왔다.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 해서 무조건 앞으로 나가는 것이

승자독식이라는 게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선생님들도 그렇게 가르친다.

이렇게 승자독식 게임을 이해한다면,

한국은 건국 이후 지난 50년 동안 바뀐 것이 없어 보인다.

언제나 승자독식 사회였고,

IMF이후에도 이러한 게임의 방식이 바뀐 적이 없다.

 

90년대 이후 "세계화"라는 말이 한국에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경쟁 논리는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더하게 된다.

"대한민국"이라고 정의된 범위 내에서 경쟁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전 지구적 경쟁"이라는 조금 더

살벌한 개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88만원 세대> 책에서 말하는

"세대 간 경쟁"이 되었으며

이런 변화는 "경쟁에 대한 다른 이해"가 생기기 전까지는

더욱 가속화되고 비가역적,

 

즉 돌이킬 수 없는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전세계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유럽은 이른바 1부리그>

<한국은 2부리그>

<아프리카는 3부리그>

정도 되겠다.

 

1부리그인 유럽에서의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를 조금씩 해체하려 한다거나,

노조를 압박하는 형태로 일어나기에

우리 입장에서 봤을 때는 약한 편이다.

 

 

한국은 외환위기,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비정규직을 늘려왔다.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정부와 기업은 그들을 그냥 배제시켜버렸다.

실업자와 미취업자는 그냥 배제된다.

 

대책같은 건 없다.

구조되지 못한다.

이미 이 땅에서는 배제와 포섭의 논리가 섬뜩할 정도로

진행 중이다.

 

 

3부리그 아프리카는 훨씬 심각하다.

이곳은 빈곤과 에이즈 구조조정이 아예 배제되어가고 있다.

미국이 무기를 대어다주고

각 국의 정부와 반 정부쪽은 양 쪽 다 미국 무기를 받아

10년, 20년 내전을 계속하고 있다.

이곳은 착취로부터도 배제되어버린 것이다.

그냥 죽어간다.

에이즈 약조차 더 이상 주지 않는다.

대부분은 굶어죽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리카는 전세계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이미 버려진 지 오래다.

완전히 배제되었다.

이전에는 아프리카를 수탈하고 이용하면서

그래도 그 속의 사람들에게 목숨 정도는 유지하며 살아갈 정도의

무언가가 거래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버려졌다.

그리고 대륙 자체가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도 신자유주의는 광범위하게 진행 중이다.

 

 

미국의 의료화 사업을 보라.

그것은 가장 돈이 없고,

힘이 없고,

가난하고

권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자신의 손가락이 절단되어도 더이상 병원에 가 치료를 받지 못한다.

비싼 병원비는 의료보험이 되지 않고,

국가는 이제 더이상 조금도 국민 건강에 관심이 없다.

돈 없는 미국인은

스스로 자기 손가락을 자기가 꿰맨다.

 

 

무슨 호러영화가 아니다.

나도 호러영화에서만 나오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게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에서 나오다니, 정말 쉣!이다.

영화가 아니라, 의료보험이 민영화된 나라의 현실이라니,

정말- 으스스하다.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하겠는가?

그들은 버려졌다. 배제되었다.

이제 세계는 살아남는 자들끼리만 경쟁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계속해서 계속해서 도태되고 버려질 것이다.

부와 권력은 계속 한 쪽으로만 집중될 것이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 1%만을 위한 정책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이제 더이상 20대 80의 논리는,

80%가 죽도록 일하고 나머지 20%는 놀고 먹으며 살아가는 게 아니다.

20명만 일하고

80명은 착취 자체에서

 배제되는 것.

착취하기에도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그들은 아예 버려진다.

물론 이 80중에 0.1%는 일 안해도 사는 초부유계급이지만.

 

 

이런 진실이 놀라울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우린 이미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지금 나 자신이 어떤 상태로 살아가는 지를 잘 알고 있으므로.

 

우리는 배제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우리는 뼈 빠지게 20년을 일해 월급을 모아도 

서울에 아파트 35평형을 장만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있다.

한 눈 팔지 않고 공부하고 착실하게 돈 모으며 일하는

20대들의 꿈은,

결코 크지 않다.

재벌이 되겠다거나, 대한민국 1%에 들어가겠다는 꿈이 아니다.

그저,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 20대들의 가장 큰 소망이고-

이루기 힘든 큰 꿈이다.

공무원은 소망직업 1위이고,

가장 도전적이고 모험심이 많은 나이들인 20대 청춘들의 가장 큰 바람은

"안정"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미 노동현실의 80%이상이 비정규직으로 돌려졌고,

취업시장은 얼어붙었으며,

그 안에서 발버둥쳐 취업에 성공하여도

지금 한 고비 간신히 배제되지 않았을 뿐,

배제와 포섭의 논리는

회사 다니는 내내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걸.

 

사는 건 여전히 힘들다는 걸.

 

 

 

이제 겨우 2개월이 지나갔지만 알 수 있다.

앞으로 5년 동안의 정책을 미루어 짐작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매번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에

깜짝 깜짝 놀라고

분노하고

화내며

열받을 것이다.

어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정부가 저럴 수 있냐! 고 할 테지만,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기본 모토다.

그는 충실히 자알 수행해나가고 있다.

 

앞으로 5년 내내 바뀌겠지, 달라지겠지, 하면서 정부가 하는 일을 지켜보시면,

알게 되리라.

 

그 사이에

<없는 자들은 완전히 배제되고 있는 자들에게만 더 더 더 몰아주는 정책>

이 끊이지 않고 시행되리란 사실을.

 

그리고 그 사이에 나 역시 그 안에서 발버둥치고 살아남으려고 악착같이 경쟁하고 먹고 살려고

아둥바둥 하다가-

결국은 배제되어 버릴 것임을.

 

지금,

바로 옆의 현실만 직시해도,

당신은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는 그런 양상으로 치닫고 있으므로.

 

 

 

의료민영화사업을 추진하는 정부.

이제 돈 없는 자는 치료받을 수 없다.

그것이 말하는 의미를 똑바로 보라.

 

그것은-

"돈 없으면 그냥 죽어라" 와 같다.

 

공공기업 민영화로 기업은 경제성장과 함께 발전해가겠지만,

정부와 나라에서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보장정책에

우리의 삶은 점점 파탄으로 치달을 것이다.

수돗물도 민영화하여 기업 돈 벌어주고,

인터넷도 종량제하여 우리 돈 빼간다.

정보는 차단되고 더불어

지금 정부가 추진하려는 인터넷 실명제가 실시되면

 이따위 정부에 대해

인터넷에서조차 반대하지도 못한다.

 

 

무서운 건,

이것이 모두 가상현실 속의 미래를 가정해보는 일이 아니라

실제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란 소리다.

이제 겨우 2개월 지났다.

이명박이 달라지길 바라는 게 나을까?

아니면 이명박을 갈아치우는 게 나을까?

 

 

 


 

 

 

 

 

 

 

 

이명박이 말하는 경제는, 나의 경제가 아니다.

당신의 경제도 아니다.

우리의 경제가 아니다.

그들의 경제는 기업의 경제고, 국내총생산 GDP 수치의 경제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불에 넘었는데도 왜 우리 집 경제는 나아지지 않는가?

 

그들의 경제, 기업의 경제는 나날이 성장곡선을 그린다고

뉴스에서 매일 앵무새처럼 지껄여주는데,

국민소득 2만불 시대에 왜 20대 평균 임금은 88만원인가?

 

 

현실을 똑바로 봐야한다.

살린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경제가 아니다.

 

 

20대 실업자의 수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우리는 이 배제와 포섭의 논리 하에서

게임도 안 되는 게임을 하며 젊음을 소비하고 늙어가고 있다.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우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5월달만 해도 벌써 세번째로 축산업자가 비관으로 일가족과 함께 자살했다.

이놈의 정부는

광우병으로,

자살로,

실업으로,

비정규직으로,

 

사람을 계속 죽여나간다.

 

우리에게 이 게임은 조금 더 늦게 잡아먹히기를 바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시스템 안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개개인은 없다.

아둥바둥 발버둥치며 조금 더 늦게 잡아먹히길 바랄 뿐.

 

비인간적인 대학입시 틀 안에서 발버둥치다가 대학을 가고-

대학 입학과 동시에 취직 준비에 발버둥치다가 취업을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발버둥은 끝이 없다.

 

한번 뿐인 내 인생은 이렇게 살다 살다 결국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인가?

 

주위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비관하고 자살하고 납치하고 유괴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세상은 흉흉하고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무서운 소식만 전해지고-

매일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의 눈 속에는

희망이 없고

퇴근하는 사람들의 눈은 피곤에 쩔어

감겨있다.

 

조금도 아름답지 않다.

살 맛이 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모피어스: 운명을 믿나?

앤더슨:    아뇨

모피어스: 왜지?

앤더슨:    나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으니까요

모피어스: 무슨 뜻인지 알아. 자네가 온 이유를 말해볼까. 뭔가를 알기 때문에 온 거야.

              그게 뭔지 설명은 못하지만 평생을 느껴왔어. 세상이 뭔가 잘못됐다는 걸 말이야.

              알 수 없는 뭔가가 있어. 조각조각 파편처럼 마음 속에 있는 그것이 자넬 미치게 만들지.

              그 느낌에 이끌려 온거야. 뭘 말하는 건지 알겠나?

앤더슨:    ...매트릭스요?

모피어스: 그게 뭔지 알고 싶나? 매트릭스는 모든 곳에 있어. 우리 주위의 모든 곳에.

              바로 이 방안에도 있고, 창 밖을 봐도 있고, TV안에도 있지. 출근할 때도 느껴지고,

              교회를 갈 때도, 세금을 낼 때도 있어. 진실을 못 보도록 눈을 가리는 세계란 말이지.

 

앤더슨:    무슨 진실요?

 

모피어스: 네가 노예란 진실.

 


 

 

 

 


이명박 대통령 탄핵서명이 취임 69일만에 100만명을 돌파했다.

축하한다.

이렇게 무식할 정도로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알기도 쉽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이명박과 하는 짓이 전혀 다르지 않았지만,

한나라당과 조중동 신문의 무조건적인 정부정책 반대에 휩싸여 그는

이렇게까지 무식하게 밀어붙이지 못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그 역시 이명박과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민 5천만명 중에 100만명이면 수치상으로만 따져도

50명 중의 한명은

탄핵에 서명했다는 소리다.

 

이명박 정부의 2달은-

앞으로 계속 상위 1% 특권층의 이익과

대기업, 친기업 정책으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대다수 국민들의 삶의 질이 열악해질 것이란 것을

확인시켜주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고소영, 강부자 내각과

청와대 수석들의 재산형성 과정의 문제,

영어몰입 교육,

의료보험 민영화,

학원 자율화 정책,

뉴타운 논란,

혁신도시 재검토에다가-

앞으로 전개될 보험/수도/전기가 포함된

각종 공기업의 민영화,

FTA 비준,

대운하 건설 등에서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큰 국민적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극도로 피로해지지는 않을런지.

 

광우병 쇠고기 문제는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시작되어버린

 

우리의 여정을 알리는 종소리는 아닐까.

 

 

'산 너머 산' 이다.

분명 문제들은 끝이 없을 것이다.

 

 

 

 

 

            

 

 

 

 

 

 

 

나는 광우병 미친 쇠고기 수입에 반대한다.

 

나는 한미FTA체결에도 반대한다.

 

나는 신자유주의 흐름에 반대한다.

 

 

 

 

광우병 쇠고기는 반드시 막아야한다.

그것이 시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대통령 한 사람과 그 측근 몇 사람이 바뀐다고 해서

우리 나라 시스템 전체가 바뀌진 않는다.

 

 


하지만 "한미FTA" 는 다르다.
우리나라의 제도적, 경제적, 문화적, 외교적 포지션 등 한미 FTA는

수많은 시스템을 바꾸어버린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의료보장 민영화"

"물 민영화"

"식량, 검역주권 훼손"

"공공가치재 (철도, 전기, 우편) 민영화"

 


그 모든 것들이 한미FTA에 포함된 것이라는 사실.

 

 

"한미FTA" 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다.


위에서 언급되었던 수많은 것들이 한번 바뀌게 되면,

한미FTA하에서는 그것을 되돌리는게 70~80년,

아니- 거의 반영구적으로 불가능하게된다는 것.


앞으로 저 위의 많은 것들에서 수많은 피해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제 우리나라 자신의 논리와 이유로

저것들을 원래대로 되돌리지 못하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저런 것들을 "합법적"으로 열어주게 되고,

그 "합법"이 우리의 발목을 잡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의료보장민영화"를 되돌리려 할때,

이제 정부는 "우리나라 국민이 병들고 힘들어한다"에 집중하는게 아닌,

수많은 "외국인 투자자"의 이익도 같이 고려해야한다.

그리고 "미국"의 눈치도 봐야한다.
"물 민영화"를 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더라도 "외국인 자본"의 눈치를 봐야하고,

그것을 되돌릴때는 이제 한미FTA로 인해 "투자자국가제소"

"미국의 합법적 무역보복"을 두려워해야한다.
"검역기준"을 정할 때도 "투자자국가제소"로 인한

막대한 소송비용과 패소했을 때,

부담해야될 막대한 비용들을 고려해가며 정해야 한다.

 

 

앞으로 현 정권이 아닌 어떤 정권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한미 FTA하에서는

현 정권과 비슷한 수준의 정책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앞으로 어느 정권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물 민영화"를 추진해야 하고,

"의료민영화"를 가속화해야하고,

"공공재의 민영화"를 가속화해야 할 것이다.

 

 

보수정권이냐, 진보정권이냐,

그런 것은 한미FTA하에서는 더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

 

조금 더 강하게 가느냐? 약하게 가느냐? 만 결정할 뿐이다.

 

 

 

신자유주의 흐름 안에 한미 FTA가 있고,

그 속에 하나의 현상으로 광우병쇠고기 수입이 있다.

 

광우병쇠고기를 막아낸다고 치자.

문제가 끝날까?

아니.

 

 

계속해서 터지는 저 산더미같은 문제들에 우리들은 숨 돌릴 틈도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내 목을 죄어올테니까.

국회가 끝까지 비공개로 돌려 결국 미국에서 공개된

한미 쇠고기협정 문서에 따르면

더이상 우리는 수입된 쇠고기에 광우병 인자가 발견되어도,

그걸 먹고 누군가 광우병에 걸리게 되더라도,

쇠고기 수입 즉각 중지를 요구할 수 없게 되어있다.

 

쇠고기를 이번에 막는다해도

이와 똑같거나 비슷한 문제는 언제든지 계속 터질 수 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산더미같은

신자유주의적 문제들을 우리 앞에 대기시켜 놓고 있지 않은가?

 

국민이 틈만 보이면 샥샥 밀어붙일 궁리 중인게

눈에 빤히 보이는 실정이다.

 

국민의 70%이상이 반대하는 대운하를 끝까지 하겠다는

그 어떤 얘기도 수용치 않겠다는 저 뚝심을 보라.

 

이번 쇠고기 문제도 총선이 끝난 다음날인 4월 10일 곧바로 시행하기 시작하여

단 일주일만에 샤샤삭 해치웠다.

정말, 해치웠다.

 

총선 때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던 쇠고기 문제였다.

왜?

표 떨어질 걸 아니까.

국민이 싫어할 걸 열받아할 걸 당근 아니까.

 

우린

 

언제까지

속아줄건가?

 

 

 

이명박을 탄핵시키는 건 중요하다.

단순히 쇠고기 문제정도를 막는 것만으로

우리는 편안해지지 못할테니까.

눈을 뜨고 다가올 현실을 직시해서 보면 이젠 누구라도 뚜렷이 알 수 있다.

다가올 현실은,

 

처참하다.

 

 

매트릭스의 빨간 약?

이젠 그거 안 먹어도 눈에 보일 지경이다.

영화 속 어떤 자는 다시 파란 약을 먹고

매트릭스 속으로 들어가버렸지만,

그래서 그것이 거짓임을 알아도 평안한 눈 앞의 정경을 보며

스스로를 기만했지만,

 

우리에겐 이제 파란 약도 없다.

 

처참한 현실은 내 눈 앞에 정면으로 펼쳐져 있다.

 

보고 싶지 않아도,

평화로워보이는 호숫가 캠퍼스만 바라보며 살고 싶어도,

이젠 그렇게 두지 않는다.

이젠 등록금으로 허리가 휘는 부모님이

너무나 잘 보인다.

이젠 취업난으로 이십대 90%가 백수인 현실이

너무나 잘 보인다.

이젠 앞으로도 이 나라가, 이 정부가 계속 서민 목을 조르는 정책을 펴나갈 것이라는 게-

너무나 잘 보인다.

 

갈 때까지 가봐,

하고 내버려둔다면,

 

정말 국민 태반이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까딱 하지 않을 것이

보이지 아니하는가?

 

 

무식한 명박이가 국민 알기를 지나가는 개보다도 우습게 보며,

졸속으로 닥치는 대로 행정을 이끌어나가는 바람에,

100만명이 서명운동을 하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하지만 이미 노무현 때도 신자유주의적 흐름은

일관성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다만 이렇게 대놓고 무식하게 하지 않았을 뿐.

아니 노무현한테는 무식하게 밀어붙일 힘이 없었을 뿐.

바야흐로 명박이 시대에는

조중동 신문도,

한나라당도,

미국도,

너나 할 것 없이

<대놓고 신자유주의! 이명박!>의 매우 훌륭한

서포터이자 지지기반이다.

 

 

총선까지 승리하셨으니 그야말로 "내 세상이다!"를 외치고도 남을 수 밖에.

야당은 애초부터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하였고,

불신과 무관심 속에서 최악의 선거율로

기어코 당선되고야 만

이명박 정부에게,

건강과 생존까지 위협당하는 꼴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국민들은

최후의 최후까지 밀려가다

 

이제 스스로 정부에 맞서는,

그의 적이 되었다.

 

 

내가 직접 선거를 해서 명박이를 뽑았든,

선거를 아예 안 했든,

 

 

 

국민과 대통령은 지금 충돌 중이다.

 

 

 

 

 


 

 

 

 


 

 


 

 

 

 

 

 

 

청계광장에 시위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성난 민중들은 스스로 정부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열망을 안고

집 밖으로 뛰쳐나와 모였다.

 

그런데 광우병쇠고기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우리는 잠잠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광우병쇠고기 문제가 해결되기도 전에 정부관계자들이

"지금이야 이렇지만 곧 식으면 잠잠해질 것" 이라 말하는 것처럼,

금세 식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어라해도 말이다.

 

결국은

다시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흐름은 계속해서 우리의 목을 죄어올테고

우리는 나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사수하기 위해,

또 다시 일어서게 될 것이다.

일어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똑똑히 보자.

 

 

 

이 광우병 쇠고기 수입문제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계속해서 밀려올 것이다.

 

우리는 고단한 싸움에 눈을 뜬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개개인은 결코 공권력과 자본에 맞서 이길 수 없다.

 

그건 "계란으로 바위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계란은 그저 깨져나갈 뿐이다.

바위에 약간의 흠집 하나 내지 못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개인 개인이 모이는 것은 다르다.

 

 

약한자들이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뭉치는 것 뿐이다.

 

지금까지 개개인이 당해왔고 부딪쳐왔고 속수무책이었던

커다란 흐름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에서 나온다.

 

바로 "연대"다.

 

 


촛불시위 정도의 평화적인 정치행위조차도,

국가가 법질서 운운하며 가로막는다면,

국민의 의사표현은 더 과격해질 수 밖에 없다.

 

1만명 이상의 민중이 한자리에 몰려와 목소리를 내는 일이 있을 때,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오히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촛불시위를 단 이틀만에 불법으로 규정지었다.

참고로,

시위 주최측에서 중고등학생들을 10시 이후에 귀가조치 시키려하자,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야자도 12시 넘어서 끝나!

 

우릴 보호하는 척 하지마!

 

지켜주지도 못하는 주제에!

 

광우병에서도!

0교시에서도!

입시에서도!"

 

 

 

 

 

 

 

 

 

 

 

 

 

지금 세계는 신자유주의적 흐름 속에서 다 같이 미쳐가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배제와 포섭의 논리><선택과 집중의 논리>가 진행 중이다.

한국이 특수조건 하에서

더 빠르고 강하게 미쳐가고 있는 것일 뿐.

 

세상의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다.

동떨어져 존재하는 문제 같은 건 없다.

지금 우리 앞에 보이고 있는 상황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이다.

 

그리고 그 현상 뒤엔 더 깊은 본질이 있다.

 

 

 

왜 아무리 봐도 경제논리에도 안 맞는 듯한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가?

 

왜 자국민의 건강, 목숨까지도 배제하면서 미국 비위 맞추며 벌벌 기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가?

 

왜 국민의 70%가 반대하는데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대운하 사업을 추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가?

 

왜 백만명 네티즌들이 탄핵서명운동을 벌이고, 청계천 광장으로 뛰쳐나와 정부를 반대하는데도

정부는 여전히 밀어붙이려고만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가?

 

왜 이명박 정부의 앞으로의 사업이 의료 민영화, 물 민영화, 공공사업 민영화, 민영화 투성이로

서민들 목을 이렇게까지 옭죄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가?

 

 

그저 이명박이 역시 미친 것 같아만 보이는가?

역시 2mb밖에 안되어서?

이미 광우병고기를 먹어 뇌에 구멍이 뽕뽕 뚫린 게 

틀림없으니까?

 

 

 

 

이명박 정부를 갈아치워도,

한미 FTA가 체결되어 실행된다면, 이런 문제는 앞으로 수도 없이 반복될 것이다.

한미 FTA를 막아내어도,

신자유주의적 흐름은 계속해서

같은 양상으로

끊임없이

우리 생활을 위협할 것이다.

 

지금도 살기 힘든데 이렇게 될수록

더 가장 살기 힘들어지는 건,

역시 또 나이고 당신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이러한 배제와 포섭의 논리 하에서,

 

나는 일단 살겠다

발버둥쳐봤자,

결국 우리는 잡아먹힌다.

 

그래서 이것은 누가 먼저 희생되느냐를 정하는 게임이다.

비유하자면,

누가 개미지옥의 가장 밑바닥으로 밀려나

개미귀신에게 제일 먼저 잡아먹힐지를 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게임의 이름은 '개미지옥 게임'이다.

 

만약 여성이고,

고졸 이하의 학력이라면

최초로 희생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개미지옥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모두 잡아먹히는 것은 시간문제"

라는 의미다.

이 게임이 패자부활전과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이 있다.

 

서로 싸우는 대신 협력해서 개미귀신과 맞서는 것이다.

약한 자들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연대' 뿐이다.

 

하지만 모.두.

목숨을 걸고 개미귀신과 싸워야 겨우 이길 수 있다.

몇몇이 방관할 경우

싸우는 것은 명을 재촉하는 일일 뿐이다.

 

결국 다들 목숨 걸고 싸우는 대신 조금 늦게 잡아먹히길 원하게 된다.

"나 혼자만은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먼저 죽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칼을 겨눈다.

 

2%의 승자와 98%의 패자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승자독식과 개미지옥" 사회.

 

이런 사회는 참혹하다.

 

 

 

약간의 순서의 차례를 뒤로 미루기 위해,

우리는 "배틀로얄" 을 하고 있는가?

 

 

 

모피어스는 이제 앤더슨에게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평온한(이젠 더이상 평온하지도 않지만) 매트릭스 세계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무슨 일이 펼쳐질지 상상조차 안 되는 매트릭스 바깥으로 나갈 것인가.

 

모피어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게 마지막 기회야.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

파란 알약을 먹으면 여기서 얘기는 끝난다.

자넨 침대에서 깨어날 것이고 믿고 싶은 걸 계속 믿으면 되는거야.

빨간 알약을 먹으면 이 이상한 나라에 남아 끝까지 가게 돼."

 

 

현실을 안다는 것과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영화 속에서 모피어스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네오,

이제 너도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의

차이를 알게 될 거야"

 

 

그렇지만

길을 '아는'것은, 길을 '걷기'위한

전제요,

필수 조건이다.

 

 

 

 

 

 

길을 찾았는가?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