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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마인드

A Beautiful Mind

  

이번 중간고사 기간에 통계관련 서적을 찾으러 도서관 수학서적 코너에 갔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옆에 사진의 책은 아니고 754페이지에 달하는 꽤 두꺼운 책이어서 한 번에 읽기에 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시험을 망치고 머릿속 정리 좀 할 겸 책을 대출했다.

몇몇 사이트에서 본 영화 내용은 전기내용을 상당히 뒤틀어 놓았다. 내쉬의 정신분열증의 원인을 첩보전에 이은 음모의 시각으로 그린 거 같은데 순 뻥이다. 헐리웃영화야 무엇이든 자기 입맛에 맞게 바꾸어 버리니까 머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존 내쉬는 인간적으로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천재라는 걸 부단히 뻐기면서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아기를 낳은 가난한 여자를 버리고 좋은 집안, 학력의 앨리사랑 결혼해 버린다. 글구 앨리샤는

물론 내쉬의 치료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내쉬가 병이 심각해지고 호전의 기미가 없자 이혼을 요구하고 10여년 내쉬를 방치한다. 나중엔 내쉬의 동료와 결혼까지 하려다 직장문제와 아이 때문에 결혼이 무산되는 등의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나서야 거의 폐인이 된 내쉬를 받아 들인다. 이때 내쉬는 더 이상 남에게 위협을 주지 않는 조용한 '미친사람'이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앨리샤와의 사이에 난 아들 '존 챨스 내쉬' 역시 총명한 머리로 수학박사학위까지 받고 마셜대학에서 강사로 나가기도 했으나 정신분열증으로 병원을 들락거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쉬의 정신분열증이 영화에서처럼 음모에서 비롯되었고 가족의 사랑으로 그것을 극복하고 그런 할리웃의 뻔한 구라가 아니라 너무나 뛰어난 정신의 어쩌면 필연적인 분열,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병에서 깨어나 비록 천재성은 잃었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익혀가고 아픈 아들을 돌봐주는 한 천재의 삶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카네기에서의 마지막 봄날, 내쉬의 마음을 짓누른 것이 또 있었다. 졸업이 다가오자 병역문제가 점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미국이 다시 참전하게 되면 보병으로 징집될지도 몰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도 3년이 지나 병력이 계속 축소되고 있었지만 내쉬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가 정기구독하고 있던 신문에서는 연일 징집의 조짐이 시사하고 있었다. 특히 러시아의 베를린 봉쇄, 그에 따른 미국과 영국의 생필품 공수, 냉전의 가소과 등이 그랬다. 자신의 자율성이나 미래 계획에 위협이 되는 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릴 정도였다.

 

대학원 1년차 학생들은 말할 수 없이 시건방졌다. 그런데 내쉬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 말할 수 없이 시건방졌고, 더 괴팍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외모는 그런 인상을 더욱 부추겼다. 스무살이 된 내쉬는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키 183센티미터, 몸무게 77킬로그램, 떡 벌어진 어깨. 근육질의 가슴, 군살 없는 허리, 위풍당당한 체격은 아닐지라도 운동선수같은 체격이었다. 음성은 카랑카랑하고 서늘했는데, 느릿한 남부 말투가 어우러져 다소 냉소적으로 들렸다. 길 게 말을 할 때는 장식적이고 위엄을 갖췄기 때문에 남들에게 짐짓 젠체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표정도 다소 거만했고, 남을 깔보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다과회에서는 그는 처음부터 이목을 끌었다. 그는 주목을 받지 못해 아달인 것 같았고, 그 자리의 누구보다도 더 영리하다는 것을 다짐받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대수는 헛소리다"라고 그가 칠판에 뤼갈겨 쓰기라도 하면, 대수를 전공하는 다른 학생은 얘기 중간에 입을 다물곤 했다.

 

내쉬는 거의 모든 수학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위상수학, 대수기하학, 게임 이론 등에 대해 1년차에 이미 엄청난 지식을 흡수한 것 같았다. 프린스턴에서 별로 힘들지 않게 "꽤 광범위하게 수학을 공부했다"고 스스로도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수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내쉬와 함께 수업을 들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대학원 생활 내내 내쉬가 책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없다. 사실 놀랍게도 그는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 내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정보를 얻는 주된 방식은 교수와 동료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는 클립보드를 들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기록을 했다. 내쉬는 그저 생각만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빌린 자전거를 타고 작은 8자형이나 그보다 더 작은 원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대학원 건물의 4각 안뜰을 서성거리기도 했다. 파인홀의 어둑한 이츨복도 벽에 어깨를 맞대고, 패널 벽에 맞붙어 굴러가는 이동활자처럼 미끄러져 가기도 했다. 또 비어있는 두레방이나 3층 도서관의 의자나 테이블에 누워 있곤 했다. 도서관에 있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럴 때면 대부분 바흐의 푸가를 휘파람 불곤 했다. 수학과 비서들은 휘파람 좀 못 불 게 해달라고 레프셰츠나 커거를 찾아가 하소연했다.

 

내쉬가 MIT 강사가 된 것은 갓 23세가 되었을 때였다. 그는 강사 가운데 최연소였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대학원생들보다도 나이가 적었다. 당시 MIT 기준으로 볼 때 무어 강사들의 강의 부담은 가벼운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쉬는 강의 부담이 싫었다. 그는 연구에 방해가 되는 일이나 판에 박은 일이라면 뭐든 질색이었다. 그의 강의는 설명이라기보다는 자유연상에 가까웠고 마인드게임에 가까웠다. 해결되지 않은 고전적인 문제를 출제하는 것도 내쉬가 즐겨 사용한 수법이었다. 로버트 오만은 이렇게 회상했다. "학생들에게 π가 무리수임을 증명하라는 문제가 출제되었어요. 그건 결국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라는 것과 같았습니다. 나중에 학과장에게 질책을 당한 내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어려운 문제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게 문제인 것 같다. 어쩌면, 그 문제가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으면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두레방에서 학생들이 제2차 세계대전의 유명한 병참 수수께끼인 "지프Jeep"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지프 문제의 핵심은, 2천 마일 거리의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려고 하는데 지프의 기름탱크 용량으로는 2백 마일밖에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 한 번에 1백 마일을 더 갈 수 있는 휘발유 통을 실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 사막을 건너는 유일한 방법은 2보 전진, 1보 후퇴 전략을 따르는 것이다. 즉, 지프에 휘발유 통을 싣고 1백 마일을 간 다음, 통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한다. 그런 다음 1백 마일 지점에서 기름 탱크를 가득 채우고 휘발유 통도 싣고 1맥 마일을 더 가서 통을 내려놓고 돌아가서 통을 가져오는 일을 반복한다. 문제는, 사막을 횡단하는 데 휘발유가 몇 통이나 필요한가이다.

 

1959년 봄 병원 휴게실 한쪽 구석에서 하버드 대학 교수인 조지 매키는 부드럽게 말하려고 했지만 다소 퉁명스럽게 말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자네가..., 이성과 논리적인 증명에 몸 바친 수학자인 자네가..., 외계인이 자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허황한 얘기를 믿을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외계 생물체가 자네를 차출해서 이 세상을 구하려고 한다는 허황한 얘기를 믿을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자네가...?"

존 내쉬는 남부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나직하게, 독백하듯 말했다.

"왜냐하면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착상이든, 수학적 착상이든, 내게 떠오를 때는 똑같은 길로 오기 때문이지. 그러니 어떤 착상이든 진지하게 따져볼 수 밖에."

 

1954년 8월 말의 어느 날 아침, 랜드 보안과의 숙직 책임자는 산타모니카 경찰서에서 걸어론 전화를 받았다. 퇴폐행위를 적발을 담당한 두 경찰-한 명은 유인책이고, 다른 한 명은 체포책-이 새벽에 펠리세이즈 파크의 남자 공중화장실에서 어떤 젊은이를 체포했다는 전화였다. 체포된 젊은이는 경범죄인 공개적 외설죄로 기소되었고, 불구속 처리되어 풀려났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 젊은이는 자기가 랜드에서 일하는 수학자라고 주장했는데, 그것이 사실인가? 숙직 책임자는 내쉬가 랜드의 피고용이라는 것을 즉석에서 확인해주었다. 윌리엄스는 베스트에게 내쉬가 "괴짜녀석"이긴 하지만 비상한 수학자이며, 그가 만나본 사람 가운데 가장 영리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쉬가 사직해야 한다는 것은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내쉬에게 가해진 최대 충격은 체포 자페가 아니라, 랜드에서 축출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베스트의 말을 들은 후 내쉬가 침착한 반응을 보인 것은, 윌리엄스가 그 사건을 눈감아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는 랜드의 천재들 가운데 한 명이었으니까. 그러나 맥킨지와 튜링 등의 수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내쉬는 인생이 지난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남의 뜻에 좌우되는 북확실한 것임을 깨달았고, 자신이 생각보다 훨씬 더 약한 존재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위험한 교훈이었다.

 

프린스턴 바깥에 있는 옛 친구들은 내쉬의 경과에 계속 관심을 보였다. 데이빗 게일은 연구소의 딘 몽고메리에게 편지를 보냈고, 이 편지의 사본은 밀너와 모르겐슈테른에게도 전해졌는데, 이 편지를 보면 내쉬의 상황에 대한 관심과 염려의 수준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존 내쉬 애기만 나오면 우리는 그의 현재 상태, 특히 정신 상태가 어떤지 궁금해왔습니다. 그가 의학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는지 우리 가운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누구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의사가 희망이 없다고 한다"부터 "다시 수학 연구를 하고 있다더라"까지 소문만 무성합니다. 걱정이 되는 것은 우리가 내쉬의 상황을 모른다는 것이 아닙니다. 수학계의 모든 사람이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일 경우, 결국 내쉬가 최선의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걱정됩니다. 수학계에서는 필요할 때마다 내쉬에게 펠로쉽과 각종 일자리를 주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다른 사람이-정보에 밝고 능력이 있고 소임을 감당할 만한 사람들이 의학적으로 그를 꾸준히 보살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내쉬가 고등학문연구소에 몸담고 있으니, 그렇게 보살펴줄 만한 사람이 있기는 있는지 당신이라면 알고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내쉬를 위해 할 수 잌ㅆ는 모든 일이 다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고도 싶었습니다. 만일 돈이 문제가 된다면, 예를 들어 내쉬가 받아야 할 치료를 받고 있지 못하다면, 내쉬의 친구들이 힘을 모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만남에서 바이불의 뇌리에 가장 강하게 남은 내쉬의 말은 따로 있었다. 그 말 때문에, 바이불은 초연한 관찰자이자 객관적인 정보 제공자 입장에서 열렬한 대변자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들이 교수 클럽에 들어서기 전, 내쉬는 우물쭈물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들어가도 될까요? 나는 교수가 아닌데요."

이 위대한, 위대한 학자가 자기 자신을 교수클럽에서 식사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바이블이 보기에 마땅히 바로잡아야 할 너무나 부당한 사태였다.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이 남자, 이 천재의 이례적인 인생 역정은 계속되고 있다. 남들을 공정하게 대하려 하고, 남들이 그에게 공정한 대우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는 날마다의 노력은, 젊은 시절 차갑고 거만했던 것과 매우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지적으로 전보다 못할지 모른다. 또 새로운 획기적 업적을 이루지는 못 할지도 모른다. 그런 그는 전보다 훨씬 더 넉넉한 사람, 앨리샤의 표현에 따르면 "아주 좋은 사람"이 되었다.

 

이제 우리가 그의 얘기를 접는 이 순간, 그는 어쩌면 파인홀로 이어진 아이젠하트 문 밑을 총총히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거실 소파에 앨리샤와 나란히 앉아 대형 텔레비젼으로 <닥터 후>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고...아니면 조니와의 체스 게임에서 지고 있거나... 아니면 아내와 사별한 로이드 셰이플리를 위로하는 전화통화를 105분쯤 계속하거나... 아니면 피사에서 있을 강연 원고를 준비하고 있느냐고 묻는 해롤드 쿤에게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거나... 아니면 점심 쟁반을 들고 고등학문연구소의 수학 테이블에 앉아, 방금 캐링턴의 연애편지를 읽고 편지 쓰기의 아취가 사라진 시대를 한탄하는 엔리코 봄비에리에게 고개를 주억거려 보이거나... 아니면, 천문학 강연을 들은 후, 밤하늘에 반짝이는 아득히 먼 별을 망원경으로 지그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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