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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삼성이 불법 대선자금을 이회창에게 지급했다는 MBC 기자의 폭로에 대해 경악하고 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길을 알려줬다. 불법대선자금이 문제가 아니라.. 정경유착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실을 알아낸 도청이 문제라고 그것을 폭로한 기자가 문제라고.....
이 시점에서 난 혼란을 느꼈다.
'이제 더이상 비리폭로는 없다.'
권력과 언론의 비리. 권력과 경제계의 비리 등을 폭로하는 방법에 심대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교과서를 통해 배웠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해야 한다는 사실..
그런데 불법비리를 고발하는 데에도 이 진리가 통할까..
글쎄 이제는 결과인 비리보다는 폭로방법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이 나라가 이렇게 이성적인 사회가 되었나..
어쩌면
비리는 언제나 일상적으로 일어나니 비리에는 무감각해지고 폭로방식은 아직은 신선한 소재이니 더 경악하는 척할 수도 있고..
비리를 숨기기 위해 비리를 폭로하는 방법에 대한 제약을 둠으로써 비리폭로를 사전에 예방한다는 비리자들의 뛰어난 머리일 수도 있고..
불법비리가 없어질 것인가. 불법폭로가 없어질 것인가.
우석훈 |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22호 | 2007년 4월 / 2007년04월09일 15시41분
사진출처 | 보건의료단체연합 홈페이지 |
숱한 의사친구들도 조카의 아토피에는 속수무책
공단지역을 훌쩍 넘는 도시의 대기오염
2%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고민, 환경성 질환
내가 보건 특히 유아 보건에 관한 조사를 할 때마다 갖는 느낌은 이건 다른 것이 아니라 부패하고 썩은 한국 사회의 증상 그 자체라는 생각이다. 입장을 바꾸어 유아의 눈으로 본다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잘못은 당신들이 했는데, 왜 내가 아파야 해? 가끔 환경부 같은 곳에서 대책이라고 만든 것들을 보면 한숨이 푹푹 난다. 이 상태대로라면 10년 후가 되면 더욱 문제가 심각해지지 전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2006년 8월 1일~4일 주민생협과 일본 생활클럽생협간의 한일청소년교류를 지원하기 위해 도쿄의 생활클럽생협을 다녀왔다....
데포는 우리의 매장과 같은 곳이다. 하지만 우리와는 개념은 좀 다르다.. 데포(depot)의 뜻이 정거장, 집품소인 것처럼 생활재를 각 가정으로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모아두고 조합원이 와서 찾아간다는 개념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매장의 개념은 뭐 그냥 매장이다. '생활재를 파는 곳' 개념의 차이일까? 워커즈 운영의 차이일까? 작은 부분부분에 조합원의 정성이 엿보인다.
김남주 시인
김남주시인의 시들은 내 첫 번째 대학생활을 거의 지배했었다. 비쩍마른 체구와 달리 말만 들어도 섬뜩한 '남민전'이라는 조직의 전위대 전사 출신이다. 70년대 말 썩을대로 썩은 박정희 유신정권에 맞서 정권을 뒤엎을 것을 결의하며 지리산에서 훈련을 하였다는 그 남민전의 전위대 전사. 유약해 빠져 우유부단함을 상징하던 지식인의 이미지를 깨는 그의 모습, 돌아가지 않고 너무나 직설적인 그의 詩들은 20살 팔팔한 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어쩌면 그는 시인이기 전 전사였는지 모른다. 아래에 시들은 노래로 불려져 너무나 유명해진 '함께가자 우리', '노래',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들이다. | |
- 1946 (01) : (10. 16) 전남 해남군 해남읍 삼산면 봉학리 535번지에서 아버지 김봉수, 어머니 문일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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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의 가슴에 꽃힌 시인전사 최재봉(한겨래신문)기자 한국 현대시사에서 김남주(1945∼94)의 시들은 선명한 메시지와 강렬한 어조로 하여 두드러진다. 김남주가 외세에 대한 거부와 부자들을 향한 증오, 독재권력을 상대로 한 싸움을 노래한 유일한 시인은 아니었지만, 그 거부와 증오와 싸움을 노래 바깥의 현실로 옮기려 했다는 점에서 그는 다른 많은 시인들과 구분된다. 그는 시인인 동시에 전사였으며, 그것은 결코 비유적인 의미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시인이여 라고 그가 부르짖을 때 그것은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는 선동과 같은 궤에 놓이면서도 훨씬 더 강한 울림을 울린다. 그것은 무기(창:화살)와 대상(압제자:과녁)의 차이가 빚어내는 미학적 거리에 문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말 그대로의 전사와 시인의 차이가 반영된 결과라 해야 할 것이다. 철의 독재자 박정희가 심복의 손에 쓰러지기 불과 보름여 전 내무부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을 발표했다. 김남주는 중심인물인 이재문 등 20여명과 함께 그때 이미 체포된 상태였다. 이후 모두 80여명이 검거돼 그 가운데 2명이 사형을 언도받기에 이른 남민전 사건이란 무엇이었던가. 사건 관련자들과 연구자들에 의해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남민전은 제3 세계 민족해방운동과 보조를 맞추어 예속적 독재권력의 타도와 외세의 축출, 그리고 부의 공평한 분배를 목표로 한 비밀결사였다. 남민전이 가장 직접적인 모델로 삼았던 것은 베트남 통일의 원동력이었던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었으며, 국내적으로 그것은 인혁당과 같은 자생적 사회주의 결사의 전통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검거당시 아직 준비위 차원에 머물러 있던 남민전은 실제에 있어서는 한국민주투쟁국민연맹 명의의 반독재 유인물 살포에 주력했으며, 김남주와 박석률 등 남민전 전위대 전사들은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잣집 담을 넘기도 했다. 남민전 동지이자 김남주의 부인인 박광숙씨에 따르면 남민전은 무엇보다도 반독재 민주화투쟁 단체였다. "모두가 숨죽이고 있던 공포통치의 시대에 남민전은 교사와 노동자, 학생 등 각계각층을 망라한 통일운동체였다. 강령에 있어서는 반제국주의와 노동해방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반독재·반유신투쟁이 주요한 활동이었다." 김남주의 대부분의 시는 남민전 사건과 관련해 15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던 감방에서 쓰여졌다. "시는 혁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준비하는 문학적 수단" 이라고 규정한 그에게 선동의 효과가 미학적 고려에 우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와 혁명의 관계를 논하는 글에서 그는 그 둘이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다고 토를 달았지만, 그것은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에 관한 마르크스의 규정과도 같아서 그에게 있어 우선시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혁명이었다. 그러나 흥미있는 것은 시보다는 혁명에 기운 그의 선택이 오히려 미적 완성도가 높은 시의 탄생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김남주는 하이네, 네루다, 마야코프스키 등 외국 시인들의 영향을 진하게 받았다고 밝힌 바 있지만, 한편으로는 '노래'에서 보듯 '새야 새야 파랑새야'에서 김지하에 이르는 참여적 서정시의 전통 위에 굳건히 서 있다. 제국주의/신식민주의, 독재/자유, 자본/민중의 명료한 이분법에 입각한 그의 세계관은 상황의 핵심을 꿰뚫는 촌철살인의 절창을 낳았다. 그의 대부분의 시들은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비상한 수단과 방법으로써 쓰여졌다. 집필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대한민국의 감옥에서 시인은 머릿속에 시를 써두었다가 면회온 친지들에게 불러주거나, 읽던 책의 여백이나 우유곽을 해체해서 생긴 은박지에 못으로 눌러서 시를 썼다(간수의 눈을 피해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시를 새기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김남주는 먼저 석방돼 나와 그의 옥바라지를 계속한 박광숙씨와 출옥 한달여 만에 결혼해서 아들 토일이를 투었다. 노동자들이 1주일에 사흘 금·토·일요일은 쉬어야 한다는 뜻이 그 이름에 담긴 토일이는 어느새 초등학교 1학년이 됐다. 시인은 가고 뒤에 남은 처자와 함께 그의 해남을 찾는다. 희고 붉은 코스모스, 노랗고 예쁜 벼들, 그리운 이의 소짓처럼 하느작대는 억새로 해서 가을 들판은 따뜻하고 정겨웁다. 해남읍에서 차로 10여분을 달리면 나오는 삼산면 봉학리 그의 생가에서는 팔순이 가까운 노모가 마당에 넌 고추와 호박을 돌보고 있다가 어린 손주를 반긴다. 푸른 대숲으로 둘러싸인 집에는 군 청년회에서 만들었다는 시화패널들 이 처마에 걸려 있을 뿐 시인의 생가임을 알리는 이렇다 할 기념물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시인이 주로 썼다는 사랑채에 그가 옥중에서 보았던 이런저런 잡지와 단행본들이 먼지에 덮여 쌓여 있다. '수번 2164, 교부일 81. 3. 23, 요납일 81. 4. 22'의 열독허가증이 붙은 책들은 80년대 초의 어느 시점에 얼어붙은 채 무심한 세월을 견디고 있다. 시인은 죽어서 망월동에 묻혔다. 생전에 그가 쓴 시 '망월동에 와서'가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5월 광주 희생자 묘역에서 그의 영혼은 비로소 안식을 찾았을 것인가. 그의 분신인 토일이와 부인 박광숙씨를 일어나 반기지 못하는 무덤 숙의 그를 안쓰러워하며 '전사 2'의 뒷부분을 떠올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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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eautiful Mind
이번 중간고사 기간에 통계관련 서적을 찾으러 도서관 수학서적 코너에 갔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옆에 사진의 책은 아니고 754페이지에 달하는 꽤 두꺼운 책이어서 한 번에 읽기에 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시험을 망치고 머릿속 정리 좀 할 겸 책을 대출했다. 몇몇 사이트에서 본 영화 내용은 전기내용을 상당히 뒤틀어 놓았다. 내쉬의 정신분열증의 원인을 첩보전에 이은 음모의 시각으로 그린 거 같은데 순 뻥이다. 헐리웃영화야 무엇이든 자기 입맛에 맞게 바꾸어 버리니까 머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존 내쉬는 인간적으로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천재라는 걸 부단히 뻐기면서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아기를 낳은 가난한 여자를 버리고 좋은 집안, 학력의 앨리사랑 결혼해 버린다. 글구 앨리샤는 | |
물론 내쉬의 치료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내쉬가 병이 심각해지고 호전의 기미가 없자 이혼을 요구하고 10여년 내쉬를 방치한다. 나중엔 내쉬의 동료와 결혼까지 하려다 직장문제와 아이 때문에 결혼이 무산되는 등의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나서야 거의 폐인이 된 내쉬를 받아 들인다. 이때 내쉬는 더 이상 남에게 위협을 주지 않는 조용한 '미친사람'이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앨리샤와의 사이에 난 아들 '존 챨스 내쉬' 역시 총명한 머리로 수학박사학위까지 받고 마셜대학에서 강사로 나가기도 했으나 정신분열증으로 병원을 들락거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쉬의 정신분열증이 영화에서처럼 음모에서 비롯되었고 가족의 사랑으로 그것을 극복하고 그런 할리웃의 뻔한 구라가 아니라 너무나 뛰어난 정신의 어쩌면 필연적인 분열,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병에서 깨어나 비록 천재성은 잃었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익혀가고 아픈 아들을 돌봐주는 한 천재의 삶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
카네기에서의 마지막 봄날, 내쉬의 마음을 짓누른 것이 또 있었다. 졸업이 다가오자 병역문제가 점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미국이 다시 참전하게 되면 보병으로 징집될지도 몰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도 3년이 지나 병력이 계속 축소되고 있었지만 내쉬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가 정기구독하고 있던 신문에서는 연일 징집의 조짐이 시사하고 있었다. 특히 러시아의 베를린 봉쇄, 그에 따른 미국과 영국의 생필품 공수, 냉전의 가소과 등이 그랬다. 자신의 자율성이나 미래 계획에 위협이 되는 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릴 정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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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1년차 학생들은 말할 수 없이 시건방졌다. 그런데 내쉬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 말할 수 없이 시건방졌고, 더 괴팍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외모는 그런 인상을 더욱 부추겼다. 스무살이 된 내쉬는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키 183센티미터, 몸무게 77킬로그램, 떡 벌어진 어깨. 근육질의 가슴, 군살 없는 허리, 위풍당당한 체격은 아닐지라도 운동선수같은 체격이었다. 음성은 카랑카랑하고 서늘했는데, 느릿한 남부 말투가 어우러져 다소 냉소적으로 들렸다. 길 게 말을 할 때는 장식적이고 위엄을 갖췄기 때문에 남들에게 짐짓 젠체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표정도 다소 거만했고, 남을 깔보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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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과회에서는 그는 처음부터 이목을 끌었다. 그는 주목을 받지 못해 아달인 것 같았고, 그 자리의 누구보다도 더 영리하다는 것을 다짐받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대수는 헛소리다"라고 그가 칠판에 뤼갈겨 쓰기라도 하면, 대수를 전공하는 다른 학생은 얘기 중간에 입을 다물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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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쉬는 거의 모든 수학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위상수학, 대수기하학, 게임 이론 등에 대해 1년차에 이미 엄청난 지식을 흡수한 것 같았다. 프린스턴에서 별로 힘들지 않게 "꽤 광범위하게 수학을 공부했다"고 스스로도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수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내쉬와 함께 수업을 들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대학원 생활 내내 내쉬가 책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없다. 사실 놀랍게도 그는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 내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정보를 얻는 주된 방식은 교수와 동료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는 클립보드를 들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기록을 했다. 내쉬는 그저 생각만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빌린 자전거를 타고 작은 8자형이나 그보다 더 작은 원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대학원 건물의 4각 안뜰을 서성거리기도 했다. 파인홀의 어둑한 이츨복도 벽에 어깨를 맞대고, 패널 벽에 맞붙어 굴러가는 이동활자처럼 미끄러져 가기도 했다. 또 비어있는 두레방이나 3층 도서관의 의자나 테이블에 누워 있곤 했다. 도서관에 있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럴 때면 대부분 바흐의 푸가를 휘파람 불곤 했다. 수학과 비서들은 휘파람 좀 못 불 게 해달라고 레프셰츠나 커거를 찾아가 하소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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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쉬가 MIT 강사가 된 것은 갓 23세가 되었을 때였다. 그는 강사 가운데 최연소였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대학원생들보다도 나이가 적었다. 당시 MIT 기준으로 볼 때 무어 강사들의 강의 부담은 가벼운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쉬는 강의 부담이 싫었다. 그는 연구에 방해가 되는 일이나 판에 박은 일이라면 뭐든 질색이었다. 그의 강의는 설명이라기보다는 자유연상에 가까웠고 마인드게임에 가까웠다. 해결되지 않은 고전적인 문제를 출제하는 것도 내쉬가 즐겨 사용한 수법이었다. 로버트 오만은 이렇게 회상했다. "학생들에게 π가 무리수임을 증명하라는 문제가 출제되었어요. 그건 결국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라는 것과 같았습니다. 나중에 학과장에게 질책을 당한 내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어려운 문제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게 문제인 것 같다. 어쩌면, 그 문제가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으면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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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두레방에서 학생들이 제2차 세계대전의 유명한 병참 수수께끼인 "지프Jeep"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지프 문제의 핵심은, 2천 마일 거리의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려고 하는데 지프의 기름탱크 용량으로는 2백 마일밖에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 한 번에 1백 마일을 더 갈 수 있는 휘발유 통을 실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 사막을 건너는 유일한 방법은 2보 전진, 1보 후퇴 전략을 따르는 것이다. 즉, 지프에 휘발유 통을 싣고 1백 마일을 간 다음, 통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한다. 그런 다음 1백 마일 지점에서 기름 탱크를 가득 채우고 휘발유 통도 싣고 1맥 마일을 더 가서 통을 내려놓고 돌아가서 통을 가져오는 일을 반복한다. 문제는, 사막을 횡단하는 데 휘발유가 몇 통이나 필요한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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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봄 병원 휴게실 한쪽 구석에서 하버드 대학 교수인 조지 매키는 부드럽게 말하려고 했지만 다소 퉁명스럽게 말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자네가..., 이성과 논리적인 증명에 몸 바친 수학자인 자네가..., 외계인이 자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허황한 얘기를 믿을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외계 생물체가 자네를 차출해서 이 세상을 구하려고 한다는 허황한 얘기를 믿을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자네가...?" 존 내쉬는 남부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나직하게, 독백하듯 말했다. "왜냐하면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착상이든, 수학적 착상이든, 내게 떠오를 때는 똑같은 길로 오기 때문이지. 그러니 어떤 착상이든 진지하게 따져볼 수 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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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8월 말의 어느 날 아침, 랜드 보안과의 숙직 책임자는 산타모니카 경찰서에서 걸어론 전화를 받았다. 퇴폐행위를 적발을 담당한 두 경찰-한 명은 유인책이고, 다른 한 명은 체포책-이 새벽에 펠리세이즈 파크의 남자 공중화장실에서 어떤 젊은이를 체포했다는 전화였다. 체포된 젊은이는 경범죄인 공개적 외설죄로 기소되었고, 불구속 처리되어 풀려났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 젊은이는 자기가 랜드에서 일하는 수학자라고 주장했는데, 그것이 사실인가? 숙직 책임자는 내쉬가 랜드의 피고용이라는 것을 즉석에서 확인해주었다. 윌리엄스는 베스트에게 내쉬가 "괴짜녀석"이긴 하지만 비상한 수학자이며, 그가 만나본 사람 가운데 가장 영리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쉬가 사직해야 한다는 것은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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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쉬에게 가해진 최대 충격은 체포 자페가 아니라, 랜드에서 축출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베스트의 말을 들은 후 내쉬가 침착한 반응을 보인 것은, 윌리엄스가 그 사건을 눈감아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는 랜드의 천재들 가운데 한 명이었으니까. 그러나 맥킨지와 튜링 등의 수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내쉬는 인생이 지난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남의 뜻에 좌우되는 북확실한 것임을 깨달았고, 자신이 생각보다 훨씬 더 약한 존재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위험한 교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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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 바깥에 있는 옛 친구들은 내쉬의 경과에 계속 관심을 보였다. 데이빗 게일은 연구소의 딘 몽고메리에게 편지를 보냈고, 이 편지의 사본은 밀너와 모르겐슈테른에게도 전해졌는데, 이 편지를 보면 내쉬의 상황에 대한 관심과 염려의 수준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존 내쉬 애기만 나오면 우리는 그의 현재 상태, 특히 정신 상태가 어떤지 궁금해왔습니다. 그가 의학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는지 우리 가운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누구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의사가 희망이 없다고 한다"부터 "다시 수학 연구를 하고 있다더라"까지 소문만 무성합니다. 걱정이 되는 것은 우리가 내쉬의 상황을 모른다는 것이 아닙니다. 수학계의 모든 사람이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일 경우, 결국 내쉬가 최선의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걱정됩니다. 수학계에서는 필요할 때마다 내쉬에게 펠로쉽과 각종 일자리를 주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다른 사람이-정보에 밝고 능력이 있고 소임을 감당할 만한 사람들이 의학적으로 그를 꾸준히 보살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내쉬가 고등학문연구소에 몸담고 있으니, 그렇게 보살펴줄 만한 사람이 있기는 있는지 당신이라면 알고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내쉬를 위해 할 수 잌ㅆ는 모든 일이 다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고도 싶었습니다. 만일 돈이 문제가 된다면, 예를 들어 내쉬가 받아야 할 치료를 받고 있지 못하다면, 내쉬의 친구들이 힘을 모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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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만남에서 바이불의 뇌리에 가장 강하게 남은 내쉬의 말은 따로 있었다. 그 말 때문에, 바이불은 초연한 관찰자이자 객관적인 정보 제공자 입장에서 열렬한 대변자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들이 교수 클럽에 들어서기 전, 내쉬는 우물쭈물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들어가도 될까요? 나는 교수가 아닌데요." 이 위대한, 위대한 학자가 자기 자신을 교수클럽에서 식사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바이블이 보기에 마땅히 바로잡아야 할 너무나 부당한 사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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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놀라게 한 이 남자, 이 천재의 이례적인 인생 역정은 계속되고 있다. 남들을 공정하게 대하려 하고, 남들이 그에게 공정한 대우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는 날마다의 노력은, 젊은 시절 차갑고 거만했던 것과 매우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지적으로 전보다 못할지 모른다. 또 새로운 획기적 업적을 이루지는 못 할지도 모른다. 그런 그는 전보다 훨씬 더 넉넉한 사람, 앨리샤의 표현에 따르면 "아주 좋은 사람"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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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그의 얘기를 접는 이 순간, 그는 어쩌면 파인홀로 이어진 아이젠하트 문 밑을 총총히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거실 소파에 앨리샤와 나란히 앉아 대형 텔레비젼으로 <닥터 후>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고...아니면 조니와의 체스 게임에서 지고 있거나... 아니면 아내와 사별한 로이드 셰이플리를 위로하는 전화통화를 105분쯤 계속하거나... 아니면 피사에서 있을 강연 원고를 준비하고 있느냐고 묻는 해롤드 쿤에게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거나... 아니면 점심 쟁반을 들고 고등학문연구소의 수학 테이블에 앉아, 방금 캐링턴의 연애편지를 읽고 편지 쓰기의 아취가 사라진 시대를 한탄하는 엔리코 봄비에리에게 고개를 주억거려 보이거나... 아니면, 천문학 강연을 들은 후, 밤하늘에 반짝이는 아득히 먼 별을 망원경으로 지그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 예전 홈에 게시했던 글.. |
부와 권력의 대이동 |
: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 : 이문희 : 지식의숲 |
출판사 서평
미국의 세계 지배는 얼마나 더 지속될 것인가
미국은 세계 인구의 5%밖에 안 되는 인구로 현재 세계 생산의 30%, 소비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11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제2위국 GDP의 2배를 웃돌고, 실질적 1인당 소득은 세계의 모든 주요 국가들의 수준을 단연 앞선다. 미국 영어는 전 세계 통상 언어요, 미국 달러는 세계 기축 통화다. 세계 1000대 기업 가운데 432개 업체가 미국 기업이고, 뉴욕 및 나스닥 증권거래소가 전 세계 모든 주식 가치의 44%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세계 최고 대학들과 연구 센터들 절반의 본거지요, 미국의 뒤를 잇는 선진 5개국의 투자액을 모두 합한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연구 개발비로 쓰고 있다.
간단히 말해, 미국이라는 나라는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존재해 온 나라 중 최대의 부국이자 강국이다. 이 강력한 미국에 적어도 한 세대 동안은 도전장을 내밀 만한 세력이 없으리라는 게 오늘날 미국 지도층의 전반적인 믿음이다. 하지만 과연 미국의 세계 지배는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세계적인 통상 전문가이자 워싱턴 D.C.의 경제전략연구소(ESI) 소장인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는 신간 『부와 권력의 대이동』에서 그 같은 믿음이 왜 신기루에 지나지 않은지를 조목조목 분석하여 반박하고 있다.
미국, 거대한 빙산과 마주한 타이타닉 호 같은 운명
인텔의 前 회장인 앤디 그로브(Andy Grove)는 “미국은 지금 유럽을 따라 도산으로 치달아 가는 위험에 처해 있으나,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마치 타이타닉 호가 최고 속력으로 빙산을 향해 질주해 나가듯, 모두들 스스로 만족해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소비와 부채는 계속 늘어나고, 제조와 서비스 부문의 생산 역량은 점점 빠른 속도로 해외로 옮아가고 있다. 달러 가치는 하락하고 무역 적자도 계속 불어난다. 미국 무역 적자는 현재 6000억 달러로, 연간 GDP의 약 6% 수준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세계 주 채권국에서 최고 채무국으로 바뀌었으며, 부채 규모는 3조 달러에 달한다.
또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GDP의 평균 6% 이상을 차지하던 물적 자본, R&D, 교육, 훈련에 대한 연방 정부 지출이 이제는 GDP의 3%를 한참 밑돈다. 이는 1965년 총 연방 지출의 32%를 차지하던 미래지향적 지출액이 오늘날에는 14%로 떨어졌음을 말한다. 민간 인프라에 대한 투자 역시 없었다. 아시아와 유럽의 신설 연구실과 시설들과 비교하면 세계적 수준의 대학이라는 곳의 연구실과 시설들이 이제 낡아 보이기 시작한다. 또한 수학 및 과학 지식을 평가하는 다양한 국제 시험에서 미국 학생들이 받아 오는 낮은 성적은 미국의 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시사한다.
달러의 붕괴
달러는 과연 앞으로도 계속 세계 기축 통화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세계 기축 통화로서 달러가 차지하는 특별한 지위로 말미암아 미국은 모든 경제 규율에서 면제되고 다른 나라들은 통화 조작이 가능했다. 이 점이 바로 현 세계 경제 시스템이 안고 있는 중대한 결함이고 이 결함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전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이었던 폴 볼커(Paul Volcker)는 앞으로 5년 안에 달러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을 75%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조지 소로스(George Soros)의 큰 두려움이기도 하다. 소로스는 시장은 자기 조정 능력이 있기는커녕 과잉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고 강조한다. 만일 달러가 붕괴되기 시작하면 결과는 참으로 참담할 것이다. 1930년대식 세계 대공황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달러 대안의 부재는 그동안 달러가 대하락을 겪지 않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였다. 하지만 이제 대안들이 부상하고 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유로화는 점점 매력을 더해 가고 있다. 러시아 외에도 다른 나라들 역시 유로화를 몰래 사들이고 있으며, 이는 유로화가 최근 그런 강세를 띠게 된 까닭이다. 아시아에서도 유로화 이전의 유럽 단일 통화인 ECU를 본떠 아시아 단일 통화, 즉 아쿠(ACU)를 만들자는 논의가 심각하게 진행 중이다.
30억 신경제인의 등장과 자본주의의 지각 변동
1989년에 동독과 소련 진영의 동요가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이어지고 이는 또 1991년 12월 25일 소련 붕괴로 이어졌다. 그리고 인도가 사회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중국, 인도, 옛 소련 국가들은 모두 사회주의 노동자 천국을 버리고, 30억 시민들과 함께 한때 스스로 경멸해 마지않던 자본주의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30억 신경제인이 새롭게 세계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들어온 것이다.
한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이라 불리는 복잡한 협정 아래 운영되던 낡고 오랜 무역 체제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바뀌고, 유럽공동시장(ECM)이 유럽연합(EU)이 되고, 북미 자유무역 협정(NAFTA)과 같은 다른 많은 협정들이 체결되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가운데 항공 특송과 인터넷은 시간과 거리의 의미를 무효화함으로써 지구를 작은 지구촌으로 줄여 놓았다. 이로써 30억 신경제인들은 글로벌 경제를 좀 더 쉽게 세계화할 할 수 있는 대장정의 첫 걸음을 떼게 되었다.
지금 전 세계는 제3의 세계화 물결에 휩싸여 있다. 그 물결의 물마루를 타고 있는 아시아의 두 거인인 중국과 인도는 가난과 예속의 600년 세월을 접고 이제 명예 회복의 길에 나서고 있다. 이 새로운 물결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는 시간과 거리의 초월 그리고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의 신속한 기술 이전일 것이다.
거대한 제조 공장으로서의 중국의 부흥
현재 중국은 진정한 대약진을 이루고 있다. 그 동력은 바로 제조 부문에 대한 투자다. 중국의 저축률은 GDP의 40% 이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외자의 막대한 유입도 중국 자체의 투자에 비하면 오히려 미미한 수준이다. 이러한 투자금은 거의 대부분 새로운 인프라 구축과 제조 공장 건설에 들어간다. 결과는 엄청난 생산의 폭발로 나타났고, 이로써 중국은 이제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라는 과거의 명성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은 세계 GDP 성장의 30% 이상을 일궈 냈고 국가 경제의 규모를 두 배 이상으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현재 중국은 위안화를 시장 환율로 전환할 것이냐, 아니면 국내 구매력 지수로 전환할 것이냐에 따라 세계 제7위 또는 제2위의 경제 대국이 될 수 있다. IMF는 중국이 앞으로 10년 동안, 어쩌면 더 오랫동안 7~8%의 연간 성장률을 유지하는 데 무리가 없으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중국의 GDP는 가장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2016년쯤엔 일본을 앞지를 것이며, 2040년엔 미국의 규모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중국의 국내 구매력 지수를 기준으로 한다면, 2025년에는 사실상 미국 GDP 규모에 육박할 것이다.
서비스업에서의 인도의 눈부신 비상
세계적으로 볼 때 인도의 발전은 중국의 발전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인도 역시 거대하고 가난한 나라다. 총 GDP는 약 6,000억 달러이고 11억 인구의 1인당 하루 수입은 약 1.5달러, 공식적 국제 가난 지수인 1일 1달러를 겨우 넘어선다. 하지만 중국이 그랬듯이 인도 역시 스스로 보유한 자산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 자산을 쓰기 시작했다. 2010년에 이르면 인도는 미국보다 영어를 쓸 줄 아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서 세계 최대의 영어 사용국이 될 것이다. 최대 5000~6000만에 달할 수 있는 그 인구는 잘 훈련된 사람들이며, 또 2000만 명 정도는 미국, 유럽을 비롯한 기타 지역에서 비즈니스, 의료, 기술 부문의 최상급에 다다른 이주자들이다. 인도는 현재 해마다 300만 명의 대학 졸업자를 배출하고 있으며, 이 수는 향후 5년에 걸쳐 6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는 미국의 130만, 유럽의 290만, 중국의 240만 명과 좋은 비교가 된다.
이처럼 양질의 노동력에 기술, 저비용, 품질 보장, 신속한 커뮤니케이션 등의 조건이 결합한다면 그 결과는 명백하다. 이제 앞으로 서비스 부문이 대거 인도로 아웃소싱됨으로써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이 그 영향 하에 놓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중국이 세계 제조업의 중심 거점이 됐듯이 인도는 이제 세계 소프트웨어 및 정보 기술 서비스의 중심 거점이 된 것이다. 이 현실을 무시할 수 있는 회사는 없다. 장차 2025년 인도의 GDP는 명목 환율을 기준으로 2조 달러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며 이것을 구매력 평가 지수를 적용하면 약 8조 달러에 달한다. 이 경우 인도는 세계 제3의 경제 대국이 되며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 될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미국에서 토머스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와 거의 같은 시기에 출간되어 많은 주목을 받기도 한 신간에서 저자는 미국과 세계가 마주할 미래의 경제 현실을 깊은 통찰력으로, 그리고 진지한 위기감으로 고찰하고 있다. 『세계는 평평하다』가 수평적이고 학술적인 관점을 기반으로 한 반면, 신간은 수직적이고 현실적인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궁극적으로 저자는 세계 경제의 거대한 흐름을 다양한 각도에서 중계하면서 세계화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예측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위기를 맞은 미국인들에게 여러 가지 대안을 제안하고 있는데, 그것은 미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나라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많은 국제경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독자들이 꼭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있다.
30억 신경제인이 세계 경제의 미래축(軸)으로 등장하고 있다. 한때 미국 상무성 고위 관리로 미일 통상 문제를 다루면서 명성을 날렸고 미국에 대한 자아비판도 서슴지 않았던 저자는 미래 세계 경제의 중심이 동양권으로 서서히 옮아가고 있음을 예리한 통찰력으로 분석하고 있다. 날로 세계 경제와 통합되어 가는 우리나라 경제의 앞날을 가름하는 데 이보다 더 훌륭한 책이 없을 것 같다. 세계 경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특히 우리 경제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한승수(前 외교통상부 장관)
제3의 세계화 물결과 미국의 미래를 포괄적으로 다룬 분석서이다. 세계화에 편승한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BRIC)의 새로운 도전을 이처럼 예리하고 역동적인 필치로 다룬 저서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특히 이러한 도전을 의식하지 못한 체 나르시시즘의 수렁에 빠진 세계 유일 초대강국인 미국의 한계와 고뇌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새로운 대안적 국가 전략을 제시하는 보기 드문 역서다. 그러나 정작 이 책은 미국보다 한국에 주는 함의가 더 크다. BRIC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연합과의 무한경쟁 속에서 21세기의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한국인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필독서이다. -문정인(연세대 정외과 교수)
통찰력이 가득한 이 감동적인 책에서 저자는 중국과 인도가 어떻게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합류하여 급격한 경제 발전의 물살을 타며 아시아 본연의 자리를 되찾아 가는지를 정확히 분석하고 있다. 또한 미국이 세계 주도권을 상실할 수도 있는 우를 어떻게 범하고 있는지를 뚜렷하게 보여 주고 있다. 모든 한국인의 필독서라 하겠다. -조석래(효성그룹 회장)
프레스토위츠는 중국, 인도, 구(舊) 소련 연방 국가들에서 출현하는 시장 경제에 초점을 맞추며,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가장 중요하고 새로운 힘임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 책은 정부와 기업인들에게 이 드라마틱한 힘의 부상에 대처할 새로운 전략을 짤 것을 요구한다.
-윌리엄 J. 페리(前 미국 국방장관)
프레스토위츠는 우리에게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 질서를 생각하라고 경종을 울린다.
-스티븐 로치(모건 스탠리의 수석 경제학자)
저자는 오늘날의 세계화를 또 다른 ‘창조적 파괴의 열풍’이라고 단언한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미국이 달러화 가치 하락과 빚더미 경제 때문에 경제 9ㆍ11에 직면할 것이라고 한다. 분석에 있어 토머스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보다 깊이가 있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저자는 현재의 워싱턴 행정부가 지닌 분별없는 자만을 폭로하는 데 있어 토머스 프리드먼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워싱턴 포스트》
세계화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필독서이다. -프레더릭 스미스(페덱스 CEO)
중대한 정책 변화 없이도 경쟁력을 잃지 않고 미래 속으로 순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이다. -크레이그 배릿(인텔 CEO)
중국과 인도의 부흥을 다룬 탁월한 신간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세계는 평평하다』 저자)
크리스마스 이브...
크리스마스는 일요일에
이브 토요일엔 하필 당직 근무라니..
황우석에 열광하던 무리들이 이젠 황우석 욕하고 놀리기에 바쁘구나
가장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고
하이에나 같은 무리들이 세상을 점령한 거 같다.
한 사람 한 사람과 무리는 어쩜 이리 다를까?
아니면 한 사람 한 사람의 나쁜 점이 부각이 되는 것인가?
무리의 익명성에 숨어 인간이 본성인 사악함이 빛을 발하는 것인가?
선한 개개인이 모여도 조직 구조상의 사악함이 선을 앞서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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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reak-飛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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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저 기간에 의료 생협과 함께하는 학생 모임도 일본 갔다왔던데 뭐 생협이 많군요.ㅋㅋ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