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허대짜수짜님!

2008/08/28 14:44

 

영화의 장르는 노동개그판타지였다. 어떤 장르든지 몇 개가 섞여들어오지만 개그도 재밌었고, 현실에 없는 꿈같은 내용도 중요하고. 그래서 노동/개그/판타지 영화.

 

울산 현대자동차에서 노조 대의원까지 하며 평생 열심히 노동운동을 한 허대수님은 100명의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는 사측과 싸우다가 비정규직 20명만 자른다는 적정선에서 합의를 보고 투쟁을 끝낸다. 내가 사장이야? 내가 짤랐어? 하면서도 비정규직 동지들 보기 초큼 거시깽이하고... 그러던 와중 미운털 박힌 비정규직 직원이 애지중지하는 딸이 결혼하려는 자임을 알고 저지하려 하는데...< 더 쓰면 스폼

 

요즘 개인이 시대 앞에 정말 무력하구나 슬퍼하고 있는데 영화에도 나온다. 허대수님이라고 왜 고민이 없겠는가? 20명을 끌어안고 투쟁할 것인가 80명 안전하게 갈 것인가 계산이 필요할 것이다. 파업하면 손배 때리고 감옥에 쳐넣고, 20명 안고 가려다가 200명 잃는 거 아닌가 두려울 것 같다. 살기 위해 투쟁하는 건데, 정말 다 죽이려 들고. 현장에 없는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 거 같다.

 

10년 전, 산재 처리도 안 되는 근골격계 질환을 얻고 회사에서 쫓겨난 친구는 투쟁해 보고 싶다고 하지만, 다른 투쟁으로 바빴던 허대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픈 동료를 가벼이 여긴 건 아니고 너무나 바빴겠지만 역시 소홀히 했으니까 일말의 도움도 주지 않은 거고, 그렇지만 허대수님이 초인도 아니고 모든 투쟁을 다 할 수는 없고 투쟁의 우선순위를 매겨야 했겠지. 그것도 참... 감히 말하기 힘들다.

 

갑갑할 수 있는 얘기를 보는 사람 불편하지 않게 풀어낸 것 같다. 정규직vs비정규직 문제의 세밀한 결들을 다루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문제를 축소/단순화시키고자 함이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관객이나 정규직을 공격하지 않고 진짜 연대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으로 호소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하에 쓰는 지적은 앞으로의 더 좋은 영화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는 거다. 내가 상업영화를 쉽게 막말하는 것과 다르단 걸 글로 나타내야 하는데 잘 못해서 비겁하게 적어둠.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관계자분이 보시고 실망할까봐;

 

 

영화가 어떤 관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걸까. 전단지에 써있는 신문기자의 말처럼 정규직에 대한 호소인지 계몽인지. 이 문제를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근데 비정규직이랑 정규직이 뭐가 다르지?"라는 의문을 자아내고, 좀 아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갈등이 봉합되는 과정이 너무 허황된 거 아닌가.

 

갈등도 단순화시키기 위해서 비정규직 사윗감은 너무 훈남이다. 훈남을 넘쳐서 대인배... 또 마지막에 허대수씨가 (자초한) 비정규직 투쟁에 함께 하겠다고, 다른 사람 의견 듣지도 않고 벌떡 일어나는 건 뭐지. 노조가 원래 대의원 개인 변덕 하나에 좌우되는 건가? 사실 노조 활동에 대해 전혀 몰라서, 실제로는 안 그렇겠거니 싶으면서도 진짜 실제로는 그러는 건가 싶다. 영화적 과장이라고 보기에는 그렇게 개인적인 마음으로 결정하고 벌떡 일어나는 건 영화에서 아무 역할이 없다. 오히려 영화의 말미를 급하게 끝내버린다. 옛날 선전 영화에서나 볼 법하지 않은가. 

 

또 문제를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도로 단순화시키기 위해서 딸과 엄마의 관계는 부차적인 게 아니고 3차적으로 나온다. 단지 엄마의 비중이 적은 게 아니고 엄마와 딸의 관계는 아예 없어 보이는... 그냥 자연스러운 대화나 제스쳐 몇 개만 넣어줘도 좋았을텐데.

 

그리고 이것은 지적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훈남 사윗감의 옷 메이커가 써스데이 아일랜드였다. 그 라벨이 자꾸 신경쓰였다. 어깨에 붙은 그 상표, 떼고 찍었으면 좋았을 걸.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써스데이 아일랜드 못입는다는 건 아니다. 거기도 파격세일하면 2,3만원에 티셔츠 살 수 있고, 좀 비싸도 입을 수도 있는 거지. 다만 캐릭터랑 걸맞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내 자신에게 그럼 비정규직의 한 '전형'을 보여주게 완벽히 가다듬어져야 했냐는 의문이 드네. 흠... 그건 아닌데 말이다. 그렇지만 써스데이 아일랜드 사입는 삘이 전혀 아니었다, 캐릭터에 안 맞았다가 맞는 말이겠다. 전형적인 인물상으로 그러라는 게 아니고.

 

그렇지만 이건 상업영화는 아니다. 그렇지만 아마도 대중영화인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큰줄기 위주로 부드럽게 만들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럼 영화적 완성도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으음... 그러나 영화의 스타일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보다는 내용 면에 고민의 무게를 두는 것 같다. 그래서 뭐 스타일을 가지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실상 일반관객인 나로서는 수십 수백억 들이는 상업영화의 때깔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만 더 흥미롭게 찍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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