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으로 내 짐을 옮겨야 하는데 내가 안 싸니까 아빠가 막 싸서 막 옮김. 그 중에 중딩때부터 모은 편지함을 버린 줄 알았는데 집에 있었다!(중딩까지 모은 건 엄마가 실수로 버림;) 아침에 아빠가 짐싸며 흘린 만화책 없나 할머니 방에(*옛날엔 내 방) 살피러 들어갔다가 기타 피스랑 묶어놓은 걸 찾았다.(아빠가 내 만화책 두 권을 책장 받침용으로 무단으로 사용한 걸 발견했다. 다행히 내가 버릴 책들이기에 망정이지 용서못해 글치 않아도 책이 조금씩 없어진 거는 아빠가 어디서 흘리거나 이런 식으로 써먹은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는데 아빠는 그 두 개만 한 거라고 발뺌<)
아무거나 꺼내서 두 개 읽어보았는데 하나는 짝꿍이 짜증내서 미안하다, 네가 그렇게 말해서 깜짝 놀랐다, 꼭 화풀고 답장해라 물어볼 게 있다는 거였고 다른 하나가 두 사람 관계에 대한 거였다. 그러고보니 걔에 대해서 쓴 적이 있을 것 같은데..
언제 같은 반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편지 내용을 살펴보니 고2때부터인 것 같긴 한데.. 수능 몇 주 전부터 전주까지 며칠간 써서 보낸 편지였다. 같이 영화 보고 얘기하는 유일한 친구였다. 각자 티비에서 해준 <졸업>을 보고 다음날 달려가는 마음으로 만나서 열정적으로 얘기했던 게 떠올랐다. 서울로 영화도 보러다녔던 것 같은데.. 그런 퀴퀴하고 뜨거운 분위기에 대해 걔가 많이 얘기해줬던 것 같은데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의 내 영화 보기는 걔랑 피씨통신 영화채팅방으로 점철되어 있었는데 이젠 기억도 잘 안 남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는데라고 쓰고 이름이랑 영화라고 검색해봤는데 없긔
다른 친구들이 나를 독점하려고 든 데 반해 얘는 나에게 매우 쿨하게 굴어서 약간 해방감을 느꼈었는데 어느날 다가와서 자기에게 솔직해지겠다며 나를 꽉 끌어안고 너무 좋다고... 스스로가 변한 자기자신에게 적응하지를 못 하다가 혼자 멀어졌다. 수능 끝나고는 대학 때문에 바빴던 걸까, 수능 전에 편지 받은 기억도 없지만 끝난 뒤 얘와의 관계는 전혀 기억에 없다.
그렇게 갑자기 나를 솔직하게 좋아하기로-_- 한 기간 중에 쓴 편지였다. 거기에 엄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네가 유리인형같다, 네가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인 걸까? 아니었어도 그랬을 것 같다 뭐 그런 얘기가 적혀 있었다.
내가 유리인형같다는 얘기를 들었었다니... 웃기다. 엄마가 돌아가신 건 1년 전인데 그럼 1년이나 나를 유리인형으로 생각했던 거늬... 그 때 얘 마음을 무심히 지나쳤던 건 내가 사랑받는 데에 너무 익숙해서였을까 아니면 내 불행에 붙들려서 나밖에 생각을 못해서였을까? 편지에 관계가 역전이 된 것 같다는 말이 있는데, 확실히 나는 무심했던 걔를 좋아했고 나를 좋아한다고 전격 고백한 뒤에는 관심이 식었던 것 같다. 아, 너도. 너와의 관계도 특별한 게 아니었구나 하고. 사랑받는 데에 익숙한 미친 여고생이었음 여담이지만 지금 예비남편도 무심한 것에 반했다. 그러고서는 끊임없이 관심을 표명할 것을 지치지도 않고 매일 요구함... 이젠 미친 여고생도 아닌데<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가끔 회상하고는 하는데 대체로 예쁜 애들... 그래서 카테고리 제목도 미녀 시리즈라고 지었었는데... 어떻게 얘를 별로 회상하지 않고 살아왔는지 신기하네. 스티커 사진집 어쨌더라... 찾아봐야지 얼굴이 잘 기억이 안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