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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혁명적 사회주의 (Leninism Under Lenin), 마르셀 리브만 (Marcel Liebman)
제1부. 레닌주의의 태동 제2장 레닌주의의 정책과 전략, 65~92p, 발제 : W 2011.08.08
(1) 레닌과 부르주아민주주의
(2) 동맹의 문제 : 레닌과 자유주의
(3) 레닌과 의회주의
(4) 부르주아혁명과 노동계급혁명
(5) 레닌과 연속혁명(Ⅰ)
(1) 레닌과 부르주아민주주의
1904년 말, 그리고 대체로 1905년 혁명이 발발하고 나서 볼셰비키 논쟁과 멘셰비키의 논쟁은 혁명전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확산됨.
러시아에서 산업화와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충분히 발전한 사회에서 사회주의가 태어날 것이라는 도식을 러시아에 적용하는데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낳음
1) 러시아의 자본가계급이 국가권력을 맡겠다고 나설만큼 강력한가?
2) 인구의 대다수가 농민인 나라에서 마르크스주의 전망이 타당한가?
3) 서유럽처럼 러시아의 자본주의도 국가의 간섭없이 역동성을 띨 것인가?
4) 러시아에 실재하는 집산주의 농업 전통이 자본주의를 우회하게 해줄 수 없는가?
===> 마르크스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충분한 해결책을 제공해 주지 못함.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운동의 역사발전이라는 개념을 갖추게 함으로써 정치적 목적과 혁명전략 면에서 중요한 결과를 낳게 되어 있던 몇 가지 확신을 운동해 부여해 줌.
서구의 사회주의는 혁명적 자본가계급이 떠맡은 민주주의적 자유를 위한 투쟁을 한번도 거부한 적이 없었다.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자들도 비슷한 태도를 취함.
레닌,
“노동자에게 정치적 자유를 위해 싸울 것을 요구하는 것은 그에게 진보적 자본가계급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적 자유가 주로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에 봉사할 것임을…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닌은 왜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계급의 이해관계에 봉사할 정치체제를 야기하기 위해 싸워야만 하는지 그 근거를 제시한다.
“노동자는오직 근로인민의 주요한 적인…자본…에 대한 긍리의 길을 환히 밝히기 위해서만 보편적인 민주주의적 요구의 달성을 필요로 한다.”
“자본가계급이 지금처럼 정책에 은폐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보다는 공공연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노동자들에게는 훨씬 더 득이 된다.”
“정치적 자유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광범한 대중투쟁이 전개될 때에만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의 최종적 승리를 위한 조직을 발전시킬 수 있다.”
===> 레닌과 러시아 사회주의자들 일반은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제시. 이 투쟁에서 성공하는 것이야말로 자본가계급의 권력을 서서히 약화시키고, 마침내는 노동자권력에 이르게 할 노동자계급의 완전 승리로의 길을 열어젖힐 것으로 판단. 레닌과 멘셰비키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없음.
(2) 동맹의 문제 : 레닌과 자유주의
사회주의 운동이 민주주의적 성취를 지키기 위해서 어떤 세력과 동맹을 맺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문제가 제기되자 레닌과 멘셰비키는 의견을 달리함.
===> 사회계급 사이의 관계와 일상적인 전술과 혁명전략에서 각각의 계급에게 부여된 역할문제를 이해하는 차이.
1904년말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된 정치캠페인과 젬스트보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의견을 달리할 때 까지, 레닌과 멘셰비키는 다음과 같은 동일한 견해를 가짐.
===> 노동자당의 완전한 독자성이 계속 유지되는 따라서 당이 노동자계급을 조직하고 본질적으로 노동자들이 자신과 부르주아 동맹세력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적대적 이해관계를 자각하게끔 정치적으로 교육시키는 임무 수행을 방해해서는 안되는 범위내에서 자유주의의 민주주의파와 동맹을 체결해야한다고 인정.
자본가계급으로 하여금 때로는 짜르체제에 저항하게 하고, 때로는 타협하게 하는 모순적 상황을 이용하여 자본가계급에게 압력을 가하고, 따라서 자본가계급을 왼쪽으로 밀어붙일 필요가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멘셰비키의 젬스트보 캠페인에 대한 태도 : 젬스트보 캠페인을 지지하기로 결정, 노동자계급에게도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지지를 행동으로 보일 것을 요구. 아울러 자유주의 동맹세력들을 놀라게 할지도 모르는 일은 피하라고 노동자들을 훈계. 자유주의자들에게 가하는 압력도 신중하고 온건한 성격의 것이어야 함. ===> 몇 가지 유보조건에도 불구하고 자본가계급의 혁명적 역할을 굳게 믿음. 지지대신으로 주어진 자유주의자들의 약속과 보증을 확실히 하는 것을 원함.
레닌과 볼셰비키 :
“유감스럽게도 혁명적 노동자계급과 싸우기 위한 온건한 젬스트보주의자와 정부의 동맹은 분명히 있을 수 있고, 또 거의 확실하다.” : 실제로 역동성이 전혀 없는 러시아의 자본가계급은 혁명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자본가 계급은 반혁명적”이라고 선언.
1905년 혁명이 일어난 첫 몇 개월 동안 “자본가계급은 노동계급혁명을 더욱 두려워하게 될 것이며, 더 서슴없이 반동의 품속으로 몸을 던질 것이다.”
1905년 9월 “혁명이 진전될수록…자유주의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럼에도, 레닌은 “공화주의적, 혁명적 자본가계급”과 “자유주의적, 왕당파적 자본가계급”을 구별.
자본가계급과 소부르주아 계급(농민)을 구별.
===> 1905년 혁명이 끝나고 1914년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멘셰비키주의에 대한 레닌의 투쟁은 주로 자유주의에 대한 투쟁, 사회민주주의자와 입헌민주주의자들의 동맹을 목표로 하는 모든 경향에 대한 투쟁이었음.
(3) 레닌과 의회주의
입헌민주주의자들의 의회 그룹에 대해 견지해야 하는 태도와, 두마의 사회주의 대의원 그룹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 문제에 대해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사이의 의견이 반목. 의회기구에 대한 혁명정책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으며, 비혁명적 시기의 사회주의 전략에서 전혀 다른 두 가지 유형의 모습을 드러냄.
멘셰비키 : 두마를 지지하고, 두마의 특권확대를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해야 할 피룡가 있다곡 생각. 1906년 스톡홀름 당대회에서 두마가 진보적인 역할을 맡을 능력을 갖췄다는 결의문을 통과시킴. 나중에 멘셰비키 그룹이 분열되고 다수의 지도자들이 합법정당 결성을 주장하자, 두마의 사회주의 대의원 그룹을 재조직된 사회주의 운동의 정치적 중심축으로 삼자는 생각이 부활함. 가능하면 언제라도 입헌민주주의자들과 선거동맹을 맺으려 함.
===> 멘셰비키 사이에서 특히 중도주의와 개량주의가 점증하고 있다는 하나의 징후, 유럽사회주의 운동에서 점차로 두드러졌던 ‘의회주의’현상을 러시아적 맥락에서 표현.
레닌 :
- “입헌주의적 환상”에 대해 경고.
“실질적인 권한이 전제주의 정부의 수중에 있는 한, 의회를 수단으로 정치적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민에게 설명하고, 노동자계급과 혁명적 소부르주아 계급, 특히 농민의 요구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두마의 완전한 무용성”을 인민에게 보여줄 것을 당에 촉구.
===> “일단 우리 볼셰비키들이 어떤 약속을 했다면, 그것은 오직 두마는 반혁명의 산물이며, 실질적인 이익이 전혀 기대되지 않는다는 우리의 확신 때문이었다.”
- 두마에 대한 완전 보이코트를 촉구한 경향과도 투쟁.
사회주의자들의 의회활동 참여는 무엇보다도 노동자들 사이에서의 당의 정치선동을 확대하는데 도움을 준다. : 두마의 연단이나 선거운동을 통해 제공된 사회주의 선전의 모든 기회는 최대한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사회민주당의 임무는 오직 의회주의의 정체를 폭로하기 위해서만 의회제도에 참여한다.
두마의 사회민주주의 그룹의 역할과 지위
‘비판, 선전, 선동, 조직화 임무’를 수행하는 것
“사회민주주의 그룹이 두마에 제출할 법안의 용도는 즉각적인 ‘입법화’가 목적이 아니라 이런 임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당 중앙위원회에 두마 그룹에 ‘지시’를 내릴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고 규정한 1907년 런던 당대회에서 통과한 동의안을지지.
===> 1906년에서 1914년 사이에 레닌은 의회 그룹을 당의 가장 엄격한 통제 아래 두기 위해 끈기있게 싸움. 전쟁직전 몇 년 동안, 레닌은 두마의 자지 지지자들에 대해 완벽한 권위를 행사. 이때, 이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레닌은 이들의 연설문 대부분을 직접 씀.
당의 혁명활동을 확대하기 위해 두마를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기 위한 두가지 조건
첫째, 사회주의 대의원들이 부르주아 의회주의 동료들에게 오염되지 않아야 함. 따라서 입헌민주주의자들과 어떤 협정도 금지.
둘째, 사회주의 대의원들에게 허용되는 임기응변의 자유는 최소로 억제.
선거동맹 : 오직 소농을 대표한 정당들과만 협정을 체결.
(4) 부르주아혁명과 노동계급혁명
멘셰비키와 레닌의 일치점 :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러시아혁명의 부르주아적 성격에 대해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멘셰비키 : 자본가계급 스스로 부르주아혁명을 이끌 것이며, 노동자계급은 단지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 부르주아 권력은 부르주아 정당에게, 노동자의 저항은 노동자계급의 대표에게 맡기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혁명이후 부르주아 질서내에 야당역할 자신을 위치. 서구의 반여당주의 태도. - 사회주의 장관들은 부르주아 정책에 관련됨으로써 체면을 구기거나, 사회주의 질서를 도입하기 시작할 것이므로 모험주의적 노선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임으로 임시정부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러시아의 특수성 : 도시경제 자체가 러시아에서는 매우 부착적인 위치를 점함. 산업노동자 계급이 혼자서 러시아에 사회주의를 세우기에는 실제로 너무 미약, 반면에 자유 자본가계급은 사회적, 정치적 역량이 미비하여 국가에 대한 종속은 서구의 ‘중간계급’이 누린 상당한 정도의 독립과 대조됨.
레닌 : 1905년 러시아혁명은 성격상 부르주아민주주의적이지만 “완전한 자유와 공화국을 위하여 결연한 투쟁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인 노동자계급에 의해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 노동자계급과 소농대중의 동맹 : 물론 당면 임무가 사회주의를 수립하는 것이라면 농민의 소부르주아적 본성이 노동자계급과의 동맹에 장애가 되지만, 오직 부르주아 혁명만이 의제라면 해당되지 않는다.
===>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 혁명적 노동자당은 혁명정부내에 자리잡아야 한다. 당 지도부는 현재의 발전 가능성들을 무시하지 않고,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을 매우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임시정부는 오직 조직화된 노동자계급이 참여했을 때에만 혁명적일 것이다.
레닌의 모순 : 러시아 혁명이 사회적, 경제적 본질에서 부르주아적이지만 도시 노동자계급과 소농대중의 동맹의 의해 수립될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는 정치적인 면에서 반부르주아적일 수 있다. 반면에 레닌 자신이 말한 것처럼, 이 혁명이 “주로 대자본가, 재계의 거물, ‘계몽된’ 대중에게 유리한 형식”을 취할 것이라면, 우선 이 부르주아혁명의 승리를 노동자계급에 의해 획득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5) 레닌과 연속혁명(Ⅰ)
1905년은 부르주아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의 압축이라는 문제를 즉각 제기. 트로츠키만이 이를 완전하게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었음.
트로츠키의 <평가와 전망>
“노동자계급의 수중으로 구너력이 넘어갈 정확한 시기는 직접적으로는 생산력의 수준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여러관계, 국제적 상황,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노동자들의 전통, 주도력과 투쟁 각오 등의 수많은 주관적 요인들에 달려 있다.”
“노동계급독재가 어떤 점에서는 한 나라의 기술 발전과 자원에 자동적으로 좌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황당무계하게 단순화된 ‘경제적’ 유물론의 편견이다.”
“경제적 후진국의 노동자들이 선진국의 노동자들보다 더 일찍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
레닌의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독재’ 정식 거부. “적어도 즉각적, 직접적 의미에서 실현될 수 없다. ===> 노동자 계급이 농민을 각성시켜야 함. 농민들이 여전히 자신의 정치조직을 갖지 못했다면, 노동자계급의 공세적 운동을 따를 것임.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혁명의 내적 메커니즘에 의해서 정치적 지배로 상승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사명을 자본가계급의 사회적 지배를 위한 공화주의적-민주주의적 조건을 창출하는데 국한시켜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설사 그것이 바람직하더라도 아주 심한 공상일 것이다.”
“서구의 사회주의혁명이 우리로 하여금 노동자계급의 일시적인 지배를 사회주의 독재로 직접 전화시켜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줄것이라는 사실은 한 점의 의혹도 없다.”
절제된 어조.
도이처 “이때까지 레닌은 이 책에 대해 부분적인, 그것도 간접적인 지식밖에 없었다. 1919년 이전에는 트로츠키의 <평가와 전망>을 실제로 읽지 않았음이 정설인 것 같다.”
1927년 요페가 트로츠키에게 보낸 편지 : “나는 레닌이 1905년에 옳았던 것은 자신이 아니라 당신이었다고 인정하는 말을 내 귀로 직접 들었다고 당신에게 자주 말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지금 당신에게 다시 한번 그대로 반복합니다.”
본책은 레닌의 생각이 트로츠키와 유사했다는 것으로 결론
1905년 봄 :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 올바른 마르크스주의의 3단계 도식을 상승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그다지 크지 않은 부분 말하자면, 하나의 단계만을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만약 우리가 이 도식에 따라서 상승이 시작되기 전에 ‘혁명적 시기의 행동 계획을 작성’하려고 애쓴다면, 우리는 속물근성의 달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1905년 9월 ‘트로츠키주의적인 글’ : “민주주의혁명으로부터 우리는 즉시, 그리고 우리가 가진 힘, 계급의식적이고 조직화된 노동자계급의 힘의 정도에 일치하여 사회주의혁명으로의 이행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연속혁명을 지지한다. 우리는 중도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부르주아혁명에서 사회주의혁명으로의 이행에 대한 레닌의 생각
: <<두가지 전술>>에서 그는 이 이행기가 짧을 수 있으며, 당의 태도는 이 이행을 적극적으로 촉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고, 당의 모든 정책은 이행을 준비하는데 맞춰져야 한다고 지적. 혁명의 부르주아 단계와 사회주의 단계 사이에 실질적인 단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임. “현재 혁명의 완전한 승리는 민주주의혁명의 종결이자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결연한 투쟁의 시작을 표시할 것이다.”
혁명의 국제적 연속성 언급
노동자계급이 패배하고 전제정권이 부활하자, 레닌은 1905년에 어뜻 비췄던 ‘연속혁명’전망을 포기한 것 같다. 1917년이 되어서야 이 전망은 비로소 다시 나타타고 승리를 거두는 레닌의 정책이 된다.
<<토론 및 점검 내용>>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단계에서의 자유주의부르주아에 대한 태도와 사회주의 혁명단계에서의 태도
반여당주의에 대하여
선거전술 : 현시기 선거전술, 의원그룹이 구성된다면 레닌의 이해와 동일한 지위부여?
계급동맹 : 현재 계급동맹이 의미 있는 전략인가?
연속혁명과 국제주의, 1917년 혁명과 더불어서....
[레닌의 혁명적 사회주의_2장 레닌주의 정책과 전략.hwp (26.00 K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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