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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경제연구소 한미 FTA 보고서 비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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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미 FTA 반대론 반박의 허와 실
 
한미 FTA 에 대한 반대론이 대부분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단정하면서 자신의
무지를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민주 사회의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는 도저히 해서는 안될 행위를 일삼았던 대통령 노무현 씨와는 달리, 이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가 지닌 유일한 장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들이 한미 FTA 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무엇인가를 소개하고 나름대로 반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의 반박 “한미 FTA 반대론의 허와 실”은 필자로 하여금 ‘반박의 허와 실’이라는 제목을 즉각 연상시킬 만큼 근거 없는 억측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이 쓴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FTA 를 반대하는 주장에는 크게 5 가지 부류가 있다. 첫째로 (1) 개방 자체에 대한 반대론이 있고, (2) 농업 피해에 대한 우려론이 두 번째요, (3) 미국식 경제모델의 도입에 대한 거부감, (4) 협상 절차 및 내용에 대한 비판, 그리고 (5) 다자간 무역체제를 위협한다는 주장 등이 그것들이다. 이 절에서는 이 보고서 집필자들의 반론들을 하나하나 짚어보고자 한다.
 
개방의 부작용에 대한 과도한 우려(?)
우선, 그들은 한미 FTA 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개방에 따른 일부 산업의 피해에 관심을 집중”하거나 “외환 위기 이후 개방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을 개방 반대론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미 FTA 는 “준비되지 않은 개방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스스로 선택한 능동적인 개방”이라는 말도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한 주장은 개방에 따라 피해를 입을 산업부문이 단순히 “일부” 농수산물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민 경제 전체 내에서 여전히 압도적인 다수의 고용과 임금을 보장하고 있는 중소기업 분야 및 이에 기반한 서비스업 등, 한국의 독점재벌 기업들이 어느 정도 국제 경쟁력을 갖춘 산업부문을 제외한, 전 영역에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경우에 따라 다수의 이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소수가 희생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전체주의자들의 논리보다도 더욱 무서운 극단적인 주장이다. 간단히 말해 이것은 이 보고서를 쓴 연구원들이 소속되어 있는 삼성 기업의 반도체와 일부 전자 제품 분야, 그리고 자동차 산업과 조선업 분야의 잠재적인 이윤 증대를 위해서 전체 국민 경제가 희생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이 보고서의 작성자들은 그들이 말하는 “산업구조의 고도화”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미 FTA 를 통해 ‘어떤 성장 동력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인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재정경제부는 한미 FTA 협상과는 별개로 이미 수년 전부터 자체의 입법 제청권을 이용해 ‘금융산업 통합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바 있다. “금융산업의 발전과 산업구조의 고도화”라는 동일한 명분을 내걸고 진행된 이 법적 조치는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은행 산업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통폐합으로도 모자라 이제 덩치를 키운 국내 은행을 미국식 투자은행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거창한 계획을 내걸고 있었다. 혹시 이 보고서의 작성자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인가? 국내 은행산업을 미국식 투자은행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바로 이들이 말하는 산업구조의 고도화인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금융산업의 발전이건 산업구조의 고도화이건, 일체의 금융정책은 제조업과 비금융 산업 분야의 장기적인 투자와 고용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제도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금융산업 분야의 고유한 사업영역과 요건 등에 관한 강력한 감시와 규제를 위한 법적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이름을 붙이건 간에 그것은 압도적인 다수의 중소기업과 그 기업들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막대한 이윤 유보금과 비은행권 금융기업이 소유한 금융자산을 차용할 수 있는 소수의 재벌 기업과 금융 자산 소유자들의 이익만을 체계적으로 보장하는 ‘가진 자들의 천국’을 만드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금융산업 통합법과 강력하게 결합된 한미 FTA 는 압도적 다수를 희생시키면서 소득을 재분배하는 강력한 외부적 지렛대로 작용할 것이다.
 
세계화 = FTA(?)
개방 자체를 반대하는 논자들을 비판한답시고 이들이 왜곡하고 있는 또 한 가지 사례가 있다. 그것은 “세계화의 흐름은 거부하기 힘든 추세이며 개방을 거부하는 것은 세계적 경쟁 대열에서 이탈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다. 더불어 이 보고서의 작성자들이 “지난 50 년간의 고도성장이 바로 개방을 통한 교역 확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이러한 이들의 발언은 미국과 FTA 를 체결하지 않은 수많은 나라들의 존재를 간단하게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 정부는 어떠한 전략적 개방 정책을 취해야 할 것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언어적 폭력이다.
이 지면을 빌어 거듭 말하건대, “세계화의 흐름이 대세”라는 주장, 그래서 한미 FTA 를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는 대통령 노무현과 정부 당국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는 왜 유럽 각국들은, 심지어 이웃한 일본이나 중국은 미국과 양자간 투자 협정을 체결하지 않고 있는가 라는 간단한 의문을 품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드러난다. 이것은 그들이 FTA 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양자간 협정의 불평등성을 정확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 경제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적 안전장치에 대해 FTA 와 같은 양자간 협정이 어떠한 악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0 년간의 급속한 산업화 과정이 개방을 통한 교역 확대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현실을 오도하는 주장에 불과하다. 지난 50 년간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시작된 강력한 국가주도적 수출지향적 산업화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강요, 억압적 노사관계, 정치적 권위주의 체제의 지속이 바로 한국 경제의 급속한 산업화 과정의 이면에 자리잡은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국내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정책 금융과 보조금 및 수출 장려금 등의 물질적 인센티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중앙집권적 국가 계획을 통해서 중화학 공업부문과 자본재 산업부문을 속성 발전시켰던 것, 바로 그것이 2 차 대전 이후 식민지 체제로부터 독립했던 신생 독립국가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한국(과 소수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산업화를 달성할 수 있었던 조건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바로 이 과정이야말로 이 보고서를 쓴 연구원들이 부역하고 있는 한국의 재벌체제가 형성되는 과정 그 자체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는,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보고서의 작성자들이 맹목적으로 신봉했을 세계은행(World Bank)의 1993 년 보고서조차 인정하고 있는 엄연하고도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농업부문 피해에 대한 과장(?) – 희생자 때리기
다음으로, 이 보고서의 작성자들이 거론하고 있는 ‘부실한’ 한미 FTA 반대론은 국내 농업부문에 대한 피해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내걸고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들이 반박의 근거로 내세운 주장들은 도처에서 서로 모순되고 있다.
한편으로 이들은 우루과이라운드와 한-칠레 FTA 가 농업부문에 끼친 피해는 “당초의 예상보다 크지 않다”고 강변하면서 한미 FTA 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이들은 “1992 년부터 2006 년까지 130 조원이 넘는 예산이 농업과 농촌에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이 “비용 편익 등 경제성을 철저하게 따지는 경영적 관점이 취약”했기 때문에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 차원의 이와 같은 재정 지원에도 불구하고, “농가 소득증가율이 둔화되어 도시와의 소득격차가 계속 확대되고 가구당 부채 규모”도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이들은 (1) 우루과이라운드와 한-칠레간의 FTA 가 실제로 농업 분야에 커다란 충격을 주지 않았고, 게다가 (2) 정부가 130 조원이나 되는 예산을 투입했다는 것을 고려할 때, (3) 여전히 농민들이 점증하는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외부의 충격 때문이 아니라 결국 그들이 무식하고 게을러서 그렇게 된 것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들은 마치 한미 FTA 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현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농업 지원 프로그램을 마지막 남은 한번의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은근히 협박을 해대고 있다. “농업의 구조조정과 생산성 제고가 필요한 상태에서 한미 FTA 에 대비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잘 활용할 경우 농업이 효율적인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사실상 이러한 협박과 다를 바 없다.
여기서 이 보고서의 필자들이 몸담고 있는 한국의 재벌체제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왔는가를 다시 진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더불어 농민들에게 “국내 농업 시장과 국제 농업 시장간의 가격 연계성을 제고”시키라고 짐짓 점잖게 충고하고 있는 이 보고서의 작성자들이 과연 연방정부의 막대한 농업보조금과 시설 지원 그리고 자국 농산물의 가격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개발도상국과의 협상에서 농업시장 접근 장벽을 낮출 것을 강권 협박하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농업정책을 과연 어느 정도까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질문할 필요성도 필자는 느끼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그렇게까지 한국 “농업부문의 생산성 제고”와 “경영 마인드의 확충”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한국과 같은 소규모 경지에서도 실제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보고서의 작성자들이 몸담고 있는 삼성경제연구소를 역시 다소 경영 마인드가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준 국책연구기관 농촌경제연구원에 복속시킬 것을 공개적으로 제안하는 바이다.
 
유럽의 우파 vs. 한국의 ‘수구 꼴통’
세 번째로 소위 “경영 마인드”로 무장한 이 연구원들이 거론하는 한미 FTA 반대론은 미국식 경쟁체제의 도입에 대한 거부감이다. 이들은 설사 “미국식 모델”과 “유럽식 모델”이 이념형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쟁체제의 강화”라는 “세계적인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도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을 도입하는 추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이들이 거론한 스웨덴의 2006 년 선거에서의 우파 정부의 집권은 이 연구원들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서유럽과 북유럽의 서구 복지국가들 내에 존재하는 우파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원들이나 한나라당의 ‘수구 꼴통’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우파라는 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에서 우파는 임금 소득의 45% 이상을 사회복지를 위한 세금으로 거두어 들이는 것이 ‘노동과 투자의 창의성을 줄일 뿐만 아니라 혁신주도적 기술 변화를 촉진하는 데에도 방해’가 된다고 주장하면서 40% 정도로 사회연대세를 낮추어야 한다고 말하는 우파이다.
그들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전국민 의료보험제도의 실시를 제외하고는 멕시코와 더불어 여전히 최하위의 바닥권을 헤매고 있는 한국의 우파들, 심지어 그나마 김대중 정부 하에서 사회복지비를 조금이라도 올리려고 했던 시도를 ‘복지병’을 운운하면서 격렬하게 반대했던 한국의 ‘수구 꼴통’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부류의 우파들이다.
물론 글로벌화에 따른 국제경쟁의 중요성과 이에 따른 경쟁 체제의 강화를 떠들어 대는 것은 서유럽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이들이 실제로 지금까지 존재했던 사회체제의 기본 근간으로서의 복지정책의 취지와 지향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급격하게 축소한 사례는, 90 년대 내내 그토록 세계화라는 구호가 유령처럼 전세계를 횡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차례도 없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원들이 한미 FTA 체결을 강행하기 위해 독자를 기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전세계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강력하게 요구한다. 서유럽 복지국가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실질적인 복지 정책의 대폭적인 축소를 경험한 사례를 제시해 보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럽 국가들도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미국식 금융체제와 노동구조를 하루라도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독자들을 기만 협박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개방의 지표와 소득 재분배 효과
미국식 모델의 수용과 관련된 논란과 더불어, 이들은 (1) 세계화나 개방이 양극화의 원인이 아니며, (2)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도입에 관한 우려도 과장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이들은 “개방이 없었을 경우 국가간 또는 일국내의 소득 불균형은 더 심화되었을 것이며, 세계화의 흐름에 부응한 국가가 더 많은 이익을 향유”했다는 세계은행과 NBER 연구 보고서를 각각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서는 “세계화”와 “개방”의 정도를 도대체 어떤 지표를 이용해 측정했는가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예컨대 박정희 정권 하에서 국내 특정 산업에 수출 보조금을 지급하고 각종 조세 혜택을 제공하며 더불어 선택적 정책 금융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수출 목표를 달성하도록 장려된 기업이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당연히 그 기업은 미국이나 기타 해외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상당 부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기업과 정부는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가 인용하고 있는 세계은행 보고서에서 개방 국가로 분류될 것인가?
기왕 가정법을 사용한 김에 또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현재 한국의 국민은행을 포함한 거대 시중은행 자산의 상당 부분을 해외 자산가들이 소유하고 있다. 국내의 주식시장은 물론 주요 자산에 대한 해외 기관 및 개인 투자자들의 자산 투자 규모는 거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증대해 왔다. 다시 말해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자산 및 금융시장은 한두 가지의 긴급 예외 조치를 남겨두고 거의 개방되었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철저하게 세계화 또는 개방되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이 인용하고 있는 세계은행의 보고서는 이와 같은 단적인 사례 가운데 어떤 개방을 계량화해서 분석한 것인가?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점증하고 있다. 중국은 상품 무역 수출을 통해 막대한 외환 보유고를 유지하고 있고, 이를 활용해 국내 산업 기반 건설과 정책 금융 지원은 물론 해외 도처의 에너지 자원을 구입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은행의 보고서에 비추어서 이미 세계화된 나라인가 아닌가?
이러한 모든 의문들은 결코 단순한 비아냥이 아니다. 어떤 경제학자가 세계화 또는 개방의 정도가 일인당 국민소득 증가율과 긍정적인 상관관계 (positive correlation)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세계화와 개방의 정도를 측정할 것인가, 도대체 어떤 지표를 어떻게 계량화하여 개방의 정도를 가늠할 것인가를 먼저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기본적인 상식이다.
이 기본적인 상식도 지키지 않은 채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세계화 또는 개방이 일인당 국민소득 증가율과 긍정적인 상관관계를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아예 세계화 또는 개방 그 자체가 소득 증가를 가져온다는 인과론적 설명(causal relation)으로 세계은행의 보고서를 왜곡하고 있다.
한미 FTA 라는 이름의 양자간 협정이 국제무역기구(WTO) 체제 하의 다자간 협정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또는 국제무역기구 체제 하의 다자간 무역 및 투자 체제가 그 이전의 일련의 상품 무역과 관련된 국제 협정과 어떤 질적인 차이가 있는지에 관해서는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들에게는 양자간 무역 및 투자 협정이건, 다자간 협정이건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들은 그것이 상품 무역에 관한 협정인지 지적 소유권에 관한 협정인지 또는 금융서비스와 관련된 협정인지에 관한 그 어떤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개방 = 세계화 = 경제성장 = 소득 증가’라는 단순 등식을 독자들의 머릿속에 주입시키려고 발버둥을 치고 뿐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박정희 정권 하의 수출지향적 산업화 시기와 전두환 노태우 정권 하의 자유화 조치들, 더 나아가 현 대통령 노무현이 존경한다던 김영삼 정권 하의 맹목적인 개방정책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개방과 세계화가 예컨대 일인당 소득 증가율 (인구 대비 국민총생산)이 아니라 국내 소득의 재분배에,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역학관계에, 중소기업과 독점재벌의 그렇지 않아도 수직적인 통합관계에, 또는 경영자와 도시 임금 노동자들의 소득 분배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시 거주민과 농어촌의 빈민들 사이의 소득 분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단 한번이라도 주의를 기울인 적이 있는가 라고 질문하는 것은 차라리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FTA = 양극화 해소의 계기(?)
다음으로,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미 FTA 가 “장기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여 양극화 문제를 완화”할 수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제 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로 한미 FTA 를 계기로 해외로부터 장기적인 투자와 고용을 보장하는 생산적인 자본 (단기 투기 자본에 대비되는 자본)이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형태로 대거 유입되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발생하는 기업 퇴출과 실업 증가”를 만회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일자리가 단기적으로 대거 창출되어야 한다.
둘째, 비록 일시적으로 퇴출되는 기업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와 동시에 중장기적으로는 중소산업 부문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단기간 내에 성장하여 국내 고용 창출 규모를 늘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단히 애석한 말이지만, 첫째 현재와 같은 한미 FTA 는 장기적인 투자와 고용을 보장하는 생산적인 자본과 단기성 투기 자본을 구별하는 관련 금융감독 기구의 정당한 감시와 규제 기능을 근본적으로 박탈하는 규정을 금융 서비스 분야의 대표적인 조항으로 삼고 있다.
더불어, 이것은 전자의 생산적인 장기 투자를 유도하고 후자의 투기 자본을 규제하는 일체의 산업정책 및 금융관련 규제정책을 ‘자유무역’의 이름으로 또는 ‘완전 자본시장’의 이름으로 근본적으로 무력화하고 있다.
대단히 애석한 말이지만, 셋째 현재의 한미 FTA 는 일시적인 기업 퇴출과 실업 증가에서 그치지 않고 여전히 초급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금융 및 조세 혜택을 필요로 하는 국내 중소기업의 자생력과 기술혁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뿌리뽑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장기적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어 “양극화 문제를 완화”할수 있을 것이라고? “장기적으로” 우리 인간은 모두 죽는다.
 
NAFTA 와 멕시코
이들의 이러한 현실 오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근거 없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것은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이후 멕시코의 지니 계수가 하락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먼저 이들이 이용했다고 하는 OECD 자료가 과연 얼마나 신빙성 있는 자료인지부터 먼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다름으로 이들이 과연 해당 자료를 제대로 분석 집계했는지도 분명히 의문에 부쳐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괜한 딴지가 아니다. 첫 번째로 OECD 자료는 각국 정부가 자발적으로 제출하는 통계자료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얼마든지 정부 차원의 의도적인 자료 조작이 가능하다는 난점을 지니고 있다.
더불어 북미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 멕시코의 경제상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으며, 국내 소득격차는 악화되면 악화되었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 분야를 연구하는 경제학자들과 전문가들의 중론이라는 점도 반드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해서는 다른 글을 통해 설명할 것임).
설사 백 보를 양보해서 이 모든 필자의 의문과 추측들이 근거 없는 것이고 OECD 데이터와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의 분석 능력을 신뢰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그 경우에도 우리는 북미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 지난 10 년간 지역간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개선되었다고 하는 멕시코 내의 소득 불평등 정도가 53.0 에서 48.0 으로 바뀌었다는 것밖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없다.
10 년이라는 장기적인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막대한 인적 사회적 고통을 감내하면서, 멕시코 국민이 이루어 낸 거대한 성과라는 것이 고작 지니 계수를 53 에서 48 로 낮춘 것뿐이다!
이것이 내노라 하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원들이 그토록 자신감 있게 부르짖었던 한미 FTA 를 통한 양극화 해소론의 근거인가? 세계 최대의 옥수수 품종 다양성으로 유명했던 멕시코가 지난 10 년간 세계 최대의 옥수수 수입국으로 탈바꿈하고, 연간 수십만 명에 이르는 ‘불법’ 이민자들이 목숨을 걸고 사막을 건너 텍사스 주를 포함한 미국 남부 주들로 이주하는 비극을 연출하며, ‘마낄라도라’라고 불리는 단순 조립 산업 공장 지대에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연명해 나가며, 위대한 멕시코 국민이 지난 10 년간 이룩한 것이 고작 지니 계수를 48 로 낮추는 것이었는가 말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는 ‘국제규범’이 아니다
이들이 독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또 하나의 사례는 바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S)이다. 그들의 첫 번째 사기는 이 제도가 미국식 FTA 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투자협정 시 반드시 포함되는 “보편적인” 제도라고 강변하는 데 있다.
그러나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는 결코 “외국기업에 공정하고 비차별적인 규제정책을 수행”하기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며,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옹호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안도 아니다.
그들이 부지불식간에 실수로 집계 인용하고 있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국가간의 투자자-국가 소송 사례에 관한 도표(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 13 쪽; UNCTAD 2005; Public Citizen survey 자료도 참조)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이 제도를 악용하여 정부를 상대로 제소한 사안의 핵심적인 부분은 대부분 환경보호와 우편 서비스, 식품안전과 위생 그리고 부동산 등 사회 전체의 공공재와 직결된 사안들이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개별 민간 기업 또는 단순 투기 자본이 자신들의 잠재적인 이윤 상실을 근거로 지방 및 중앙 정부를 제소하여 정부 차원의 공적 서비스 기능을 근본적으로 약화 잠식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명백한 사실을 앞에 두고, 마치 이것이 모든 국제적 투자협정에 수반되는 필수불가결한 조항일 뿐만 아니라 만약의 경우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도 이 제도를 활용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들이 얼마나 공적 사회정책에 대해서 무지한지,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경영 마인드”와 “효율성”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지를 드러낼 뿐이다.
 
다자간 협정 vs. 양자간 협정
다음으로 이들이 반박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협상 절차 및 내용에 대한 ‘어리석은’ 대중들의 투정이다. 이들은 “협상 내용 및 전략을 공개하는 것은 협상력을 저하시키는 행위이며”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도 비공개문건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협상에 차질을 초래”했다고 경고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FTA 협상 개시를 구걸하기 위해 이른바 ‘4 대 선결요건’을 국민 경제 전체에 미치는 잠재적 위험성에 대한 고려도 없이 들어준 통상교섭본부장과 대통령의 행위를 두고 “협상 전략”을 운운하는가?
물론 협상 전략과 협상 절차의 특성상 불가피하게 정보를 제한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협상이 끝난 지금은 협정 내용 전문을 조속한 시일 내에 철저하게 공개해야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이 보고서를 쓴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이 앞장서서 협정문 공개 절차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현 정부가 보이고 있는 꼴사나운 행태를 적극적으로 비판해 주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한미 FTA 와 같은 양자간 무역 및 투자 협정이 다자간 무역체제 (WTO 체제)를 위협한다고 비판하는 영미 학자들의 견해(미국 뉴욕 컬럼비아 대학 경제학과 바그와티 교수와 영국 소재 파이낸셜 타임즈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를 소개하고, 이에 대해 반론을 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다자간 협정과 양자간 협정이 지닌 수많은 차이들 가운데 최근 핵심적인 문제로 이 분야의 연구자들 사이에서 부각되는 공통의 지적 사항을 언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다자간 또는 지역간 협정과는 달리, 한미 FTA 로 대표되는 양자간 협정은 기본적으로 협상 참가국들의 비대칭적 협상력(asymmetric bargaining power)을 최대한 악용하는 절차라는 비판이다.
국제무역기구(WTO) 체제 하의 일련의 라운드 협상이 문제가 없는 것이 결코 아니다. 최근 온라인 신문 프레시안과 레디앙에 각각 소개되었던 케빈 갈라거 (Kevin P. Gallagher) 보스턴 대학 교수가 지적했고, 하버드 대학의 다니 로드릭 (Dani Rodrik), 캠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그리고 이 보고서의 집필자들이 겨냥하고 있는 마틴 울프와 바그와티 교수 등이 모두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국제무역기구 체제 하의 핵심 규정들은 현재의 개발도상국가들이 자국의 경제성장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일체의 정책수단들을 박탈하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 (관련 기사 참조).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투성이 다자간 협상과 비교할 때조차 한미 FTA 와 같은 양자간 협정은 더욱 심각한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다. 이미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금융 서비스 항목 내의 일련의 탈규제 조항들과 투자 항목의 투자자-정부 소송제도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실질적이면서도 구체적인 효과”
흥미롭게도 이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원들은 지금까지의 거짓말과는 달리 바로 이 대목에서 자신들이 현실적인 ‘국제감각’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FTA 가 증가하는 것은 다자간 무역협정의 문제점에서 비롯”되었고, “미국은 우루과이 라운드의 부진에 대응하여 NAFTA 협상을 시작”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FTA 는 이론상 다자간무역협정에 비해서는 차선책임이 분명하나, 실질적이면서 구체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실질적이면서 구체적인 효과”라는 것이 결코 협상 당사국 국민 전체의 복지와 이익을 증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것은 미국의 다국적 자본과 한국의 재벌기업들 그리고 양국의 금융자본가들의 거칠 것 없는 이윤 기회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의 중소기업들과 해당 기업 노동자들, 기술 수준을 측정하기 어려운 다양한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광범위한 서비스업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것이다.
따라서 양자간 협정이 지닌 심각한 위험 때문에라도,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는 WTO 체제 내에서 발전도상국들의 공통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선진국들의 일부 다국적 기업의 이윤기회만을 보장하는 다자간 협정 내의 독소조항들을 비판했어야 했다.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는 양자간 협정이 지닌 심각한 위험을 막고 미국에 대한 과도한 무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동아시아와 아시아 전역을 포괄하는 호혜와 평등을 원리로 삼는 대안적인 지역적 경제협력 방안을 구상하고 집행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그것이 한미 양국의 다국적 자본과 금융 자산가들 계급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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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31 14:01 2007/05/3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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