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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경제연구소 한미 FTA 보고서 비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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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미 FTA 에 대한 근거 없는 환상과 과대평가
 
우선, 이 보고서는 한국의 재벌들이 1980 년대 이후 지속되고 있는 한국 정부의 “자유화” 조치,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제 개방 정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한국의 재벌들은 이 개방 정책들을 아무런 문제 없이 “국제적인 글로벌화에 효과적으로 적응해온 과정”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전 세계의 그 어떤 나라도 경험하지 않은 70% 이상의 무역 의존도를 긍정적인 글로벌화의 지표라고 인식하고 있다.
 
70% 의 대외 무역의존도와 잠재적 불안정성
그러나 보고서의 주장과 달리 상품 무역이 전체 국내총생산의 70% 이상을 점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가 대외 경제의 변화와 충격에 취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국내의 유효수요를 극한적으로 제한하는 억압적 노동정책을 통해서 달성된 수출주도적 경제성장은 더욱 낮은 저임금과 낮은 기술 수준을 바탕으로 맹렬하게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동아시아와 남미 개발도상국가들의 존재 때문에라도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게다가 이는 수출 산업 부문과 내수 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도시와 농촌, 그리고 임금 노동자들 사이의 소득 분배 구조를 악화시키는 문제를 야기해왔다. 따라서 70% 이상의 무역 의존도는 개별 국민경제의 양적 성장과 질적 고도화라는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이는 잠깐이라도 눈을 세계로 돌려 다른 나라의 상황을 살펴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재정 적자와 함께 심각한 무역 적자를 경험하면서 국제경제적 불안정성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미국조차도 대외 무역 의존도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도대체 OECD 에 가입한 그 어떤 나라가 세계 최악의 복지비 지출과 더불어 이처럼 기형적인 무역 의존도를 경험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한국의 농수산물 관세 수준
또 한가지 이 보고서가 현실을 오도하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이 재벌 보고서가 그동안 한국의 “농산물 분야의 관세 수준”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높게 유지되고 있어서 “국제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있는 사실은 자국의 농수산물 분야에 대해서는 OECD 에 가입한 모든 나라들이 보조금 지급이나 농수산물 품종 개량을 위한 R&D 지원이라는 명목 하에 다양한 형태로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을 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OECD 사무처에서 발행한 한 보고서(OECD 2006 무역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OECD 가입국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높은 수준의 농업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OECD http://caliban.sourceoecd.org/vl=4065025/cl=14/nw=1/rpsv/factbook/10-02-03.htm 참조).
또한 유럽연합의 각국들은 여전히 광우병 뿐만 아니라 미국산 유전자조작 농수산물이 잠재적으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미칠 수 있는 위험 때문에 이에 대한 강력한 수입 규제 조치를 취해오고 있다. 이웃한 일본만 해도 국내산 쌀을 비롯한 몇 가지 중요한 농수산물에 대해서 지난 수십 년 간의 국제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커다란 비중의 보조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따라서 이 보고서가 한국의 “농산물 분야의 관세 수준”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높다고 주장하는 것은, 수많은 국제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농업 분야를 보호하기 위해서 각국 정부가 취해오고 있는 여러 정책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아니면 이를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것에 불과하다.
자국 국민들이 광우병이나 유전자조작식품이 잠재적으로 야기할지 모르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정당한 우려를 도외시하면서까지, 한국의 재벌기업은 값싼 농수산물의 수입을 통해 국내 임금 상승 압력을 줄이고, 결국에는 공산품 수출을 통해 보다 많은 이윤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은연중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개방의 부작용(?)과 재벌체제
이 보고서는 또한 “개방 과정에서 외환위기를 겪었으나 구조 조정 노력을 통해 세계적 자유시장경제의 확산에 대응”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방의 부작용”과 “국내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노화”가 외환위기를 야기했지만, 한국 경제는 이 외환위기의 충격을 “성공적으로 흡수하고” 세계적 차원의 지역주의”[다자간 협정을 통한 지역 내 차별적 경제교류]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왔다는 것이다.
우선, 이들이 “개방의 부작용”이라고 두루뭉실하게 말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이 보고서를 통해서는 알 수 없다. 더불어 “국내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노화”라는 말로 이들이 지적 또는 외면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불투명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외환위기를 야기하여 수많은 중소기업을 도산하게 만들고 이와 더불어 수없이 많은 실업자를 양산한 데에는, 그리고 그 이후 한국의 경제구조를 급속하게 재편시켜 노동 및 소득 분배 구조를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후퇴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한국의 재벌체제였다는 점이다.
더불어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에 대한 이해당사자들의 참가를 그 핵심으로 하는 소위 민주적 기업 거버넌스(corporate governance)의 측면에서는 외환위기 이전이나 이후에나 한국의 재벌체제에는 그 어떠한 결정적인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도 명백한 사실이다.
이 보고서를 쓴 연구원들이 몸담고 있는 삼성은 아들 이재용에게 소유지분을 불법으로 양도하려고 시도했던 이건희 씨가 그 어떤 법적 제재도 받지 않고 여전히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고, 족벌체제를 비판하면서 사내에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노동자를 구속시키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앞에 두고, “외환위기의 충격을 성공적으로 흡수”했다고 말하는 그들은 도대체 어떤 부류의 인간들인가. 혹시 이들은 외환위기 전후 국내외적인 거센 압력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족벌체제를 유지해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사다리 걷어차기>에 대한 자의적 인용
여기서 자신들의 억측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들이댄 또 한 가지 사례를 지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들은 “국내 이해 관계 조정 역량이 미흡하여 한국의 통상외교는 이중적인 형태를 갖게 되어 국제사회의 신뢰를 상당히 잃어버린 상태”라고 근거 없는 주장을 한 후, 한미 FTA 에 대한 격렬한 비판자 가운데 한 사람인 영국 캠브리지(Cambridge) 대학의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책의 일부를 인용하고 있다. “WTO 협상에서는 공업분야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개방을 주장하지만 불리한 농산물의 경우 ‘개발 도상국 지위’를 요구한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우선 장하준 교수의 책 <사다리 걷어차기>는 현재 WTO 체제라는 이름으로 강요되고 있는 상품 및 서비스 무역과 투자에 관한 일련의 협상들이 이미 성공적으로 경제성장을 달성한 나라들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현재의 개발도상국에게 불리한 협정 내용을 강요한다는 것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삼고 있다.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의 각국들이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개발도상국가들에게 ‘자유 무역의 이점’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고 있는 농산물 보조금 철폐, 자국 제조업 분야에 대한 각종 보조금 지원과 수출 장려 정책 등의 철폐, 더 나아가서는 지적 소유권과 특허권에 대한 엄격한 준수 요구 등은 역사적으로 현재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실제로 자국의 경제 성장을 달성하는 과정에서는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위반하였던 정책이라는 것이 장하준 교수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산업화 과정에 대한 역사적 제도주의적 분석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주장하는 “국제사회의 신뢰 상실” 운운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엄혹한 국제적인 차원의 신자유주의 체제의 확산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전략적으로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답하는 데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그 해답은 결코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쓴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일 수밖에 없다.
 
“고급 소비자가 존재하는 미국 시장”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국”
마지막으로, 한미 FTA 협상 타결의 의미와 관련하여 이들은 마치 이것이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물론 세계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인 양 과대포장하고 있다. 그들이 한미 FTA 가 동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핵심적인 근거는 이를 통해 “과도한 중국 의존도”에서 탈피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중국과의 대외 무역이 증가한다는 것이 어떻게 해서 한국경제의 “경제적 리스크”를 증대시킨다는 것인지 이들은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기술 이전”이나 “산업 공동화의 우려”를 운운하는데, 이것은 국내 제조업 분야의 중국 이전을 부채질해왔던 것이 바로 김영삼 정부 이후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대책 없이 추진해왔던 급속한 글로벌화의 부정적 산물이었다는 점을 은폐하는 주장이다. 국내 제조업 분야가 공동화되고 있다면, 그것은 중소규모 제조업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이에 합당한 산업정책이 부재하거나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결코 ‘중국 위험론’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이들이 진정으로 “중국 내부의 정치적 격변”과 “정책의 불연속성”을 근거로 한국 경제의 리스크를 점치고 있다면, 적어도 이들은 이와 동일한 비중으로 ‘글로벌 임발런스’(Global Imbalance)라는 이름으로 이미 수년 전부터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문제, 즉 국제경제의 불안거리를 가중시키고 있는 미국의 막대한 재정 및 무역 적자 문제를 거론했어야 했다.
지난 수년간 세계경제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신용도가 줄어들고 있고 (한국이 수출입 구조를 다변화해야 하는 이유이다),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은행은 자국의 무역 적자를 줄인다는 미명하에 달러화 가치를 저평가하여 자국의 만성적인 경제문제를 무역 상대국으로 이전시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지난 2~3 년간 한국의 원화가 지속적으로 절상되고 국내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대된 결정적인 이유이다).
이와 더불어 미국 국내적으로도 지난 수년간 이라크 전쟁을 통해 벌어들인 다국적 기업, 특히 군수산업체의 막대한 이윤과 중동의 원유 수출국가들 및 미국 정유업체가 고유가의 지속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양의 페트로 달러(Petrodollar)는 이제 그 넘쳐나는 유동성을 주체할 수 없게 된 미국 투자은행들에 의해서 서서히 투기적 대출과 외환 투기의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비단 미국 내부의 자산(주식, 부동산) 가격의 앙등과 거품 붕괴에 따른 불안정성뿐만 아니라 다변화된 포트폴리오 투자 (portfolio investment)라는 이름으로 해외에 대출된 자금의 급속한 회수 및 이에 따른 국제적 차원의 금융 불안정을 야기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고급 소비자가 존재하는 미국 시장”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국 시장”이라는 기묘한 대비를 통해 이들이 “미국시장에서 입지 재강화”와 “세계시장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운운하는 것은 단지 이들의 머릿속에 뿌리 박힌 숭미주의를 드러내는 것이거나 국제정치경제의 현황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뿐이다.
“세계시장 포트폴리오 다변화”라는 이름으로 정작 한국 정부와 민간기업이 오래 전부터 추진했어야 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기형적일 정도로 그 비중이 과도하게 높은 대미 무역 의존도를 서서히 줄이고 외환 구조를 다변화하는 일이었다.
 
한미 FTA 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인다는 기괴한 주장
이들은 마치 한미 FTA 를 달성하는 것이 “미국과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인 양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동북아시아 외교정책의 영역에서 “한국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허무맹랑한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까지 역대 한국 정부가 미국 행정부와 투기 자본가들을 향해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면서까지 부도덕한 이라크전쟁에 군대를 파견하는 등의 사대주의적 정책을 취한 것이 한미간의 FTA 를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인가?
또는 역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외교역량을 발휘했던 것은 그 이면에 미국과 나중에라도 FTA 를 체결하겠다는 이면합의를 전제로 했었기에 가능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더 나아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한 멕시코나 미국과 양자간 무역협정을 체결한 칠레가, 국제적인 조롱의 대상이 된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언제 단 한번이라도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외교정책의 영역”에서 “의지를 관철”한 적이 있었는가?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한미 FTA 는 성장하는 동북아와의 연결고리를 [미국에] 제공하면서 미국 무역수지 적자 축소에 기여하고 세계경제 안정에도 기여”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이다.
필자가 보기엔 아무래도 한국의 굴지의 민간기업 연구소라는 집단이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를 자신의 문제인 양 심각하게 고민하고, FTA 라는 괴이한 수단을 통해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미국 측에 제공해야 한다는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한미 FTA 가 미국의 재정적자 축소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주장과 질문에 대한 답변에 앞서, 보다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할 질문인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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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31 14:06 2007/05/3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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