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쌍도 경상도와 전라도 역사 비교 체험 ..ㅋㅋ [2]

경상도 전문가 (honamsay****)

주소복사 조회 9 15.08.13 17:38 

 

1.고려는 초기에 천민주거지역 향소부곡의 400여개중 인구가 고려전체의 20%도 안되는
경상도에 200개가 넘는 향소부곡을 지정하여 거의 경상도 전체를 천민주거지역으로 만들어 버린다.
 
2.거기에 비해 왕건은 전라도 나주에서 태어난 왕비와 왕자, 전라도 영암에서 태어난 도선을 국사로.. 역시 전라도출신 최지몽을 책사(나중에 살아서는 상주국, 죽어서 태사로 추증)로 하는등 권력의 반이상을
전라도 사람들에게 맡긴다.
 고려초에 그처럼 천시와 멸시를 받은 경상도 출신 최제안이가 가져온 80년전에 없어진 왕실의 일급 기밀문서를 경상도 출신이 가져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3. 고려초기 이러한 멸신와 천시를 견디지 못하고 김사미/효심등은 수년동안 반란을 일으키다가
그나마 대접받던 경주마저도 천민주거지역으로 강등되고 고려 중앙군에게 너무도 많이 학살당하고
탄압당하여 밀양에 가면 아직도 까마귀가 반란군들의 시체를 뜯어먹었다는 오치재가 있다.

 


4.전라도를 좋게 평하는 기록들이 매우 많은데도 유신독재시절 유신학자들은 악의적으로 고대의 문서를 해석했다.
예를 들면 이성계는 전라도 마이산에서 금척을 받고 전라도 장수에서 봉황이 개국을 알렸다는 등
전라도를 왕조의 발상지이자 개국의 근간으로 보았고 전주,개성,한양을 3경으로 승격하여 전라도를
특별 대접하였다.
 또한 방석의 태자비를 전주출신 심효생의 여식으로 하여 전라도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준다.
 
세종은 조상대대로 전라도 장수와 남원에 살던 장수황씨 황희를 18년간 영의정으로 제수하여
국정을 총괄하게 한다.
또한 당시 전라도의 위세를 말해주는 조선8도에서 가장크고 웅장했던 전라감영의 객사에 한나라
고조의 고향처럼 왕조가 일어난 고장이라 하여 풍패지향이란 현판을 걸었으니 지금도 전주시 중앙동
객사에 그 현판이 남아있다.
 
또한 정조대왕은 전라도는 조선8도에서 가장 어질고 충성스런 고장이란 뜻의
최명현절의지향(最名賢節義之鄕)이라며 최고의 찬사를 보냈고 전라도로 유배왔던 정약용은
그의 저서 여유당전서에서 호남은 참으로 어진 사람들이라고 칭찬하였으며 김정호는 호남은
조선8도에서 가장 축복받은 땅이라 하였다.

5. 경상도는 고려때 대부분 지역이 천민주거지역으로 묶여서 멸시와 천대를 받다가 나중에
풀리기는 하였지만 그 영향으로 천민성씨의 본관이 대부분 경상도이다. 또한 최제안 만큼 비열한
사람이 정도전인데 정도전은 8도 사람을 평하면서 전라도를 풍전세류, 청산미호라는 말을 만들어서
전라도를 견제하며 신권을 강조하며 왕권을 강조하는 이방원과 전라도 세력과 대립했으나 결국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고, 이방원은 전주에 경기전을 지어 이성계와 6대조를 모시고 8도의
선비들이 떠받들게 하여 전라도가 조선왕조의 본향임을 확실히 못박아둔다.
 
6. 조선왕조는 경상도를 기반으로 하는 사림과 남인들을 걸핏하면 잡아다가 죽이고 등용을 해도
대개 중용을 하지않았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영조때 이인좌와 정희량이 반란을 일으킨다. 이인좌는
충청도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영남의 반골에 이골이 난 조선왕조와 영조는 대구부 남문앞에
영남토벌비를 세우고 반역지향으로 못박아 버린다. 그리고 이후 영남이 복권될때까지
100여년간을 영남은 과거를
볼수 없게 제한을 가하고 행여 등용이 되어도 정5품이상을 승진을 못하게 못박아 버렸다.
또한 나중에 복권이 되었으나 과거에 경상도 사람은 임금이 낙점을 하지않는 경우가 많았다.
 

 


7. 경국대전에는 관북지방인 함경도와 평안도는 등용을 제한하라고 하였고 영조대왕은
대구남문에 영남토벌비를 세우고 반역지향으로 영남을 못박았으나 호남은 고래로 탄압이나
차별받은 기록이나 유적이 없다. 있어봐야 오늘난 조갑제,지만원,김용갑 같은 류의
사고방식을 가진 비주류들의 악의적인 기록이 있다.
 이익이나 이중환은 이인좌의 난등에 연루되어 조선왕조로부터 탄압받고 유배당하여
전라도를 본향으로 하는 조선왕조에 안좋은 감정을 가질수 밖에 없었다. 또한 이들의
연루를 주청한 사람이 전라도 광산김씨들이다보 더욱 전라도에 대해 악감정을 가질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과 애초에 비교가 안되는 인물들인 이순신,정조대왕,정약용등은 전라도에
대해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있으니 세상살이에 불평불만을 가진 자들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당시 주류로서 이나라의 위대한 인물들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이순신은.... 약무호남 시무국가....호남이 없었면 나라도 없다고했음)

 


8. 조선은 본관제와 신분제가 엄격히 지켜진 사회였는데 조선의 주체세력인 전주이씨나
조선후기 대명문가인 전주최씨나 나주의 남평문씨를 빼고서라도 같은 박씨라도 전라도
반남박씨나 순천박씨는 우리나라 2위성씨인 밀양박씨의 10분의 1인데도 벼슬아치가 더 많고 인구1위의 김해김씨는 조선왕조내내 정승이 겨우 1명이나 전라도 광주의 광산김씨는 조선 3대 명문가다.
조선후기 권력을 잡은 안동김씨는 경상도와는 관계가 없는 충청도와 한양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스스로를 안동김씨라 부르지 않고 장동김씨라고 불렀으며, 나주출신 나합같은 전라도 여자들이
내실을 장악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라도는 농경사회에서 가장 잘먹고 잘살았던 지역으로
이나라의 중추를 이루는 주류였고 경상도와는 감히 비교도 안되는 부와 권력을 누렸다.
이것이 조선말 일제의 침탈때부터 일제에 가장 극렬하게 저항했던 전라도를 일제가
악의적으로 탄압을 가하고 그런
사실을 식민사학자들이 인용하였으나 해방후 건국을 주도한 전라도를 본거지로한 한민당이
이승만을 도와 건국에 참여하고 이승만은 행정부수반, 전라도 출신 김병로가 사법부수장을
맡으며 60년대까지도 전라도는 주류였다.
 
 

9. 60년대까지 전라도는 서울,경기는 물론 대구,강원도까지 국회의원을 당선시킬만큼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경상도는 대구폭동의 영향과 친일파는 용서해도 빨갱이는 용서못하는
이승만의 정책으로 이승만정권에 대해 가장 많은 데모를 했던 지역이 경상도이고 당시
대구매일신문은 가장 반정부적인 신문이었다. 또한 6.25때 가장 많은 국군희생자를 낸 지역이
전라도였으나 경상도는 남로당이 주도한 대구폭동의 영향으로 무고한 양민들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한 경우가 많았다.

10. 결국 이러한 경상도를 기펴고 살게 한 사건이 박정희 대통령 당선이었는데 박정희의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들이 전라도였다. 전라도의 압도적인 지지로 박정희는
10만표차로 윤보선을 꺽었고 이후 다시 전라도 표때문에 재선에 성공했지만... 이후
유신독재로 선거를 없애버린 유신정권은 더이상 국민의 눈치를 볼필요도 없었고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김대중과 호남을 악랄하고 악의적으로 탄압하였으며 개발과 인사에서 호남을 철저히
소외시키고 소외시킨 근거를 유신에 동조하는 학자들이 제공함으로써 호남을 지능적이고
악의적으로 탄압하였다. 만약 박정희가 개발과 인사에서 호남을 소외시키지 않고
유신학자들을 동원하여 악의적인 탄압을 안했으면 전라도는 예전처럼 박정희를
지지했을지도 모른다.
 

 

글주인.....gaemong  dungi
 
 
개쌍도보리문둥이쪽바리들과 아주 정반대이다 보니 
 
호남의역사 대한 열등감 과 
 
자기네개상도좉같은역사에 자격지심을가지고 
 
있어서 .호남의역사를 자꾸 
 
지들맘대로 역사왜곡하고 깥아내리려 하고 있지 ㅋㅋ
 
-인터넷 검색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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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0 14:19 2015/08/1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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