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뒷통수 1. <<정치적사례>>
경상도 정치인들은 서로 뒷통수를 잘 치는걸로 유명합니다. 근세사를 살펴보면:
박정희 뒷통수를 김재규가 치고, 김재규 뒷통수를 전두환이 치고, 전두환 뒷통수를 노태우가 치고,
노태우,전두환 뒷통수를 김영삼이 치고, 김영삼 뒷통수를 강삼재가 쳤죠. 죄다 경상도 출신입니다.
(반면, 전두환이 같은 경상도 노태우한테 뒷통수 맞을 때 입 한마디 뻥긋 안하고 대신 감옥 가면서 '
주군'을 보호해준 건 '의리의 사나이' 호남출신 장세동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김영삼은 혼자 살겠다고
대선자금이 안기부 비자금이 아니고 김영삼 돈이라고 고자질한 같은 경상도 출신 강삼재한테
뒷통수 맞았죠)
해방후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남로당 군내 조직책으로 암약하던 경상도 출신 박정희가 혼자 살겠다고
뒷통수를 치는 바람에 남로당 동지 300명이 총살대로 직행 했었죠. 박정희는 훗날 자기형 박상희의
친구이자
형 중매까지 섰던 (같은 경상도 출신) 자기 믿고 내려온 남파간첩 황태성을 총살시키는
뒷통수를 칩니다.
경상도 뒷통수 2. <<대형 사기 행각 사례>>
건국 후 대형 사기꾼은 박영복, 정태수, 주수도, 신정아가 있겟는데 죄다 경상도 출신입니다.
이중섭 화백의 그림을 위조하여 사기꾼 김용수도 경상도 출신입니다. 이 자들 한테 뒷통수맞은
피해자는 한두명이 아니라 적게는 수천명, 많게는 수백만에 달한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한보 정태수같은 경우는 IMF 불러 옴으로써 대한민국 4천7백만이 뒷통수를 맞았죠.
특히 다음의 기사들에서 볼수 있듯 주수도, 정태수,박영복 등 경상도 대형 사기꾼은 반복하여
사기질로 뒷통수를 친다는 점이 그야말로 뒷통수가 골수에 막힌 자들입니다.
경상도 뒷통수 3. <<"소규모" 사기 행각 사례>>
위에서 보듯 전국 규모 뒷통수는 경상도가 도맡아 쳐 왔습니다. 그러나 비교적 "소규모" 뒷통수
사기행각도 경상도 사람이 치는 경우가 절대 대부분입니다. 전국 사기사건의 근 45%는
경상도사람이 저지르는게 현실입니다. 경상도 인구 비율이 타지 거주자 포함하여 33% 정도라는걸
감안 하면 엄청나게 높은
거죠.
다음은 눈에 띄는 경상도 사기 사건의 보도 내용입니다. 보시다시피 은행원, 파출부, 웨이터, 계주,
먹거리 공장주, 경비원, 대학 교수, 총장, 심지어 초등생 까지 뒷통수 치기에 가담하는 걸 알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그야 말로 바다에 떨어진 물 한방울....너무나도 기가 찬 사건들을
한번 모아 본 것에 불과합니다.
[경상도 對 전라도에서 경상도 對 비경상도로 변천한 요즘의 지역감정]...
요사이 보아하면, 원래는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이 지역감정이었지만 근간에는 비경상도지역 전체의
경상도에 대한 차별과 경원으로 변질되것이 저간의 현상입니다. 요새는 사람들이 경상도를 아예
딴나라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왜 경상도가 전라도를 적대시하고 자기들 말로는 "싫어하는지" 그 역사적
이유를 살펴 봅시다. 바로 경상도의 전라도에 대한 피해의식때문입니다. 다소 생경하시지요?
그러나 신라가 망한 이래로 경상도는 전라도에 피해의식을 느낄 이유가 많았습니다. 살펴 보면:
1. 고려 태조 왕건은 경상도는 고구려를 비열하게 멸망시킨 신라의 옛땅이라 하여 무척
미워했습니다. 그리하여 초기에 천민주거지역 향소부곡의 40여개중 인구가 고려전체의 20%도 안되는
경상도에 200개가 넘는 향소부곡을 지정하여 거의 경상도 전체를 천민주거지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즉 조선초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전국 향 소 부곡 785곳중 경상도에만 296곳, 그 주에도 젤 천한 부곡은
전국 406곳중 경상도에 217곳 있었습니다. 이는 각각 1/3, 1/2를 훨 넘는 엄청난 숫자로서 당시 경상도인구
전국 1/10도 안됐던 걸 감안하면 엄청난 비율이죠.고려초에 그처럼 천시와 멸시를 받은 경상도입니다.
경상도는 고려때 대부분 지역이 천민주거지역으로 묶여서 멸시와 천대를 받다가 나중에 풀리기는
하였지만 그 영향으로 천민성씨의 본관이 대부분 경상도인 것입니다.
2. 거기에 비해 왕건은 수십명의 왕자들 중에서 유독 전라도 나주에서 태어난 왕비 오씨와의 사이에
난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 줍니다 즉 2대 혜종).전라도 영암에서 태어난 도선을 국사로 삼고, 역시
전라도출신 최지몽을 책사(나중에 살아서는 상주국, 죽어서 태사로 추증)로 하는등 권력의 반이상을
전라도사람들에게 맡깁니다. 후백제출신 박제술을 재상으로 가까이에 둡니다. 고려가 대대로 전라도를
기반으로 융성하기를 바란 왕건의 의중이 읽히는 대목입니다.
3. 고려초기 멸신와 천시를 견디지 못하고 경상도에서는 김사미/효심등은 수년동안 반란을 일으키다가
그나마 대접받던 경주마저도 천민주거지역으로 강등되고 고려 중앙군에게 너무도 많이 학살당하고
탄압당하여 밀양에 가면 아직도 까마귀가 반란군들의 시체를 뜯어먹었다는 오치재가 있습니다.
4. 또한 최제안 만큼 비열한 사람이 정도전인데 정도전은 8도 사람을 평하면서 전라도를 풍전세류,
청산미호라는 말을 만들어서 전라도를 견제하며 신권을 강조하며 왕권을 강조하는 이방원과 전라도
세력과 대립했으나 결국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고, 이방원은 전주에 경기전을 지어 이성계와 6대조를
모시고 8도의 선비들이 떠받들게 하여 전라도가 조선왕조의 본향임을 확실히 못박아둔것입니다.
5. 조선왕조는 경상도를 기반으로 하는 사림과 남인들을 걸핏하면 잡아다가 죽이고 등용을 해도 대개
중용을 하지않았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영조때 이인좌와 정희량이 반란을 일으키는데 바로 이인좌의 난,
즉 무신난입니다. 이인좌는 충청도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영남의 반골에 이골이 난 조선왕조와 영조는
대구부 남문앞에 영남토벌비를 세우고 반역지향으로 못박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영남이
복권될때까지 100여년간을 영남은 과거를 볼수 없게 제한을 가하고 행여 등용이 되어도 정5품이상을
승진을 못하게 못박아 버렸습니다. 또한 나중에 복권이 되었으나 과거에 경상도 사람은 임금이 낙점을
하지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6. 경국대전에는 관북지방인 함경도와 평안도는 등용을 제한하라고 하였고 영조대왕은
대구남문에 영남토벌비를 세우고 반역지향으로 영남을 못박았습니다.
7. 조선은 본관제와 신분제가 엄격히 지켜진 사회였는데 조선의 주체세력인 전주이씨나 조선후기 대명문가인
전주최씨나 나주의 남평문씨를 빼고서라도 같은 박씨라도 전라도 반남박씨나 순천박씨는 우리나라 2위성씨인
밀양박씨의 10분의 1인데도 벼슬아치가 더 많고 인구1위의 김해김씨는 조선왕조내내 정승이 겨우 1명이나
전라도 광주의 광산김씨는 조선 3대 명문가입니다. 조선후기 권력을 잡은 안동김씨는 경상도와는 관계가 없는
충청도와 한양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스스로를 안동김씨라 부르지 않고 장동김씨라고 불렀으며, 나주출신
나합같은 전라도 여자들이 내실을 장악하고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전라도는 농경사회에서 가장 잘먹고
잘살았던 지역으로 이나라의 중추를 이루는 주류였고 경상도는 감히 비교도 안되는 부와 권력을 누렸습니다.
8. 60년대까지 전라도는 서울,경기는 물론 대구,강원도까지 국회의원을 당선시킬만큼 주류를 이루었으나
경상도는 대구폭동의 영향과 친일파는 용서해도 빨갱이는 용서못하는 이승만의 정책으로 이승만정권에
대해 가장 많은 데모를 했던 지역이 경상도이고 당시 대구매일신문은 가장 반정부적인 신문이었습니다.
또한 6.25때 가장 많은 국군희생자를 낸 지역이 전라도였으나 경상도는 남로당이 주도한 대구폭동의 영향으로 무고한 양민들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국군 후퇴때 총살된 보도연맹원 20만명중 6만명이 경상도 사람입니다. 빨치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일어난 거창양민학살사건에서 보듯 지리산 빨치산의 태반이 서부경남에서 입산한 경상도 사람이었죠.
9. 대한민국 건국후에는 굵직한 반란사건은 다 경상도 출신이 저지릅니다. 박저의,전두환, 노태우등이죠.
또한 해방후 최초 최대 공산폭동 민간반란이 바로 1946년 대구 폭동이죠.
이상과 같이 역사적으로 경상도가 전라도에 피해의식을 느끼고, 지난 40년간 왜 그리도 유별나게 경상도는
전라도에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자 이제는 작금에 왜 경상도가 전라도에 대해 근거 없이 부추긴 "편견"이 과연이나 근거없다고 여겨져 사라져 가고 그자리를 대신하여 점차로 경상도에 대한 비경상도사람들의 "편견"이 자리잡아가고 있는지 그 이유를 살펴 보겟습니다. 경상도에 대한 "편견"은 경상도 사람들 자신의 행동과 행태에 근거한다는것, 즉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잇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있습니다.
세간에 점점 경상도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한 편견을 자초하는 이유들을 짚어 봅니다:
[경상도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한 편견을 자초하는 이유들]
<<서론>>
경상도 사람의 일반적인 평이 바로 몰상식, 뻔뻔하고 후안무치하고 적반하장, 아전인수적이라는 점입니다.
사투리도 아주 시끄럽고 듣기 싫은 편이죠. 위선적, 기회주의적이고 뒷통수도 잘 칩니다.
조선시대 실학자 성호 이익은 경상도 기질을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경상도인은 권력앞에 무한히 고개를 수그리며 순종하므로 능히 밑에 두고 부릴 만 하다....허난 일단
스스로이 권세를 쥐게 되면 그 권세를 함부로이 휘둘러 무한히 뭍사람을 번민케 한다....입으로는 옳은 소리만 하면서
뒤로는 온갖 못된 짓은 골라서 다하며 앞으로는 대의와 정의를 부르짖으며 뒷전에서는 은밀히 자신의
시리와 사욕 챙길 궁리를 하니 자못 그행태가 가증스러웁다....성정이 포악하여 인물(刃物)을 휘둘러
함부로이 사람의 수족을 다치게 한다.....소매를 나누어 헤어질시에는 반드시 해악을 끼치고 떠나가니
평소에 멀리함이
필히 권고로운 무리라 할것이다." [성호 사설]
또 충무공 이순신도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난중일기]:
慶尙將卒 皆烏合之兵也 日日一斬卽 軍令保全 ("경상도장졸은 모조리 오합지졸이라 하루 한놈 목을 쳐야
군률이 유지된다")
慶尙道招集下卒 饋軍穀則默然食之而遊遊消日 戰鼓鳴卽 皆夜半逃散也 (경상도에서 뽑은 졸병은 평소에는
군량을 받아 먹으며 하릴없이 노닐다가도 일단 출진의 북이 울리면 죄다 밤사이에 도망하여 흩어지고 만다.")
慶尙徒剃頭倭裝 導倭賊侵寇忠淸全羅 殺傷擄掠放火劫姦 又甚於倭賊也 取老少婦女首及獻上倭將 ("경상도의 무리는 앞머리를 깎고 왜옷을 걸치고 왜적의 앞장서서 충청,전라지역에 침입하여 죽이고 뺏고 불지르고 강간함이 오히려 왜적보다 심한 바가 있다. 노인,어린이, 부녀자의 머리를 메어 왜의 장수에게 진상하기도 한다.")
(충무공은 한편 전라도에 대해서는 若無湖南 是無國家(호남없인 나라도 없다)라고 입이 닳게 칭찬
하심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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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아악 ㅆㅂ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충청도,전라도,경상도를 합쳐서 삼남지방이라고 부르잖아요.
충청도는 빼주세요 ㅠㅠ 쪽팔려서 같이 못있겠음;
-아래 글은 "전라도기질과 경상도기질"이라는 글이다.
"박정희"는 일제시대의 민족배신과 해방이후 공산당 가입...이외에도
5.16 쿠테타를 하면서 동지들에게 맹세하고 약속 하길...
"우리는 한배에 탓으니 같이살고 같이죽자"고 하였다.
하지만 쿠데타가 성공하자마자... 대부분의 혁명동지들을 고문으로
XXX을 만들어 숙청해 버리는 무자비한 배신행위을 저지른다.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 때는 전라도에서 "윤보선후보" 보다 "박정희"에게
35만표나 더 몰아줘서 15만표라는 간발의 차이로 당선시켜 주었는데도...
"박정희"는 관권을 총동원하여 악랄하게 전라도의 뒷통수를 치게되는데...
이것은 지역감정을 극대화 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배신의 천재 박정희는 같은 경상도인 김재규에게 죽게된다.
김재규는 같은 경상도인 전두환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전두환"은 경상도 선배 장군인 "참모총장 정승화"를 제거하여 버리고...
또 다른 경상도인 선배인 "강창성 전 보안사령관"을 삼청교육대로
보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런 하극상이 어디 있는가...!
1992년 정치인 "김영삼"은 입만열면 "민주주의"와 "전통선명야당".. 운운하다가...
하루아침에 변절하여서 김종필과 함께 독재의 화신인 민정당과
3당합당을 하는 야만적인 대국민 배신행위을 저지른다.
이후 대통령에 당선이 되어서 정권을 장악하자 마자...3당합당의 주역중 하나로
공동운명체임을 서로 굳게 약속한 김종필을 토사구팽 시켜 버리려는
경상도인 특유의 배신과 뒷통수 치기를 도모하게 되고...
이에 놀란 김종필은 즉시 탈당하여서 홀로 서기를 하게 된다.
배신과 반역이 중단없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곳이 경상도인 것이다.
정치인이나 군인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야구인 "하일성씨"나..여타 감독들도 한결같이
경상도 선수와 전라도 선수의 기질적인 차이점을 언급한다.
예를 들면 해태타이거즈나..기아 선수들은 신인선수 시절엔 아무리 유명하더라도
3년 이상.. 착실하게 볼보이 노릇을 하면서 선배들의 말을 잘 듣는다고 한다.
즉 기강이 바로서고 위아래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선동열선수"나 "이종범선수"가 신인시절에 열심히 볼보이 노릇을 하는 것을 보고서
모든 야구인들이 입을 모아서 "해태 타이거즈"가 "왜...강한지 알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삼성라이온즈나...롯데선수들은 1년차 신인도 조금만 유명해지면..
선배 알기를 우습게 알아서 볼보이 노릇은 커녕..선배들의 말조차 듣지 않는 다고 한다.
기강도 없고 위아래도 없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군인이든..운동선수든..머리가 조금만 커지면 선배 잡아 먹는게 경상도 기질인 것이다.
경상도 출신 선수들은 국내서는 최고의 선수인 것 처럼 메스컴에서 각광울 받다가도
해외스포츠계에서는 무기력하고 평범한 3류선수로 전락하고 만다.
이유는 국내에서 처럼 지연과 학연등을 동원해서 음모와 조작에 의한
뒷통수 치는 방법으로 띄워주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진정한 실력으로만 존재 될수있는 외국 스포츠계에서 명실상부하게
인정받고 있는 우뚝선 선수들은 대부분이 전라도 출신들이다.
야구든..축구든...골프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경상도 출신선수중 "백차승 선수"가 있는데...
입대할 나이가 되자..징병기피를 위해 "미국귀화"라는 파렴치한 방법을 선택해 버린다.
군입대 문제로 전국민을 기만하고 조롱한 가수 "유승준"도 양친부모가 모두 경상도인이다.
"백차승"이나 "유승준"이나...경상도인 답게 뒷통수 처서 배신 때리는 처세술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경상도인들이 유일하게 잘하는게 딱-한가지가 있는데...
해외의 한국선수들(특히 전라도 선수들)이 조금만 부진하면 입에 담을수 없은
온갖 추잡한 댓글로 분탕질을 치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들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 되어지는 것은 그게 무엇이 되었든...
"이판사판식으로 뒷통수를 처서라도 판을 깨버리자!"는 경상도 기질인 것이다.
바둑은 어떤가....!
바둑은 일체의 외부의 영향력..특히 음모와 조작, 뒷통수치기가 완벽하게 배제된
-박정희나 전두환도 어쩔수 없었던-가장 공명정대한 정신스포츠로서
무욕, 무심, 무아의 경지를 필요로 한다.
바둑에서 신의 경지라는 것은 이러한 상태가 최절정에 이르렸을 때를 말함인데...
한국에서 신의 경지에 오른 최고의 실력으로 ..
세계를 제패한 자랑스러운 바둑인들은 모두가 전라도 출신들이다.
(조남철, 김인, 조치훈,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등등)
그러나 매사에 탐욕과 음모와 조작에만 병적으로 몰두하는
경상도인들의 바둑실력은 우승은 커녕...프로입단도 버거울 정도다.
음모와 조작에는 능하지만 진실과 정도에 취약한 경상도기질의 한계인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경상도는 당나라에 민족을 팔아먹었고..
몽고군이 침략하자.. 제일먼저 앞잡이로 돌아서서
30년간 치열하게 항쟁하는 전라도인들에게 칼끝을 들이댔다.
임진왜란시에도 일본군에 가장 적극적으로 협조를 한 지역도 어김없이 경상도였다.
1591년 3월 임진왜란 1년전에 일본에 파견한 통신사 2인이 귀국해서
정반대되는 내용의 보고서를 조정에 따로 제출하는데...
전라도 출신인 통신정사(通信正使) 황윤길(黃允吉)은
일본이 반드시 침략을 할것이니..전쟁준비에 만전을 기하자고 하였지만...
경상도 출신인 통신부사(通信副使) 김성일(金誠一)은
일본의 침략위협이 전혀 없으니 전쟁준비의 필요성이 없다고 하였다.
결과는 "경상도인 김성일"의 의견이 채택이 되어서 1년이라는 금쪽같은 시간을
아무런 전쟁준비없이 허송세월함으로서 끔찍하고 참혹한 임진왜란을 격게 된다.
전쟁중에도 백전백승을 하고 있던 "이순신장군"의 뒷통수를 처서 막강하였던
조선의 수군(=전라도 수군)을 일시에 전멸케한 자가 "경상도 수군통제사 원균"이였다.
임진왜란 내내...전력을 다해 싸워서 민족을 지켜낸 지역은 전라도였지만...
일본군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협조한 지역은 경상도였다.!
전라도인들이 "한산도 대첩", "명량대첩", "행주대첩", 그리고 "제2차 진주성 전투"등
바다와 육지에서 수많은 전투를 승전으로 이끌기 위해서 홀로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 있을때..경상도인들은 조국의 뒤통수 치기에 여념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경상우도 체찰사가 보고하기를"경상도에서는 요즈음 (임진왜란 중) 앞머리를 밀고
왜옷을 입고 왜적의 앞장을 서서 타도로 진출하여 노략질.방화,및
부녀 겁탈을 무심히 하는 경상도민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들의 소행은 포악하여 오히려 왜인들보다도 흉악한 바가 있습니다.
심지어 이 경상도인들은 충청,전라지방으로 진출하여
노인,아이,부녀자의 수급을 베어 왜적에 진상합니다."
[충무공 난중일기中에서...]
밀양부사 공호겸(孔好謙)이란 자도 가장 먼저 일본에 항복을 한후 한양공격의
길잡이를 자처하고 "조선 사람은 내 손으로 죽이겠다"면서 반역의 최선봉에 서는
민족적 패륜행위를 저지른다.
이러한 만고역적질이 경상도에서만 동시 다발적으로 연이어서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풍신수길이가...
"경상도는 백색(=적극협조)으로 표기하여서 절대 죽이지 말라 하였고...
전라도는 적색(=저항)으로 표기하여서 모두 죽여서 코를 베어 오라고 하였겠는가...!"
지금도 일본의 교토에 18만명의 코가 묻혀있는 조선인들의 코무덤이 있는데...
대부분이 전라도인들의 코인것이다.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난입과 경제적 약탈을 규탄하며 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동학혁명시에도 일본군의 공격을 받자마자 경상도인들이 허겁지겁
모두 도망을 가버린 탓에 전라도인들만 끝까지 항전하다가 25만명이나 전사한다.
이때도 마지막 대전투시 일본군의 길잡이는 경상도 출신인 민병무란 자였다.
이와같이 역사적으로도 경상도는 "매국매족하는 망국적인 반역행위"를 중단없이 반복해서
저지른것은 물론...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끝까지 저항을 한적이 단 한번도 없었지만...
전라도는 "매국매족하는 반역행위" 를 한적이 단 한번도 없었을 뿐만이 아니라
외세의 침략에는 언제나 홀로 끝까지 저항하여서 조국과 민족을 오늘날 까지 지켜냈다는 것이다.!
자..! 이제 대충.. "경상도 기질"과 "전라도 기질"에 대해서 느낌이 올것이다.!
음모와 조작에 뛰어나며 뒷통수 잘치고 배신 잘하는 쪽이...
경상도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전라도라고 생각하는가..?
본래 뒷통수 잘치는 이들의 전형적인 수법과 특징이 자신들의 부정함과 부조리함를
면피하는 방법으로 오히려 피해를 당한 상대방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중상모략을 하는 비열하고 야비한 방법을 즐겨 사용한다는 것이다.
즉..경상도인들이 입만 열면..아무런 근거도 없이 "전라도인은 뒷통수 잘친다"는
"...카더라식"의 허위날조를 일삼는 이유가 역사적으로나 혈통적으로 볼때
음모와 조작에만 병적으로 몰입하는 경상도인들의 기질과 DNA 탓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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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사람들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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