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격고발]싸이월드 창업자는 한총련 전신 전대협 출신!!
경향신문에서 충격적인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젊은이들 사교의 장으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싸이월드의 창업자가 통일선봉대 경력까지 있는 골수 빨갱이 간첩입니다!
('통일선봉대'란 여름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반미를 외치며 미군시설 및 경찰, 정부시설에 테러를 가하는
극악무도패륜 폭력단체입니다.
전대협시절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한총련에서
매년 여름마다 만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좌파정권의 비호에 힘입어 아직까지도 횡행하고 있습니다)
그걸 아주 자랑스럽게 밝혔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북괴에 자신의 사상을 증명하고
간첩짓을 충실히 하겠다는 사상적 다짐을 보여준 것입니다!!!!!!!!!!!!
싸이월드를 팔고 7억밖에 안받았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빨갱이는 거짓말로 살아오는 자들입니다.
틀림없이 그보다 더 많은 지하자금이 남한내 간첩조직의 공작금과 무기구입자금으로 갔을겁니다!
촛불난동의 그 수많은 경비가 다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또한 싸이월드 자체는 제작자의 의도대로
북괴의 선전선동 구조에 최적화되어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곧 그 실체가 드러날 것입니다. 아니, 이미 드러나있습니다.
아이템샵에는 소위 '민중가요'라는 적색가요가 자리를 잡고 있으며
실제로 그 아이템을 구매하는 자도 있습니다.
(시위현장에서 시끄럽게 틀어대는 노래가 바로 '민중가요'입니다)
또한 반역과 적화통일의 상징인
한반도기 아이템까지 팔리고 있습니다.
또한 싸이월드 뉴스 리플에는 하나같이 친북좌익성향의 리플이 베스트에 올라있습니다.
이는 저들의 적화공작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지금 SK소속이라 안심해서는 안됩니다.
이미 빨갱이 조직을 회사 곳곳에 심어놓은 후에 팔아먹었을 겁니다.
젊은이들에게 차지하는 위치를 보아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고있는게 싸이월드입니다.
북괴는 그 싸이월드를 이용해 이렇게 서서히 적화공작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IT계에 저 작자 말고
또다른 간첩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을겁니다.
저 작자 혼자서 데모질을 했을리는 없을겁니다.
대표적으로 나우누리가 인터넷 해적방송 이프리카로 부활해
친북좌익선동의 중심지로 급부상한게 대표적입니다.
(나우누리는 한총련에 PC통신망 아지트를 제공해 지령전달 창구로 쓰여진 전력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섬칫한 일입니다!
이런 놀라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우리 자랑스런 대한 전의경 전사부터 손수 모범을 보여
싸이월드 안쓰기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나 혼자 싸이월드 안쓴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모두를 빨갱이 소굴에서 구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놀라운 사실을 알려서
싸이월드를 기필코 쓰러뜨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일촌은 몰론 미니홈피 방명록에 무차별적으로 홍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운동의 가속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게시판에다
자신이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폐쇄하였으며 빨갱이를 증오한다는
릴레이 선언을 하여야 합니다.
자유, 진리,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우리 애국시민이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적들에게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의 성스러운 명령을 보여줍시다!!!!!!!!!!!!!!!!
‘싸이’창립자, “자유분방한 일상이 아이디어 원천”
[경향신문 2005-10-21 11:51]
어느날 싸이월드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한국 인구의 3분의 1인 1천5백만 ‘싸이’ 인구는 먹먹한 세상에서 금단현상에 허덕일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새로운 문화코드로 자리잡은 싸이월드의 파워는 실로 엄청나다. ‘싸이질’ ‘싸이폐인’ ‘1촌’ 등 신조어와 ‘미니홈피’라는 신개념을 낳은 데 이어 인터넷이라면 도리질을 치던 40~50대 중년들까지도 사이버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무료 P2P ‘엔프라 서비스’ 개발
올해로 7살된 싸이월드 창립자 형용준씨(37). 2001년 싸이를 개인투자자에게 넘긴 그 해 11월 남녀 짝짓기 사이트 ‘세이큐피드(이하 세큐)’를 운영하다 NHN에서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은둔했던 그가 다시 돌아왔다. 올 1월 개인용 파일 유통 전문기업 이인프라네트웍스(Enfra Networks)를 설립, 지난 14일 무료 P2P(개인파일 전송) 플랫폼 ‘엔프라’ 서비스를 선보였다.
엔프라 폴더 공유 서비스는 웹하드(www.webhard.co.kr)와 메신저의 기능이 혼합된 것으로 봐도 좋다. 웹하드는 데이터를 이동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손쉽게 데이터를 전달하기 위한 대형 서버. 개인과 개인, 개인과 법인은 이를 통해 대형 파일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웹하드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무료인 엔프라 서비스를 다운받기만 하면 직접 대형 파일을 통째로 교환할 수 있다.
메신저처럼 1촌끼리 온라인 상태에서 직접 사진, 음악, 동영상 파일 자체의 교환도 가능하다. 내년 초에는 상상 속에서만 그려보던 영화같은 일도 벌어진다. 외부에서 PC를 원격조종할 수 있게 된 것. “이동통신회사를 통해 휴대폰과 PDA에 엔프라 서비스가 깔릴 거예요. 그러면 휴대폰과 PDA로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걸어 가면서도 PC내 자신의 개인 콘텐츠를 1촌들의 PC에 전송할 수 있죠.”
많은 사람들은 형씨가 싸이월드로 돈방석에 앉은 줄 안다. 2003년 SK가 싸이를 70억원에 인수했으니 그는 분명 대박을 터뜨린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무슨 말씀을. 당시 제가 어려서(그는 31살 박사과정이었다) ‘계약서’를 보지도 않았어요. 저보다 한 수 위인 투자자가 다 챙기고 7억원 정도 받았죠.”
업그레이드 된 ‘싸이’ 대박 예감이후 그는 싸이에서 탈퇴했고 2001년 11월 ‘세큐’를 여는 데 가진 돈 전부를 털어넣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인생의 동반자를 낚는 데 만족해야 했다. 세큐도 네오위즈에 넘긴 뒤 그는 2년간 NHN에서 성실한 샐러리맨 생활을 했다. 그는 “돈은 이제부터 벌려 한다”고 말한다.
그가 이처럼 시대를 앞서가는 아이디어를 도출해내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는 그의 삶의 궤적을 되짚어보면 금방 드러난다.
87학번 KAIST 모범생이던 그는 휴학계를 내고 맘껏 데모를 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서울대 정치학과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첫번째 좌절. 보기좋게 불합격한 그는 다시 KAIST로 돌아왔다.
그후에도 그는 수시로 시위 구경을 위해 서울을 찾았고 88년엔 통일선봉대에도 섰다. 학점은 엉망이었고 두번의 학사경고 끝에 졸업도 간신히 했다. 군대도 병역특례로 1년을 버티다 ‘공기업 문화에 질려’ 현역병을 자원했다.
소문난 힙합 춤꾼이기도 한 형씨. 사람들은 그 나이에 힙합을 추는 그에게 말한다. ‘나잇값도 못한다’고. 그러나 그는 소심쟁이들의 이런 시샘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유분방한 일상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왜. 그가 추는 힙합의 몸동작 속에 또 어떤 기발한 창조물이 잉태되고 있을지 모르니까.
〈글 심희정·사진 박민규기자〉
3줄요약
1.싸이월드 창업자는 극악무도패륜테러단체 통일선봉대 출신이다.
2.그가 만든 싸이월드는 북괴의 적화통일 공작에 최적화되어있을 것이다.
3.싸이월드 쓰지말기 운동으로 대한민국의 성스러운 명령을 실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