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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0/04
- 시 박영근
늦은 작별
박영근
그 언제부턴가
가을도 다 지나고
가슴속에
식은 채 묻혀 있던
불덩어리 하나
다 피어나지도
저를 떨구지도 못한
꽃덩어리 하나
오늘은
허연 잿더미를 헤치고
말갛게 불티로 살아난다
이제 그만
저를 놓아주세요
찬 바람 속
몹시 앓다가
한 여드레쯤 지나면
문밖 골목에도
고즈넉이 흰 눈 내리겠다
기억하느냐, 그 종소리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천년의 꿈이라 한들
제자리에 있겠느냐
우리가 사는 일이 온통 고통이라 해도
오늘 바람 속에 흔들리는
저 풀잎 하나보다 못하구나
기억하느냐
겨울 빈 들에서 듣던 그 종소리
폐사지에서 1
박영근
내가 여기서 보는 건 사금파리가 된 나의 문자(文字)들이다
절벽에 서 있던 시간들이 붙잡고 있던
그리움 하나
반조가리 몸뚱이로 비에 젖고
그리고 웬 주검이 저를 보내지 못하고 옛길에서 저렇게 완강하다
나는 탑과 부도를 돌아 먼 데 마을을 바라본다
길을 끌어당기고 있는
오래 묵은 풍경들과
마음이 끝내 허물지 못한 낡은 집 한 채
돌아가고 싶었다
이 폐사지를 건너
뜨거운 해와 바람과 물소리마저 사라진 뒤
밝아올 어둠의 자리
거기 내가 두고 온 바다에 종소리가 떨어지고 있을 게다
막 태어나 젖먹이 울음을 머금고
별자리 하나 눈 푸르게 돋아나고 있을 게다
늙은 산수유 한 그루 나를 보다가 빗속으로 가뭇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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