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상담실

다시 말해 타협에는 두 가지가 있단 말입니다. 첫째는, 아무 노력도 행동도 일으키지 않으면서 그냥 상황 돌아가는 걸 멍하니 구경하면서 ‘어쩔 수 없잖아’로 정리해버리는 타협, 이건 타협이라고도 할 수 없고요, 스스로를 놔버리는 ‘포기’고요. 둘째는 문제의 핵심을 끝까지 추궁해서 어떤 발견을 하고 새로운 전개를 도출해내고 관점마저 변화시킬 수 있는, ‘결론적 선택’으로서의 타협입니다. 후자의 접근이라면 끝장을 볼 만큼 보고 내린 뒤끝 없는 결론이니 타당하고 납득할 만한 것이 되는 거지요.

 

 

약혼자를 심리적 벼랑 끝으로 내모는 걸 각오하고, 도리어 먼저 그에게 파혼당할 것도 각오하고 당신이 심각한 본질적 문제라고 확신하는 ‘감정의 허기’에 대해 충분한 의사소통이 과연 있었는지요. 아니면 이만하면 놓치기 아까운 상대라 파투 날까 겁나니까 내 타협이 적절한지 여부를 혼자서만 ‘내 마음가짐 문제’로 해결 보려고 애초부터 포기하고 있었나요. 말해 봤자 통할 리가 없고, ‘어차피 그 사람의 타고난 성격인데 바뀔 수 있겠어’라고 단정지으며 ‘이렇게 마음 안 통하는 남자랑 결혼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내 나이도 있고 내 불량한 상태 봐도 밑지는 장사는 결코 아니니 이 정도면 감지덕지일까?’ 싶다면 전 되레 그 남자분이 더 안쓰럽습니다. 평생 옆에 누워 자는 아내가 머릿속에서 ‘난 이 남자로 타협 봤어’라는 생각을 품고 잠들고 있다니, 어느날 갑자기 베개로 머리 짓눌리지 않을까 공포스럽지 않을까요?

 

 

이 대목에서 또 ‘어쩔 수 없잖아’라는 말이 울컥 안에서 항변하듯 치솟는다면, 본인 입장에서는 ‘하는 수 없이 타협한다’라며 자신의 처지를 연민을 가지고 바라볼지 모르지만 타인의 시각은 좀더 냉정할 수 있을 겁니다. ‘아냐, 그리 안타까워하지 마. 실은 이렇게 타협하는 결혼이 당신한테 딱 맞는 것일 수도 있어.’ 서른살이 넘어서도 자급자족 독립할 수 있는 기력과 태도, 그 이상으로 자신의 여린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통제력을 포기한 당신의 나약함과 무기력함 앞에 결혼 상대가 가진 열정의 함량미달을 견주어 보십시오. 당신은 그의 가능성을 놔버리기 전에 이미 스스로를 놓아버리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젭니다. 보통 나 자신이 못 미더울 때, 내 앞에 나타나는 상대들 역시도 못 미더울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다고 대차게 버리지도 못하죠. 마음에 안 드는 자기 자신 역시 버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붙들고 있듯이. 어쩌면 그 남자분도 ‘난 이 여자로 타협 봤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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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2 19:08 2009/05/0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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