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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IT 강국 한국은 감시천국 / 오길영

[기고]IT 강국 한국은 감시천국 경향신문 2007년 06월 19일 18:19:45 〈오길영/민주주의법학연구회 법학박사〉 정보기술(IT) 강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휴대폰 하나 정도는 기본으로 달고 다닌다. 전화 통화는 물론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보내고 심심하면 음악이나 TV를 즐기다가, 친구나 가족이 생각나면 재빠른 손가락 타자로 편지를 띄우기도 한다. 넘쳐나는 공짜폰 하나면 이토록 편리한 세상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신기술을 연구하는 과학자이거나 제법 중책을 맡고 있는 공무원이라면 휴대폰을 꺼두는 것을 권유하고 싶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 중에 잘나가는 과학자나 공무원이 있다면 당신 또한 휴대폰을 꺼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누군가가 합법적으로 당신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혹여 그 휴대폰에 친구 찾기 기능이 있다면, 5m 근처에서 정확히 모니터링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단장된 모습으로 생활하는 주의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법무부의 2007년판 법률안이 예고하는 바이다. 통신의 비밀은 헌법이 인정한 고유한 기본권이다. 이렇듯 일상과 긴밀한 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법률을 새로 만들면서 어찌하여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가? 이번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밝히고 있는 내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통신 사업자는 통신장비 옆에다 감청장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10억원의 강제금을 1년마다 내야 한다. 강제로 감청을 대신 시키는 세상인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이제 영화에서 보는 첩보용 밴 차량은 필요없다. 감청장비는 사업자의 통신장비에 늘 꽂혀있어 필요할 때마다 열어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열어보면 무엇이 나오는가? 통화 내용, 통화 상대방, 통화 시간, 통화 위치, 문자 메시지, 전송 사진, 인터넷의 경우에는 접속 기록, 시간, 위치, 읽은 게시물, 방문 사이트 리스트, e메일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기록들이 쏟아져 나온다. 좋게 보면 투명한 세상으로 가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다 감시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들리는 말이 있다. “털어도 먼지 안 나는 내가 무슨 감청을 당해?!” 그렇다. 감청은 다른 수단으로는 도저히 수사가 곤란할 때 최후 수단으로 법원의 허가를 얻어 실시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한 명의 피의자를 쫓기 위해 발급되는 1건의 허가서에는 비단 피의자의 전화뿐 아니라 수명의 감청 대상 전화번호가 있을 수 있고, 어떤 번호들을 선정하는가의 판단은 판사가 아니라 수사기관이 한다. 즉 무인도에 혼자 살지 않는 한, 내가 착하게 살면 날 감청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더구나 이번 개정안에는 기술 유출 범죄가 새로이 포함되고 5m까지 근접 추적이 가능한 위치 정보까지 추가되었으니, 신기술을 개발하는 과학자의 친구나 집안식구들은 대강 5m가량의 프라이버시 공간만 유지되는 셈이다. 참으로 IT 강국답다. 이젠 감시마저 IT 시대인 모양이다. 앞으로는 유비쿼터스 시대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유비쿼터스 감시체제는 어떠할까?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모든 정황정보가 보고되는 유비쿼터스 감시 기술은 한마디로 철통같은 감시 천국을 예고하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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