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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문]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

*** 7월 2일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
*** 인권사회단체들, 국회에 호소문 배포

<호소문>

감청의 일상화가 헌정질서를 농락하는 것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합니까!

존경하는 의원님,

의원님께서는 통신비밀보호법이 만들어진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1992년 초원복집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리고 지난 2005년에 밝혀진 안기부 불법도청 파문으로 통신비밀보호법에 영장주의가 강화된 것도 잊지 않으셨을 겁니다. 두 사건 모두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시기였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루어진 도청으로 전 국민의 경악과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권력에 의해 개인의 사생활이 통제받고 감시당한다면, 그 누구도 민주주의 공화국의 정치적 주권자로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사생활은 전체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최후의 보루인 셈입니다. 이는 의원님께서 누구보다 더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지난 22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이러한 민주적 헌정질서를 무너뜨릴 법안입니다. 개정안은 수사기관이 전기통신사업자를 통해 휴대전화, 인터넷전화(VoIP)의 감청을 개시하도록 하고, 인터넷 이용자의 인터넷 이용기록을 최대 1년간 보관하도록 하다가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제공하도록 의무화하였습니다. 대통령령이 정하기에 따라서는 휴대전화, 인터넷 전화 뿐만 아니라, 전자우편, 메신저, 채팅 서비스까지도 감청이 가능한 서비스만 제공하도록 의무를 부과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4천 8백만 국민 모두가 이용하는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수사기관의 감시망 속에 들어가게 되었고, 사실상 전면적인 대(對)국민 감시체계가 작동할 것입니다.

통신사와 수사기관에 의해 의정활동이 위축될 것입니다.

감청대상범죄가 넓기 때문에 국회의원이나 보좌관 등에 대한 표적사찰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유선전화 감청만이 가능했지만, 휴대전화 감청이 가능하면 당사자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국회의원이나 보좌관에 대하여 4개월 동안 휴대전화 감청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4개월의 휴대전화 감청이 이루어진다면 그 자체로 정치사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정안에서 정치관여를 목적으로 하는 감청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긴 했지만, 합법적 범죄수사를 가장하여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은 감청은 정치관여의 목적이 아니라고 빠져 나갈 것이고, 감청의 결과물에서 나온 단서로 이루어지는 정치사찰을 막을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고도로 보호되어야 할 의정활동이 휴대전화 감청을 통해서 합법을 가장한 정치사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입니다. 게다가 통신사의 내부자에 의한 불법감청이나 감청내용의 유출가능성도 상존하게 됩니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수사기관은 ‘범죄의 예방과 진압’이라는 한 마디로 이 모든 논란을 덮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의 감청 요건은 형식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고, 통신사실확인자료의 허가 요건은 범죄혐의를 소명하는 자료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휴대전화로 감청을 확대하고 범죄를 예비하지도 않는 일반 국민의 통신기록을 보관하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수사기관이 통신비밀보호법에 도입된 영장주의 원칙을 무시하고 남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감청의 일상화’가 야기할 공권력남용과 그로 인한 피해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합니다. 수많은 국내외 사례들은 휴대전화와 인터넷과 같은 1인 통신 매체에 대한 감청이 ‘범죄를 감시’하기보다는 ‘정치를 감시’하는 데 더 자주 사용되어 왔음을 보여줍니다. 지난 2004년 국가정보원과 국군 기무사령부가 일간지 기자의 통화 내역을 조회한 사실이 들통 나 사회문제가 되었던 일도 그런 사례입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1년부터 2006년 사이 우리나라에서 감청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대상 범죄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입니다.(총 2,442건 중 1,023건)

최근 이탈리아에서 십수년간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 기업인이 비밀리에 도청당해 왔음이 밝혀져 전 세계적으로 충격을 주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정치인에 대한 도청 파문이 자주 일어나고 있고, 그리스에서는 수상과 여러 명의 장관들의 휴대전화가 1년 이상 도청되었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에서도 정치인에 대한 도청이 문제가 되고 있으며, 콜롬비아에서는 정부에서 야당 정치인의 비밀 도청을 승인하여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심지어는 미국에서도 불법 감청 문제가 끊임없이 문제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세계 각국에서 불법도청은 끊임없이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개정안은 또한, 민?관을 불문하고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상황에서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유선전화에서 휴대전화와 인터넷으로 전이된 통신 이용 형태의 변화 때문에 감청의 확대 및 자료 보관의 의무화가 불가피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유선전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사고(思考)가 필요한 통신 매체임을 망각한 수사 편의주의적인 발상일 뿐입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은 유선전화와 달리 1인이 24시간 이용하는 통신매체이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의 가능성이 유선전화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

때문에 국회가 시급히 입법조치하여야 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이 아니라 개인정보보호관련법률의 정비입니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의 ‘2006년 정보보호 실태조사’에서, 우리 국민이 가장 우려하는 정보화 역기능으로 ‘개인정보 및 프라이버시 침해’(74.6%)를 꼽은 사실은 우리 사회가 목표로 삼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특히 통신사업자로 하여금 통화내역, 위치정보, 그리고 인터넷 이용기록을 상시적으로 보관토록 하는 것은 우리 국민의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를 큰 위험에 방치할 것입니다.

통신기술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의 정보를 제공받는다는 것은 단순한 통신내역 뿐 아니라 휴대전화 사용자의 위치, 휴대전화의 다양한 이용 정보 - 금융 업무, 쇼핑, 인터넷 결재 등에 관한 정보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뿐 아니라 최근엔 ‘인터넷 전화’, 화상 통신 기능이 있는 ‘WCDMA’는 물론 ‘RFID' 등 신기술이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통신비밀보호법이 이런 통신 신기술에 적용되었을 때의 사회적 영향과 그로 인한 인권 침해 문제는 이번 국회 심사 과정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국 수사기관의 통신비밀보호법 남용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1992년의 ‘초원복집’ 사건에서도, 2005년에 세상에 공개된 안기부의 ‘엑스 파일’ 파문에서도 국민들의 관심은 “누가 도청을 했는가?”였습니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수사기관을 비롯한 그 누구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기본권 침해에 대해 결코 좌시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서까지 팔리는 우리 국민의 개인 정보 누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법률의 ‘개정(改正)’이 기존 법률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을 개선하고 변화된 법률현실을 체계적으로 명문화하는 작업이라면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정 방향은 오직 하나, 국민의 통신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법률이 법리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인 판단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개악(改惡)된다면, 법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무너질 것이며 이는 민주주의에 크나큰 위협이 됩니다.

기본권 침해적인 법률의 ‘개악’이 사회적으로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을 의원님께서 행동으로 보여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07년 6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인권단체연석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진보네트워크센터, 한국진보연대(준), 함께하는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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