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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 살림!

 

 " 살림, 죽임의 반댓말."

 

 한 때 열심히 봤던 드라마의 대사였다. 이 한마디로 살림의 의미를 알았지만, 아는 것과 깨우치는 것은 다르고 깨우치는 것과 실천하는 것 또한 다른일이었으니........

 

 

 각자 나름의 어른의 기준이 있다. 스무살만 지나면 어른이라던가, 필요한 만큼 돈을 벌어야 어른이라던가. 그런 것처럼 나에게도 어른의 기준이 있다. 바로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를 책임진 다는 건? 간단히 말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혼자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어느 정도는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더 쉽게 말하면 세상에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혼자 남아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다.

 

 조금은 스케일이 큰 기준이라 할지도 모르지만 뭐 사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이런것이다. 혼자 살게 되면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일단 집이있고, 요리,청소,설겆이,빨래,정리,씻기 등등의 활동들이 필요하고, 이와같은 행위들을 하기 위한 도구들도 준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목표, 꿈, 건강, 생각, 취미, 일, 세금 등등의 일들또한 챙겨야 한다. 그리고 또 사회적으로 참여와 관심, 더 좋은 사회를 지향하는 태도(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등등도 생각하여야 한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 끝이없지만(예를들면 혼자 밥을 해먹으려면 직접 농사를 해서 재배하고 정미하여 밥을 짓고 먹어야 하느냐의 문제?) 도구나 재료의 문제는 일을 한다고 치면 경제능력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것이라 치고(그러나 재배능력이 있다면 좋겠다.) 이정도의 일을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어느정도 해내면 그건 어른이라 칭할 수 있다는게 나의 기준이다.

 

 아무튼 서론이 길다, 지루하면 여기부터 읽어주시라.

 

 그래서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하고 부족한 건 집과 관련된 항목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이 여행가신 사이에 집안일을 맘껏 해보기로 작정했다. 결과는? 힘만 엄청 들이고 엄마한테 욕먹었다는거.

 

 오늘 아침 7시에 일어나 어제 못한 설겆이를 하고 방정리를 대충하고, 밥을 하고, 김치를 볶아 주먹밥을 만들고, 그걸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생긴 설겆이를 하려고 하자 벌써 10씨가 다 되어 간다. 후다닥 점심도시락을 싸고 집 밖으로 달려나가 학교에 갔다.

 

 나름 최근들어 설겆이를 가장 많이 했다는 자부심과, 스스로 밥을 해먹고 도시락까지 싸서 나갔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집에 들어왔으나, 돌아온 엄마는 칭찬은 커녕 이틀 동안 청소기 한 번 안돌린 바닥을 나무랐다.

 

 열심히 노력했건만! 청소기를 잊은건 아니었다. 분명 아침에 하려고했으나 시간이.... 3시간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살림이 이정도라는 걸 실감했다. 다른 일 하는 것에 1.5배 정도는 열심히 했는데 말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 9시에 출근하는 엄마가 위대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나는 개강초라 술먹고 11시에 들어와서 또 나머지 설겆이를 하고 청소기를 맘껏 돌렸다. 그리고 상쾌하게 샤워!  어쩐지 땀흘리며 청소기를 돌리니 어떤 쾌감마저 든다. 아무도 모르게 오늘 아침에 다짐을 했다. 이제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 엄마가 지금까지 해주신 일을 스스로 하며 엄마의 집안일 스킬을 배우자! 다른건 몰라도 이것만은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를 빈다.

 

 흔히들 '집안일=엄마의 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른이라면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을 고맙게도 엄마가 대신 해주고 계신다고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의 생각의 고리의 갇혀, 이번 방학 내내 땅굴만 팠다. 어떤 답답함에서 해답을 찾고 있었다. 그 해답은 나를 살리는 살림이다. 내 일임이 분명한데도 엄마가 해주시는 걸 이제는 참을 수가 없다.

 

 실천하자- 노력하자- 열!혈!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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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 이야기.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 남자친구가 집에 들어간지 얼마 안되어서 전화를 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지만 바라지 않았던 일. 나에겐 해당되지도, 벌어질 가능성도 희박한 일.

 

 정부보증 학자금을 거절당했다.

 

 지난학기에도 그랬다. 이유는 10일의 이자연체 때문, 이자는 다 갚았건만 그 기록 때문에

정부보증에서신용등급을 인정하지 못한단다.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한 달 전에 국가에서

신용유의정보를 가진 학생들을 졸업 후 2년까지 유예해준다기에 신청해봤지만

신용유의정보 해당사항이 없다고 했다.

 

 이제는 대출이 되겠거니 안심하고 클릭했건만, 똑같은 이유로 또 거절당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나는 계속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등록금을

전부 부모님이 내주시는 20대 초반의 대학교 2학년, 내 남자친구는 2번의 학자금대출 후에

돈 버느라 제적당하고 꿈을 찾아 어머니가 모아두신 돈으로 올 해 학교에

재입학 한 20대 후반의 대학교 2학년.

 

 우리가 잘못된 걸까, 나와 예술을 논하고 사랑을 나눌 시간에 내 남자친구는 등록금을

조금이라도 벌어놨어야 하는 것일까? 얼마 전 읽었던 기사가 생각났다.

 

 

사랑은 88만원보다 비싸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5496.html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너무 울컥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이자를 안 갚은 것도 아닌데라며

열을 내는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머릿 속에 맴돌았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 남자친구에게서 들은 그의 가족들을 떠올렸다.

 

 중풍으로 누워계신 외할머니, 할머니 보살피느라 밤에 김밥집에서 일하시는 어머니,

가끔 일을 하고 큰 돈을 벌지 못하는 아버지, 평범한 회사에 다니지만 큰 한방을 노리는 형,

정부보증을 못받는 대학생인 그.

 

 확대해석해보면 이 사회에 있는 문제점과 컴플렉스를 가득 안고있는 가족처럼으로도 보인다.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통화를 하는데 그가 제2금융권에서 빌리는 방법도 있다고 해준다.

이자는 더 비싸지만 그의 꿈이 완전히 꺽이는 건 아니다. 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그런 나를 위로하려 그는 어느정도까지 대출이 될 것이고 어느정도씩 갚아야하는지 조목조목

설명하며 조금씩 벌어서 가난하지만 갚아 나갈 수는 있지 않겠냐고 말을 한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나를 더 울린다.

 

 나는 사실 가난하게 살아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이라 불릴만큼

잘사는 건 아니지만, 돈 때문에 하고싶었던 것을 포기 해 본 적은 별로 없다.

하지만 난 가난한 삶을 지향한다. 내가 어느정도 보탬이 될지 가늠할 수 없지만,

지금의 이 말도 안되는 사회를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현실 참여형 작가가 되고싶다.

 

 하지만 틈틈이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 욕심들을 난 숨길 수가 없다.

막상 가난하게 산다고 하면 어떻게 살아질지 두렵기도 하다. 

내가 그렇게 못사는 사람이면 어떡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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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른 사람

 

 올 해 들어 나에게 생긴 가장 큰 일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 아직은 시작한지 얼마 안 된 한참 좋을 때인 커플이지만 난 감정적인 측면을 떨쳐놓고 보아도 지금까지 기다렸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언제나 연애를 하면서 느끼는 공허함이 있었다. 난 매우 진지하게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깊은 생각을 나누는 관계를 원했다. 그런데 항상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그럴 것처럼 말만 하고는 육체적인 관계에 집착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만 들어주길 원하거나 그저 같이 놀러다니며 즐기는 것만을 원했던 것 같다.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은 항상 들었지만 그렇다고 바로 뿌리칠 만큼 냉정한 사람이 아니어서 언제나 있는대로 휘둘리다 결국 차이고서 미련만 가득이었다.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미련이 남았었던게 지금생각하면 아이러니지만.

 

 남자친구의 지난 다이어리를 보다가 이 사람도 전에 나와같은 공허함을 느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의 우리는 꼭 만나야 하는 사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신했다.

 
 그런데 참 재밌게도 우리 둘은 사실 엄청나게 다르다. 스타일로만 봐도 나는 착실한 모범생 스타일이라면 이 사람은 재밌는 양아치 스타일이다. 그래서 처음에 우리가 만날 때 주변사람들의 반응이 너무나 재밌었다.

살아온 환경이나 영향 받은 것들도 반대였던 것이 많은데, 참 신기한 건 그런 다른 경험 안에서 우리는 같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연애를 시작하고 한달 정도 지나서인가? 우리가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전까지는 우리가 정말 비슷하게만 생각한다고 믿어서인지 충격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기대하고 있던 것이 깨져서 서로 많이 싸우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매일매일 즐겁게 만나고 있는 우리는 어쩐지 헤어져도 미련이 남거나 서로 미워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며 행복해한다. 이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거기다 요즘은 나를 변화시키려 노력을 많이한다. 나 스스로도 그렇고 이 사람도 도움을 많이 준다.  난 겁쟁이라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하게 해주고 싶어한다. 나도 그렇고. 빨리 알 속에서 나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지지해 주고 있다. 왠지 함께있으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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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해보려구요

 

 아무튼 벌써 그게 몇 년 전이지만 진보넷을 알게되서 진보 블로거들의 글을 읽으면서 좋다는 생각을 많이했고 그리하여 동참하고 싶어서 개설을 했었다.

 

 그리곤 생각 날 때마다 글을 올렸는데, 가끔 메인에 뜨기도 하고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이 있어서 나름 즐기며 블로깅을 했었다. 근데 언제부턴가 내 글이 뭔가 구려지기 시작한단 느낌이 들어서 점점 글도 안올리고 그러니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 같다.

 

 변화가 필요한 지금같은 시기에 나는 다시 진보블로그를 찾았다. 사람들의 글을 보고 뭔가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느꼈다.

 

 고등학교 시절, 난 내가 대학에 오면 훨씬 자유로운 사람이 될거라 생각했건만 막상 대학에 와서는 대학에 묶여 더더욱 나를 좁은 틀 안에 가둬둔 건 아니었을까? 그렇잖아도 나 너무 학교에만 매달리는 건 아닐까하고 고민하는 나에게 어떤 교수님이 "매번 칭찬만 받는 너 자신을 버리기 싫은거지?"라는 말을 들었더니 더더욱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다.

 

 전에 블로그를 관뒀을 때는 뭔가 블로그에 의미심장하고 멋있는 글을 올려야 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그런 글을 올리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 괜히 부끄럽고 진보블로그의 물을 흐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이제는 전보다 더 솔직하게 어색해도 이상해도 나 자신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블로거가 된다는 다짐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나 자신을 바꾸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나 자신을 바꾸기에도 너무나 힘든 나는 겁쟁이다. 그래서 이제 그 겁 좀 덜어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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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추석연휴가 끝나자 아이들 사이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추석 기간에 살이 얼마나 쪘느니, 너무 많이 먹었다는 둥 하면서 다들 다이어트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마른 사람은 동경의 대상이고 미인의 표본이었다. 아이들은 통통해야 귀엽다는 어른들에 말에도 약간이라도 뚱뚱하다고 생각되는 아이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어릴 적에는 그렇게 다이어트를 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아, 어쩌면 뉴스에서 간혹 나오는 다이어트 법이나, 만화잡지에 실리는 다이어트 법을 보고 따라했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와 내 친구들은 청소년이고 사람들이 보기에 이 나이면 다 자란 것 같지만 뼈가 튼튼하게 자리잡으려면 25살 까지는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의 양호 선생님 조차 운동만 해서는 살이 잘 빠지지 않는다며 간식을 먹지 말고 밥먹는 양을 줄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간식을 안 먹는 건 몸에도 좋겠지만 이 나이 때 밥 양을 줄여가며 살을 빼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 지 생각해 본다.

 

 양호 선생님 까지 이렇게 말하시는 거 보면 얼마나 사회가 날씬한 사람을 원하는 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날씬한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요즘 옷 가게에서 큰 사이즈의 옷은 잘 나오지도 않는데다가 나오기만 하면 이미 팔려 버린다고 한다. 하지만 옷을 만드는 사람들은 마네킹의 몸매에 맞춘 작은 사이즈를 가장 많이 만든다. 옷은 작게 만들어야 예쁘다고 그러는가 보다. 하지만 그 사이즈의 옷이 가장 많이 남는다.

 

 내 생각에 나는 적당한 몸매라고 생각한다. 키 162에 몸무게 55. 주위에선 다들 조금만 살을 빼면 이쁠 거라고 하지만 나는 살을 뺄 생각은 없다. 사실 내가 살을 뺄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한 때 살이 너무 쪄서 산 지 1년도 안 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청바지가 맞지 않았을 때였다. 옷이 맞지 않는 것만 아니라면 난 이 몸매가 맘에들고 살짝 쪄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내 허리 사이즈는 26~30인치이다. 요즘 옷은 참 기준이 없다. 어떻게 내가 4인치나 수용 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한 번은 언니와 같은 가게에서 바지를 샀다. 요즘은 사이즈가 작게 나온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는 30, 언니는 32를 샀다. 집에 가서 입어봤는데 나에게 딱 맞더라. 정말 사이즈가 작게 나온 다는 것을 실감했다. 어쨌든 언니도 당연히 맞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바지를 이렇게 만들었나 싶다. 언니가 바지를 입자 허리는 맞는데 허벅지가 터질 듯 했다. 30과 32는 허리 사이즈만 차이가 나고 허벅지부분의 넓이는 같은 것이었다. 상심한 언니는 나에게 입으라고 주었는데 내가 입어보니 허리는 너무 크고 허벅지만 맞는 것이었다.

 

 물론 뚱뚱하면 사람이 둔해지고 게을러진다는 소리도 있다. 그래서 뚱뚱한 사람 중에 그런 이유로 살을 뺀다는 사람도 봤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에 날씬한 사람보다는 뚱뚱한 사람이 많다. 그런데 왜 모든 것이 마른 사람에게 맞춰져 있는지 모르겠다. 마른 사람에게 맞춰 놓고서 뚱뚱한 사람들에게 살을 빼서 거기에 맞추라고 하는 것 같다.

 

 빨리 자기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자신의 몸의 딱 맞는 옷을 맞춰 입는 시대가 도래했으면 한다. 그 보다 먼저 작은 사이즈가 이쁘다고 작은 사이즈만 만들 게 아니라, 사이즈가 커도 예쁜 옷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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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키니까 하네, 딸들이라고."

 

 밥을 먹은 걸 정리하던 언니와 나에게 삼촌이 말했다.

 

 엄마와 아빠는 밖에서 밥을 먹고 오셨다. 엄마는 늦게 들어오심에도 불구하고 언니와

나를 위해 따뜻한 밥을 지어서 상을 차려주셨다. 그런 밥을 맛있게 먹고 언니와 나는

당연하게 먹은 걸 정리하고 있었는데...... 삼촌은 엄마에게 반찬을 어떻게 정리할 지

를 묻는 우리가 엄마가 시켜서 정리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무래도 괜찮다. 사실 나는 밥을 할 줄도 알고 내가 상을 차

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가 오늘 상을 차릴 때 꼼짝 않고 티비를 보면서 미안해하기

만 하고서 한 손도 거들지 않았다. 삼촌 말을 듣고 약간은 반성을 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책임 질 수 있어야 한다.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만들어 먹어야

하며, 자기가 먹은 것은 자신이 치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자신이 돈을 벌어서 사 먹

는 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돈을 벌지 않는 이상, 혹은 사먹기만 하면서 못 사는 이

상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나에게도 당연하다. 물론 세상의 기준으로 미성년이지만 나는 나를 책임지는 방법을

알고 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데 혼자 있으면 잘 그러면서도 엄마가 있으면 엄

마에게 맡겨 버리곤 한다. 참 나쁜 딸이라고 나중에 반성하면서도 막상 엄마가 밥을

해 주실 때 내가 한다고 나서기는 참 힘들다.

 

 그런데 엄마한테 매일 밥을 얻어먹으면서도 하나도 미안해하지 않고, 도와주려는 생

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아빠다. 어렸을 때 나는 엄마만 만날 밥하고 청소

하고 설거지를 해서 아빠는 그런 걸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릴

때는 가끔 엄마가 아프면 가끔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그러는 아빠였다.(지금은 엄마

가 못하면 딸들이 하니까.)

 

 뭐 아빠는 밖에서 돈을 벌고 엄마는 집에만 있으니까 집안일을 하는 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사회생활을 하신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부터 일을 하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엄마도 똑같이 일을 하는데 집안일은 항상 엄마의

담당이었다. 언제나 부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아무 불만 없이 집안일을 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집안일을 가르쳐 주시고 하게 하셨다.

 

 아빠는 절대로 자기 밥을 자기가 차려먹지 않는다. 내가 있으면 차려달라고 하고, 엄

마가 반찬을 다 만들어 놓고 꺼내서만 먹으라고 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차려 줄 사

람이 없으면 안 먹거나 시켜먹는다. 엄마가 없으면 아빠는 도대체 어떻게 살까? 아무

리 사 먹어도 우리 아빠는 집밥을 못 먹으면 안 되는 사람 같던데. 그런데 막상 엄마가

없을 때에 아빠 스스로 밥 해먹고 잘 산다고 생각하면 정말 울화통이 터진다.

 

 내가 아빠가 해 준 밥을 먹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아빠가 자기 자신을 책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아빠에게 그런 걸 요구하지 않고 묵묵히 밥을

해주는 엄마에게도 약간은 화가 난다. 또 생각해 본다. 과연 엄마는 우리 중에 아들이

 있었다면, 그 아들에게 집안일을 시켰을까? 그리고 그걸 아빠가 뭐라고 하지는 않았

을까?(내가 보기에 아빠는 남자가 주방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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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겁쟁이다.

요 며칠 사이 후배들에 대한 아이들의 갖가지 의견이 터져 나왔다.
선배한테 인사를 안하고, 시끄럽게 떠들고,
선배대접을 안하고, 기본적인 생활태도가 바로 서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 후배들의 생활태도는 우리가 1학년일 때보다 났다.
하지만 우리보다는 선배를 덜 무섭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위계질서를 완화하길 원해왔기 때문에 후배들이 이런다고 거부감은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를 무시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모이기 좋아하고, 모이면 남이야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벌써 일을 벌였다.
벌써 기합날짜도 잡히고, 무슨 이야기를 해 줄지도 다 정했다.
 
나도 작년에 기합을 받았다.
한여름에 땀이 뻘뻘 나도록 엎드려뻗쳐를 했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했다.
기합을 받고 난 뒤 아이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다들 힘들어서 쓰러졌고, 자신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렇게 힘들게 기합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던 아이들이 이제 자신의 후배들에게 똑같이 하려고 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불만이 쌓인 것은 물론이고, 좀 있으면 후배들이 후배를 받기 때문에 우리가 교육을 제대로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후배의 후배 그리고 또 후배의 후배 까지 철저한 선후배관계로 위계질서를 확립하게 될 것이다.
 
누구는 말한다. 모 유명대학의 어떤 학과가 유명한 것은 그 과의 선후배 관계가 칼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동의하지 않는다. 가장 정확하고 가까운 나의 언니가 다니는 대학은 선배에게 선배라고 부르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대학은 사람들이 익히 말하는 명문대이다.
 
물론 이렇게 돌아가는 형태 자체가 화나지만,
제일 화가 나는 건 나 자신한테다.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고 불려 나갔지만 난 한마디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나는 겁쟁이다.
사실은 기합같은거 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위계질서가 안 좋고 사라져야 한다고 외치고 친구들을 설득시키고 싶지만 나에겐 그런 힘이 없다. 용기가 없다.
게다가 난 반장이라는 이유로 후배들에게 기합을 준다는 사실을 내 입으로 전하고 왔다.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
 
나는 너무 두렵다.
지금 밖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운동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난 이 학교 안에서 조차 부조리한 현실을 개혁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받게 될 부당대우와 사람들의 달라질 시선들이 너무나 무섭다.
 
나는 겁쟁이다.
결국은 아무 일도 하지 모했다.
예정대로 후배들에게 기합을 주고 위계질서를 전수하는 선배가 된다.
나를 아는 사람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블로그에 이렇게 글만 올린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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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선배님

내가 다닌 중학교는 내가 1회로 선배가 없었다.

그래서 난 선배라는 존재의 의미를 잘 몰랐고, 그냥 동네 언니오빠처럼 대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2학년때 처음으로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이 다니는 학원에 들어갔다.

이전까지는 또래끼리 있는 학원이었지만 그 학원은 고등학생도 함께 다니는 학원이었다.

난 아무생각 없이 학원에 언니,오빠들에게 반말을 했고 친구처럼 대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지내던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학교는 선후배관계가 엄격한 학교였다.

그래서 입학해서 처음 선배로부터 부여된 명령은 이러했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선배같으면 무조건 고개를 숙이고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해라.

-선배를 부를 때는 무조건 '님'자를 붙여서 부른다.

 

어렵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 되는 거였고, 존대말을 쓰고 '님'이라는 호칭을 쓰면 된다.

선배들은 자신들이 선배대접을 받는 걸 원해서 그렇게 해 주었다.

사소하지만 뭐 선배들 앞에서는 욕을 하지 않는다던가 뭐 그런거였다.

 

우리는 나름대로 선배님들을 잘 대접하고 인사도, 호칭도 모자라지 않게 잘 했지만

선배님들은 기어이 우리를 부르셔서 기합이라는 걸 주셨다.

선배님들의 말에는 오해가 너무 많았고, 해당되지 않는 얘기도 허다했다.

하지만 다들 그냥 한번 잡아보려고 하는거라고 그러려니 했다.

 

사실 안힘들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한번 이렇게 기합 받는게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라고 난 생각한다.

하지만 모욕적이랄까 이유를 모르겠달까 어쨋든 그랬기 때문에 난 후배들에겐 적어도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악순환은 계속 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은 후배들이 자신들이 후배일 때 했던 것과 똑같은 것을 요구했고,

후배들은 대부분 거기에 따랐다.

하지만 아무리 잘해도 오해와 불신때문에 불만은 터져나오는게 당연한 것일까?

아이들은 후배들이 선배 무서운 줄을 모른다. 선배대접을 안해준다 하면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들 한번쯤 기합을 줘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도데체 선배대접이라는게 뭘까?

사회에 나가면 한두살 차이는 별거 아니라는데 왜 우리는 이런 차이로 선,후배를 가르고,

대접받고 대접해주길 바라는 걸까?

 

우리가 후배들에게 기합을 주게되면 후배들은 또 부조리하다고 느끼겠고,

또 자신들의 후배들에게 선배대접 받기를 바랄 것이다.

내가 보기엔 매우 비효율적이고 쓸데없는 일인 것 같은데 왜 우리는 이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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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나는 솔직히 얼마 전 까지만 해도 FTA라는 것에 관심이 하나도 없었다.

잘 몰랐을 때는 그냥 휙 보고서,

솔직히 개방을 해야 공평한게 아니겠냐고 생각하면서 넘기고서는 나랑은 관련 없는 것처럼 치부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할 예정이고, 물론 애니메이터가 될 생각이다.

내가 어떤 애니메이터가 될 지는 미지수 이지만, 어쨋든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 할 것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업계는 그렇게 밝지많은 않다고 들었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은 확실히 일본이나 미국의 대자본이 들어간 애니메이션 보다는

경쟁력이 약하고, 아직은 발전될 가능성이 많이 남아있다.

아직 미국이나 일본과 견주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FTA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애니메이션 업계에도 미치는 영향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나도 몰랐는데 우리나라 공중파 방송에선 방송 중 일부 몇 %를 꼭 우리나라 국산 애니메이션을 내보내야 한다는 법안이 있단다.

아직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키우기 위해서 이런 정책은 불가피 하다고 나도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FTA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도 거론된다고 한다.

저런 것이 있으면 자유로운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뭐 그런거라고 한 것 같다.

물론 자유로운 경쟁을 해야하는 건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미숙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을 미국이나 일본과 동등하게 경쟁시킨다면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발전 가능성이 사라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나는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에 스크린 쿼터가 폐지 되는걸 사람들이 반대하고 시위를 할 때,

나는 솔직히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자유로운 경쟁을 해야 하는데, 너무 자기의 밥그릇만 챙기는 꼴이 아니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남 일이 아니구나.

 

그치만 사실 난 아직도 혼란스럽다.

사실 서로 자유로운 경쟁을 해야 평등한게 아닐까?

 

이런 사실에 대해 요 근래 여러가지로 생각해보고 있는데,

정말 심각하게 느낀건 사람들은 정말 시사에 관심이 없는건지 아니면 FTA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다들 남일로 여기는 것 같다.

친구들은 물론 가볍게 생각하고 있기에, 나는 나이 많은 분께도 여러가지로 여쭈어 보았지만

다들 그렇게 깊은 관심은 없는 듯 했다.

오히려 나에게 왜 그런데 관심을 가지냐며, 가서 공부나 하라고 했다.

 

청소년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건 쓸데없는 생각일까?

내가 계속 살아갈 나라의, 내가 몸을 바칠 분야의 미래가 걸려있는 일인데,

난 정말 아무 걱정 않고 공부만 하고 있어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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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

 

난 경제감각이 둔한 편이다.

그래서 별로 돈을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고 살고 싶다던가 그런 생각은 없다.

내가 하고싶은 일으 하면서 적어도 밥만 안 굶고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제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난 너무나 놀라웠다.

한달에 300만원을 버는 게 너무 적다며 하소연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도대체 너네는 얼마를 벌고 싶은 거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어떻게 한달에 300만원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냐는 거였다.

 

하 그렇구나.

그 아이들 모두 '꽤' 잘 사는 집 아이들이 였다.

게다가 다들 외동 아니면 형제는 둘 정도 되는 아이들이 였다.

한달에 내는 세금이 백만원인데, 아이들 학원 보내고 먹여주고 입혀주면,

남아날 돈이 없다고 얘기했다.

 

사람은 살아온 환경에 따라 인식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나는 세자매 중에 막내로 아버지는 공무원 이셨고(지금은 관두셨고),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는 쉬시다가 나중에 일을 나가셨다.

아버지의 한달 월급은 300만원이 되지 않는다고 들었고, 어머니는 한 150정도 였다.

하지만 이게 제작년에 얘기지, 예전에는 공무원 월급이 엄청 적었고,

어머니도 일을 안나가셨기 때문에 상황이 그렇게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난 살아오면서 부모님이 나한테 부족하게 해준 건 없다고 생각한다.

입고 싶은 걸 사주셨고, 다니고 싶은 학원에 다니게 해주셨고, 먹고 싶은 걸 먹게 해주셨다.

그 아이들과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일단 난 비싼 옷을 별로 안좋아했고(이해를 못했고),

내가 원래 비싼학원은 안다녔고, 먹고 싶은 것도 그리 비싼 것들이 아니었다.(난 지금도 맛과 가격이 비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약간 특이한 편이긴 하지만 친구들의 그런 말을 들어도 난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부모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러면 그들은 돈이 없다고 해서 아이를 키울 수 없거나 혹은 잘못 키우게 되는걸까?

돈이 있거나 없거나 다들 그래저래 자식을 키워 간다.

통계에 따르면 집안의 경제사정이 좋을 수록 성적이 좋다는 것도 있지만,

난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건,

돈 많은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똑같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특히 사교육비 문제 같은건 정말 심각하다.

요즘 부모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뒤쳐지지 않게 등골이 휘어가며 자기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

학원에 안다니면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학부모의 사고방식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사회가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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