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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1
    이 거리 고도부끼에서 혼자 기거하는 사내들
    처절한기타맨
  2. 2008/01/17
    나,야쓰모도 1
    처절한기타맨
  3. 2008/01/16
    나, 야쓰모도(프롤로그+에필로그)
    처절한기타맨

이 거리 고도부끼에서 혼자 기거하는 사내들

  • 등록일
    2008/01/21 08:57
  • 수정일
    2008/01/21 08:57
 

< 이 거리 고도부끼에서 혼자 기거하는 사내들

  밀린 성욕을 해결하는 가장 깨끗하고도 값싼 방법 >


이 거리 고도부끼에서 혼자 기거하는 사내들, 밀린 성욕을 해결하는 가장 깨끗하고도 값싼 방법 하나를 공개한다.

 

일단 일을 마친 저녁, 더러워진 몸을 씻으러 코인 샤워장으로 비누와 수건, 그리고 목욕 요금으로 백엔 짜리 동전을 두 개 준비해간다. 이것만 있으면 충분히 밀린 때와 밀린 성욕까지 깨끗이 처리할 수가 있다. 오입을 하고 싶지만 돈이 없거나, AIDS가 무서운 사람들을 위해 한가지 방법을 공개한다. 물론 방안에서 TV켜놓고 야한 광고를 보면서, 혹은 잡지에서 오려낸 미와자와 리에 등의 일본 톱스타 여배우들 아슬아슬한 반라의 사진을 보면서 수음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건 방바닥 청소를 깨끗이 해 놓아야 하고, 휴지를 눈에 띄지 않게 잘 치워 놓아야하는 수고스러움, 이런 귀찮은 경우가 있으니 가장 청결하고, 깨끗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물론 일석이조, 목욕을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 또한 부록으로 끼워 소개한다.

일단 코인 샤워장안으로 들어가 동전을 하나 넣으면 5분간 따뜻한 물이 샤워기를 통해 뿜어져 나온다. 그럼 일단 몸에 물을 축이고 머리를 2분내지 3분 사이에 후딱 감고 나머지 2분 동안은 물을 조금 더 뜨겁게 해서 몸의 때를 불린다. 그리고 물이 끊기면 그때부터는 몸의 때를 밀기 시작한다. 대강 때가 다 밀리면 툭툭 몸의 때를 손으로 털어 내고 비누를 온몸에 골고루 칠한다. 그리고 더불어 밀린 욕망을 함께 처리하는 것이다. 여기 부분은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몇 줄 빈칸으로 처리.






그리고 나서 다시 백엔짜리 동전 하나를 추가로 집어 넣고 5분간 물이 공급되는 동안 깨끗하게 몸을 헹궈내면 일석이조의 모든 과정이 끝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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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쓰모도 1

  • 등록일
    2008/01/17 14:54
  • 수정일
    2008/01/17 14:54
 

< 고도부끼에서의 하루 - 5000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졸린 손으로 더듬더듬 창문을 열고는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내다보니 차가운 늦가을의 바람에 가로수 이파리들이 부르르 온몸을 떨고있다. 아직 어둑어둑하기만 새벽 거리, 배가 몹시 고픈 짐승처럼 등을 푹 수그린 사람들이 하나둘 여관 문을 나서고 있는 것이 내려다보인다.


  우라질! 오늘 하루는 지지배라도 하나 꿰차고 공원에나 놀러가 여자친구가 준비해온 도시락이나 까먹으면서 야들야들한 허벅지나 베고 누워 한숨 늘어지게 낮잠이나 실컷 자보았으면 좋으련만, 아휴! 한숨이 절로 새어 나온다.


잠이 들깬 상태로 노상 쓸데없는 몽상부터 한다. 늘 아침은 이렇듯 엉뚱한 상상으로 시작하지만, 별 도리가 없다.


“씨팔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니미랄 좆도. 일 나가야지 별 뾰족한 수가 있나.”


나, 야쓰모도는 혼자 궁시렁 궁시렁 툴툴거리며 냉장고를 열고는 우유와 바나나를 꺼내 간단히 아침요기를 하고 거리로 나섰다.


날이 제법 차다. 거리는 벌써 하루 일자리를 얻기 위해 나온 불법 체류자들로 득시글 득시글 대고 있다. 한 부랑자가 종이박스를 태워 밤새 길바닥에서 노숙을 하느라 딱딱하게 굳은 몸을 녹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불현듯 처음 이 거리에 왔을 때 느꼈던 황량함이 새삼스럽게 다시 느껴진다. 첫날 이곳 고도부끼에 일을 하기 위해 왔을 때 어두컴컴한 길가 여기저기에선 지린내가 진동을 하고, 길 모퉁이 구석마다 술 냄새와 구정물 냄새를 풀풀 풍기는 부랑자들 이 라면박스나 신문지를 깔고 잠을 자고 있었다. 더군다나 귓가에 들려오는 친근한 모국어로 된 신선한 욕지거리들.


“야 이 씨발놈들아, 너희들 죽고 싶냐. 이 개새끼들아.”

“좆같은 새끼들 어디 남의 돈을 떼어먹으려고 그래...”


아주 곱게 분단장한 계집과도 같은 얼굴의 일본, 그러한 모습만을 보아왔던 나,야쓰모도에게 이 거리는 무척 낯설었지만 이제 이곳에서의 생활도 한 달이 거의 다 되었고 이제 웬만한 이들은 한 두어번씩 이상은 같이 일을 나가 이제 이 거리의 몇몇 얼굴들은 낯이 익을데로 익어버렸다.


종이 박스를 불태워 그 온기를 조금이라도 몸에 옮겨 보려하는 부랑자들.

허겁지겁 값싼 우동 국물을 들이키며 아침 허기를 달래는 일당 용역 노동자들.

눈구멍 안쪽으로 꾸역꾸역 밀려 들어오는 비루하기만 한 생의 뒷골목 스산한 아침 풍경들.


“어이 야쓰모도 어제 일했냐.” 

나와 똑같이 야쓰모도라는 일본이름으로 불리는 아저씨가 먼저 아는 체를 한다.

“예 어제 코일 싣고 들어온 배 있어서 다행이 일 나갔어요. 아저씨는요?”

“나 3일간 일 못했다. 그나저나 방세 밀려 큰일이야.”

“그래도 자넨 젊고 일본말도 좀 하니까 일본 놈 십장들이 웬만하면 데리고 나가주잖아.”

“요새는 그렇지도 않아요. 돌아가면서 쉬게 하더라구요.”


고도부끼 인력시장의 사거리 한가운데에 위치한 공중변소 앞에 주차해서 똥차라고 불리는 봉고차가 거리로 들어서고 있다. 공중변소가 세워진 이유 역시 술취한 부랑자들, 노동자들이 하도 노상 방뇨를 해대서 결국 공중 변소를 길거리 한가운데에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일본에 와서 길바닥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지린내를 맡아본 곳은 딱 여기 고도부끼 뿐이었다.


사람들이 우르르르 모이를 얻어 먹으려고 물위로 모여드는 금붕어 떼 모양 차 앞으로 다가선다. 십장이 차에서 내리더니 손가락 아홉 개를 펴 보인다. 오늘은 아홉 명을 쓴다는 뜻이다. 언제나 똥차 앞에 모여선 사람의 경쟁률은 두 세배에 달한다. 십장하고 안면이 있어 고정적으로 일을 나가는 인원을 제외하면 고작 네 다섯 명 정도가 일을 할 수 있다. 손가락이 하나 하나 사람들을 지목한다. 지목된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잽싸게 차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가서 자리를 잡자마자 대개 눈을 질끈 감고 모자란 아침잠을 청한다.


운이 좋았다. 고정적으로 일 나가는 일본사람 하나가 오늘은 일을 나오지 않았다. 나, 야쓰모도는 그 사람의 대타로 지목되어 맨 마지막으로 차안에 올라탄다. 다른 야쓰모도 아저씨는 오늘도 공쳤다. 그가 쓸쓸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봉고차는 서서히 출발하고 사람들의 시선들이 계속 봉고차를 따라온다. 그들의 눈동자가 새까만 똥파리로 변하더니 눈구멍에서 쏙 빠져 나와 까맣게 창문에 들러붙는 듯한 상상이 문득 들었다. 십장은 파리채를 꺼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파리들을 한 마리씩 탁탁 쳐서 죽여 버린다. 창에 들러붙은, 허연 내장을 들어낸 짓이겨진 몸뚱이들. 가느다랗게 발을 달달 떨며 죽어 가는 파리 떼들. 나, 야쓰모도는 눈을 질끈 감는다. 이른 새벽 차안에 먼저 자리잡은 이들은 그새 곤한 잠에 빠져 있다.


가장 먼 곳으로 일을 나가기에 아침 새벽에 제일 일찍 거리로 들어오는 이 똥차가 귀국 수속을 밟는 동안의 나, 야쓰모도의 밥줄이다. 몇달전까지만해도 일거리가 제법 있어 사람들이 일을 골라 나갔다 한다. 똥차는 여기 요코하마 고도부끼 부두 노동자 인력시장에 처음 온 사람들이나, 정 일이 없을 때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일찍 일어나면 탈 수 있는 마지막 밥벌이 수단이었다. 그런데 요사이 경기가 별로 안 좋아 이 똥차마저도 경쟁이 불 붙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거리로 나와 7시까지 일을 기다리다가 결국 일이 없어 다시 방안으로 들어갈 때의 참담함. 그래도 자식 새끼들 딸린 아저씨들에 비하면 그나마 심적인 부담은 적은편이라고 자위하며, 방 한구석에 야한 그림 깔아놓고 빳빳하게 선 아침 좆, 딸딸이나 한번 쳐 자빠트리고, 다시 밀린 잠이나 더 자다가 일어나 점심 대강 때우고, 낯선 타향의 거리를 하릴없이 쏘다니는 게 일을 나가지 못한 날의 일과이다. 일요일이면 하라쭈꾸나 신주쿠, 이께부꾸로, 아끼하바라와 같은 도쿄의 중심 가에 나가 사람들 구경과 눈요기 쇼핑을 한다. 햄버거나 라면, 야끼소바 같은 것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며 돌아다니다 여관으로 돌아와 TV나 조금 보다가 내일 일을 위해서 일찍 잠을 청한다.


도쿄에서 일하던 공장의 사장 집에 정원 정리를 하러 간 적이 문득 생각이 난다. 하루종일 정원을 뒤덮은 잡초를 뽑고, 땅을 갈아엎고, 정원수에 농약을 치고, 그리고 저녁밥을 얻어먹고, 하룻밤 잤다. 그뿐이었다.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청춘의 나날들. 농담처럼 그때 같이 일하던 이다까라 불려지던 불법체류자에게 이 피끓는 청춘을 풀이나 뽑는 데나 쓰고 있다니 제기랄! 하고 푸념하곤 했었다. 푸념하면서 이러한 지긋지긋한 일상의 노가다들이 똥거름이 되어 나,야쓰모도가 생의 꽃을 활짝 피우는데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반문하곤 했었다.


운전사 다나까상만을 빼놓고 사람들은 모두들 정신없이 잠들어 있다. 아침을 늘 사먹는 길거리의 조그만 도시락가게 앞에 봉고차가 서자 부스스 일어나는 좀비와 같아 보이는 사람들. 도시락으로, 컵라면으로, 빵과 우유로 아침을 때운다. 가게 아주머니는 언제나 해사한 밝은 웃음으로 우릴 반긴다. “오하이요 고자이마스!” 우린 그녀 가계의 밥줄이다. 그녀의 애들은 우리들이 매일 아침 지불하는 밥값으로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일과가 시작되었다. 어제 하던 일이 남아있어 그 작업을 시작한다. 세 개조로 나뉘어 한 조는 배 안에서 수십 톤이나 되는 동그란 자석같이 생긴 강철코일에 구슬 꿰듯 철사 줄을 크레인에 걸어주고-이걸 일본말로는 다마가끼 라고 한다-바깥의 한 조는 코일을 내릴때 컨테이너 트럭에 싣기 좋게 방향을 잡아주고, 마지막 한 조는 컨테이너 트럭 위에 강철코일을 부린다. 나, 야쓰모도는 배 안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야마모도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반백의 머리를 한 할아버지와 그리고 일본인 노무자. 셋이서 배 안에서 일을 한다. 야마모도 할아버지는 제주도 출신으로 이곳에 온 지는 삼십 년도 더 되었다고 한다. 나이를 여쭈어보자 올해 환갑이라고 하신다. “이제 그만 쉬실 때도 되지 않으셨어요?” 라고  말하자 펄쩍 뛰시며 그래도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한푼이라도 더 벌어 들어가야지 속 편하지. 자식놈들 눈치보며 사느니 지금처럼 일하면서 한푼이라도 더 버는것이 오히려 속 편하다고 말씀하신다.


잠시 쉬는 시간 담배를 태우면서 배의 맨바닥에 대충 퍼질러 앉아 쉬는데 같이 일하게 된 일본인 노무자 나, 야쓰모도가 곧잘 일본말을 알아듣고, 그럭저럭 의사소통이 되니 이것저것 꼬치꼬치 질문을 해온다. 하긴 누구든 외국인을 만나면 무어든 궁금해지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 나이는, 가족은, 전에 무엇을 했는지, 결혼은 했는지, 등등 대개 이러한 것들이 누구나 비슷하게 던지는 질문이다. 가끔은 이야기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진다.

기따조센(북한)과 강고꾸(한국)는 같은 민족이면서 왜 날마다 싸우느냐고 질문했을 때 어느 편에도 손들어 줄 수 없었던 답답하기만 했던 부끄러움들.

그의 손가락은 몇 개가 잘려나가 있다. 처음에는 산재(産災) 때문인가 했는데 야마모도 할아버지가 슬쩍 뺨을 손가락으로 쓰윽 긋는 시늉을 한다. 아하! 야꾸샤 출신이었구만. 조직에서 손을 떼려면 손가락을 자르고 나와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었는데 여기 실제 인물이 있었구만. 게다가 그는 아래위 이빨이 하나도 없어 틀니를 끼고 다닌다. 별 이상한 규칙들을 다 만들어내는 인간들이란, 또한 규칙에 희생 당하면서까지 규칙을 지켜야만 한다고 믿는 인간들이란, 도무지 이해하기 싫은 족속들이다.

그가 처음에는 꺼림칙하게 생각 들었지만 차분차분 말하는 그의 말투 때문인지 처음에 느꼈던 꺼림칙함이 차차 엷어지고 나름대로 선량하게 느껴진다. 담배도 곧잘 나눠주고, 점심도 같은 탁자 위에서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보니 그 또한 그저 보통의 사람일 나름이다. 나, 야쓰모도의 짧은 일본어실력을 가지고 대단하다고 연신 칭찬해주는 아래위 이빨이 하나도 없는, 손가락이 여럿 잘려나간 전직 야꾸샤 출신 부두 노동자.


도시락을 다 까먹고 선창가로 나와 담배나 한 대 태우며 무료하게 날아가는 갈매기나 쳐다보며 바다 위를 부유하고 있는 해파리 수를 하나하나 세보고 있을 때였다. 한 한국인 아저씨가 얼굴이 벌개져서 나, 야쓰모도에게 다가온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나, 야쓰모도에게 말한다.

“이봐, 자네 이런 말 들어 본적 있어?”

“먼데요?”

“자네 혹시 고도부끼에 한국 창녀 있다는 말 들어봤나?” 

“아뇨?. 그런 건 없을 텐데. 술집 호스테스는 있어도 무작정 몸 파는 곳은, 또 그런 여자는 아마 없을걸요.” 

“그래 그래. 그럼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잠시 숨을 몰아쉬더니 말한다.

“근데 저기 저 일본 놈 십장새끼가 밥 처먹다가 5000엔만 주면 한국 여자와 한판 할 수 있다고 자랑하잖아. 혹시 그런 여자가 있긴 하나. 약간 미친것 같은 여자가 고도부끼에 하나 있긴 하잖아.”

“네? 아저씨 뭐라구요.”

머리끝까지 피가 치솟아 오름을 느꼈지만 나, 야쓰모도는 애써 태연한 척 화난 감정을 지근지근 밟아 눌러 버렸다.

하긴 이곳 일본 긴자 같은 데는 술 팔러, 몸팔러 들어온 우리 나라 여자들이 꽤 많으니 5000엔은 거짓말 좀 보탠 얘기일지라도 그런 실제 비슷한 여자들이 있긴 한 셈이다. 처음 일하던 공장에서 같이 있던 이다까란 친구도 긴자의 한 술집에 여자애들 두 명을 소개시켜주어 한 달에 10만 엔씩 두 당 20만엔 꼬박꼬박 소개비로 챙기는 것을 보긴 했다.


5000엔만 있음 한국여자와 한 번 할 수 있다고. 그 말이 하루 웬 종일 자꾸만 나, 야쓰모도의 귓가에 맴돈다. 언젠가 같이 잠시 일했던 한 일본인. 자기 회사에서 단체로 한국 관광 보내준 것 자랑을 하더라. 미아리가 어쩌고 하는데 그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무슨 모텔인가, 호텔에서 콜걸 불러 재미 좀 보았다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여기 이곳 고도부끼에 일하는 최하층의 부두 노동자까지도 회사에서 한국 관광을 단체로 보내주곤 한다고 한다. 사실 여기 일본에서는 남자들이 내세울만한 직업을 가지지 못한 능력없는 하층계급인 경우 제대로 결혼도 하지 못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는데 어찌보면 그들 밑바닥 인생들의 욕망은 여기저기 동남아 각지에서 몸 팔러 온 여자들이 해결을 해주고 있다. 정태춘씨의 ‘육만엔이란다‘라는 노래가 문득 떠오른다. 관심 있는 분은 한번 들어보시기를 권해본다. 나, 야쓰모도는 이곳 고도부끼에서 또 하루를 살아 보았다. 5000엔이라? 나, 야쓰모도의 그 날 하루 일당은 9000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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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야쓰모도(프롤로그+에필로그)

  • 등록일
    2008/01/16 12:32
  • 수정일
    2008/01/16 12:32
 

< 나, 야쓰모도 - 프롤로그 >


요코하마에 주재한 출입국에 가서 불법 체류자인 나를 신고했다. 출입국에 신고를 해야 공항을 통과할 수 있는, 즉 딱 하루 기한의 출국 용도로 쓸 수 있는 비자를 내주기 때문이다. 출입국 대기실 복도에는 출국을 하기 위해 일본의 여러 지역으로부터 신고를 하러 온 한국인 불법 체류자들이 제법 많았다. 각기 다르면서도 비슷한 연유로 이곳에 와서 생계를 도모하기위해 일을 하고 이제 다시 고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제각기 다른 삶들이지만, 똑같은 절차의 신고를 하고 저마다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갓난아이를 등에 들쳐업고 있던 한 젊은 여자, 생김새가 꼭 동남아출신의 여자 같아 모두들 그렇게 짐작하고 말을 붙이지 않고 슬핏 쳐다만 보고 있었는데 그 여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한국말이었다. 고도부끼에 일하는 남편에게 갓난 첫 아이를 보여주기 위해 이곳 일본에 관광비자로 입국해 같이 지내다 그만 보름이라는 체류기간을 훌쩍 넘겨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출입국에 와서 신고를 하고 이제 돌아가려고 한다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댁이었다. 다들 아기가 이쁘다고 덕담을 내뱉는다. 수줍어하면서도 내심 발그레한 웃음을 띠는 여자의 얼굴이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엿다.


탈옥했다 잡혀 들어온 죄수처럼 가슴에 한국인 누구누구란 이름이 크게 적힌 종이쪽지를 들고 벽 한쪽 구석에 섰다. 자동 카메라로 찰칵 사진을 찍는다. 일본에 온 후 처음으로 내 이름을 서류에 적어 넣었다. 그리고 오른손, 왼손 다섯 손가락의 지문을 서류의 한쪽에다 골고루 눌러 찍고 나서 불법 체류자를 담당하는 출입국 관리와 면담을 했다. 혹시 이곳 일본에서 불법 체류하며 불이익 받은 것이 있는지, 어느 곳에서 또 어떤 일을 얼마간 했는지, 보수는 얼마를 받았는지 대개 그러한 내용들이다. 일단 귀국 후 일년 동안은 이곳 일본으로 재입국할 수 없다고 내게 설명해준다.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가슴 한 켠에 느긋하게 밀려온다. 돈도 한 100만엔정도 벌어 집으로 부쳤다. 꼭 사려고 맘먹었던 전자 기타 한대와 클래식 기타 한대 그리고 기타 멀티 이펙터도 장만했다. 코끼리표 밥통은 아니지만 어머니한테 드릴 일제 전기밥통도 하나 사서 우편으로 보냈다. 그리고 유창하지는 않지만 간단하게나마 일상적인 일본어나마 읊조릴 수 있게 되었다.


요코하마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가는데 두 시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창 밖을 스쳐 가는 이제 낯이 익을 데로 익은 일본의 거리, 도시 풍경들. 이제 야쓰모도가 아니고 본래의 이름으로 돌아가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야쓰모도라는 이름은 가슴 속 한 귀퉁이 서랍을 열어 그 안에 집어넣고 단단히 잠궈 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분명 어느날 야쓰모도라는 이름을 다시 끄집어내서 끄적거릴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을 떠나던 날도 비가 제법 오더니 다시 귀국하는 날에도 비가 은근히 뿌린다. 공항 검색대를 무사 통과했다. 아버지 친구가 이곳 공항에 있어 별다른 검색 없이 여권만 압수 당하고 입국대를 빠져 나왔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가장 친한 고등학교 친구가 보인다. 어머니가 나를 먼저 알아보시고는 반갑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신다.

“일안(日安)아!”


이제 나, 야쓰모도(安本) 나의 본래 이름을 일년만에 다시 찾았다.



  < 글시렁 구시렁 - 에필로그>

 

지금 우리가 겪고있는 현대는 첨예한 경제 전쟁의 시대이다. 전 지구상 가장 강대국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 그리고 경제적으로 일본이란 나라는 그 다음 갈 것이다. 내가 살고있는 한국이란 나라는 미국이나 일본에 군사적, 경제적으로 종속된 반식민지 상태이지 않을까?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은 식민지이면서도 착취자가 되어 한국의 초국적 자본은 남미나 동남아로 진출해 그곳의 노동자와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고 한다. 서열이 매겨진 국가 간, 인종간의 관계들. 그리고 나, 야쓰모도라는 일본이름으로 경험한 일본이란 나라에서의 불법체류의 체험들. 이렇게 다시 글로나마 되살아나는 그때의 기억들.


전 지구적으로 조직화 되가는 거대 자본의 논리. 그 앞에서 속수무책인 개인의 삶들. 그리고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서열 매김들. 착취되는 노동들. 삶의 질 그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사회학적인 어떤 체험을 그때 몸으로 했었던 듯 하다. 공부나 이론을 통한 것이 아닌 몸으로 부대껴 얻은 일종의 의식화라고 말할 수 있을성 싶다. 모두들 남다르게, 남부끄럽지 않게 아니 남부럽게 살고 싶어한다. 보다 나은 의식주와 레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 단순한 물음이 늘 내 머리와 가슴을 물어뜯는다. 한때 난 자본주의의 전장에서 최첨병인 셈인 이벤트 기획자의 생활을 했었다. 그러한 자본주의에 충실한 하지만 늘 쫓기는듯한 삶은 늘 허기가 진다. 그 기간 사실 한편의 시를 써내기도 힘들었엇다.


야쓰모도라는 이름으로 겪은 모든 경험들은 신기루일 따름이었던가. 자본을 비판해보았자 상업 자본주의 그 틀 안에서 허락되는 수준의 제스츄어로 그칠 뿐인 한계 상황들. 야쓰모도의 이름으로 경험한 모든 사람들. 그들 노동자들과 사실 깊이 가슴으로 연대하니 하는 이야기는 도무지 할 수가 없다. 다만 난 내가 야쓰모도란 이름으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스케치하듯 덤덤하게 그려내 보이는 수밖에 없다.


가끔 길거리에서 동남아각국 여러 곳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과 얼굴을 마주치곤 한다. 그들은 그들끼리 몰려다니며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거리를 지나다닌다. 5호선 지하철 화곡역 한구석, 서로를 눈이 부신 듯 바라보고 있던 까무잡잡한 피부빛깔을 한 연인 한 쌍이 문득 떠오른다. 서로에게 폭 빠져있는, 나른하고 달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청춘 남녀들. 제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 그들이 과연 제대로 된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그들 중 어느 한 사람과 눈이 마주친 나는 그들에게 짧게 목례를 하며 엷은 미소를 실어 보낸다. 내 미소의 의미를 그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스물 다섯살때의 나, 야쓰모도 또한 이주 노동자였다는, 그런 나의 미소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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