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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오이무치다맘

  • 등록일
    2006/11/02 04:45
  • 수정일
    2006/11/02 04:45

과외가 끝나고, 12시 반쯤에 집에 왔는데,

먼저 집에 와 있던 사람들이 장을 봐 왔는지, 온갖 재료들이 많았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것은

이미 다 삶아진 뜨거운 콩나물과

이미 다 썰어진 오이, 그리고 이런저런 양념들이었다.

그리고 무조건 무치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머 내가 별 수 있겠나...

하라면 해야지.



콩나물은 500원어치를 사왔다는데, 실제로 그것의 2/3정도를 사용한 것 같다.

오이는 2개를 대충 김밥을 써는 각도로 (눕혀놓고 대충 썰면 됨) 이미 썰어져 있었고,

그 외에 들어간 재료는 파 몇 조각.

마늘 다진거 1큰술, 식초 1큰술, 물엿 1/2큰술,

고춧가루 2큰술, 고추장 2큰술, 참기름 1/2큰술

(큰술로 다 해결, 작은술 같은 거 집에 절대 없음)

깨(참깨인지 들깨인지 기타등등의 깨인지 불분명함) 대략 237알,

소금은 내맘대로 극도로 조금 넣고,

(나는 넣기 싫었지만, 차마 다른 사람들 눈치보여서 아예 안 넣을 수는 없었음.)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 쇠고기 분말이 무려 2%나 들었다는 조미료를 조금 넣어야 했다.

(이것만 아니었으면 완전 채식메뉴였을텐데...)

 

그리고 비닐 장갑을 끼고 무쳤다.

무치다가 중간에 맛을 봤다.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오묘한 맛이었다.

그 이후에도 한 5분은 더 버무린 것 같다.

 

어쨌든 요리를 다 끝내고, 밥을 먹으면서 반찬으로 먹는데,

여전히 아까와 같은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오묘한 맛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요리의 제목을 "콩나물오이무치다맘"이라고 지었다.

이 요리는 원래 완전히 무치지 않은 상태의 오묘한 맛을 느끼는 데 목적이 있었던 거다.

즉, 완전히 무쳤음에도 아직 더 무칠 수 있을 것 같은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주는 게 이 요리에서는 가장 중요하다.

 

어쨌든, 이 반찬 외에도 쌈거리로 아욱잎이 있었고, 새로 끓인 된장국도 있었다.

나름대로 새벽 1시부터 밥을 맛있게 먹었다.

쇠고기 분말 2%짜리 조미료와 된장국에 들어간 멸치만 아니었으면,

채식식단 제대로 나올 뻔했던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먹고나서 대강 상 치우고, 새벽 2시부터 회의를 무려 1시간이 넘게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다 재우고, 설거지를 하고, 밥을 안쳤다.

들어와서 블로그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가,

이걸 기록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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