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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0 서울역

  • 등록일
    2007/10/12 02:57
  • 수정일
    2007/10/12 02:57
대략 8차선쯤 되어 보이는 도로를 무단횡단하여 서울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파출소를 지나 음식을 파는 곳을 지나 거리에서 주무실 것으로 추정되는 몇몇 남성 분들이 노닥거리면서 술을 마시는 곳을 지나... 첫번째 여성을 만났다. 그녀가 말한다. 쉬었다 가세요. 나는 손사래를 친다. 두번째 여성을 만났다. 그녀가 말한다. 쉬었다 가세요.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세번째 여성을 만났다. 그녀가 말한다. 쉬었다 가세요. 나는 손사래를 친다. 네번째 여성을 만났다. 그녀가 말한다. 쉬었다 가세요.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네번째 여성을 지나치고서야 그녀가 보지 않는 곳에서 나는 여전히 고개를 흔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실 처음에도 두번째에도 세번째에도 그랬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혐오스러웠을까? 그들의 유혹에 넘어갈까봐... 그렇게 될 지도 모르는 내 자신이 두려웠을까? 그래 나는 다섯번째 여성이 나에게 말하는 게 두려웠던 게야. 나는 결코 멈춰서지 않았다. 그저 피하고 싶었다. 그것은 적색경보다. 빨간 신호등 불빛이다. 정육점의 빨간색 불빛이다. 멈추라고, 멈추라고. 사방에서 나를 불러세운다. 혐오스러웠는지에 대하여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도망친다. 순대국집을 지나서, 빨간 불빛을 내는 신호등들을 지나서,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기 직전. 당선을 알리는 불빛은 빨갛다. 어느 여자 연예인의 이름을 쓰고 있는 술집의 간판은 빨갛다. 서울우유는 빨갛다. 납은 빨갛다. 2008년 12월 30일까지는 빨갛다. SK는 빨갛다. 여관은 빨갛다. 길 옆의 벽도 빨갛고, 셔터도 빨갛다. 그 모든 빨간 곳들을 지나, 나의 서식처로 돌아오니, 내가 빨갛게 타버린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잠들 것이다. 어느날 아침에 배달하고 있을 서울우유도 외면할 것이고, 그 아침에 술집의 문을 두드리면서 고함치고 있을 어떤 남성도 외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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