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미추홀칼럼]학생들의 '몸'

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9160400345&code=990000

 

 

[미추홀 칼럼] 학생들의 '몸'

 

- 임병구 전교조 인천지부장

 

 

눈병 아폴로는 아이들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아이들은 자청해서 감염원을 찾아다니며 눈병을 전수 받았다. 친구들의 붉은 눈은 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장난거리였다. 어른들에게 몸은 보호의 대상이지만 아이들은 그 몸을 종종 실험의 대상으로 사용한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뜨거운 태양 속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내달리고, 바다건 강이건 가리지 않고 몸을 던진다. 몸을 사리는 게 성장의 방향이라면 몸을 내던질수록 동심에 가깝다. 아이들은 질병을 무서워하기는커녕 놀이감으로 만들어 데리고 놀며 길들인다.

신종플루, 그들엔 ‘일탈의 유혹’

신종플루가 가을 기운을 타고 번지자 학교마다 비상이 걸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든 학교가 도시축전 단체관람을 2학기 체험학습으로 정해 놓았으니 예매해 놓은 표값 환불 논란도 뜨겁다. 세계인을 불러 모아 축제를 벌이면서 학생들에게 인천시의 미래를 보여주고자 했던 시 당국으로선 천불이 날 지경이다. 전염병 탓인지, 부실한 컨텐츠 탓인지, 관객은 급감하고 반응은 싸늘하다. 개학과 함께 고대하던 ‘학생·학부모 특수’마저 사라진 행사장은 아무리 가을 하늘이 드높아도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소란은 어른들의 몫이라는 듯, 신종플루가 의심되어도 고3 교실은 꿈쩍하지 않고 있다. 방학 중 방과후학교는 신종플루 의심 학생만 격리시킨 채 진행되었다. 신종플루가 희박한 확률로 오고 있다면 시험성적은 절박한 현실로 교실 목전을 지키고 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희희낙락, 긴장하는 기색이 없다. 아이들은 자신의 몸이 직접 반응하기 전까지는 질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옆 학교의 휴교 소식을 듣고는 ‘우리 학교에는 신종플루가 왜 안 오나’ 짓궂게 묻는다. 아이들에게 죽을 수도 있는 가능성은 까마득한 얘기지만 휴교는 가까운 유혹이다. 십여 년 동안 몸이 길들여진 책걸상에 엎드려 쉬면서 신종플루가 휴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는 그렇게 확산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몸을 일탈의 창구로 보고 아이들은 그런 시각 때문에 몸에 무신경하다. 몸짱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아이들에게 몸 자체는 그저 도구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도구의 안정성이 위협받을 때, 비상등이 켜질 때만 아이들의 몸에 주목한다. 지난해 아이들이 ‘미친소 너나 먹어’ 외쳤을 때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미숙은 그 당시 촛불 현장에서 “사스 때는 그렇게 국민들의 건강을 생각해주던 정부가, 광우병 쇠고기는 왜 그렇게 가볍게 수입하려고 하는가?”라고 일갈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몸을 위한다는 일이‘그때 그때 다른’ 역사를 몸으로 겪어 왔다.

아이들이 스스로 몸의 주인이 되려는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었다. 십수 년 외친 두발 자유화는 머리길이를 3센티에서 10센티로 늘리는 데 머물러 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표현대로 학생들이 외친 몸의 권리는 ‘7센티 민주화’ 수준에 정체되어 있다.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이 자신의 밖에 있으므로 아이들은 자신의 몸을 전시용으로 꾸미는 데 전력한다. 방학이 지난 여학교 교실은 쌍꺼풀 수술 품평회장이 되곤 한다.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몸은 자신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거울을 향하고 있다.

일나면 호들갑 말고 평소 챙겨야

신종플루가 지나면 교실은 다시 아이들의 몸에 무관심한 공간이 될 것이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므로 몸을 억제할수록 성공에 가까워진다는 신화는 다시 강화할 것이다. ‘미래형 교육과정’이 체육도, 음악도, 미술도, 기술·가정도 자유롭게 선택하라고 할 때, 몸이 좋아하는 과목들의 미래는 없다. 신종플루가 지금 아이들의 몸을 위협한다면 몸을 무시하는 사회는 미래를 위협한다. 몸에 열이 나면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아이들을 교문 앞에 세워 놓고 체온을 재는 호들갑보다 우리가 그 몸을 평소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