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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적 분단체제론을 위해...

분단이라는 현실은 내부 모순이 외화된 것이라 말해지는데, 이 의미는 모순의 정상적 전개가 강압적으로 중단됨으로 인해 모순을 대중 주체적 차원에서 충분히 드러내고 참여를 이끌어 역사적 해결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분단 체제 작동의 '시초축적'은 역사적으로 종축을 갖는 모순의 구조를 횡축으로 환원하여 이른바 '외화'하는 '탈역사화'에 있다. '외화'의 최종적 결말이 형식적 국가간 대립으로 고착화된 것이라 할 수 있고, 그 상징적 사건이 유엔 동시 가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분단 모순'을 최종 심급으로 인식하는 것이 바로 '형식 논리'에 의한 '외화'의 구체적 표현이다.

 

일부 '분단체제론'이 역사성을 탈각하게 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탈역사화'와 '형식논리'에의 매몰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역사를 단순히 인식대상으로만 설정하는 '탈역사'적 주체들, 특히 지식계급의 한계와 그 한계에 대한 성찰 부재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역사적 단절'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를 만들어온 실천과 그 양식의 단절이라고 볼 수 있다. 

 

실천양식의 단절을 전제할 수 밖에 없는 탈역사적인 '현대적' 지식 주체들은 지식을 '소유'와 '저작권'의 차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더더욱 자기성찰성을 갖기 어렵게 된다. '현대문학'의 성립은 이런 맥락에서 매우 징후적이다. 게다가 이러한 '소유'의 논리에서는 자연스럽게 지식사상 또는 이론과 실천 및 운동을 분리하는 기제에 복무하는 방식으로만 지식생산을 하기 때문에, 역사를 다룸에 있어서 거대한 공백을 유지하기 마련이다.

 

역사는 기록된 자만의 역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기록되지 않은 자들, 즉 소유하지 않으면서 역사의 진보에 기여한 자들의 역사를 읽어내는 능력은 어떻게 길러질까? 

 

민중적 입장을 지킨다는 것은 민중이 역사에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약한 자의 집단이라는 가정된 의미에서이다. 역사기술에서 비과학적 방법은 역사를 마치 기록에 의한 역사만인 것처럼 다룬다. 그러나 역사는 자료로서 기록된 역사는 아니다. 역사에서 힘이 약한 피억압자로서의 민중은 기록을 남길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에 기록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것에서 비롯하여 기록을 남길 만큼 성공에 의한 여유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중운동의 역사는 구전이 아니면 지배자의 자기편의에 의한 기록으로만 남는다. 이런 경우 기록에 의한 자료에의 매몰은 올바른 역사인식을 불가능하게 한다. 더욱이 민중운동사의 일차적 자료는 운동과정에서 노출되어 잡힌 자들의 법정기록이다. 수사기록이 원용되는 경우 그것은 역사를 크게 왜곡하는 것으로 될 것이다. 강한 자만이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노출된 것만이 역사는 아니다. 그것은 큰 흐름의 노출된 빙산의 일각 이상의 것은 아니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인식 또는 서술의 방법은 자료를 역사관에 따라 정리하고 재해석하여 재생산하는 데서 제시된다. 기본적으로 자료에서 해방되어 그것이 단순한 역사인식의 단서 이상의 것으로 되지 않을 때 그것은 민중적 입장에 서는 것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1]

이들 노동운동사 연구에서 전반적으로 제시되는 당위로부터의 이탈 또는 미급은 그간의 역사적인 정치적 상황에서 오는 제약의 소산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이제 그런 것들은 타성으로까지 되고 있다는 데서 자기모순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자기망각의 과잉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2]

 

[1] 박현채, <해방후 노동운동사 연구현황과 방법론>, <<한국 근현대연구입문>>(박현채 등, 역사비평사, 1988), 155쪽.

[2] 같은 글,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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