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보험하나 못 들고 사는 형편에 알아서 몸을 챙겨야겠지요. 혹시 좌상측의 사진을 보고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곳은 연구실이 아니라 대만 친구가 하는 바의 2층 다락방임을 알려드립니다. 근데 그게 그다지 건강하지 않게 보였나요? ㅋ 정신적 피로는 종종 이런 곳에서 술한잔 하고 수다 떨면서 풀고 지냅니다.
[자유와 평등]
우리가 경험했고, 또 경험하고 있는 온갖 성격과 형태의 사회에서, 오랜 체험과 그것으로 얻어진 예지로써 이제 내릴 수 있는 한 가지 결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유와 평등은 동등하고 동격의 가치를 지닌 요소이지만, 집단적 인간의 행복 추구의 실천적 순서로서는 ‘자유’가 ‘평등’ 앞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까이 인류의 근현대사에 점철된 수많은 봉기·민란·폭동·혁명·민족 해방 전쟁 등에서 우리는 목표 추구의 질적 무게는 같지만, 목적 달성의 선후 또는 완급에서는 ‘자유’가 평등보다 앞섰다는 많은 실례를 정확히 평가하고 인식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자유는 ‘인간’ 생명체의 원초적 본성이고, 평등은 개개인의 집단적 생존이 형성된 뒤에 생명이 요구하는 ‘추후적·사회적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임형이 고민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구만. 현실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에 패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진정한 평등으로만 가능하지만, 현실적·사회적 생존차원에서는 개개인에게 가치 있는 것은 자유가 먼저이고 다음에 평등을 욕망하게 되니까요. (523)
한반도의 전쟁과 분단은 국제적으로 냉전을 촉발시켰지만 한반도에서는 식민/제국주의의 역사적 맥락이 갖는 제약 속에서 인식될 수 밖에 없다고 보입니다. 특히 한국전쟁을 '내전'으로서 인식하는게 남한과 북한을 본질주의적이고 동질적인 것으로 상호 타자화하는 유/무의식적 지식방식을 성찰하는데 중요할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의 학문이 갖는 역사에 대한 이해는 구미적 현대 학문의 체제를 모방형성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피식민과 (반)독립 및 분단의 역사적 경험이 인식론적 틀에 환원된 측면이 강한 것 같은데요. 거기에는 분단으로 주어진 강제되고 왜곡된 현대화의 맥락도 있지만, 역사적 운동의 주체로 등장했던 민중의 이념이 지식인의 이념으로 환원되는 과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식인의 이념은 다시 구미적 학문 틀에 근거한 것이었구요. 이 부분은 제가 중국을 경유하여 복원하고자 하는 한반도와 아시아의 역사적 이념과 관련되는데 아직 많이 추상적인 상태입니다.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엔 '역사학'에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인 것 같네요. 정치를 고민하는 분들이 더욱 '역사'를 참조하는 노력을 함께 많이 했으면 하는 희망을 갖습니다.
자유/평등의 동일성은 문학가/사상가의 동일성이기도 하다. 전리군 선생의 글의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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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가와 문학가의 통일
마지막으로 우리가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은 노신의 몸에 체현된 사상가와 문학가의 통일이다. 다시 말해서, "노신은 논리적 범주로 사상을 표현하는 사상가가 아니며, 다수의 상황에서 그의 사상은 개념적 체계에 호소하기 보다는 비이성적인 문학적 기호와 잡문체의 기쁨, 웃음, 분노, 욕 등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단지 문학화된 표현뿐이 아니며, 문학화된 사유를 더욱 포함한다. 노신이 주목한 것은 줄곧 인간의 정신 현상이었다. 모든 사상적 탐구와 곤혹은 그에게서 모두 개체 생명의 생존과 정신적 곤경의 체험으로 전화될 것이었고, "바로 생명철학이 노신이 동시대 다른 중국 사상가와 구별되는 독특한 지점을 구성하는 중요한 측면이었다". 그리고 "문학화된 형상, 의념, 언어는 노신 철학이 주목하는 인류 정신 현상, 영혼 세계에게 총체성과 모호성 그리고 다의성을 부여하였고, 본래 가진 복잡성과 풍부성을 돌려주었다. 이렇게 노신이 탐구하고자 한 정신 본체의 특질과 외재적 문학 기호 사이에 일종의 조화와 통일을 이루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노신 사상과 그것이 표현하는 "풍요로운 모호성"의 특징에 주의했는데, 이를 노신의 한계로 보는 것은 안타깝게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인용은 錢理群、王乾坤﹐〈作為思想家的魯迅[사상가로서의 노신]〉에서)
노신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지만, 전리군 선생의 이해를 빌려 현상을 진단해보자. 지난 수년간 나는 엘리트주의의 공허함이 위험한 국가주의에서 정치적 보충물을 찾고, 반대로 위험한 국가주의는 엘리트주의에서 지적인 보충물을 찾으면서, 둘 사이의 대화가 민중이라는 주체를 배제한 채 진행됨을 보아왔다. 이는 역사와 정치가 분리된 결과이기도 하다.
중국, 한국,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에 대한 담론의 의미를 전통/구제국 중국과 현대/신제국 일본의 대비 속에서 긴장과 모순으로서의 한반도를 의미화하는데서 찾는다면 이 역시 무리한 것일까. 현대성의 문제와 국민국가의 문제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동아시아 3국을 다루는 것은 보편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한편, 홍콩은 전통/구제국과 현대/구제국 사이에 놓여진 특수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와 다르지만 또한 나름의 복잡성을 갖는 지역으로서 일정한 비교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진광흥 교수의 한글판 <제국의 눈>(창비, 2003)에는 두 번째 문선으로 '탈식민과 문화연구'라는 글이 실려 있다. 식민-지리-역사 유물론을 이론적으로 제기한 그의 대표적인 글이다. 그런데 3년 후 대만에서 출판된 중문판 <탈제국>(행인, 2006)에는 제5장에 '아시아를 방법으로'(亞洲作為方法)를 포함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 글이 현재 진광흥 교수의 이론적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핵심적인 글이다. 물론 이 중문판은 지난 해(2010) 영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Asia as method: toward deimperialization (Duke University Press, 2010). '아시아를 방법으로'는 한국의 모 계간지에 요약된 번역본이 있는데, 지나치게 요약된 느낌이다. 한편,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라는 유사한 제목의 다케우치 요시미의 글 때문에 진광흥이 이를 카피한 것으로 오해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진광흥은 미조구치 유조의 '중국을 방법'으로를 확장한 것이고 우연히 일치한 것이었다. 물론 다케우치-미조구치-진광흥을 계보로 읽으며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으며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