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ydream (2011/11/15 19:34)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북한주민이 외부소식을 전혀 모른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래 기사를 참조하세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0/11/2011101100354.html

    북한이 2009년 화폐개혁 이후 큰 혼란을 겪고 있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화폐개혁 이전에는 북한 주민들이 자기들이 못사는 이유가 남한과 미제 때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통일이 되면 다 죽여버리겠다고 이를 갈고있었는데 화폐개혁 이후에는 김정일 때문에 이렇게 못산다면서 빨리 남한과 통일해야 잘살 수 있다는 쪽으로 여론이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극심한 경제위기로 인해 가족이 붕괴되고 성범죄와 마약 등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은 체제위기를 겪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붕괴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 藝術人生 (2011/11/15 19:25)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덕분에 제 생각도 많이 정리된 것 같습니다. 북한 인식과 내재성에 대해서는 몇 가지 더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지만 나중에 좀 더 고민을 해서 독립적 글을 써 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용어 관련해서 제안 드린 것은 제 느낌에는 '주사파'와 '종북주의'가 거의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 용어들은 우익적 담론에 의해 포장되어 대중 매체에서 통용되기 시작한 표현이라는 것이지요. 거기에 일조한 일부 좌파도 있는 것 같구요. 따라서 조선일보나 우익이 비판하는 것과 다른 의미로 다른 맥락에서 "장군님 추종세력"을 비판하는 것이라면 그들에 의해 다른 목적과 맥락에서 만들어진 표현을 쓰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 藝術人生 (2011/11/15 17:18)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주사파'는 적절한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하구요. 다른 용어를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마땅히 떠오지 않네요. 사실 저는 남한에서 그러한 '주사파'의 해악 보다 그런 '주사파'를 보도하고 비난하는 보수우익 매체와 국가보안법으로 그들을 잡아들이는 반공 국가의 해악이 더 크고 이를 비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는 자기해방의 원칙이 중요한데 현재 북한에 대한 인식의 상당부분은 이 원칙이 거의 무시되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적어도 현재의 상황에서 보면 '북한 보다 남한이 낫다'는 판단은 쉽지 않습니다.
  •  Re : 앙겔부처 (2011/11/15 18:09) DEL
  • 음... 제가 좁은 세계에서 살고 있어서, 저로서는 좌파나 인권활동가들이 "북한에 대해서는 자기해방의 원칙"을 강조하는 것밖에 보질 못 했고, 이 입장이 옳다는 걸 알고 저 역시 이런 입장을 지지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당장의 상황을 조금도 바꿀 수 없다는 것에 무력감을 느낍니다. 아랍의 봄도 모르더라는 얘기는 내부통제가 아직도 이렇게 심한데 언제 해방이 될지 하고 조급한 마음에 와닿았고.

    어쨌든 전체 사회에서 균형있는 시각으로 보자면 미미한 주사파들의 북위 선양 활동 지적질보다 국보법 이슈가 훨씬 중요한 것은 사실이고 실제 운동도 그렇게 행해지고 있다고 봅니다. 북한=주사파도 아니고, 주사파에 대한 비판이 덜 중요하다고 해서 행해질 필요가 없거나 행해져서 안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장군님을 추종하는 경향을 우익과 대별되는 내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용어 문제는 생각해 보겠습니다
  • 에밀리오 (2011/11/15 17:06)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크흠... 퇴근 시간 다 되서 +_+ 집구석 가서 트랙백 달아야겠군요 털썩;
  • 藝術人生 (2011/11/15 15:41)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사실 그런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생각나는 것들을 정리하고 한 가지 제안을 드려 본 것입니다. 저는 '주사파' '종북주의' 이런 표현 쓰지 말자고 제안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익적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시 고등학생이어서 잘 알지 못하지만 박홍 총장의 '주사파' 발언은 분명 색깔 공세이지만 일정하게 당시 사회운동 내의 파벌주의적 경향과 맞물렸던 것 같습니다. 그 흔적이 제가 대학생이었던 시절에도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유사하게 '종북'이라는 표현도 당시 민주노동당 내의 비슷한 파벌주의적 구도와 조선일보의 보도가 결합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파벌주의'는 민족민중적 정치에 미달하는 모습에 대한 묘사적 표현입니다.
  •  Re : 앙겔부처 (2011/11/15 15:53) DEL
  • 장군님들을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런 경향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주사파라는 용어를 고수할 생각은 없는데 말씀하시는 게 잘 이해가 안 가요. 그럼 주사파를 대체하는 용어를 만들어야 하는 건지, 주사파 사라지라는 말이 우익적 담론에 입각한 말이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신지...
  • 앙겔부처 (2011/11/15 14:50)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아~~ 제가 말하는 주사파는 진짜 주사파 있잖아요 김정일 장군님의 수려한 용모와 행적을 찬양하고 김일성 장군님의 업적을 찬양하고 진짜로 그러는 주사파들여. "가요에 스며있는 김정일위원장의 겸손성에 대한 훈훈한 이야기"같은 걸 소개해대는...-_- 북한이 더 잘 산다고... 말씀하신대로 전혀 아무 효과도 없고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 근데 저런 걸 계속 봐야하니 화딱지가 나서...

    하지만 제가 쓴 글이 소위 NL 일반에 향하는 종북의 혐의와 같게 읽혔다니 좀더 명확하게 써야 하나 싶기도 하네요. 고쳐야겠어요.

    NL과는 정치적 지향점이 분명 다르지만 남한에서 반제 반미 통일을 기치로 활동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내부로부터만 전개될 수 있는 정치라... 기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사실 그래서 북한 문제에 대해 거의 무지에 가깝게 무관심한 편인데, 그런데 발전적 조건이 만들어지기는 커녕 어째 소식 들을 때마다 더 끔찍해져가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될 것인지 전혀 모르겠고 그래서 답답하고 화가 나요. 분명히 손 놓고 내부로부터의 혁명을 기다릴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감정적으로 마치 전쟁광이라도 된 듯 쳐들어가고 싶다고 쓴 거구요. 또 이렇게까지 판단하기에는 제가 전혀 모르는 지점들이 많은데, 무리수가 아닌가 싶고. 하지만 제가 쓴 내용들이 북한에서 버젓이 일어난다는 증언은 셀 수 없이 쏟아지고, 도저히 모두 조작으로 보긴 힘들구요. 이러다보니 저는 이 문제를 갑자기 정치적 프레임을 떠난 절대악처럼 생각하게 되네요. 그에 동조하며 찬양하는 사람들 짜증나구.

    "자유주의적 비판과도 다르지 않게 됩니다. 북한 문제를 내부화하는 방식은 바로 이를 남한 사회의 계급 정치와의 관련성 속에서 구체적으로 제기하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이 말씀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구,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건지 몰라서 답답하고 그러네요. 북한에서는 아랍 소식도 전혀 모른다니 언제 북한의 봄이 올지 암담한... 쓰다보니 제가 상황을 너무 모른다는 점을 여실히 깨닫구.
  • 藝術人生 (2011/11/15 13:02)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민간'은 기본적으로 지배계급과 대비되면서 현존하는 역사 속에 기입되지 않은 주체들, 즉 민중의 역사적 공간이자 그를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시좌로 볼 수 있을 듯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화'는 인식론적 층위에서 '민간'을 사상적 자원으로 흡수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물론 이러한 인식론적 요구는 현실적 모순으로부터 파악되는 정치성으로부터 온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지적 유희 또는 모종의 '탈식민주의적 엘리트주의'에서 오기도 한다. 미조구치도 그러한 위험이 없지 않고, 진광흥 및 손가 선생도 마찬가지이다. 조금 난폭하게 얘기하면, 창조성과 계급성 사이에서 그들은 창조성을 선택할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다. 이 경우 그들은 돌아갈 '정치'가 부재할 뿐더러, 무의식적으로 '정치'와 공모하게 된다.
  • 藝術人生 (2011/11/15 12:24)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미조구치 선생의 글에서 손가 선생이 반복하여 강조하던 내용들이 확인되고, 진광흥 선생의 '민간'의 기원도 확인된다. 그가 동일하게 '민간'을 강조한 전리군 선생에 주목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유추된다. 개별 사회의 특수성을 역사적으로 파악하는 것의 중요성에 관해서 나는 이들의 관점에 일정하게 동의한다. 그러나 내가 정치성의 전개와 관련해서 역사성이 고려된다는 측면, 즉 역사성의 타자로서의 당대의 정치성을 더욱 고려한다는 점은 그들과 차이를 형성한다.

    아무 의도 없이 맨손으로 역사의 바다로 진입할 것을 요구하는 미조구치 유조 선생이지만, 그 역시 중국의 역사에서 '민중의 정치 참여'라는 근대성의 핵심적 가치를 가지고 역사에 진입함을 부정할 수 없다. 그의 '민중', '정치', '참여'의 함의가 무엇인지 여전히 모호하지만, 적어도 그가 제시하는 역사학의 방법론과는 모순적인 것으로 보인다.
    방법론적으로 '존재'와 '존재자'를 구별하는 존재론적 현상학적 모티브('민간')에 기초하는 것 같고, 그런 맥락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연구의 법칙성을 외부적인 것으로서 선형적/목적론적 역사단계론으로 환원하여 매도하지만, 실제로 그 역시 '민중의 정치참여'라는 모종의 근대적 정치관을 전제하고 중국 역사를 '내부적으로' 탐구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읽었듯이 미조구치가 그의 '근대'을 버리지 않는다면, 즉 전체의 보편적 관계성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그 '근대'의 함의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각 개별 사회의 특수성의 역사적 인식의 맥락에서 역사로의 진입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먼저 마르크스를 목적론적 역사관으로 오해하고 내팽개칠 것이 아니라, '근대'의 보편적 관계로서의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유력한 비판과 구조의 법칙성 분석에서 '근대'의 함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별적 특수성을 발견하는 거기에서 역사적 '직관'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직관은 자질이나 소양이 아니라 모두에게 주어진 지적 능력의 표현일 뿐이다. '직관'과 '존재'에 대한 천착은 개념적 인식을 도와주지 못한다. 오히려 개념적 인식을 거부할 경우 종교적인 것 또는 영적인 것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현실의 복잡한 모순들과 그 속의 주체들의 삶으로부터 구조의 역사가 전개되고 이는 집단적 실천과 관계된 새로운 역사적/구조적 인식을 요구한다. 이러한 지적인 작업 속에 '직관'이 있을 수도 있고, '지적 실험'이 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 개념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그 '직관'과 '지적실험'을 '사상'과 결부지으려는 시도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오히려 '사상'을 이론적/지적 실천으로 규정하고 싶다. 예술도 그러한 실천의 하나일 것이고, 그러한 실천들의 장을 '문화'라고 칭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藝術人生 (2011/11/10 21:09)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일정정도 상대적이지만 민중 없는 민족(보편성의 부재)은 모순을 외부적 관련으로 환원하는 ‘외적 민족’일 뿐이며, 민족 없는 민중(특수성의 부재)은 역사적 운동의 집단적 주체가 위치하는 구체성을 갖는 장소적 기초와 정치체 변혁의 구체적 전략을 갖지 못하는 ‘추상적 민중’일 뿐이다.
  • 藝術人生 (2011/11/09 13:10)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가설적으로 말해서, 일본은 서구와 아시아의 사이에서 식민화의 과정을 겪지 않았고, 따라서 민족적 인식의 계기도 주어지지 않았으며, 민족적 인식이 바탕이자 전제가 되는 민중적 민주주의 역시 전개되지 않았다. 생산양식의 국민경제적 자본주의화와 대조적으로 민중적 주체성은 형성되지 못했다. 그러나 패전은 추상적 일본을 극복하고 민족적 인식을 획득하는 하나의 계기였다. 올초 발생한 일본의 지진 참사 역시 일정한 민족적 인식의 계기를 제공해 주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는 내재적/민중적 주체성의 형성과 전개를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민족적 인식은 개별적 특수성을 밝혀주는 것인데, 이는 어떤 내부의 본질적 요소를 발견하고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와 외부의 특수한 관련을 밝힘으로써 내재적 정치성의 전개를 근거짓는 것이다.

    근대로의 전환과정 속에서 민족적 인식을 통해 전근대성을 근대적 형식 안에 일정하게 주체적으로 보존하였지만, 근대적 평등/자유를 내부화하는데 실패하면서, 민족적 인식은 국가주의로 외부화되고 정치성 자체의 전개에 실패하는 중국.

    근대로의 전환과정 속에서 민족적 인식을 통해 평등/자유라는 주어진 수동적 민주 체제와 이념을 일정하게 내부화하였지만, 주체적 근대로의 전환 없이 전근대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민족적 인식이 정치성의 전개에 내부화되지 못하는 조선/한국. 분단이라는 복잡성.

    근대로의 전환과정 속에서 민족적 인식의 계기가 지연되고, 평등/자유라는 주어진 수동적 민주 체제와 이념 역시 내부화가 지연되다가, 패전이 일정하게 민족적 인식의 계기를 제공하였지만, 체제의 근대로의 전환은 거의 완성된 상태에서 전환과정 속에서 분출될 정치성의 전개를 기대할 수 없게 됨. 패전 이전의 일본 좌익의 민족 없는 계급성의 한계. 전후 계급 없는 민족성의 한계. 물론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의 일부로서의 일본의 위기는 계급성과 민족성의 변증법적 결합의 계기가 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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