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상해에 있으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요즘 중국은 거의 우리 ys시절의 상황과 비슷해지는 것 같아요. 그때도 다리 끊어지고, 건물 무너지고, 지하철 폭발 등... 그런데 중국의 경제규모로 보면 지금까지의 사고는 전조에 불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쨌든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여러모로 걱정이 안 들 수 없겠어요.
한편, 조어대 사건 또는 조어대 보위 운동은 일정정도 1964년 한국의 한일회담 반대 운동과 비교된다. 미국과 일본에 의해 재구조화되는 동아시아 국가간체계와 관련한 민족 인식의 계기를 제공하였고, 운동의 전개에 따라 내적으로 좌우의 분화를 보였던 것도 그렇다. 흥미롭게도 현재 대만 총통 마영구와 한국의 이명박 모두 각각 조어도 보위운동과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더욱이 그 때부터 고위층의 주목을 받았던 공통점도 있다. 물론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이명박은 외모로나 학력/학식으로나 성품으로나 마영구 보다 훨씬 아래인 것 같다.
중국과 북한의 비대칭성은 대만과 한국의 비대칭성과 일정하게 관계된다. 전후 대만의 친일/친미가 한국의 친일/친미와 크게 대비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냉전 조건 하에서 중국의 존재감은 대만을 더욱 미국화시켰지만, 북한의 존재감은 한국을 그만큼 미국화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대만 노동당 고문이며 개인적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통일파인 汪선생은 사회운동과 대중운동에 구체적 전망과 인식을 제공하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매우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토로했다. 그는 다른 통일파와 다르게 중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개방적 입장을 표명하였다. 역사적으로 검토할 때, 대만의 좌익 운동에서 가장 절박한 것은 바로 '중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이것 없이는 정치는 불가능해질 것 같다.
대만을 사실상의 민족국가로 간주한다는 것은 기존의 '양안 관계'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에서 '양안 관계' 연구는 중국 연구의 일부로 간주되었는데, 이는 대만을 중국적 시좌에서 타자화하거나 또는 중국과 화학적 결합이 없이 부록처럼 덧붙여진 대만적인 어떤 것으로 본질화하는 경향을 낳았고, 궁극적으로 유의미한 인식이 불가능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