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울러 세신대학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夏潮》잡지, 대략 80%를 목차만 살펴보았는데, 너무 흥미롭다. 월간으로 그만한 분량의 내용을 채울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일정하게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 하다. 극작가 왕王선생님이나, 노동당의 왕汪선생님 등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만나서 반갑기도 했다.
《夏潮》는 1983년에 《夏潮論壇月刊》으로 복간한 듯 하다. 대만 주요 대학 도서관을 검색해 봤으나 전부 소장한 곳은 없는 듯 하다. 《夏潮》에 직접 알아 봐야 할 듯... 우리도 뒤늦게 자료를 보관하고 정리하는 작업들을 가까스로 진행하고 있지만, 대만은 자료 유실의 위험이 좀 심각한 상황인 것 같다. 훨씬 뒤인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의 노동운동 관련 3대 잡지 중의 하나도 제대로 구할 수 없어서 석사논문을 쓰며 불가피하게 배제했던 경험이 있는데, 비제도권 비판담론의 역량이 쇠퇴하는 상황에서 이런 자료의 유실위험은 점점 높아지는 것 같다.
[부연 12]
한자는 우리 언어 생활의 구조적 일부로서 전현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성을 가지는 우리말의 불가결한 구성요소이다. 우리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순 우리말이나 한자를 이용하여 번역어를 만들어 내게 되는데, 역자의 판단에 따라 의미를 가능한 한 가깝게(?) 전달할 수 있되, 언중의 언어생활이 수용할 수 있도록 편의성과 경제성 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외국의 인명과 지명 등의 고유명사의 번역도 다르지 않다. 우리말 안에서 외국어의 고유명사를 지시하는 우리 번역어를 선택하거나 새롭게 조합하여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외국어 고유명사의 번역이다. 여기에서 한자를 공유하고 있는 언어문화권의 외국어 고유명사의 경우 우리말의 한자어가 유력한 번역어로 제기되는 것은 의미 전달과 편의성 및 경제성 등의 차원에서 볼 때 매우 당연한 일이다. 외국어 고유명사를 의미를 버리고 그 음성만 취하여 번역어로 삼는 것은 우리말에서 적절한 번역어를 찾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선택되는 번역행위이다. 이런 경우 번역은 새로운 어휘를 창조하고(그 방식의 하나로서 원어 발음을 옮겨적기가 있다), 각주를 달아 그 뜻을 별도로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데, '레드 삭스'를 중국어에서 하듯이 '빨간양말'로 번역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까? 언제부터 왜 '레드삭스'로 번역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번역 방식은 80년대를 거치면서 일본어와 중국어의 번역으로 확산되었는데, 여기에서 다시 영어 및 유럽어의 번역의 문제들을 포함하여 번역 자체의 모종의 '윤리'를 점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일부 음성중심주의에 따른 '소리 나는 대로 표기'는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엥겔스와 엥엥스의 구별은 외국어 발음을 누가 더 정확하게 하는 차원을 제외하면 의미 없지 않은가?
그런가요.. ㅋㅋ; 의아하실 수 있겠지만, 저는 저대로 사로잡혔던(아니, 저를 사로잡아온, 이라 하는 게 어쩜 더 정확할지 몰겠는데, 뭐 그런) 화두들이 예술인생님의 고민하고 맞닿는 면이 넓겠다 싶어 그런 거니까요.ㅎ 전 1945년 '이전'과 '이후' 근대자본주의의 식민주의적 지구화 과정 속에서 20세기 동아시아 권역의 역사적 단절과 연속을 어떡함 수미일관하게 (두말 할것없이 '좌파적'인 입지에서ㅋ) 다시 보고 또 말할 수 있을까 하는 데 관심이 많았어서요. 이 말인즉슨, 정치적, 이론적 좌우파 할것없이 이에 관해 이뤄져온 논의나 역사서술들이 참 불만족스러웠단 얘기기도 하겠죠. 이렇다 보니 예술인생님 보면서, 그런 불만이 이제는 웬만큼 누그러질라나 보다 하는 반가움과 기대가 걍 제멋대로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어요.ㅋ
설사 그렇더라도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라셨지만, 그 말씀 역시 되려 제 쪽서 해야 할 말 같슴다. 제 경우는 워낙 대중 없이 포스팅하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진득하니 얘길 끌고갈 힘도 부실한 편이라서요. 뭐 너무 반색하면 그게 꼭 좋지만도 아니 하겠단 생각도 뒤늦은 거긴 하지만 들긴 드네요. 이리 보면 '적당함'이랄까 절제의 미덕을 잘 살린다는 게 참 어렵고도 중요한 것 같기도..ㅋ
외줄타기가 숙명이더라도 그건 혼자 받아들여야하기보단, 함께 맞잡고 씨름해야 할 것이어야 할 것 같은데, 막상 이 가닥을 동앗줄로 꼬아가기가 참 쉽진 않죠 않기는. 혹여 부풀려진 투정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별하기 위해서도, 혼자 받아들여야지 하고 마는 건 위태로워 보기이기도 하고요.ㅋ
그렇군요..ㅠ 근데 뻔한 얘길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공부의 장소 여하가 아니라, 공부를 밀고나가게 하는 질문의 장소들을 발견하고,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일인 거 같어요(엄기호 씨가 말하는 "아지트"들이 바로 이런 장소지 싶은데ㅎ). 뭐 이런 발견 혹은 아지트 만들기를, 정식으로 공부하는 곳이란 데일수록 하기가 어려워진 게 젤루 착잡+짜증나는 일이겠습니다만.. 암튼 걱정도 여럿이 나누면 반 아니냔 뻔한 얘기루다 응원해드릴 수밖엔 당장은 별 수가 없겠네요.^^: 저도 앞으로 어케 살아얄지 늘 외줄타기하는 듯한 상황이라..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