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oPool (2011/06/24 16:51)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글의 마지막 문장이 특히 인상적이네요. 행복하냐는 질문에 어쨋든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시는 것은 아니니 그 또한 좋은 것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 藝術人生 (2011/06/23 10:25)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복기를 해보면, 최근 정치와 역사라는 두 범주를 중심으로 사상형성을 사고한 것은 왕휘 선생과의 대화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언젠가 '역사가 멈추는 곳에서 정치가 시작된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이 범주를 형식적으로 분리하면서도 일종의 '부재하는 원인'으로서의 상호 타자성을 전제하면서, 상호 관련성과 결정성을 고민해보았다. 물론 최종적으로 정치성의 우위라는 테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는 일종의 존재론적 사유에 의한 뒷받침을 요하는 것 같다. '정치적 인간'이라 할 수도 있고, 또는 '사회적 인간' 속의 정치의 본질적 의미 같은 것 말이다. 다른 한편 정치와 역사라는 두 범주를 포괄하면서 그 긴장과 상호결정성을 작동시키는 행위, 일종의 지적 실천의 행위는 무엇인가? 기존의 언어로는 '학제간 연구'라는 말이 있지만, 이는 내용이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 '문화연구'는 어떤가? '문화'라는 개념은 일정하게 이러한 지적실천을 담아낼 수 있는 것 같다. '문화연구'를 새롭게 규정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 藝術人生 (2011/06/22 13:53)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왕휘 선생의 코멘트]
    대만에서 주류적인 아시아 담론에 대한 불만을 솔직히 이야기하였고, 그 가운데 가장 주요원 원인은 아시아 문제를 외부관계로 연결짓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부득이 하게 민족주의를 방법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일종의 민중의 시각이 없이, 일종의 진정한 국제주의는 전개될 수 없으며, 각 국가 내부의 사회투쟁은 연결점을 찾을 수 없다. 20세기 민족해방운동은 민족해방의 깃발 아래 전개되었는데, 그러나 민중투쟁과 계급투쟁의 각도에서 전개되어, 서로 다른 국가의 사회운동이 오히려 더욱 깊은 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이는 정치적인 것의 전개이다. 나는 우리가 이러한 투쟁 모델을 반복하자는 것이 아니고, 이 운동이 포함하는 기타 가치검토의 문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 운동의 개방정 잠재성을 발굴하고자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는 자본주의의 필연적 초국적화와 관련된다. 단지 초국적인 의미에서 토론하고, 투쟁 공간으로서의 민족국가와 기타 투쟁 공간 사이의 관련을 토론하지 않으면, 공동투쟁의 맥락 속에서 전개되는 역사적 연대를 만들어낼 수 없다. 서방에의 호소, 또는 공통의 전통의 호소 등등이 비판적인 태도이든 보수적인 태도이든 간에, 최종적으로 연대가 구성되기 어렵다. 이러한 내용은 내부적임 잠재력을 발굴한 후에 비로소 실질적 의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藝術人生 (2011/06/22 13:46)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이 글은 일정한 구도와 절차를 갖는 개인적 연구 작업의 출발점의 의미를 갖는다. 나는 국제주의적이며 반국가주의적인 대안적 정치성의 구성이라는 전망을 위해 세계주의적 보편성에 환원되지 않으며, 일국적/특수주의적 틀에 갇히지 않는 지역적 또는 인터아시아적 방법을 통한 사상적 자원의 발굴과 교류 및 공유의 작업이 필요함을 긍정하면서, 한국적 시좌의 재구축을 위해 박현채 선생의 사상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는 다시 나의 중국 당대 사상 및 문화의 연구에 있어서 참조점이 되어, 중국 내부의 시좌에 갇히지 않으면서, 동시에 보편주의적 타자의 시좌에도 갇히지 않는 중국 당대 사상에 대한 구역적이고 인터아시아적 독해를 시도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일정하게 ‘역사적인 것’으로의 우회가 불가피하지만, 궁극적으로 ‘정치적인 것’에 그 성과가 누적된다.
  • 藝術人生 (2011/06/21 20:35)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예문]6/21 오늘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중국 상하이(上海)를 여행하던 한국의 10대여성이 버스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

    동방조보(東方早報)의 21일 보도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30분께 상하이 황푸(黃浦)구 마당루(馬堂路)의 관광버스 안에서 A씨가 2.5㎏의 남자 아이를 출산했다.

    1992년 출생자로 학교의 단체관광에 참가했던 A씨는 마당루 인근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신톈지(新天地) 등을 관람하던 중 갑자기 복부의 통증을 느낀 후 바로 출산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상하이', '동방조보', '황푸', '마당루', '신톈지'는 이른바 고유명사이다. 한자음표기는 '상해', '동방조보', '황포', '마당로', '신천지'로 표기하고, 이른바 원음표기는 일정한 기준은 사실상 없지만 대충 해보면 '상하이', '뚱팡자오빠오', '황푸', '마탕루', '신톈띠' 정도가 될 것이다. 원음표기의 영향으로 발생한 고유명사 역어표기의 난맥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거의 '개판'에 가깝다. 실제로 이 정도면 한자병기를 하지 않으면 사실상 국어 내에서 상호변별이 거의 되지 않는 혼란에 도달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 藝術人生 (2011/06/19 20:11)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부연6]
    음성중심주의 비판에서 참고할 지점.
    데리다가 기의와 기표를 구분하는 기존 언어학의 이분법을 비판하면서, 기의와 기표의 지시관계 없이 기호의 교환을 설명함. 기호의 의미는 배후의 구조와 상관없이 기호들 사이의 상호구별작용 자체로부터 오다.
    음성중심주의적 중국어 표기법이 동일하게 언어학의 이분법을 따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이분법은 중국어과 국어의 상호주체화라는 맥락에서 양자를 본질화하고 타자화하는 민족주의적 모티브에 따르는 것. 공통의 문자는 서로 다른 음성에 따라 서로 다른 문자로 간주되고 다시 서로 다른 음성과 지시관계를 맺게 됨. 이 효과는 모종의 민족주의 운동의 효과? 다시 '한자'의 위상의 문제. 민족주의적 언어운동이 오히려 반민중적이게 될 가능성. 사카이 나오키의 논의를 재검토할 필요성.
  • 藝術人生 (2011/06/19 13:27)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어제 상해대에서 열린 회의에 갔다가 창비 최근 호를 전시해두어서 읽어 볼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지금 내가 번역하는 책의 요약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압축적으로 최근 중국 당대사에 대한 관점이 요약되어 있다.
  • 藝術人生 (2011/06/19 12:27)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이 쟁점은 알튀세르의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을 상기시킨다.
  • 藝術人生 (2011/06/13 11:03)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부연5]
    문자와 구어의 관계, 개념과 실체, 이론과 실제(실천/운동)의 관계의 대비. 경험주의의 문제. 그 배후의 인식론적 문제.
  • (2011/04/28 06:00)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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