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개 (2013/07/14 06:19)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아. 그렇군요. 예상했던대로 답을 해주셨네여. 저는 (일대일)이성애 관계를 포함한 그 이상의 관계(들)에 대해서 인민의 자유로운 '성적'결합이라는 대전제에 회의하고 있는 터라 님의 생각을 이해하는 한편 (님이) 이 전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고의 방식이 나올 수밖에 없음을 안타까워 했던 것입니다. 인민(들)의 자유로운 결합은 그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든 그 인민들이 알아서해야 할 문제이니까요. 언급하신 기차 사건은 인민들의 자유로운 '성적' 결합으로 접근하는 한 모랄리티 그 이상을 논의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섹슈얼리티에 관한 자유로운 토론은 더 멀어집미다. 어쨋든 감사합니다. 확실히 말해 님의 이 글은 동성애 비판은 아니군요. 아니어야 하겠군요.
  • ou_topia (2013/07/13 19:44)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님의 글이 플라톤의 <향연>을 다시 읽게 하네요. 전에 무심코 지나갔던 소제가 시야에 들어오네요. "에로스와 윤리를 둘러싼 [문제에] 대하여". 님의 지적에 따라 읽어 내려가니까 새로운 점들이 보이네요. 뭔가를 정리할 만큼 정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럴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동성애 ‘처리’관련 독일 상황이 시사하는 점이 있지 않나 합니다. 동성 파트너의 지위가 “등록된 생활파트너십”(eingetragene Lebenspartnerschaft)이란 준‘결혼’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이어 이런 모델에 전통적인 가족이 누리는 국가의 각종 혜택의 부여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는데, 이걸 부정하는 법규가 최근 헌재소의 위헌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런 문제를 주제로 한 2013.6.12 ‘Anne Will'의 토크쇼가 재밌네요. 전통 가족모델 대변인으로 기민당내 강경보수 에리카 슈타인바흐와 최근 호응을 받으면서 전통 가족 지키기 운동을 하는 헤드비히 폰 베버푀르데자 자리하였고, '동성생활공동체’를 ‘전통 가족’과 똑 같이 다루자는 (입양의 문제가 남아있음) 신자유주의를 신념으로 하는 자유민주당 FDP의 미샤엘 카우흐와 전에 교황산하 ‘신앙교리청’ 강사로 있다가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다비드 베르거가 자리했습니다. 이 배석 자체가 시사하는 점이 그냥 눈에 들어오네요.

    ‘성해방’이 그대로 ‘반자본’ 해방의 요소로 생각되기도 하는데, 이 대립구도는 님이 지적한데로 그렇지 않네요. 위 토크쇼 양측의 논점도 ‘전통적인 가족’ 담론안에서의 대립이구요. 슈타인바흐는 ‘가족은 이성에 기반한 것이다’를 주장하고, 베르거는 동성애자들이, 가족이 해체되어가는 지금, 서로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하고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전통가족의 이념을 실현하는 거라고 맞서네요. 사실 기민당, 자민당내 동성애자, 지지자들이 들고 일어났고요.
  • 藝術人生 (2013/07/13 18:23)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제목을 답지 않게 괜히 자극적으로 뽑았다는 후회를 합니다. '용감'하게 글을 쓴 것은 아니구요.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지만, 한번의 대화중에 떠오른 실마리들을 대강 얼기설기 모아 놓은 글이라 보시면 될 듯 싶어요.

    다원주의적 범주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시 말해 '인민의 자유로운 성적 결합'이라는 급진적 관점에서 보면, 이성애에 갇히지 않고 동성애/양성애를 포함하고, 더 나아가 일대일의 성적 결합을 넘어서는 여러 가지 취향/방식을 포함하는 것은 '진보'적인 것이 아닌가 싶은데, 이와 관련해 '미'적 내지 '윤리'적 가치가 논의될 수 있지 않은가하는 질문입니다.

    물론 큰 틀에서 '욕망의 인간학'을 넘어서는 인간학적 측면(어쩌면 동성애가 일정하게 이성애의 대립면으로 머무는 측면을 진정으로 극복하는 어떤 초월적 인간 내부의 정감적 교류의 방식)이 지식의 위계를 경계로 해서 역사 외재적으로 당대 현대 사회 안에서 일정하게 제약되는 측면이 있지 않나하는 고민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물론 이는 기존의 틀에서 논의될 경우 반동성애적인 이성애주의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처음에 제목을 그렇게 뽑아본 것이었구요.
  • 꽃개 (2013/07/13 04:47)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용감하게 글을 써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제목처럼 '동성애 비판은 아니네'요. 그런데 왜 동성애 등 다양한 sexual orientation을 언급하셨을까. 왜 또 거기서 대만기차사건으로 jumped on하셨을까. 그 생각을 하게 되네요. 게다가 완전한 사랑을 구현하지 못하는 제약이라는 내용까지. 뭔가 아귀가 착착 안맞어 들어가는 글이라서 당황스럽습니다.
  • ou_topia (2013/07/07 17:36)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제가 배우고 있는데요, 뭘. 뭔가 꽉 막힐 때마다 님의 지적이 다시 보게 만들어 주는데... 님의 지적이 아니였다면 '정신현상학'이 뭐냐고 물었을 때, '블라블라'하면서 버벅거렸을텐데, 이젠 시원하게 '지식, 주체, 실천'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해줄 수 있을 거 같아요.
  • 藝術人生 (2013/07/06 23:01)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잘 지내셨나요? 헤겔 공부를 언젠가 좀 제대로 해야하는데, 나중에 가르침을 청해야겠습니다.
    사실 한국 내부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는 문제들을 대만에서 겪으면서 한국의 지식계 내부에 어떤 맹목 지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갖게 되었고, 그런 측면에서 한국의 지식은 제1종 비판성과 제2종 비판성의 결합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불가능성의 원인에 대한 비판적 인식, 즉 제3종의 비판성도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적절한 발언의 위치는 역시 제1종의 비판성과 제2종의 비판성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통해 나름의 제3종의 비판성을 구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실천적 차원에서 찾아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 ou_topia (2013/07/04 16:07)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적절한 발언의 위치“를 ”3종의 비판성“과 “2종의 비대칭”이란 방법론적-내용적 접근으로 찾아나가는 것이 인상적이네요. “3종의 비판성”은 ‘정신’의 다른 말 같기고 하구요. “적절한 발언의 위치”란 표현에서 ‘정신’이란 게 일정한 구조를 갖고 단련을 통해서, 그리고 거꾸로 단련을 통해서 형성되는 일정한 구조를 바탕 삼아 비로소 작동되는 또 하나의 감관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 藝術人生 (2013/01/03 14:35)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고맙네.^^ 이제 글자를 읽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 맥락도 파악할 수 있겠지... 그래야 하고.^^
  • 정성조 (2013/01/03 01:38)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저한테 2년 사이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생각해보니... 저 글자들을 읽을 수는 있게 되었네요...ㅋㅋ 여튼 축하합니다~
  • 藝術人生 (2012/11/11 11:12)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대만에 잘 왔구요. 얼른 지금 번역을 마쳐야 자격고사와 논문을 준비할 수 있을텐데... 암튼 할 일이 있어 다행이지요. 마찬가지로 건강 유의하시고 번역하시면서 종종 관련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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