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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민주주의

참여연대 월간지, [참여사회] 2006년 2월호에 기고했던 글이다.

 

원래 주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제목 : 인터넷과 민주주의, 인터넷과 시민운동...... 정보사회, '인터넷'이 사회의 민주주의 형태를 변화, 발전시킨 점. 이 민주주의의 발전에는 '시민운동'을 빼놓을 수 없고, '인터넷'이 영향을 끼치면서 시민운동의 또 다른 방식, 다양한 방식이 등장, 성장하게 됐고 인터넷을 주목하게 된 점..."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시민운동'을 빼놓을 수 있을 거 같아서, 맘대로 써버리고 제목도 그냥 '인터넷과 민주주의'가 됐다.

 

한 번은 내가 맘에 안들어서 버리고, 또 한 번은 편집진이 다른 꼭지와 내용이 겹친다고 해서 버리고... 그래서 바쁜 와중에 판본이 3개나 나와버렸다.

 

또... 내가 정말 원고를 너무 늦게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삽입된 사진은 내용과 전혀 무관할 뿐더러 다소 언짢을 정도고... 소제목은 글을 읽고 달은 건지 의심스럽다. 그래도 부탁대로 이메일 대신 블로그 주소를 넣어 준 거는 맘에 든다. ^^

 

그다지 맘에 드는 글은 아니지만, 꼭 하고 싶었던 얘기에는 강조를 달아 두겠습니다.

취소선은 편집자가 달은 소제목입니다. ㅠ.ㅠ



- 지음(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blog.jinbo.net/antiorder)


인터넷이 처음 등장할 무렵, 많은 사람들이 전자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말했다. ‘자유로운 의사표현’, ‘수평적인 쌍방향 소통구조’, ‘물리적인 한계의 극복’, ‘다수의 사람들의 참여’ 등의 특징들이 열거됐다. 그리고 약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인터넷은 이제 생활이 되어버렸다. 일상적인 정치적 의견 표출이나 선거 시기의 활동들 역시 대부분 인터넷을 매개로 이뤄지고 있다. 이제는 민주주의의를 말할 때 인터넷에서의 민주주의를 얘기하지 않을 수는 없게 됐다.


인터넷, 독점권력의 또 하나의 사회통제 수단

그러나 인터넷이 근본적인 속성이 민주주의적이라거나, 인터넷이 항상 민주주의에 기여한다고 볼 수는 없다. 황우석 사태에서 PD수첩에 대한 광고중단은 물론 다수의 사람들의 의견이 관철된 것이었지만,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파시즘에 가까운 것이었다. 거기에는 언론의 자유도, 개인의 다양성도, 소수에 대한 배려도, 전문가의 지식도 없었다. 성난 한 무리의 군중들이 있었을 뿐이다. 인터넷의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과 포털은 그러한 군중들의 아우성을 확대 재생산했으며 게시판은 정상적인 토론, 하다못해 건강한 반론이 이뤄질 수 있는 곳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의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다. 인터넷은 개인들의 현실에서 생성되는 개인정보를 끊임없이 디지털화된 형태로 흡수하고 있고, 이러한 개인정보는 누군가에 의해서 감시의 수단으로 돌변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어떤 국가기구 또는 어떤 기업은 정보주체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으며, 마음만 먹는다면 특정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도 있다. 인터넷은 민주주의의 도구가 아니라 얼마든지 파시즘의 도구, 또는 빅브라더의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터넷의 다양한 공간들과 그 공간들에서 적용되고 있는 서로 다른 규칙들과 시스템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 공간을 지배하는 시스템의 성격에 따라서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의 패턴은 상당 부분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인터넷에서 전자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는 반면, 어떤 사람은 전자감시사회와 대중파시즘의 가능성을 본다 해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인터넷 민주주의의 시작

인터넷과 민주주의의 관계는 일의적이지 않다. 따라서 ‘인터넷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가?’라는 질문은 ‘인터넷에서 어떤 공간을 어떻게 구축해야 보다 민주주의적인 시스템이 가능한가?’로 전환되어야 한다. 물론 그러한 공간이 꼭 온라인에 국한되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는 상대적으로 대안적인 공간을 구축하기가 수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을 주목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인터넷 실명제는 하나의 중요한 예가 될 것이다. 인터넷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롭고 간편한 의사표현이다. 그리고 그러한 표현의 확대가 민주주의에 큰 진전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쉽게 제약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익명성과 표현의 자유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민주주의에서 투표가 항상 비밀투표로 진행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인터넷 게시판은 실명제라는 규칙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제약돼버리고 만다. 인터넷 실명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도입되고 있지만, 사실상 선거 시기에 자신들에게 쏟아질 비판을 회피하기 위한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자기보호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인터넷 실명제를 말하면서 인터넷의 민주주의를 말할 수는 없다.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은 개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투표 당일 기표소 안으로 유폐시킬 것이다.

 

인터넷 대안 공간 설계는 개인의 몫
또 하나 현재 언론-포털-네티즌으로 이어지는 정보의 생산-유통-소비의 시스템 역시 심각한 문제로서 지적될 필요가 있다. 정보의 양이 늘어갈 수록 권력은 유통을 담당한 포털에 집중되고, 언론과 네티즌은 포털에 종속되어 가고 있다. 단지 수동적인 정보의 소비자로 전락해 정보의 생산능력을 박탈당한 네티즌에게 정보는 지적재산권의 보호 아래 상품으로서 현상한다. 포털에 익숙해지고 포털에 종속당한 네티즌들이 곧 자신들보다 더 많은 자신들의 개인정보를 갖고 있는 포털의 감시 하에 놓일 운명이다. 여기에 민주주의의 가능성은 없다. 대안 언론, 대안 포털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유통망이 없는 현재의 대안 언론들은 네티즌에게 접근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대안 포털은 상업 포털과의 경쟁을 이겨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 증명됐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터넷은 지금도 여전히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인터넷을 둘러싼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광활하며, 그것이야말로 인터넷의 가능성의 핵심이다. 아무리 자본과 권력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은 항상 그 외부에 공간을 남겨두고 있다. 필요한 것은 인터넷의 수많은 이질적인 공간들과 규칙들, 그들의 차이와 관계에 주목하고 대안적인 규칙과 대안적인 공간들을 생성하는 것이다.


웹상에서 탄생한 주체로서의 블로그와 그러한 주체들의 만남의 장인 메타블로그, 위키를 위시한 여러 협업/집단지능 프로그램, RSS를 이용한 정보의 새로운 배포/구독 방식, P2P를 이용한 정보의 공유,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한 개인들 간의 연대 등은 그 가능성이 충분히 주목받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술들을 이용해서 대안적인 공간을 구축하는 다양한 연구와 실험이 시도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기술도 마찬가지지만, 기술이 민주주의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대안적인 공간을 설계하는 것은 연구와 실험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살아 움직이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개인들이다. 바로 지금, 인터넷 브라우저의 초기화면을 네이버에서 자신의 블로그로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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