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요시다 타로 지음, 안철환 옮김

들녘

 

쿠바가 경제위기를 겪으며 꾀한 생태도시로의 전환을 자세히 소개한 책이다. 도시농업에 대한 낭만적 묘사 수준을 넘어, 쿠바라는 사회주의 국가의 모색과 실천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도시농업뿐만 아니라 의료체계나 교육체계 등 복지시스템을 엿보며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굶주리는 세계>와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굶주리는 세계>는 식량 문제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잘못된' 상식을 하나하나 뒤집으며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책이다. 책이 가리키는 곳에 마음은 가지만 과연 그 곳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했던 사람들은 그 곳에서 아바나를 보고 힘을 얻을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감격에 젖은 '관찰자'가 쓴 책이라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적지 않은 인터뷰가 옮겨지기는 했지만 듣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아있는 느낌. 나의 과민함 탓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며 내내 부러운 것은 우리에게는 극진한 상상력으로나 이를 수 있는 것이 현실에서 사회구성원들에게 공유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궁핍한 경제사정에서도 1989년 9억 페소였던 건강의료비를 1994년에는 11억, 1996년에는 12억 페소로 증액했다. 이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쿠바 당국은 1989년 13억 페소였던 국방 예산을 1995년에는 6억 페소로 삭감하는 조치를 단행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위와 같은 정권의 모습이, 어려운 상황에서 동원이 아니라 '국가에 봉사'하려는 자발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힘일 수도 있다. 또한 "아로요 나람호 구의 보급원은 새로 농사를 시작한 사람들에게 "농사를 시작하면 신체장애자를 위한 특수학교와 탁아소를 대상으로 기부하는 것을 고려하기 바란다"고 부탁"하는 등 일상적인 활동에서부터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인 듯도 하다.

 

이는 부탁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활동에 다양한 집단의 참여를 촉구하고 그런 기회를 구조적으로 보장하는 데서도 비롯된다. "교육부에서는 교원용 지도서도 만드는데, 여기에는 석유를 줄이기 위한 자연에너지 이용법도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지도서를 작성하기 위한 위원회에는 교사만이 아니라 어린이들도 참가합니다. 한번 보십시오. 여기에 있는 그림은 그렇게 참여한 어린이기 그린 것입니다." "쿠바의 투표장에서 부정한 선거가 행해지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은 지역의 초등학생들입니다." (어깨꿈의 발표문에 나왔듯이, '의식의 변화'와 '구조의 변화'는 걷는 사람의 두 다리와 같은 것.)

 

"쿠바 사람들은 토지를 사유한다는 개념이 희박하다. 토지는 원래 공적이어서 시민들의 것이며, 그래서 '유효하게 활용하는 사람이 사용하면 좋은 일이다'라는 사고방식이 있다. 자기 땅이 있더라도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작지만 그 대신 토지와 주택에 대한 세금은 전혀 없어 소득세 정도밖에 내지 않는다."

이런 사고방식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거나, 타고난 것만이지는 않다는...

 

그러나 쿠바에서도 1970년대부터 생산력 발전을 위해 소련식 계획경제를 도입했다고 한다. "소련을 모델로 해서 경제에 '가치창조'라는 이론을 도입했습니다만 이는 매우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유용한 물자를 생산하는 대신에 연간 계획을 달성하는 것이 우선시된 것이지요. 예컨대 한 건설회사가 올해는 4백만 페소의 가치를 생산해내라는 정부의 명령을 받았다고 하면 건설회사에 걸맞게 학교와 다리를 짓는 게 아니라 굴을 파고 흙을 옮겨서 그 흙으로 부여받은 것만큼의 작업량만 달성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녀들은 반성한다. 그것이 정말 부러운 것 중 하나다. GNP,GDP를 높이기 위한 경쟁이 얼마나 의미없는 것인지, 그/녀들은 애써 무시하지 않는다.

 

물론, 쿠바라고 해서 자본주의적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자유로울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마침 큰 트럭 한 대가 농장 앞에 섰다. 바나나를 팔려고 온 것이다. 그런데 물건을 본 마리아 씨는 "너무 누렇게 익어 쓸모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와 같은 묘사에서 -과민반응일 수도 있겠지만- 냉정한 상인의 모습을 본다. (마리아 씨는 지역에서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저자는 쿠바의 사회변화를 "앞에서 살펴본 블레어 정권의 노선이나 샌프란시스코에서 추진되고 있는 개혁과 실제로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오히려 거의 같은 전략이라 말해도 좋을 것" 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대략 난감~하지만 쿠바에 대해 다른 평가를 할 만큼의 정보가 없어 그냥 둔다. 적어도 저자가 '도덕적 해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카스트로의 연설(1970년)은 묘하게 읽힌다.

"오늘날 인민 여러분은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말 여러분은 옳습니다.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적인 의식, 사회주의의 의식입니다. 오늘날 인민은 모든 것을 관리조직에 의지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 위에는 정치조직이 있고, 그것이 모두를 대표합니다. 벌써 인민은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스스로의 노력과 자신의 수단에 의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민이 국가에 모두를 기대한다는 사실은 혁명이 만든 사회주의 의식이자 인민의 권리인 것입니다."

 

2002년 여름인가, 시사저널에 장원씨가 쿠바를 다녀와 연재한 기사가 있었다. 도시농업과 관련된 기사였다. 어쩌면 생태도시 아바나에 대한 환상은 그 정도 기사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책을 읽는다면 환상을 벗겨내고 사회가 움직이는 역동을 읽어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다양한 커뮤니티의 노력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책이 가진 장점 중의 하나지만 나에게는, 아무래도 '환상'이 오래 남는다.

 

"문맹퇴치 운동 때 불렸던 '깨어나'라는 캠페인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이든 말할 수 있어. 드디어 글을 쓸 줄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 당신이 좋다고, 당신이 좋다고 이제 말할 수 있게 되었거든. 당신 이름과 내 이름도 쓸 수 있게 되었어. 예전엔 당신의 마음을 눈으로밖에 읽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당신의 편지에서 당신을 읽을 수 있어. 아, 어서 읽고 쓰기를 익혀서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적어보고 싶어." "

연애편지를 쓰기 위해 글을 배우자는데 어떻게 환상을 갖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ㅡ.ㅡ;

 

적어도 쿠바에 대한 '환상'의 힘은 그/녀들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쿠바의 사회주의는 완성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더욱 효율적이고 더욱 완벽한 것으로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더욱 완벽하고 효율이 높은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사회주의를 포기할 의도는 결코 없습니다."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가는 것.

 

<덧붙여 메모>

 

"그 전에는 쿠바에서도 각각의 의사가 각자의 흥미와 관심에 맞게 어느 전문의가 될 것인지 선택하는, 일반적인 형태의 의료제도가 운영되었다. 그러나 주민들 사이에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자 보건부는 1970년대 중반에 '커뮤니티 의료 프로그램'을 세우고서 예방의료 전문의와 실습생을 지역 진료소에 주재시킨 것이다. 그런데 환자들은 이런 개혁에도 만족하지 않고 그보다 더 충실한 지역의료 개혁을 요구했다."

-핵심은 환자들의 요구. 마구 요구. ㅎㅎ 그게 필요해.

 

"쿠바는 전문직의 최고 임금과 일반 노동자의 최저 임금의 격차가 25퍼센트에 그치는 평등사회를 구축했고, 게다가 무료 교육제도도 갖추었기 때문에 평균 이하의 수입을 얻는 가정의 청소년들도 충분히 의사가 될 수 있다. 다만 다른 나라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는데, 의학부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학력만이 아니라 지역의 커뮤니티 조직으로부터 "이 학생은 훌륭한 청년이다"라는 추천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추천받아야 해. 진짜루~ ㅡ.ㅡ;;

 

05.02.15.추가.

마침 프레시안에 연재기사가 시작되길래 링크해둠.

누가 보고 쓰는가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이 첫번째 연재기사만 봐도 느껴진다.

기사를 보며 좀더 풍부하게 고민해볼 수 있기를...

<김재명의 쿠바 리포트>

<1> 물 없이 지낸 아바나의 첫 밤

<2>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3> 체 게바라의 혁명근거지

<4> 혁명아 체 게바라의 마지막 날

<5> 미국의 대 쿠바 봉쇄정책

<6> 쿠바인들의 생존술

<7> "체 게바라는 사회주의적 휴머니스트"

<8> '모택동주의자' 체 게바라의 혁명론

<9> 혁명은 가고 이미지만으로 남은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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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0 18:08 2005/02/1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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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anori 2005/02/11 09:1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요즘 쿠바가 화두네요.. 유기농도 그렇고... 읽어봐야겠따..

  2. 2005/02/11 12:4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훌륭한 청년'이어야 할 수 있는 일과 '훌륭하지 않은 청년' 도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는 얘기? ^^;

  3. 미류 2005/02/13 12:5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산오리, 요즘 쿠바가 화두인지는 몰랐는데~ ^^ 읽어볼만한 책이네요. 책을 드리려고 해도 일산이라 너무 머네요~ ^^;;
    콩, 그런가봐요. ^^ 근데 특히 의사한테는 지역사회에 봉사한다는 마인드를 강조하더라구요.

  4. 슈아 2005/02/15 23:2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 재미나요? 미류가 재미나다면 읽어봐야지. ^^ 새로운 실험들은 모두 즐겁나 봐요. 이전에 가비오따스에 대한 책도 재미나게 읽었거든요. 흥분도 해가면서...

  5. 미류 2005/02/16 09:4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부럽고 신기하고 놀라운 느낌 ... 재미난 거랑은 좀 달랐어요. 뭔가 다 못 본 것 같은 아쉬움도 남구요. ^^;;
    그냥 술술 읽혀서 가볍게 읽어보는 것은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