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영화제 1

늦기 전에 간단히.

올해는 여성영화제에 큰 욕심이 생기지 않아(왜 그랬을까 ㅡ.ㅡ;) 보고싶은 영화를 한다발씩 적어두었다가 스윽 다 지워버렸다. 일요일에 같이 보기로 한 영화가 있어서 내친 김에 아침부터 영화를 봤다.



<빈곤의 벽 앞에 서있는 여성가장들에 대한 보고서>

집에서 잠시 게으름을 피우느라 처음부터 보지 못했다. 놓친 부분이 많지는 않은 듯한데 그래도 처음부터 못 봐서 그런지 영화에 대해 말하기가 부담스럽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내가 뭘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느낌, 음,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 영화인지를 잘 모르겠다. 다만, 제목 그대로 빈곤과 씨름하는 '여성가장'들에 대한 보고서로서는 충실하다. 비정규-주변부 노동자인 동시에 가구의 부양자인 그녀들의 고단함에 대한. 그러나 그녀들의 현재의 삶을 보여주는 데에 충실한 만큼 '빈곤'에 처하게 된, 혹은 처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보여주는 것은 부실했다. 그게 장점일 수도 있지만 아쉬움이 남는 영화.

 

<여자와 돈에 관한 이야기>

여자도 경제관념을 가져야 한다(?)는 마음을 담아 제작된 영화라고 한다. 주요 화두는 공동명의제다. 그리 흥미롭지 않은 주제였다. 보는 내내 나와 공동명의제도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영화에서 말하듯 20대 여성인 나는 경제에 대한 관념이 없나, 뭐 이런 생각했다. 답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관련은 없는 듯하고 관념은 있는 듯한데 ^^;

 

또 딴 생각 하나. 위 영화 두 개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같이 상영되는데 프로그래머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그냥 빈곤/경제라는 주제의 유사함으로 묶은 것인지, 좀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인지. 예를 들면, 공동명의제가 "빈곤의 벽 앞에 서있는 여성가장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는.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는 섣부르지만 "지금 여기"에서 의미를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은 사실.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잠시 생각하다가 잊어버림.

 

<마마상>

많은 박수를 받았던 영화. 많은 기대를 받았던 것도 같은데. 내 주위에서만 그랬나? ㅡ.ㅡ;

기지촌 성매매여성이었다가 지금은 '마마상'이라고 불리우는 -클럽에서 통역, 서빙, 청소 등을 하는- 한 이모의 이야기다. 얼마전 평택으로 나무 심으러 가던 날, 전철 안에서 본 송탄 "관광특구" 간판이 스쳤다. 그 곳...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투쟁을 두고 지역의 상인들이 항의하는 모습, 집 밖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들에 무심한 듯 씁쓸한 표정을 한 번 짓고 마는 이모.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때.

이모의 이야기는 일을 하며 겪은 일들, 클럽에서 일하는 이주여성들에 대한 불평, 쓰러진 친구에 대한 슬픔 등으로 이어지고 카메라는 중간중간에 이모의 이야기에 등장하곤 했던 이주여성들과 업주 등의 이야기를 담는다.

아스라한 느낌. 연분홍치마(제작단체)의 말처럼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이모의 이야기 너머에 있었던, 이모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을 마음의 준비가, 나는 돼있나... 끝으로 갈수록 이모의 마음이 연분홍치마와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분명해지고 연분홍치마가 던지는 문제의식의 진정성이 전해지기는 했지만 아쉬움을 지울 수는 없다.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연분홍 치마는 이모를 만나 촬영을 하는 동안 기지촌 성매매 '피해'여성의 모습을 보려고 했으나 오랜 시간 관계를 맺으면서 "홀로 늙어가는 여성"의 모습이 보이더라는 말을 했다. 공감할 수 있는 말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모가 여느 곳에서 홀로 늙어가는 여성 중의 한 명이 되는 것이 끝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 좀더 생각해봐야겠다. 연분홍치마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도 같고...

 

<꿈꾸는 카메라 ; 사창가에서 태어나>

인도의 성매매집결지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감독은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쳐주면서 아이들과 우정을 나누게 되고 아이들의 상황에 좀더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아이들이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학교를 문의하고 기숙사 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서류를 떼고 아이들이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 사진이라는 수단은 아이들에게 또하나의 눈을 열어준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또다른 세상을 꿈꾸게 하는 힘이 된다. 낯선 외국인 여성과 아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트고 이해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간다. 약 3년여에 걸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지치지 않았던 감독과 아이들이, 일단 멋있다.

- 성매매 자체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보이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성매매집결지가 그리 좋지 않은 환경이고 '탈출'시켜야 한다는 시각이 언뜻 드러나기도 한다. 폭력이나 빈곤이 아이들에게 '좋은' 것이 아님은 분명하고 아이들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인 것은 맞지만... 음... 다른 길은 없을까... 다만, 감독으로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는 것 역시 분명해보인다.

 

헥헥... 요며칠 산만하다보니 진득하니 글을 쓰기가 힘들다. 역시, 영화보는 것도 쉽지 않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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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14 09:45 2005/04/1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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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함께 가요~!

    2005/04/14 17:56

    * 이 글은 virus님의 [여성운동과 미디어운동, 어떻게 만날 것인가 _ 미디액트 포럼 8th], 미류님의 [여성영화제 1]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이번 주 금요일 1시에 열리는 미디액트 포럼에 같이 가요.

  2. 성매매방지법을 둘러싼 떠들썩한 논쟁이 가라앉고 추운 겨울 내내 생존권을 외치며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던 여성들도 보이지 않게 된 성매매방지법 시행 6개월. 미아리 화재사건 이후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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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붉은사랑 2005/04/11 23:4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많이 봤네? 기대기대^^ 나도 보는 데로, <마마상>, <공창묵시록>,<밤의요정> 정리할예정, 미류가 먼저 테이프 끊을듯?

  2. 미류 2005/04/12 10:4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별루 잘 정리할 지는 모르겠당. 요즘은 영화보면서 별로 생각을 안해. 아니면 너무 생각만 하는 건가? -_-;

  3. rivermi 2005/04/12 14:5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오오~~최근엔 영화를 찾아보질 못해서 무슨영화제가 진행중인지도 모르고 사는..흑..
    미류님이 추천한 영화를 볼 기회를 꼭 만들어봐야겠어여~~룰~

  4. 미류 2005/04/14 09:5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갱, 포스트를 쓰다말다 해서 이제야 다시 열어요. 여성영화제는 거의 끝났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마마상이랑 꿈꾸는 카메라는 함 보세요~

  5. rmlist 2005/04/14 18:0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내일 <마마상> 보려구요.요번 여성영화제에서 유일하게 보는 영화일 듯 하네요.저번 부산영화제에서의 입장불가 사태 이후 의기소침해져서 극장에는 안가고 있다는.... ^^

  6. jinbone 2005/04/14 18:4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트랙팩 만들었어요. 여성 영화제 후후

  7. 자일리톨 2005/04/14 22:4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세상에... 여성영화제 하는지도 몰랐네요. 달력을 보니 오늘이 마지막날... 털썩 OTL

  8. 미류 2005/04/15 11:0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알엠, 영화 잘 보구 와요. 메시지 보냈는데 답이 없네요. 전화번호가 바뀐 건가요? 한별이가 엄마를 잘 도와주기를 바래요. ^^

    진보네, 넵!

    자일, 그러고보니 프로그램이라도 올려놓을 껄 그랬나봐요. 내년에 또 하자나요~ ㅎㅎ

  9. 알엠 2005/04/16 09:5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 문자 잘 받았어요.미류가 문자를 보낼 때 아무도 못만나서 불안해하고 있는 중이었어요.그래서 아는 전화번호로 확인문자 보내고..또 한별이 때문에 특별배정된 자리를 받느라^^; 불행히도 한별이는 잘 자다가 영화 시작 직전에 일어났고 불행중 다행히도 영화를 10분 정도 같이 보고, 또 자봉분의 후레쉬 빨아먹느라 10분 정도 놀고 극장 안의 야광별 뜯으며(이건 비밀) 한 10분 정도 놀고 젖 먹고..아무튼 끝나기 10분 전쯤에 울어서 밖으로 나와야했어요.그래서 영화를 보긴 봤는데 본건지 안본건지 잘 모르겠어요. 고마워요..

  10. 미류 2005/04/16 12:4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영화 혹은 영화관람에 대한 글이 조만간 올라오겠네요. 한별이가 어여 자라야 할 텐데~ ^^

  11. nemini 2005/04/18 20:2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걸 다했다는 의견에 동감^^

  12. 미류 2005/04/19 16:5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렇죠. 자나는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
    홍실이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했는데 더는 이야기를 안하시네요. 쩝. 저도 접근방식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는데 잘 헤아려보지는 못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