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 이라는 말의 무게

* 자일리톨님의 [추방된 사람들 - 토니 갓리프(2004)] 에 관련된 글.

혼자 영화보러 간지도 오래됐고

제목도 괜히 끌리고

그래서 조금 피곤했지만 굳이 길을 나섰다.



그리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뭔가 찝찝하기도 하고

"뿌리를 찾아야 해" 와 같은 대사는 영 껄끄럽기도 했다.

 

내가 뭘 원했던 걸까.

별 생각없이 갔지만 만족스럽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는 분명 기대한 게 있었던 거다.

가만 생각해보면

추방된 사람들이 그/녀들을 추방한 질서의 바깥에서

그 질서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황을 즐기게 되는,

뭐 그런 스토리를 기대했던 것 같다.

 

추방, 이라는 것의 폭력성을 내가 너무 무심하게 넘겼나보다.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민족/국가와 결부되어 찝찝함이 여전히 남기는 하지만

누구나 제 삶의 뿌리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붙들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자유롭게 날아가기 위해서,

그런 욕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그/녀들을 추방하는 질서를,

-주위에 온통 그런 것들 투성인데

민족이나 국가가 그렇고 인종이나 성정체성도 그렇다.

끊임없이 경계를 확인시키고 사람들을 나누어 가두는-

가볍게 비웃어주기를 기대했던 것은 설익은 관념의 오만이 아니었을까.

 

알제리를 향해 들어가는 자노와 나이마.

알제리를 떠나 유럽으로 향하는 수많은 젊은이들.

이주노동을 위해 트럭 아래 위태롭게 숨어 국경을 넘는 남매.

 

어떤 이유,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 발딛고 살아가려는 공간에서 내몰려야 하는 상황이

추방이라면

지금 이 시간도 지구상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추방당하고 있을 것이다.

이주노동을 위해 넘어선 국경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들은

또한번의 추방을 당해야 할 테고.

 

나는 그런 사람들이 추방을 "즐길" 수 있기를 기대했던 건가.

정말, 그랬던 거야?

 

추방, 이라는 말의 무게를 생각해보게 한 영화.

 

(하지만 추방당한 삶의 치유가 반드시 "뿌리를 찾"는 것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꺼라는 생각이 여전히 든다. 경계를 허무는 것과 뿌리를 찾는 것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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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31 15:26 2005/05/3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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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일리톨 2005/05/31 23:2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알제리에 대해 일종의 동정심을 가진 남성이 주인공이라는 사실 자체에 이미 제가 느낀 불편함이 내재되어 있었던 건지 모르겠어요. 억압을 당하고 있는 알제리인들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떳떳하게 말하는 내용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알제리인이라는 감독은 왜 프랑스인을 기용했던 것일까요? 그 자신도 알제리에서 오랜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그랬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2. 자일리톨 2005/05/31 23:2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참, 저는 영화가 끝날때까지 "추방된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전혀 염두에 두고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많은 것을 놓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던 영화였어요.

  3. 미류 2005/06/01 20:1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자노가 알제리에 대해 일종의 동정심을 가진 남성이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알제리를 둘러싼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잘 몰라서 아무래도 느낌이 충분히 다가오지 않았던 것도 같아요. 에휴, 영화보기 이렇게 어려워서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