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 코뮤날레 다녀오다

* 해미님의 [[맑스 코뮤날레] 단상 & 느낌] 에 관련된 글.

 

맑스 코뮤날레를 시작하던 해에는 소식만 전해듣고 가볼 수가 없었다. 작년 토론회 때 나름 흥미롭게 토론을 지켜봤던 경험이 있어 약간의 기대를 안고 다녀왔다. 한번은 가봐야지, 싶은 생각도 있었다.

 



참가했던 토론은 '맑스주의와 한국의 좌파운동'이라는 주제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 한국에서 좌파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모였을까. 그리고 왜 그렇게 적게 모였을까. 적어도 스스로 좌파운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맑스를 따라'서든, '맑스와 함께'든, '맑스를 넘어'서든, 맑스를 중요한 화두로 삼고 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맑스코뮤날레라는 학술행사가, 맑스를 화두로 삼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울 지는, 분명 또다른 문제다.

 

맑스의 사상이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맑스가 학술적 목적으로 사상을 펼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맑스는 당대에 널린 억압과 고통의 광경들을 해석하려고 했고 그 해석이 노동자계급의 변혁의 무기가 되기를 바랐다. 맑스 역시 현장노동자가 아니었고 혁명가의 삶을 고집스레 따라간 '학자'이기는 했지만 늘 그/녀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자신의 글이 그/녀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랐던 사람이다. 그래서 맑스는 "노동자들이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쓰고 쉽게 말하려는 노력도 많이 했다. 자본론의 계열에 있는 저작들이나 초기저작들-화려하고 현학적인 문장들이 난무하는- 은 도저히 쉽다고 말할 수 없지만 조직적인 운동을 고민하면서부터는 노력을 많이 했다.

 

맑스 코뮤날레의 발제자나 토론자로 나왔던 사람들은 어떤 청중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을까. 책을 사지는 않았지만 슬쩍 빌려보았더니 술술 넘어갈 책장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발제도 그렇다. 내가 책을 사지 않아서 놓치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글은 글이고 말은 말이다. 앞에서 발제를 맡은 사람들은 정성스럽게 발제문을 준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청중과 어떻게 호흡을 나누며 이야기를 전할 지도 고민해야 한다. (정리하다보니, 그때는 조금 아쉬웠던 정도였는데 화난 것도 같네. ㅡ.ㅡ;)

 

특히, 앞에 나온 이들은 다들 '교수' 혹은 그에 준하는 사람들 아닌가. 모든 토론회에 정성스런 발제, 깔끔한 토론을 기대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글과 말이 다루기 편한 수단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신의 경험을 두서없이 말하는 사람에게서 더욱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고 고민의 실마리를 얻기도 하는 것을 보면, 항상 글이나 말의 완결성을 요구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교수'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구가 업이기도 하지만 교육도 업이다. 교육이 쌍방향의 소통이기는 하지만 '잘 가르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적어도 웅얼웅얼하는 말투는 정말 변했으면 좋겠다. 소위 '좌파교수'들이 강의를 못하는 것 보면 꽤 속상하고 심란하다.

 

내용 역시 솔깃한 부분은 없었다.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물론 새로운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갔던 이유도 새로움에 대한 기대는 아니었으니 아쉬운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발제문 발표회가 아니고 토론회라면, 토론 준비를 좀더 성실하게 했어야 하는것 아닌가 싶다. 발제 시간도 좀더 줄이고 토론주제도 대략 준비해놓고 실질적인 토론이 가능한 자리가 되도록 말이다.

 

학술행사에 참여해본 적이 없어서 이래저래 아쉬운 부분만 눈에 두드러졌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마디로 평가하면 부실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학술행사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으로 맑스 코뮤날레가 자리잡아가기 위해서는 냉정한 평가와 치열한 준비가 필요할 듯하다.

맑스가 여전히 희망이라는 것을 식자들이 확인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그 희망을 현장에서 싸우는 수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다못해 대학에서, 현장에서 맑스주의 학습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제안한다거나, 현재 한국사회 여기저기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맑스는 어떤 의미인지를 가늠해본다거나, 이런 것들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교수'님'들이 '학술적'으로 할 만한 주제가 아닌가? ...

 

** 학술행사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 큰 불만은 없다. 자본주의 사회를 넘어서기 위해 현장의 몫이 있고 연구실의 몫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서로 다른 궤도를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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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31 16:47 2005/05/3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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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미류님의 [맑스 코뮤날레 다녀오다] 에 관련된 글. 글을 쓰면서도 찝찝한 구석이 남았는데 덧글들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다. 조금 쫓기듯이 글을 쓰면서, 약간의 아쉬움을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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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니 2005/05/31 20:1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전 이번엔 못 가고 예전의 1회에 갔었는데 그 땐 괜찮았었어요. 흥미있는 내용도 많았고 어려운 것도 많았지만 그래도 재미있었거든요. "쉽게 쓰고 청중과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에 올인!
    근데 글쓸때마다 덧글칸이 자꾸 움직이네요=_= 뭘까 이건...

  2. 자일리톨 2005/05/31 23:1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맞아요. 좌파교수나 이론가들의 현학적이거나 비비꼬는듯한 글을 읽을 때면 이글을 누가 읽을지에 대해 생각이나 했는지 싶은 생각이 들때가 많아요. 저도 항상 반성해야 할 듯한 내용이에요.

  3. 뎡야 2005/05/31 23:1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 완전 빨갱이셈.. ㅋㅋ 재미없나ㅡ_ㅡ??
    이런 죠은 글은 참세상 기사에 트랙백 보내셔야죠오~~

  4. muwe 2005/05/31 23:1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고등학생 정도가 읽어서 이해할 수 없다면 그건 글 쓴이도 자기 글을 온전히 이해하고 쓴 게 아니다"라는 다소 극단적인 말을 최상천이란 이가 말했죠. 가끔 "내가 무식한 건 인정한다만 저 사람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까?" 궁금할 때도 있긴 있어요.^^

  5. dalgun 2005/06/01 01:2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덩야에게 동의. 이런 죠은 글은 참세상 기사에 트랙백 보내셔야죠오~~

  6. 참가자 2005/06/01 10:3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진지하게 참가해서 듣고, 읽어보고 써야 하는 것 아닌가? 견해를 같이하지만 읽기 괴로운 글도 있고, 견해가 다르지만 재밌는 글도 있던데... 읽지도 않고 읽고 싶지 않다고 하는 건, 책 표지나 편집이 마음에 안들었다는 건가? 이런 식으로 맑스를 인용하는 것도 웃기고. 사람의 생긴 걸 꼬집어서 쓰는 것도 웃기고. 어떤 노력도 없이 배설하듯 글쓰는 태도, 정말 싫다.

  7. hongsili 2005/06/01 12:5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도 (특히) 좌파 연구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황당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제가 명색이 박사학위 소지자인데, 문장 자체가 이해 안 될 때가 있거든요. ㅜ.ㅜ 특히 외국의 개념들을 새로 들여올 때 무책임하게 영어 발음 그대로 쓰거나 한문식 표현 쓰는 경우.. 예를 들면 노마드, 구성적 해방 등등등... 흑..

  8. 나침반 2005/06/01 13:0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가지가지의 느낌이 들었죠. 분명 '학술행사'이고 그렇기에 특수한 위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말들이 오갔을수 있어요. 저도 제가 가까이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발표를 듣는다던지 할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시간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었던것 같아요. 토론의 순간순간, 사람들이 각기 자신들의 어조로 나직하게 이야기하는 이야기들에 많은 감명과 충격을 받았답니다. ^^ 참 맑콤에서 보고 너무 반가웠어요. >.<(소연)

  9. 머프 2005/06/01 13:1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맑스는 당대에 널린 억압과 고통의 광경들을 해석하려고 했고 그 해석이 노동자계급의 변혁의 무기가 되기를 바랐다.'등의 말은 이해가 가고 또 너무 학자적으로 해석했으며 알아 듣지 못할말로 강연 한것은 동의 합니다만, 위의 참가자분이 말씀하셨듯이, 사람의 생김새라든가 좌파교수들 전체를 비꼬는듯한 말투는 조금 거슬리네요. 제가 아는 좌파 교수들은 대부분 친절 하시고 말씀도 아주 잘 하시거든요. 미류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듯한 말투 미류 답지 않네요.

  10. 거들면 2005/06/01 14:4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네그리하트가 하두 유행하길래 제국이란 책을 붙들고 씨름한 적이 있다. 나의 지적수준으로는 결국 중단했다. 이번 행사를 통해 그들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알겠더라. 꼬뮤날레 책도 2꼭지 외에 다 읽었다. 독해에 심각한 지장을 주는 글도 있긴 있지만 아주 잘쓴 글도 있었고, 오래동안 준비한 글도 보였다. 글쓴이는 거창하게 맑스를 인용하면서 시작하지만 맑스저작을 얼마나 읽고 고민했을까? 글쓴이처럼 이해하기 쉽지만 진지함도 없고, 노력도 없고, 건방진 태도로 글을 써대는 가벼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11. 말코비치 2005/06/01 18:3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는 둘째날 참가했었는데요, 정남영 교수님께 상당히 실망했습니다. 상대가 질문해 오는데 자꾸 개념이 오해다, 독해를 잘 못했다면서 피하는 모습만 있었고 제대로 된 답변은 ㅅㅏ실상 하나도 하지 못했죠. 예전 ND-PD때처럼 싸우지 말자는 이상한 말씀만 하셨고.. 조정환, 최일붕 세션이 제일 기억에 남더군요. 토론 내용도 이해가 쉬웠고

  12. 미류 2005/06/01 19:0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레니, 제가 충분히 준비를 안하고 가서 그랬던 것도 같아요. 재밌게 다녀온 사람들 얘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근데 얼마전부터 덧글 달 때 맨날 그래요 =ㅅ=

    자일, 저도 반성. 근데 그게 남 비판할 때처럼 쉽지 않아요. 그래서 더 반성. -_-;;

    뎡야, ㅋㅋ

    무위, 이오덕 선생도 비슷한 말 한적 있어요. 시골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쓰라고... 근데 학술행사라 그게 최우선의 원칙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참석한 사람들과 나누기에 가장 적절한 말을 쓰는 게 중요하겠죠?

  13. 미류 2005/06/01 19:0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참가자님, 저는 글보다 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발제를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도 했지만 토론회의 발제는 그 자체로 청중과 나눌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교수들이라면 그런 경험도 많을 테고 직업의 특성상 더욱 신경써야 한다고 생각했구요. 이런 생각을 말하는 데에 책을 꼼꼼히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14. 미류 2005/06/01 19:0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는 책을 읽고 싶지 않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읽어보고 싶은 글도 몇 개 있었지만 직접 사서 읽을 만큼 욕심은 나지 않았습니다. 쌍꺼풀이 진하다는 것이 생긴 걸 꼬집은 건가요? 제 취향을 밝힌 것뿐인데요. 그래도 누가 될 수 있다면 특정한 개인을 거론한 부분은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진지하게 참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님의 지적에 대해서는 곱씹어보겠습니다.

  15. 미류 2005/06/01 19:0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홍실이, 맞아요. 그럴 때는 참 속상해요. ㅜ.ㅜ

    나침반, 많은 감명과 충격이라니~ 좋은 시간이 되었군요. 저도 반가웠어요. ^^

    머프, 알아듣지 못할 말로 강연했다고까지 생각한 건 아닌데 -_-; 좌파교수들 전체를 비꼬
    지도 않았구요. 저는 심란하고 속상하답니다. 안타까운 거죠. 학교 다닐 때도 교수노조 활동
    하시고 글도 잘 쓰시는 선생님이 한 분 있었는데 강의를 너무 지루하게 해서 학생들이 거의
    듣지 않았어요. ㅠ.ㅠ 저의 정치적 성향이 어떻게 암묵적으로 드러났는지... ㅡ.ㅡ??

  16. 미류 2005/06/01 19:0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거들면님, 제가 맑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제 글이 더욱 건방져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맑스 저작을 얼마나 읽고 고민했을까'와 같은 질문은 쉽게 던지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읽으면 글을 쓸 수 있나요? !!! 혹시 제가 맑스에 대해 말한 부분에서 틀린 부분 혹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그걸 지적해주세요.
    꼬뮤날레 책을 읽었다는 것 말고는 내용이 없는 님의 덧글이야말로 가볍네요.

  17. 미류 2005/06/01 19:2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말코비치, 주관단체별 세션 중에 흥미로운 것이 많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저는 처음이라 그냥 전체주제토론에 들어갔어요. ^^;;

  18. 미류 2005/06/02 13:5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앗 달군, 정신없이 덧글을 달다가 깜빡했네요. ^^; 트랙백은 걸었어요. 근데 죠은 글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