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사는/집/이야기

#0. 이야기

 

남아있던 아저씨들이 모두 흩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3월초. 대략 그 즈음부터 현정씨가 본격적인 편집에 들어갔고 인디다큐페스티벌 상영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팀 활동과 관련해서 특별한 기대가 있었다기보다는, 우리팀이 가기 전부터 주욱 촬영을 해왔다는 머리카락이 아주 짧은 한 여성이 인상적이었고 카메라가 지닌 관찰자적 시선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정씨의 고민이 잊혀지지 않아서 영화를 보러 갔다. 게다가 노숙당사자모임 아저씨들이 같이 보러오신다니 일석이조.

친구가 오래동안 준비한 무언가를 발표하는 자리에, 또다른 친구들과 만나 축하하자는 마음으로 들어간 상영장.

 

#1. 더불어

 

여럿이 모여 산다고 더불어사는 것은 아니다. 서로 몸과 마음을 기대기도 하고 맞대기도 하면서 어우러질 때 더불어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불어사는집 아저씨들은 더불어살지 못했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불어살기보다는 그저 모여 사는 상태가 됐고 으레 그렇듯 흩어지게 됐다.

영화는 그런 상황에 대한 책임의 많은 부분을 양고문에게 돌린다. 영화 속에 담긴 양고문의 모습은 코미디를 방불케 한다. 그리고 웃다 지쳐 화가 나게 한다. 아저씨들에게 "각을 세우라"며 몰아세우는 장면들이 그렇고 "민주적이고 평등한 회의"를 하자며 자기 말만 하고 넘어가는 장면들이 그렇다. 그러니, 양고문이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노숙인들을 팔아먹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인권오름에 실린, 운동을 파는 마케팅에 대한, 김경만 프로그래머의 비판이 더욱 훌륭하다.)

 

#2. 사는

 

하지만 "소모품이 되고 싶지 않다"는 아저씨들은 왜 떠나는 것만을 선택해야 했던 걸까. 모여서 소주라도 한 잔 걸치면 양고문에 대한 비판이 끊이질 않는데 왜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는 한 마디를 꺼낼 때에도 눈치를 봐야 했던 것일까. 그걸 모두 양고문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산다는 건 세끼밥을 먹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내일에 대한 희망, 그것이 삶을 이끌어간다.

아저씨들에게 양고문은 불법이든 합법이든 잠잘 자리를, 낮시간에 놀지 않을 수 있는 일꺼리를 '만들어준' 사람이다. 아저씨들에게  양고문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 그것이 구체적인 기대가 아니더라도, 번번히 기대가 좌절되더라도, 내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양고문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업자연맹을 만들자고 선동하든, 더불어사는집을 사회복지시설로 둔갑시키든, 동의할 수 없는 그 순간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

 

#3. 집

 

집은 우리의 삶이 오롯이 담기는 공간이자 관계가 엮이고 맺어지는 결절점이다. 집없이 흔들리는 삶에서 희망이 자라나기란 어려운 일이고 더불어사는 꿈을 꾸는 것도 쉽지 않다. 더불어사는집 아저씨들에게 집이 생겼다는 것은, 이제 희망을 싹틔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고 더불어살 사람들을 만났다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 공간에 양고문이 있었다는 점이 문제였던 것.

하지만 우리가 정말 싸워야 할 지점은 사람들에게서 집을 빼앗아가는 사회구조다.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땅을 갈아엎으며 사람들을 쪽방과 고시원으로 내모는 사회. 적절한 주거비부담을 고려하기보다는 이윤과 재산가치에 골몰하며 집을 짓는 사회.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는 집과 사람이 더불어살 수 있는 집을 인권으로 보장하는 사회에서는 양고문의 마케팅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4. 다시, 이야기

 

그렇다고 양고문이 용서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큐 역시 운동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희비극의 교차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노숙인과 집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은 어색하게 맞물려있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솔직함의 힘만으로도 다큐는 충분히 의미있다. 그리고 그 이상을 고민하고 이어가는 것은 관객의 몫일 듯하다.

아저씨들의 얼굴, 그때 그 자리들이 하나둘 스쳐가고 '그 자리'의 바깥에서 현정씨와 노실사 활동가들과 나눴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어설프게 더불어사는집을 찾아갔는지, 현정씨는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지, 아릿하기만 하다. 다큐가 끝난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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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4 12:02 2006/11/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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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명랑 2006/11/04 14:3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 양고문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이라면... 나 역시 그의 독선과 아집에 넋을 잃었던 적이 있었지... 어렵게 시작한 빈민운동을 모욕하는 존재... 이런 사람들은 참 밉다...

  2. 곰탱이 2006/11/04 14:4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어느 곳에서나 양고문 같은 사람은 있죠. 그러나 양고문은 양고문 개인이 아니라 그 집단 조직 구조의 상징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구조를 깰 수 있는 힘이 없다면 그 구조에서 떨어져 나올 수밖에 없죠. 요즘 제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자주 봅니다. 많이 씁슬합니다.

  3. 미류 2006/11/05 17:4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명랑, 넋을 잃을 만큼... 맞네. 많이 속상했겠다. 쩝... 금요일에 오는 거지? ^^;

    곰탱이, 그런가요? 그 집단 조직 구조를 잘 몰라서... 아마도 그럴 꺼라는 생각은 드는데... 떨어져 나올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다니 정말 씁쓸하네요. 곰탱이님이 토닥토닥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