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말하고 싶지 않지만 왠지 말해야 할 것 같은 이 느낌. 아무도 나 따위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텐데도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조금은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런 상황. 어렵다. 

 

꽤나 늦게서야 소식 자체를 알게 됐고, 그 후로도 무슨 말들이 오가는지 주의 깊게 듣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반갑다고 느껴진 글이 엄기호의 이 글. 곽노현 잘라내기가 과연 진보진영의 최선인가? 

 

제도에 따라서 죄가 되거나 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나에게는 이 사건이 그런 일들 중 하나다. 무엇이 문제냐 물으면 선거법을 어겼다는 정도 외에는 잘 모르겠는데, 그 선거법이라는 게 나에게는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그리 비중 있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대가성이면 어떻냐는 생각까지 드는데, 누군가 깨우쳐주시면 쌩유. 반면, 제도나 법과 무관하게 죄가 되어야 할 일들이 있는데, 간단하게는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 같은 것들이다. 이 두 사건은 사회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뤄지고 있다. 정치적인 것은 도덕적으로, 도덕적인 것은 정치적으로. 이런 맥락에서 정치의 도덕화와 도덕의 정치화를 짚어준 엄기호에 한표. 

 

하지만 나는 '선의'야말로 정치를 도덕화했다고 생각한다. 그게 '선의'라니. 나는 그가 선한 마음에서 2억을 내줬을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을 게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선의'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무엇이 선한 마음을 발동시켰고 어떤 윤리적 결단이 선의를 행동으로 옮기게 했나. 이미 그것은 정치였다. '선의'라는 것이 정치와 무관한 순수한(?) 어떤 것으로 표상되는 것은 위험하다. 박 교수는 왜 곽 교육감에게 도움을 기대했을까. 곽 교육감이 건넨 돈은 이미 박 교수의 요청에 대한 답이었다. 정치적인 '선의'의 가능성은 없었던 걸까? 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정의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아니, 믿을 것이 아니라 그걸 만들어야 한다. 정의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곽 교육감을 내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능력이 곽 교육감을 내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나는 곽 교육감을 비판할 수가 없다. 그나마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정치의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곽 교육감이니까. 이것은 도덕과 도덕이 치열하게 부딪치는 정치가 아니라 새로운 도덕이 가능한 제도를 건 정치인 것이다. 선의와 도덕과 책임감을 강조할수록 정치의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 내가 끝내 '선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비슷하게, 피의자의 인권 등등의 이야기도 굳이 불필요해 보인다. 적어도 내게는 울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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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3 00:01 2011/09/0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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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침안개 2011/09/03 08:5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이 글을 e노트에 소개 했습니다.^^

  2. 2011/09/16 17:1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인권도 도덕과 정치 사이에서 심한 줄타기를......

    • 미류 2011/09/17 22:26 고유주소 고치기

      네 그렇게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정치를 향해서, 하지만 도덕에 붙들리는. 그런 윤리적 질문을 만들어내는 게 인권인 것 같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