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회 권고안을 두고 많은 언론들이 해결의 물꼬가 열렸다고 반기고 있다. 물도 전기도 자유롭게 쓸 수 없고 밥조차도 누군가 올려주어야만 먹을 수 있는, 높고 외로운 크레인에서 300일을 넘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을 조금은 달래는, 반가운 소식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제서야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런 만큼 다시 시작될 노사 협상에서는 의미 있는 진전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의미 있는 진전이란, 권고안이 나오기까지 부당한 정리해고를 철회하기 위해 사람들이 외쳤던 이야기를 되새기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몇몇 언론들의 반가움에는 이런 이야기를 오히려 뭉개려는 시도가 보인다. 뭐가 됐든 빨리 끝나야 한다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이제 공은 정투위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야말로 공은 조남호에게 넘어갔다. 대규모 정리해고에 노동자들이 저항하자 해외로 도피하지 않는가 하면, 몰래 입국한 사실을 숨기고 기자회견을 열어 사람들을 기만하고, 메모를 보고 연기를 하며 청문회를 모면하는 데에 급급했던 조남호는 한번도 공을 넘겨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조남호 회장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한 번도 집어보지 않았던 열쇠를 다시 내던질 것인지, 꼭 쥐고 성실하게 해고자들의 요구를 들을 것인지, 우리가 지켜봐야 할 것은 그것이다. 
 
한편, 몇몇 언론들은 노사 문제에 정치권이 개입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며 벌써부터 걱정을 늘어놓고 있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때 불법이라 매도하며 잘못 개입할 때 오히려 그 말들을 퍼나르던 언론이 정치권의 개입을 비판한다.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바라지 않는 그들은, 정리해고의 문제점이 국회에 의해서도 확인되고 난 후 벌어질 상황이 두려운 게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상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못한 이유는, 정치권이 개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권이 너무 늦게 개입했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자본가가, 근본적으로 불평등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조금이라도 더 대등한 조건을 만들어 자율적으로 협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용역이라는 사적 폭력이 횡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정치권은 책임을 방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너무나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던 시간이 이어져왔다. 기업의 경영이 어렵다고 주장할 때, 사회가 함께 답을 찾기를 포기하고, 답이 될 수 없는 정리해고에 그냥 손 들어주고 만 시간들이 눈덩이처럼 점점 크게 뭉쳐서 삶을 짓밟고 있다. 이제 그 눈을 녹이기 시작해야 한다.
 
정치권의 개입을 걱정하는 이들은 시민들의 '간섭'도 걱정한다. '간섭'을 걱정하는 거라면 걱정 푹 놓으시라고 전해주고 싶다. 시민들은 간섭한 것이 아니라 함께 싸웠다. 제3자가 아니라 각자가 또 하나의 주체가 되어 싸웠다. 그걸 사람들은 연대라 불렀다. 희망버스는 연대의 물결이었다. 자본의 일방적인 횡포인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인간의 권리를 말하는 용기의 연대, 길고 힘겨운 싸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세상을 가꾸는 생명의 연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불안에 영혼을 잠식당하지 않고 사람답게 사는 데 도전하겠다는 설렘의 연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언젠가 가능할 것이며 그래서 언제나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의 연대였다. 이 물결은 한진중공업의 울타리 밖으로 이미 뿌리줄기를 뻗어가기 시작한 지 오래다. 사다리를 타고 벽을 넘었던 1차 희망버스 이후 저들은 그 벽을 방어하는 데에만 골몰했다. 차벽을 치고 물대포를 쏘고 급기야 5차 희망버스에서는 59명이나 되는 시민들을 공격적으로 연행했다. 그러나 위태롭게 버티기를 고심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저들이다. 희망버스는 어디로나 흘러넘칠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권고안 이후 정리해고 철회는 이미 물 건너간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지만, 그건 두렵지 않다. 희망버스는 지금까지 오는 동안 늘, 이미 끝난 것처럼 말하는 주류를 향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온몸으로 말하며 왔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는 모든 사람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 다만 지금 두려운 것이 있다면, 협상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설령 지금 당장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복직을 하게 되더라도, 이미 정리해고가 남긴 상처들은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돌잔치에서 노래가 나오자 팔뚝질을 했다는 아이가 노래를 들으면 춤이 더 추고 싶어지는 것은 언제일지, 이미 서먹해져버린 옛 동료들과 퇴근길에 진하게 술 한 잔 걸칠 수 있게 되는 것은 언제일지, 잠시라도 손을 멈추면 까닭없이 눈물이 그렁해지는 서러움이 희미해지는 것은 언제일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몸에서 향내가 아직 가시지 못하는 것처럼, 기약 없는 상처다. 그러니 협상은 이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는 시작이 되어야 한다. 정리해고가 섣부른 결정이었고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 꼭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조남호가 그 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그건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정투위의 의견에 따르겠다고 한 이유가 이것일 거라고 짐작한다. 궁지에 몰려 서둘러 싸움을 접은 후 억울함이 쌓이는 것도, 하루하루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며 서러움이 쌓이는 것도, 상처를 더 곪게 하는 것일 뿐이니. 다시, 이제야말로 공은 조남호에게 넘어갔다. 정리해고 철회라는 교본과 함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1/10/11 02:20 2011/10/11 02:20
태그 :
트랙백 주소 : https://blog.jinbo.net/aumilieu/trackback/784

댓글을 달아 주세요